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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37화 (236/1,239)

0237 <-- 마적 돌산 -->

드낙은 〈연금술사 베르인〉의 움직임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가 순간적으로 비틀거리며 정신을 잃었다.

검은 연기가 그를 덮쳤다. 강제적인 수면이었고, 찰나에 불과한 시간일 터였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기이할 정도로 연기가 흐르는 속도가 느렸다.

그제서야 드낙은 검은 꿈의 시간 또한 느리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느긋하게 주위를 훑어보며 나타난 검은 문의 앞에 섰다.

문이 열리며 환상이 그를 덮쳤다.

그아아아아!!!!

거칠게 포효하는 마적 대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외침은 많은 이들을 불러 모았다.

버섯을 캐며 연명하는 떠돌이.

홀로 하루살이처럼 길목에 서서 산적질을 하는 약탈자.

소작을 잃고 가족 통째로 산으로 도망친 화전민.

그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거친 카리스마가 필요했고, 그는 제법 어울렸다.

〈포악한 카리스마〉는 법이 없는 곳, 마음이 크게 패여 그저 공격성밖에 남지 않은 패배자들을 휘어잡기 좋았다.

‘허접하네.’

드낙은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땅! 땅! 땅!

망치와 못이 돌을 두들겼다. 그렇게 시작된 움직임은 2m도 안 되는 돌담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잡하기 그지없는 석공술이었고, 처음과 끝은 몰라볼 정도로 달랐다.

〈석공 요령〉은 말 그대로 기술을 모르는 자가 석공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요령과 노하우, 실전적 지식을 주는 것이었다.

‘꺼져.’

드낙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역동적인 환상이 그를 덮쳤다. 어두컴컴한 뒷골목, 가만히 있던 그림자가 순식간에 덤벼들었다.

팔 하나가 쑥 어깨 안쪽으로 들어가 상대의 팔을 위로 올려 몸에 대한 가드를 강제로 풀어버렸고, 그대로 짧은 단검이 옆구리부터 시작해서 아랫배를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듯이 푹푹 찔렀다.

‘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드낙이 흥미로운 눈을 했다. 무엇보다 상대의 어깨에 손을 쑥 집어넣어서 들어 올린다는 점이 칭찬할 만했다.

기습, 뒷골목, 근접에서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상대는 검조차 뽑지 못하고 힘을 잃고 계속해서 공격당하더니 이내 차가운 땅에 드러누웠다.

〈잔인한 내장 털기(Cruel Viscera Stealing)〉.

그럴듯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드낙에게는 별로 쓸 일이 없는 기술이기도 했으며, 하자가 많았고, 단검이라는 부무장으로 하는 것이었기에 자주 쓸 일도 없었다. 또한 한 번 보는 것으로 이미 그 묘리를 모조리 본 드낙이었다.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재밌긴 재밌는 기술이네.’

레슬링 같기도 했다. 잘은 모르지만.

드낙은 다음 검은 문의 앞에 섰다.

반짝 빛나는 밤하늘이 드낙의 시야를 가득 메웠는데, 그중에 하나가 흉흉하게 붉은빛을 토해냈다.

그 별은 빠르게 움직이면서 드낙의 정수리 위로 올라왔다. 그 모습에 괜히 드낙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초월적인 현상〉은 현대인인 드낙에게 언제나 두려움으로 가득 다가왔다.

거무튀튀한 기운이 그를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불쾌한 기분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시각적으로 봤을 때는 기분이 나빠질 수 있었다.

‘아!’

정신이 조금 확장되는 기분. 그 희한한 짜릿함. 지식을 개척했을 때의 짜릿함과 비슷한 깨달음이 드낙의 머리를 강타했고, 그 쾌락은 전신을 한 번 크게 타고 흘렀다.

“흐!”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낸 드낙이 입을 다물었다. 단순한 쾌락을 선사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존재와 혼, 정신과 업의 상승이었다.

〈살생(殺生)의 업(業)〉.

살성(殺星)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살성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별 중에 가득 많았다. 그 별이 드낙을 따라다니게 되는 것이다.

“하하하.”

드낙이 웃었다. 이것은 마적을 죽여서가 아니었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그 업을 〈검은 문〉으로 빨아들였기에 생긴 것이었다. 또한 존재의 격(格)이 상승하고, 혼의 질이 높아지고, 정신이 보다 더 강고(强高)해 짐을 의미했다.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수많은 별 중에 하나가 날 따라다닌다는 것은 정말 이해가 안 되긴 하네.’

