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6 <-- 마적 돌산 -->
드낙이 눈치를 보고 입을 열었다.
“그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데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 말에 이스핀이 냉큼 대답했다.
“감시를 두면 될 일입니다. 또 독에 대한 판별은 어느 정도 가능하고 무엇보다 간단한 질병 물약에 대한 지식을 뽑아서 그것을 통하여 필요한 인원을 연금술사로 키우면 이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드낙이 그 말을 받았다.
“의심을 깨끗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연금술사의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녀 스스로가 의심을 깨끗하게 만들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에는 벌을 줄 수밖에 없다. 께름칙해.”
벌은 당연히 처형이었다. 하지만 이스핀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철저한 감시를 통해서 〈연금술사〉에게 벌로서 물약을 만드는 것으로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스핀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당연히 연금술사가 있다면 돈이 되고, 이득이 되기 때문이었다. 사람 여럿 죽어나가도 〈이권〉이 더 중요한 법이다. 겉으로는 위선으로 시민을 싸고돌지만 이권을 손에 쥐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벌로써 감금하고 물약을 제조하여 10년 혹은 5년만 일을 하게 한다면 충분히 흑과 백을 가릴 수 있다고 여겼다.
사고가 난다면 그때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돈 먹은 공무원들이 허투루 부작용이 있음에도 넘어갔다가 문제가 되면 그때야 움직이는 것과 비슷했다. 이스핀에게 중요한 것은 이문을 남기는 것이었다.
‘도렌이 이것저것 말해주는 걸 주워들어서 다행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만들어내는 이득이 크다는 것이었다. 생각이 있다면 드낙의 세력에 크게 가담할 것이기에 문제가 안 될 여지도 있었다. 똥개 앞에서 몽둥이를 휘두르는 놈도 귀족 앞에서는 꼬리를 흔들기 마련이었다.
“흑백이 가려지지 않았기에 더더욱 조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애매한 놈이라면 결국 그 꼬리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그전까지 써먹자는 소리였다.
무섭게 들렸지만 그것은 시민들에게나 무서울 뿐이었다. 이스핀은 그런 면에서 칙칙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 녀석이 갑자기 왜 이렇게 원탁회의에서 말이 많아졌지?’
드낙으로서는 분통을 터트릴 만한 일이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보급과 후방을 맡은 게제라스와 도렌이 없자 아주 열심히다.
“그래도 꺼림칙하지 않나?"
드낙이 감정을 톡톡 건드렸지만 이스핀은 다양한 이득을 말했다. 물론 이것 또한 들은 것이었다. 〈신전〉에 대한 견제에 대한 부분이었다. 술 취한 도렌에게서 들은 것이 바로 〈연금술사〉의 용도이기도 했다.
“당장 신전의 세력이 적습니다. 사제가 더 많이 배치되는 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흑백이 가려지지 않은 연금술사를 써야 합니다.”
판단이 설 때까지 결정을 보류하자는 것이었고, 신전까지 들먹였다. 〈사제 제롬〉이 눈을 찌푸리자 이스핀이 말을 바꾸며 사과했다.
“너무 직설적이었나 모르겠습니다. 제롬 사제님에게 죄송합니다. 하지만 벌써 책임져야 할 마을이 세 곳입니다. 여기까지 치면 네 곳이 될지도 모릅니다.”
제롬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을 풀기가 힘들었다. 역량의 부족을 탓하며 자신들을 들먹였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좋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세력 확장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실레아가 웃어 보이면서 분위기를 풀려고 노력했고, 제롬은 그 배려를 느끼고 애써 웃음을 지었다. 힘없는 자의 설움은 이미 익숙했다. 그래도 이곳에서 세력의 새싹을 일구고 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말씀을 계속하십시오.”
“여름이 지나갔으니 아직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가. 굳이 그렇게 하자가 있는 연금술사를 등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광전사들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더더욱···”
드낙은 그런 이스핀의 말에 반박했다. 이렇게까지 드낙이 말하자 이스핀도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이번에 이렇게 활약을 한 것에 만족했다.
“그럼 그 판단을 빠르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빠르게 한다?”
이실레아의 말에 드낙이 흥미로운 눈을 했다.
“예. 도망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럼 그녀가 흑인지 백인지 가려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녀가 뼈대를 갖추니 드낙이 순식간에 살을 붙여나가 그럴듯한 계획을 세웠다.
모두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으니, 〈연금술사 베르엔〉도 속을 수밖에 없었다. 현대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간접 경험을 쌓은 드낙의 연출은 탁월했다.
