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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34화 (233/1,239)

0234 <-- 마적 돌산 -->

쿠구구구!!!

묵직한 소음이 진중하게 울려 퍼졌다. 그것은 돌산이 마치 떨리게 보일 정도로 크게 느껴졌다. 드낙의 집중력이 크게 높아졌다.

위기 상황에서의 판단력과 유연함은 드낙보다 높은 자는 매우 드물었다. 항상 그것을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위기감이 뇌에 경종을 울릴 때만큼은 높은 수준의 역량을 지닌 것이 드낙이었다.

푸화하학!!!

거친 물줄기 하나가 돌산에 수많이 있는 구멍에서 튀어나오더니 호로록 회오리치면서 바닥을 흥건하게 만들면서 사방으로 뻗어나갔다가 진흙이 뒤섞인 채 분수처럼 다시 치솟았다.

“우어어···!”

병사들이 너도나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친 물줄기는 더욱 크기를 발휘했는데, 그 위용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단순히 인간의 그릇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돌산의 깊은 곳에 있는 〈물의 정령의 심처(深處)〉였기에 보일 수 있는 힘이었다. 〈옹골찬 물의 정령 엘라한〉의 힘이 가장 크게 현실에 나타날 수 있었다.

[꾸우!]

작은 흰고래가 진흙으로 버무려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내 크기를 키웠다.

[구으어어어어.]

깊은 울음소리가 퍼져나갔다. 그것은 그대로 돌산의 중턱 부분으로 끊임없이 들어가더니 잠시 뒤에 썰물처럼 빠져나왔다.

콰르르르!!!

흙과 돌, 바위 따위가 뒤섞여진 물은 돌산을 산사태처럼 내려왔다. 그리고 드낙의 앞으로 물의 바로 위에서 허우적거리는 일단의 무리가 성공적으로 뭉쳐서 떠밀려왔다.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으며 입에 하나씩 가죽 주머니를 얼굴에 묶은 채 물고 있었다.

“푸하!”

묶여진 가죽 주머니를 끙끙 내려서 목에 놓자 한숨을 돌렸다.

‘하늘색 머리카락!’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있었지만, 하늘색 머리카락이 정수리나 곳곳에 언뜻언뜻 보였다. 눈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중에 피를 한 번 게워낸 남자가 발을 허우적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엘라한의 생존자입니다! 저희들을 보호해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드낙은 진흙에 엎어진 몸을 돌려 숨은 쉴 수 있게 해주는 한 편으로 빠르게 명령했다.

“이스핀 부대장! 하늘색 머리카락을 지닌 자들을 색별하여 철저히 보호하라!!”

드낙이 탐욕을 부리는 사이에 이실레아는 빠르게 40명 중 30명의 병사들을 통솔했다.

“무기를 든 놈은 죽여라! 무기를 든 놈은 죽여라!!! 투항하면 목숨은 살려준다!”

“투항하면 살려는 준다! 무기를 버려라!”

마적들 대부분이 정신을 잃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코피를 쏟아내면서 허우적거리며 무기를 쥔 채 정신을 못 차리는 마적도 있었다. 용케도 정신을 잃지 않은 것을 보니 생존에 대한 욕구가 특히나 큰 놈이었다.

“무기를 버려!”

귀가 먹먹했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서 무기를 버리지 않자 그대로 칼이 그 목을 취했다. 잔혹한 손속이었고, 거침없었다.

이실레아의 독기 서린 연녹색 눈동자가 곳곳을 누볐다.

무지비했지만 그것이 이실레아의 FM이었다. 그녀의 팔은 아군에게 굽고, 적에게는 굽지 않는다. 물론 군율에 대해서는 아군에게 혹독했다. 자신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 군의 전투력을 바로 세우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포로를 잡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사람의 인명보다는 아군의 안전이 더 중요했다. 그것을 병사들에게 충분히 인지시킨 것이 이실레아였다. 병사들의 무자비함은 반대로 전우에 대한 애정이었고, 자신의 목숨에 대한 소중함 그리고 혹여나 생기는 불상사를 방지하는 방패와도 같았다.

그녀 앞에서 군인보다 대우받는 범죄자 인권에 대해서 소리친다면 바로 목이 날아갈 것이다.

