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5 <-- 마적 돌산 -->
병사들은 빠르게 돌산을 털었다. 값이 나가는 물건을 찾아내고, 진흙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먼저였다. 그것은 매우 고된 일이었지만 필요한 과정이었다. 왜냐하면 〈재물〉이라는 것은 현재 드낙 세력에게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실레아와 이스핀이 관리와 감독을 했기에 농땡이 부리는 자들도 없었다.
인원이 적어서 빠지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눈치가 좋고, 전투 시야가 넓으며 요령이 좋은 것이 이스핀이었다.
이실레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병사 열 명은 돌산으로 쭉 이어져있는 큰 길을 청소하는 일을 시작했다. 진흙 때문이었다.
촤악! 촤악!
“아직! 대기!”
돌이 몇 개 들어있는 짐수레를 끌고 올라가던 병사가 멈추자 뒤에서 밀어주던 병사가 돌을 꺼내서 바퀴에 받쳤다.
“휴! 그냥 청소부터 다하고 올라가면 되는 거 아냐?”
그렇게 말하자 병사들이 그럴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하는 법! 병사들이 짐수레를 옆에 놔두고 길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이스핀은 길을 만드는 이들을 감독했고, 굴을 대충이라도 훑는 작업을 했다. 당연히 기습을 받는 일도 있었다.
“죽어!”
어두컴컴한 곳에서 마적이 욕을 내뱉으면서 달려들기도 했다. 〈물의 파도〉는 우직하게 오로지 〈엘라한의 식솔〉들을 안전하게 빼내는데 사용됐기 때문이었다. 마적들은 〈흰여우 세린〉의 명령에 모두 모였지만 그중에 안 모인 마적도 많았다.
위로 올라가는 것보다는 돌산에 숨어있다가 도주하는 것이 더 좋게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어느 쪽으로든 멍청한 생각이었지만.
늑대를 기용한 드낙의 세력은 추적에 매우 능했다. 늑대의 사냥법 중에는 지구력으로 끈질기게 쫓아서 말려 죽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동물보다 지구력이 높은 것이 늑대였다.
두발로 달리는 인간은 주법(走法)과 호흡법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다면 늑대 무리에게 순식간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력은 조금 부족할지라도 그것을 메울 속도가 있었다.
성문이 단단히 잠겨져 있었기에 돌담을 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드낙의 형편없는 활 실력을 받쳐줄 순찰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핀이 가볍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너저분한 칼부림은 그것만으로도 허공을 갈랐다. 그만큼 적의 검술은 형편없었다.
맹목적인 돌진을 했기에 마적과 이스핀의 거리가 가까웠다. 당연히 숏소드라도 휘두르거나 찌르기 힘들었다.
퍽!
“켁!”
이스핀의 방패 한 방에 그대로 마적이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체격하면 이스핀이었다. 마적이 무기를 버리자 이스핀이 뒤에 있는 병사 하나를 불러 포승하도록 명령했다. 곳곳에서 마적 잔당들이 숨어있거나 도망칠 기회를 노렸다.
때문에 당초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이스핀의 전진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반대인 경우도 물론 있었다.
“하, 항복합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기세를 키운 이실레아는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칼밥을 먹고 살고, 남의 눈치를 잘 캐치하면서 때때로 기싸움을 자주 해야 하는 마적들에게는 더욱 귀신으로 보였다.
이스핀과는 다르게 만나는 족족 마적들은 싸움을 포기했다. 그 덕에 그들은 빠르게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다.
〈연구실〉 〈세린의 방〉 〈물약 창고〉 등중요한 시설들을 수색할 수 있었다. 물에 휩싸였음에도 연구실의 양피지는 대부분이 읽을 수 있었는데, 정리가 잘 되어있었고, 돌돌 말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물이었다면 안으로 스며들었겠지만 질척한 진흙 파도가 휩쓸었기에 털어내면 그만이었다.
밀도가 낮은 물은 위치에 따라서는 잠수를 하게 만들었고, 움직임에 크게 영향을 받아 부딪치기에도 좋았기 때문에 물을 진흙으로 만든 것이 〈옹골찬 물의 정령 엘라한〉이었다.
촤르륵···
양피지를 펼친 이실레아의 눈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계승〉을 통해서 많은 교양을 쌓은 것이 그녀였고, 속독은 그중에서 보자면 간단한 것이었다.
‘지독하군.’
그것은 고문에 대한 일기를 자세하게 적어놓은 것이었다. 읽기만 해도 거북했다. 〈현실성〉이 지나치게 높았고 무엇보다도 중간부터는 성기 파열에 대한 것이 좌르륵 서술되어있었다.
광기(狂氣) 그 자체.
그 잔혹성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다시 돌돌 말아서 묶은 이실레아는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하나만 봐도 열을 알 수 있었다. 〈세린의 방〉에서는 특별한 것을 건지지 못했다. 대부분이 진흙에 휩쓸렸기 때문이었다.
