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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33화 (232/1,239)

0233 <-- 마적 돌산 -->

늑대들이 도망자들을 죽이기 위해 머리를 틀어 초지를 내달렸다. 반대로 드낙의 군세는 그대로 성문으로 치고 들어갔다. 나무로 된 성문은 드낙의 마법 불꽃으로 능히 불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순찰자들은 돌로 만들어진 담 위에 활을 쏠 준비를 했다. 미리 눈으로 가늠하고, 높이를 생각하며 활촉을 손으로 매만지며 몸에 끊임없이 자신이 위를 향해 활을 쏠 것임을 인지 시켰다.

그 준비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준비 없이 뭔가를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행동을 하나하나 짚은 다음에 행하는 것이 더 효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무작정 일에 뛰어들기보다는 한 번 생각하고 그 일을 하는 것이 더 능률이 좋은 것과 같았다.

“응?”

하지만 드낙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돌담 위에 올라선 마적들이 후퇴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돌산의 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성벽을 버리고 결사항전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하하!’

드낙이 속으로 기쁘게 웃었다. 일이 더 편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실레아가 말을 몰고 빠르게 다가와서 말했다.

“놈들의 상태가 이번에도 확실히 다릅니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진입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흠.”

그 말에 드낙이 고민했다. 이전과 확연히 달랐는데, 이실레아와 병사들이 마적을 죽이는 상황이었기에 닥치는 대로 돌진을 선택한 것이었고, 이번에는 아니었다.

위로 도망쳤다면 도망갈 길이 없었다. 비밀통로가 있다면 아래로 도망치는 것이 옳았다. 또한 그런 길을 만들어놓았다면 준비가 잘 된 마적이어야 했고, 이들은 전혀 아니었기에 제외하는 것이 맞았다.

“이실레아 경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돌담을 점거하고, 대기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예. 일단은 성문을 부수기보다는 아예 점령을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성문을 쓸 때가 올지도 몰랐다. 적이 무슨 꿍꿍이로 안에 들어갔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판타지 세상이었기에 조심할 필요는 충분했다. 검은 문을 만들 놈들을 죽이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드낙의 선택지는 다시금 넓어졌다.

발룬을 타면서 드낙은 또 은근히 이실레아에게 물었다.

“발룬이 전투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아서 그런데 죽여서 그 부산물을 사용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너무 계륵 같아서.”

그 말에 이실레아가 깜짝 놀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산골군(山汨君)〉 혹은 털을 잡아당겨도 성을 내지 않아 〈흰사슴〉이라 불리는 게 발룬이었다. 사실 인기가 대단했다. 척 봐도 영물이라 눈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털이 짧아서 체온이 높은 것도 아이들에게 큰 인기였다. 드낙은 발룬이 도망갈 생각을 안 하고 먹을 것만 탐내자 아예 방치해버렸는데 대로에서 아이들에게 콧구멍 두 개 빼고 둘러싸여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종종 아이들이 줄다리기를 하듯이 꼬리를 잡아당겨도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여줘서 사람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빤스런의 달인 발룬이었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차라리 농사를 짓는데 투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전투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쓸만한 곳이 많습니다.”

이실레아가 발룬의 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 눈에는 사랑이 듬뿍 들어있었다. 원체 무덤덤한 녀석이라 이실레아의 독기에도 별 상관을 안 했기에 동물과 견원지간인 이실레아가 유일하게 손으로 듬뿍 만질 수 있는 놈이 발룬이었다.

개나 고양이 혹은 다른 가축도 손으로 만지려고 하면 깨갱거리며 자기 죽는다고~ 죽을 거라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이실레아와 마주한 길들여진 동물들의 반응이었다.

그녀가 타고 있는 말도 기가 센 수말이었다.

담대하지 못한 동물은 그녀가 사용할 수가 없었다.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서 친하게 지내던 목장 경영인에게서 온갖 부탁을 받으며 기가 센 소나 말 따위를 도축할 때 방문을 부탁받을 정도였다.