국가론은 물론이고 민족론에서부터도 자유롭지 않은 주제에 더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은 그저 이상론자에 불과했고, 현실에 살아가는 이실레아에게는 병신 같은 개잡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그녀가 괜히 신분적으로는 같아도 드낙의 밑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었다. 동시에 드낙에게 존중을 받고 있었기에 더욱 드낙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지독한 현실주의자이면서도 가문의 부흥을 다른 이에게 맡기는 모순을 지닌 것이 이실레아였고, 〈브릴리언트 가문〉의 성향이었다.

“악! 전 아니에요! 저도 붙잡혔던 사람이에요! 전 연금술사입니다!”

〈흰여우 세린〉이 소리를 질렀다.

“물약 버려!”

병사가 그럼에도 칼을 들이밀었다. 남자들의 가슴을 흔들게 할 정도로 끝내주는 몸매를 지닌 세린이었지만 이실레아라는 미녀에게 짐승처럼 굴려졌던 노예 병사들이었다.

외모에 대한 모든 것이 부서진지 오래였다.

또 미인을 상대로 허투루 했다가는 이실레아의 지옥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몸이 힘들면 얼마나 힘든지 몸소 깨닫게 해주는 것이 이실레아였다.

자고로 〈용장(勇將) 밑에 약졸(弱卒)은 없는 법〉이었다.

함께한 지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잘한 실수를 제외하면 강병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실레아의 병사들이었다.

스르륵, 질퍽!

물약 가방을 손에서 놓아 땅에 버린 세린이 손을 올렸다. 떨어진 가죽 배낭은 컸지만 물약 대부분이 텅텅 비어있었다. 세린이 속터름을 하며 입을 손으로 훔치며 말했다.

“전 〈연금술사 베르엔〉이에요. 〈흰여우 세린〉에게 억압받고 있었어요.”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그것을 증명해줄 마적들은 대부분이 질식되어 죽었고, 살아있던 마적도 죽어가고 있었고,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어물쩍거리다가 창칼을 맞이했다.

약에 취해있었기에 특히나 물에 무력하게 죽어갔다. 미리 대비하여 숨을 참지를 못한 것이다.

칼 하나로 살아가는 놈들답게 칼 하나를 꼭 쥐고 있다가 되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세린이 잔혹한 눈빛을 띠었다. 그녀의 등을 강하게 밟아 넘어뜨리고 거칠게 손이 묶여졌다.

“흐윽!”

약한 소리에도 우악스러운 손길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이실레아를 항상 마음속에 두고 있는 것이 병사들이었다. 그녀의 시야는 괴물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사람 같지 않은 시야를 가지고 있어서 딴청을 부리면 귀신같이 잡아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녀가 보지 않아도 그녀가 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병사들이 많았다.

병사를 위한 모습을 취했기에 마적들 중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살아남은 자는 병사들에게 죽거나 진흙 때문에 질식사했다. 〈물의 정령 엘라한〉의 손속이 독했다.

유일하게 그것을 회피할 수 있었던 것은 〈엘라인 가문의 식솔〉 30여 명과 〈흰여우 세린〉뿐이었다.

〈마적 돌산〉의 싸움은 허무하게 사라진 것이다.

물이 줄어들어갈 즈음해서 〈작은 흰고래〉가 나타나 드낙의 냄새를 킁킁 맡고는 사라지기도 했다.

“이실레아 경,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나는 병사를 나누어 돌산 진입과 심문을 하고 싶은데···”

최근 드낙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는 것이 쥐뿔도 없었을 때는 그저 다른 이의 의견을 듣고 종합하거나 따르는 것에 그쳤지만 이제는 자신의 생각도 말할 줄 알았다.

평균은 가기 때문이었다.

아예 바닥이면 입다물면 중간은 가는 법이었고, 이제 제법 개념을 쌓고 나서는 배움을 위해서라도 입을 열고 있었다.

“내부의 적은 대부분 소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존자를 구조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갈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지만, 이곳의 마적들은 제법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 부산물이 진흙 때문에 파손되기 전에 서둘러 찾아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드낙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병사 10명과 내가 이들을 심문할 테니, 돌산의 수색을 그대와 이스핀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준비를 하러 향했다. 드낙은 비교적 멀쩡한 상태의 연금술사의 심문을 먼저 하게 되었다.