그에게 있어서 별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는 다른 것 같았다. 아마 마법사 중에는 점성술을 연구하는 자도 있을 것 같았다.

저벅.

그가 거침없이 검은 문을 통과하여 그 힘을 받아들였다.

살생의 업은 또한 받아들임으로써 업이 증가하고, 악운이 강해졌다.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하나의 별이 흉험한 붉은빛을 내면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엉망진창인 호흡이 거칠게 입에서 토해졌다. 여름에도 밤에는 쌀쌀하거나 시원하고, 바람이 잘 부는 것이 〈남부 왕국〉의 날씨였다. 가을이 된 지금 뜨겁게 달구어진 세린의 입에서는 입김이 튀어나왔다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녀의 체온은 보통 인간의 체온을 넘어선지 오래였다.

“헉헉!”

세린이 평야를 질주했다. 그 속도는 실로 인간을 벗어난 속력이었지만 그녀는 정신없이 눈을 이리저리 돌리고, 고개를 계속 움직이며 불안하게 달려나갔다.

그녀는 포위되어 있었다. 무시무시한 으르렁거림 속에는 짐승의 잔혹함이 깃들어있었고, 그것은 그녀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 충분했다.

“이 개 같은 짐승 놈들이!”

〈전투의 물약〉을 소량 먹은 세린이 고함을 내질렀다.

폭발적인 신체능력을 지닌 세린이 참지를 못하고 덤벼들었지만 늑대는 순식간에 앞으로 내달리며 옆으로 크게 도망쳤다. 그리고 세린은 등 뒤에서 들리는 거친 짐승의 숨소리에 고개를 돌려 손을 할퀴듯이 휘적거렸다.

휘익!

도노가 입을 벌린 채 비웃듯이 멀어지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으으···’

“컹컹! 아우우!”

두 번 짖고, 길게 소리를 뽑아내자 늑대들이 너도나도 소리를 질러대었다. 세린은 그것만으로 질려버린 채 도망치기 바빴다.

싸울 생각을 버렸다.

그녀의 정신력은 그저 〈연금술사〉 그리고 단 한 번도 나락에 떨어지지 못한 나약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전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날 것처럼 모든 것이 공포스럽게 다가오고, 마음속에 끔찍함을 붙이는 이런 상황에서 정신을 곧추세우기 힘들었다.

‘놈들은 덤벼오지 않아. 계속해서 도망치면 돼.’

세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달려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점점 힘에 부쳐왔다. 늑대들은 그녀를 계속해서 견제했다. 앞으로 치고 들어가며 척하며 시야를 뺏고, 뒤에서 다가가고를 반복했다.

그것이 페이크라는 것을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저리 가!! 가라고!!”

달리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게 된 것이었다. 몸을 바짝 낮춘 채 입맛을 다시며 그녀의 뒤를 달리다가 냉큼 빠지는 음흉한 놈도 있었다.

늑대들은 결코 멍청하지 않았다.

그들은 타고난 사냥꾼이었다. 늙은 늑대가 앞을 서고, 늑대 리더는 항상 무리의 뒤를 걸었다. 진형이 갖추어진 이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야생 늑대들이었다.

“꺼지라고!”

체고가 70cm에 달하는 드낙의 갈색 늑대들은 허리까지 오는 놈들이었다. 더군다나 도노는 그것보다 컸다. 장작을 줍다가 도노를 보면 오금이 저려서 도망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흰여우 세린〉의 경우에는 물약의 도움으로 흥분제가 몸을 돌고 있어서 도망은 칠 수 있었다.

그 말은 곧 작은 움직임에도 크게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늑대들은 네 발 달린 짐승으로서 그 기민함은 인간의 반응속도를 뛰어넘었다. 순식간에 다가왔다가 옆으로 훌쩍 머리를 뛰어넘기도 하는 도노는 말 그대로 〈변이 야수〉라고 할 정도의 신체 스펙을 보여주었다.

그때마다 세린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오금이 저릿해왔다. 공중 제비를 돌면서 머리를 지나갈 때 흘려진 진득하고 많은 양의 침이 떨어져 내렸을 때는 척추가 벼락을 맞은 듯이 저릿하기도 했다.

끔찍한 야생성. 또 인간을 물어뜯어 본 짐승의 기세는 버티기 힘들었다.

쉭!

“헉!”

도노가 거칠게 지그재그를 치며 시야를 빼앗으려고만 했는데도 세린이 버둥거리다가 그대로 발을 헛디뎌서 넘어졌다. 단번에 갈색 늑대 하나가 그 실수에 번개처럼 쏘아져서는 뒷다리의 여린 부분을 물어뜯었다.