식솔을 챙김과 동시에 마적들의 소탕도 말끔하게 해버렸기 때문이다. 화덕은 꺼져있었고, 연기는 일절 뿜어지지 않았다. 다만 흙냄새만 강하게 풍겼다. 하지만 여자인 이실레아는 이곳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능히 알 수 있었다.
남녀가 뒹굴어도 충분한 크게의 침대와 진흙이 뒤섞인 수많은 붉은 실크들.
‘마적들을 휘어잡는데 사용된 곳이군.’
치마폭에 넣기 위한 방이었다. 또한 때때로 회의실로 사용됐을 것이다.
“이실레아 기사님! 〈흰여우 세린〉을 찾아냈습니다.”
가구와 함께 엎어져 있는 시체였다. 머리카락은 분명 분홍색이었으며 작지만 물약 가방도 들고 있었다. 그곳을 확인한 이실레아는 물약이 가득 차있는 것을 확인했다.
‘물이 들이닥치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물약을 사용하지 않다니. 쓸 용도가 달라서일까?’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 수거해서 가져가라. 중요 인물이니.”
병사가 거칠게 다리를 잡아당겨서는 그대로 두 명이 들어 올려 옮기기 시작했다. 물을 머금고 있었기에 무거웠다.
‘그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네.’
다음은 물약 창고였는데 함부로 건드리는 것은 힘들었다. 만에 하나라도 유출이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치안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광전사를 만드는데 썼을 것으로 보였다.
“〈물약 창고〉는 일단 폐쇄시켜놓는다. 연구실부터 정리한다.”
“예!”
잔해를 가져와서 입구를 막아놓았다. 그다음에 이실레아는 연구실로 다시 향하여 정보를 모으고, 병사들은 양피지에 묻은 진흙을 털고, 청소를 시작했다. 이곳의 정보가 가장 중요했다.
병사들이 포획한 마적을 하나둘 끌고 돌산을 내려왔다. 그리 큰 돌산이 아니었음에도 숨어있는 마적이 꽤나 되었다.
“이렇게 숨은 놈들이 많았나? 시체도 많았는데···”
드낙은 그렇게 말하면서 마적들을 살피더니 이내 서둘러 〈순찰 대장〉을 불렀다. 돌담 밖과 위에 대기하던 순찰자들의 대장인 케샤스가 성문으로 향했다.
“무슨 일입니까?”
“돌산 내부에 아직도 마적들의 생존자가 있는 듯하니. 수색에 가담해야 할 것 같다. 케샤스 순찰대장이 성문에서 지휘를 대신 맡아주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케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날아가는 새도 맞추는 것이 순찰자들이었다. 허둥지둥 도망가는 놈들 중에 중갑옷을 입더라도 뒤를 보이면 목을 맞출 수 있었다.
“도노!”
“컹컹!”
드낙은 도노만 데리고 내부 수색에 가담했다. 물론 그냥 가지 않았다. 괜히 발룬의 엉덩이를 툭툭 건드리고 올라갔다. 그럼에도 발룬은 하품을 쩍 했다.
“병사들은 지금처럼 성문을 맡고, 포로를 감시하라!”
“예!”
〈케샤스〉가 병사들과 함께 성문을 맡았고, 순찰자들은 조를 짜서 돌산 주위를 순찰 돌기 시작했다.
큰일은 더 벌어지지 않았고, 조용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상황은 빠르게 진정되기 시작했고, 안전하다고 여겨진 성문 대기 병사들은 마적들의 시체를 모으고, 밖에서 장작을 가져와서 불을 피울 준비를 했다.
곳곳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드낙은 가장 열성적으로 마적 잔당을 잡는데 열을 올렸다. 당연히 만나는 족족 쳐죽였다. 눈이 검게 물들어져있었다. 마적들의 가족들은 죽이지 않았지만 남자는 거침없이 죽였다.
이미 마적을 많이 죽였기에 최대한 많이 죽일 생각이었다. 모두 〈검은 문〉을 열기 위함이었다.
저녁은 빠르게 다가왔고, 식사를 하고 나서 〈원탁회의〉가 열렸다.
그곳에는 〈사제 제롬〉과 함께 엘라한의 생존자 〈페슬라 엘라한〉이 참석했다. 그는 혈색이 비교적 좋았다. 전투에서 큰 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신성력이 많이 남아있었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새하얀 백색의 눈동자도 조금 빛을 담고 있었고 푸르스름하게 변해있었다. 치료가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예쁘장하네.’
남자인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려한 외모를 가진 것이 페슬라였다.
“엘라한의 가문이 아직도 그 명맥이 끊겨있지 않아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말씀을 낮추십시오. 눈이 멀어버리고 힘줄 하나 굵지 않은 것이 저희들입니다. 그저 의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저희 가문의 현 상태입니다.”