〈흰여우 세린〉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빠르게 거짓말을 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연금술사이며 간악한 마녀이기도 한 세린의 거짓말을 토해내는 실력은 대단했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간악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남들과는 달랐던 세린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받아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 버둥거리며 자연히 거짓말을 많이 해야 했고, 비상한 머리는 그런 쪽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한 조건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하나는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별할 수 없도록 할 것. 판별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에 대해서는 진실만을 말할 것.

둘은 말을 번복하지 않을 것이며 거미줄처럼 엮어지는 설정을 만들 것. 그 거미줄을 헤집고 다니면 다닐수록 되려 세린의 말을 믿게 되는 것이다.

셋은 거짓과 진실을 모두 비벼낼 것.

넷은 눈물 또한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

다섯은 항상 약자의 모습을 취할 것.

그것이 바로 거짓말쟁이로써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간의 노력이 만들어낸 그녀만의 법칙이기도 했다.

‘엘라한의 가문이 이렇게 배신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디서 밖의 상황을 알 수 있었던 것일까? 생각보다 〈물의 정령〉이 많은 도움을 줬다고 여겨져. 하지만 그래도 살아날 구멍은 항상 있는 법이지.’

정령과 교감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돌산의 심처〉에 가지 않는다면 진실의 구분은 어려울 것이다. 또한 〈엘라한〉의 놈들은 눈이 멀어있는 병신 새끼들이었다. 그런 놈들을 속이는 것은 세린에게 손을 뒤집는 것만큼 쉽게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방심은 하지 않았다. 치밀하게 머리를 굴렸다.

“물약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연금술사인가?”

“예. 저는 〈연금술사 베르엔〉이라고 합니다.”

막힘없이 대답했다.

“마적 돌산에서는 무엇을 하였지?”

“〈흰여우 세린〉에게 붙잡혀서 골방에서 물약을 제조하거나 그녀의 분신 역할을 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제 머리카락이 그녀와 똑같고, 목소리도 비슷합니다.”

드낙이 눈을 좁혔다.

“네가 〈흰여우 세린〉은 아니고?”

“결코 아닙니다. 저는 그저 그녀의 대역을 하는 연금술사일 뿐입니다. 물약을 만드는 일은 하도 고되고 힘든 것이 있는데 거기에 동원되었습니다.”

“돌산을 수색하면 어차피 밝혀질 일이다. 지금 말하는 게 더 좋을 텐데.”

그 말에도 세린은 당당했다. 이미 그에 대한 처리를 해놨기 때문이다. 분홍색 머리카락에 뛰어난 미모에 대한 소문은 어디에서든지 퍼질 수 있었고, 알 수 있었다. 마적들의 형편상 도망자도 간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이 차오를 때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한 것이 세린이었다.

간악함으로 따지면 흑마법사와 비견될 수 있었다. 오히려 혼자였고, 여자였기에 머리 쪽이 비열했다. 물약이 뿌려져서 자신의 대역이 되어버린 불쌍한 〈실험체〉를 생각하면 척추가 짜릿했다.

아니라고 소리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결국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또한 연금술사는 가치가 있다. 더더욱 〈흰여우 세린〉에 대해서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으므로 신뢰도 쌓았다.

“정확히 무슨 일을 했는가?”

“약 중에 〈용기의 가루약〉과 〈전투의 물약〉 그리고 〈혼몽의 연기〉의 재료를 만들었습니다. 제조 과정은 저도 모르지만 재료는 모두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비율이 문제지요.”

은근히 자신의 가치를 말하기도 했다. 이곳에 똬리를 틀었던 사악한 연금술사에 대한 정보를 말해줌과 동시에 그 하수인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럴듯해지는 것이다.

“얼마나 사악한지 모르실 겁니다. 흐흐흑···”

눈물을 흘리며 감정에 호소하기도 했으며 그저 다른 이에게 맡길 수 없는 위력적인 물약에 대한 비밀을 캐낸다는 의심까지 받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잠을 못 들게 해서 고통받은 고문에 대해서는 아주 상세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약자의 모습 그 고통의 기간은 실로 생생했다.

고문을 특히나 좋아했던 것이 〈흰여우 세린〉이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특출났다. 그저 가해자와 피해자만 바꾸면 그만이었다.

사회에서 살아갈 때 자해했던 은밀한 곳의 상처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물론 드낙이 눈을 돌렸다. 도저히 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하면 되었습니다. 일단은 기다리시오.”

이야기만으로 분별이 안 가자 드낙이 밖으로 나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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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추코 감사합니다. 다양한 의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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