“꺄아아악!”

소량의 물약을 섭취했기에 광전사가 되지 못한 세린이 소리를 꽥 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큰 바람소리가 났지만 허공만 지났을 뿐이었다. 바짝 엎드린 늑대는 입에 피를 묻힌 채 뒤로 물러났다.

“헉! 헉! 헉헉! 헉헉헉!”

공격을 받은 세린이 과호흡 증세를 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으! 헉헉!”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주저앉은 그녀를 늑대들이 바라보며 천천히 주위를 돌거나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다.

공격에 있어서 강약을 두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었다. 상대의 정신을 끝까지 내몰지 않는 완급조절은 사냥을 수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조용한 침묵 속에서 세린이 상처를 힐끗 보며 확인했다. 이빨에 물린 자국이 있었지만 깊지 않았다.

어금니가 아니라 앞니로만 물어뜯고 빠졌기 때문이다.

교활한 늑대였다. 강하게 물때와 얕게 물고 빠질 때를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도노의 지휘가 있었기 때문이다.

숨을 고른 세린이 일어서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숨을 고른 시간〉이 흘렀고, 달아오른 몸이 차갑게 식으면서 자연스럽게 물약의 효과도 사라져버렸다.

“아흐흑!”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기어가다가 이내 모든 것을 포기했다. 흉악한 늑대들이 서서히 그녀를 좁혀왔다. 그중에는 도노도 있었는데 그는 입을 쩍 벌리면서 갑자기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크아아! 아우우우우!!!”

그리고 목을 들어 올리며 하울링을 내뱉었는데 자연히 세린의 시선이 향했다. 그녀의 뒤통수를 보고 있던 갈색 늑대가 단박에 다른 발을 앞니로만 물고 뒤로 빠졌다.

“크윽!”

포기했다고 생각했다가도 그 고통에 세린이 버둥거렸다. 하지만 힘없는 그 모습에 늑대들의 표정이 변했다.

“크앙!”

도노가 그대로 그녀를 덮쳤다. 세린의 몸이 거칠게 출렁거렸다. 체중으로도 상대가 되지 않았고, 약발이 떨어졌음을 보였기에 힘없이 흔들렸다. 사람의 손에 쥐여진 나무 인형처럼.

콰직. 콰드득!

손목을 그대로 앞니로 씹고, 다시 벌려 어금니 안으로 넣어 그대로 박살을 냈다.

“흐아아아아!!!!!”

끔찍한 소리가 평야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거친 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발룬〉을 타고 온 드낙이었다. 그 옆에는 이실레아 또한 말을 타고 왔다.

늑대들이 자연스럽게 물러나자 손목이 박살 나고, 양 다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채로 쓰러진 세린이 보였다. 그녀는 횃불 하나를 들고 내린 드낙을 바라보았다.

“으흐흑, 흐흐흑! 너, 너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갈 것이다. 원귀가 되어서라도 널 저주하고, 살아서도 저주하고! 내가아아아아!!!”

서걱!

저주의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한 채 세린의 목이 그대로 말끔하게 잘려나갔다. 단두대로도 처형해야 하는 인간의 목뼈였지만 말끔하게 잘렸다.

이실레아는 감흥 없는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악(惡).

지금 상황이 아니라면 쓰지도 않을 연금술사였다. 물약을 다루기 때문에 실력보다는 심성이 첫째인 것이 연금술사였다. 애매한 성향이라면 발로 걷어차이는 것이 연금술사였다.

그들은 문인보다 더 청렴해야 했다.

이실레아의 마음은 애초에 떠나있었다.

“드낙 경, 시체는 어찌하겠습니까?”

“제를 지내는 것도 아까운 자입니다. 알아서 뜯어먹히게 놔두겠습니다.”

드낙이 발룬에게 다시 올라탔다.

“구우우!”

발룬이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도노가 냉큼 따라붙어서는 흔들거리는 꼬리에 장난을 한 번 치면서 발룬의 앞으로 오자 발룬이 혀를 날름거리면서 도노의 머리 위에 침을 묻혔다.

왁스를 바른 것처럼 도노의 털이 한쪽으로 쓱 쓸려나가며 그럴듯하게 스타일이 만들어졌다. 이실레아가 그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는데 도노와 발룬이 친분을 과시하는 것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귀여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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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추코 감사합니다. 다양한 의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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