“그럼 그 결과에 따라서 결정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저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
“베르엔 연금술사!”
밖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묶여있던 〈흰여우 세린〉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병사는 순식간에 밧줄에서 그녀를 풀어주었다.
“군막을 배정해드릴 테니, 따라오시오.”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좋아졌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의심이 풀린 것이다. 콧대를 높이며 가다가도 그녀는 금방 몸이 더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 씻을 물을 얻을 수 있을까요?”
“따로 데운 물을 나중에 군막 안으로 들여놓겠소.”
미모와 젊음을 끊임없이 가진 그녀에게는 굴욕이기도 했고, 삭막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준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변방이야. 연금술사의 재목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지.’
기사라도 버려진 기사일 터였다. 그런 확신이 더 강하게 들었다. 꺼림칙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형편일 것이다.
촤악···
군막 안으로 아주 큰 대야에 끓인 물이 대령했다. 전쟁터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었지만, 물이 많은 이곳이었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장작을 피우는데 고생을 했을 것 같았지만 세린은 감사의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병사들이 빠르게 밖으로 나가자 그녀는 군막 안에 혼자 있다는 것을 알자 옷을 벗고, 그대로 작은 바가지로 물을 퍼서 진흙을 대충 헹구어냈다.
“저···베르인 연금술사! 깨끗한 옷을 가져왔는데, 여기 밖에 의자에 두겠소.”
“그러세요.”
병사들은 아직 〈연금술사〉의 권위를 모르는 것인지 제대로 된 말투를 쓰지 않았다.
‘괘씸한 것들.’
나중에 후장에 물약을 흘러 넣어 끔찍한 고통을 주고 싶었다. 세린은 그 병사의 목소리를 기억했다.
“끄흠!”
물약의 과도한 복용으로 목소리가 조금 망가진 세린이 기침을 짧게 하며 자신의 몸을 씻고, 옷을 빨았다. 빨면서도 신경질을 냈다.
‘이 내가 이런 곳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니. 반드시 끔찍한 죽음을 내어줄 것이다.’
그들은 독사를 자신의 몸에 집어넣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늘의 믿음이 가져올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비켜라!”
“이스핀 부대장님! 안 됩니다!”
“어허, 이것들이 머리통에 똥물만 쳐들었나. 괜찮으니 물러가라! 이 일을 이실레아 경에게 말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그다음에는 안에 들어가서 뜨뜻함을 느끼던 세린이 밖의 소란에 귀를 기울였다.
‘부대장? 제법 잘 나가는 놈은 아닌 것 같은데.’
기사보다는 아래였지만 간부이기는 하는 듯했다. 병사들이 떠나는 소리가 들리고, 밖에서 기침 소리가 났다.
“실례합니다. 다 씻으셨습니까?”
“누구시죠?”
“저는 이스핀 부대장이라고 합니다. 제법 높은 위치에 있죠.”
세린이 그 말에 빙긋 웃으며 나신으로 걸어나가 새하얀 손을 뻗었다.
“제가 옷을 안 입고 있어서 그런데 옷을 좀 주시겠어요?”
“아! 여기···”
옷을 주려던 이스핀의 말을 들으며 세린이 손을 서서히 빼며 옷이 잡혀도 잡지 않았다. 웃음소리를 흘리자 이스핀이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대범하시군요.”
“옷을 받아야 할 손이 자꾸 뒤로 가니 어쩌겠나?”
그 말에 세린의 손이 이스핀의 목을 휘감았다.
거친 시간이 지나고, 이스핀이 간이침대에서 그녀를 주물럭거리며 이 말, 저 말을 해대었다. 그중에는 그녀의 간을 쿵하고 내리기에 충분한 이야기도 섞여있었다.
“···내일이 되면 피를 토해서라도 그대를 〈물의 정령의 심처〉에서 확인을 한다고 하더군. 하여간 의심이 많은 것들이야. 〈흰여우 세린〉의 시체가 나왔음에도 그런 소리를 하다니. 걱정 말고 주무시오.”
“네? 네···”
이스핀이 세린의 입술을 탐하고 그대로 빠져나갔다. 천막을 나온 이스핀의 표정인 흐뭇함 그 자체였다. 횃불 때문에 그 표정이 설로 드러났는데 이실레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딱 봐도 그냥 즐긴 자의 모습이었다.
군막을 이리저리 지나서 군막 한 곳에 들어가자마자 이실레아의 날카로운 말이 쏘아졌다.