페슬라가 저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드낙이 흡족한 모습을 했다. 방계의 합류는 크나큰 힘이었다. 특히나 물을 끌어올리던 모습을 봤기 때문에 내정으로도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황금의 땅〉을 만들 수 있었다. 그것은 곧 〈식량〉과 직결될 수 있었다.
“이 돌산에서 지내면서 편의를 봐주겠네. 하지만 그대들의 〈물의 힘〉을 필요할 때에 내어줬으면 하는데. 괜찮겠나?”
“말씀만 하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실레아도 웃음이 가득했다. 크나큰 행운이었다. 특히 여름에 아주 좋을 것으로 여겨졌다. 저수지를 만드는 속도를 늦추고 다른 곳에 노동력을 투자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곧 석지의 개간에 힘을 준다는 것과 똑같은 소리였다.
즐거움도 잠시 문제들이 하나씩 짚어졌다.
“돌산에 있는 〈광전사 물약〉과 그 연구 자료에 대한 것이 먼저일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연히 모두 처분해야 합니다. 끔찍하고, 간악하며 사악한 것들입니다. 모조리 소각시켜야 합니다.”
이실레아가 즉답했다. 그녀는 다른 의견 따위는 있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용한다면 악(惡)으로 규정하겠다는 기세였다. 다른 반대는 하나도 없었다. 그 모습에 드낙이 괜히 속으로 찔린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는 이용하기 좋은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이걸 포기하네.’
〈세뇌〉에 대한 것은 몰랐지만 전투력을 급격하게 증가시키는 물약이었다. 소량만 복용한다면 지극히 이로운 것이라 여겼는데, 반응이 아주 싸늘했다.
“··· 그렇겠지. 당연히 소각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연구자료는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사악한 존재들과의 싸움에 있어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따로 집필하여 상세한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물론 악용하는 소지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효과, 승리한 경위 등등을 적겠지만 제작에 대한 부분은 완전히 누락시키겠다는 뜻이었다. 그 말에 드낙은 내심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어차피 손에 못 쥘 것이라면 깔끔하게 버리는 것이 좋았다.
“〈흰여우 세린〉의 대역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는가? 오해의 소지가 있고, 정보가 혼란스러워 일단은 두었는데.”
드낙의 말에 이실레아가 정론을 이야기했다.
“엘라한 가문의 생존자와 살아남은 마적들을 〈연금술사 베르엔〉과 마주하게 했는데 대부분이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엘라한 가문의 생존자들은 눈이 멀어있었고, 마적들은 세린을 직접적으로 본 적이 있었지만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당연히 텅텅 비어버릴 정도로 사용한 〈물약〉의 효능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색이 변하고, 부작용으로 얼굴에 두드러기가 생기는 모습 때문이다. 그 모습은 당연히 의심스러웠다.
이스핀이 입을 열었다. 도렌과 자주 식사를 하기에 이것저것 주워들은 것이 많았다.
“죄 없는 자를 죽이기에는 〈연금술사〉가 가지는 가치가 큽니다. 저희들은 아직 연금술사가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실레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생을 수련하며 무(武)를 갈고닦는 것도 힘든데 연금술까지 계승하는 가문은 극히 드물었다. 〈혈통〉이 없는 가문이나 차선으로 택하기 때문이었다.
드낙은 고민하는 척을 했다.
이미 눈은 검게 돌아가있었다. 연금술사의 가치고 나발이고 〈연금술사 베르엔〉의 목을 치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었다. 그녀가 흑(黑)이든 백(白)이든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오히려 이런 애매모호한 상황이 온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을 지경이었다.
‘흑이었다면 철저한 감시 속에서 물약에 대한 지식을 토해내도록 고문을 받았겠지.’
시간이 흘러 죽음을 당하겠지만 드낙이 죽일 수는 없었다.
명확하다면 오히려 이용할 수 있었다. 불명확하기에 오히려 죽일 여지가 있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연금술사〉는 감시를 붙이더라도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흑이든 백이든 시간을 들여서 색별하기 위한 면도 있었다.
또한 정말로 그녀가 결백하다면 살려두는 편이 큰 이득이었다.
드낙이 머리를 굴렸다.
‘죽일 수 있으면 죽이고 싶은데.’
연금술에 대한 지식으로 연금술사를 키운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고, 그 공은 드낙이 먹을 수 있었다. 또 〈발룬〉의 호전성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소량씩 먹인다면 충분히 그 기질을 바꿀 수 있을 듯했다.
========== 작품 후기 ==========
5979자
평추코 감사합니다. 다양한 의견 항상 고맙습니다.
이번 달에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9월 4일에 180cm 책상이 들어옵니다. 항상 조그만 책상에 키보드 내리고 연습장 올리고 반복하면서 힘들게 살았는데 ㅠㅠ 큰 놈이 겨우 들어오네요.
그래서 9월 4일에는 연재가 좀 늦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