“이스핀 부대장. 일 처리를 확실히 한 거 맞습니까?”
“당연한 말씀을···”
“다른 것에 더 신경을 쓴 것 같으신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고.”
“제가 정력이 좋아서···”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중요한 때에 성욕에 정신이 팔린 모습은 영락없이 가벼워 보였다. 그 모습에 이스핀이 되려 성을 냈다. 먼저 성적으로 시비를 건 것도 두 사람이었다. 거기에 한숨이라니?!
“아니, 해도 너무 한 거 아닙니까? 그 몸매를 보고 안 즐기면 전 고자입니까? 뭡니까? 그리고! 아무도 지원자가 안 나와서 제가 간거 아닙니까?”
“지원자가 안 나오다니? 그런 말을 누가 했습니까? 드낙 경이 가면 의심할 것이고, 부대장이 아닌 병사가 가면 그런 정보를 어떻게 얻은지도 골치 아프고 설명하면 또 의심할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갑니까?”
이실레아의 말에 이스핀이 거침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이실레아님이 적격이지요. 여자를 그 하는 성벽을 가지고 있으면 더 믿지 않겠습니까?”
“무, 무무. 무슨! 그런 소리를!”
그녀가 펄쩍 뛰면서 눈이 크게 떠지며 말을 잇지못했다. 목이 새빨개진 것이 크게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만들 하고, 상황을 지켜봅시다.”
드낙의 말에 두 사람이 진정했다. 이제 〈연금술사 베르엔〉의 반응을 살필 차례였다.
찌익···
군막의 한 곳이 돌을 때려서 만들어진 날카로운 돌에 찢기며 작은 소리를 서서히 냈다. 횃불이 타는 소리에 묻혔다.
“······”
베르엔은 그곳을 통해서 주변을 살폈다. 주변은 이상하리라고만 치 조용했다. 하지만 이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순찰을 도는 병사들은 경계심을 잔뜩 갖추고 있었다.
〈순시귀신 이실레아〉 때문이다. 새벽에도 갑자기 순시를 도는 이 미친 여자 때문에 병사들의 불침번은 진짜 제대로 된 불침번이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사방을 살피며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꿀꺽.
그 삼엄한 모습에 옴짝달싹도 못하고 숨조차 쉬지 못한 베르엔이 마른침을 삼켰다.
병사들은 금방 지나갔다. 그 숫자는 3명에 불과했지만 그들의 철두철미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에 법칙성이 있었다.
‘30분.’
뭔 수를 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돌담을 성공적으로 넘어야 해.’
베르엔은 서둘러 치맛자락을 올려서는 자신의 후장에서 길쭉한 밧줄을 손톱으로 잡아 긁어내어 밖으로 빼내 손으로 잡아당겼다.
“흐으으···”
그 밧줄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가죽 주머니들이 여럿 묶여져 있었다. 줄줄이 뽑혀져 나왔는데, 때때로 피가 묻어있기도 했다.
‘그 씨발새끼가 어찌나 거칠게 해대는지···’
아랫배에서 통증을 느끼며 세린은 서둘러 오물이 묻은 가죽 주머니의 물약을 재확인하고, 계획을 세웠다.
불침번 병사가 다시 한 번 그녀의 군막을 지나갔고, 가자마자 세린은 그대로 천막을 빠져나왔다. 그녀의 피부는 새까맣게 변질되어있었는데, 눈조차 검은색 일색이었다. 또한 발소리는 마치 고양이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순식간에 군막을 지나갔는데, 병사들과 마주쳤음에도 그저 멈추는 것만으로도 눈을 속일 수 있었다.
횃불 빛에서 멀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시야에 걸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횃불 빛 때문에 병사들의 눈은 어둠에 취약해져 있었다.
순식간에 돌담에 도착한 그녀가 가죽 주머니 중 하나를 들어 올렸다. 〈전투의 물약〉이었다.
‘소량이니까 괜찮아. 고열에 시달려도 여기서 벗어나는 게 중요해.’
평야의 움푹 파인 곳에 숨는다면 추적을 능히 피할 수 있었다. 또 이곳에서 남쪽으로 달리면 고블린이 득실거리는 〈깊은 녹색 숲〉이 있었다.
꿀꺽.
한 모금 마신 세린은 용솟음치는 힘을 느끼며 그대로 돌담을 넘었다. 말 그대로 한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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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추코 감사합니다. 다양한 의견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