독하지만 의외로 약자의 삶을 몇 번 경험했던 그녀였기에 약자에게 약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이실레아였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 부탁하면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었다.

“역시나 그렇습니까.”

드낙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본심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발룬, 이 녀석. 언제 그런 짓을 하고 다녔지?’

영악했다기보다는 그냥 성정 자체가 온순해서 가만히 있어도 사랑받는 놈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발룬이 영악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이실레아의 말을 들으며 〈검은 문〉이 없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발룬은 그냥 다른 곳에 이용하는 것이 더 큰 이득으로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투력의 경우 드낙과 이실레아 그리고 노예 병사가 있었기에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 이유도 컸다.

“흡! 끙!”

체중이 무거워진 드낙이 성문 아래에서 기다리는 사이에 병사들이 돌담에 밧줄을 걸어 올라가서 단번에 돌담을 점령하고, 성문을 열었다. 힘으로 열어야 해서 대부분의 병사들이 밧줄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조용하군.”

드낙이 들어서며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실레아 또한 조용한 분위기를 확인했다. 마치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 침묵이 내려앉아있었다.

“대비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이실레아는 돌담 주변을 세심하게 훑으며 눈을 빛냈다.

“드낙 경, 돌담을 살펴보십시오. 수성을 위한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있습니다. 준비가 안 되어있다면 애초에 돌담도 없었을 터입니다. 아주 말끔하게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니 애초에 돌담을 두고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다르게 준비한 것이 있다는 소리군.”

드낙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미 좀비와 비슷한 광기를 지닌 채 달려들었던 마적들과 싸운 드낙이었다. 꼴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큰일 날 뻔한 것은 분명했다. 방심이 불러온 결과였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자신의 근육과 관절을 녹이면서 잠력을 폭발시킨 놈들에게 잡아뜯어졌을지도 몰랐다.

‘판타지 세상이라 결코 방심을 할 수가 없어. 빌어먹을.’

이렇게까지 강해졌는데도 일백을 상대로 고전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성을 잃었지만 광전사들은 능히 기사를 포위시켜서 죽일 만큼의 힘은 가지고 있었다.

물론 병사들은 그것을 깨달을 수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그냥 닥치는대로 쳐부순 것에 불과했다. 찰나의 위기는 드낙의 간담을 서늘케했지만 멀리서보면 그냥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적 돌산〉의 지하.

마적 다섯이 거칠게 남자의 머리채를 잡고 움직이고 있었다.

“끄윽!”

고개를 들지 못한 채 휘청거리며 움직이는 남자는 힘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깡마른 체격은 멸치를 연상시키게 만들었다. 나약한 힘에도 마적들은 잔뜩 긴장한 채 무기를 들어 올린 채 위협하고, 협박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또옥! 콰르르!

물방울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다가 갑자기 촤아악 쏟아내릴 때면 횃불이 거칠게 움직여서 어둠을 밝히려고 발악을 했다.

“씨발년. 지가 여기 오면 될 것을 왜 우리 보고 가라는 거야.”

〈흰여우 세린〉을 욕하면서 마적 하나가 험담을 하자 다른 마적도 씨부렁거렸다.

“개 같은 년이 가슴 쥐어짜면 좋아죽을 년이.”

“킥킥.”

여자 이야기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공포감을 마음속에서 덜어낸 마적들이 거칠게 끌고 온 남자를 패대기쳤다.

“여기까지 왔으면 됐어! 어서 물을 일으켜서 적을 몰살시켜라!”

말 한마디를 남겨둔 채 마적들이 혼이 빠지도록 도망쳤다. 이 자리에 있다면 자신도 수몰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떨어진 횃불이 쓰러진 왜소한 남자를 비추었다.

주홍빛으로 물들어진 머리카락에서 푸른빛 가루가 서서히 생겨나더니 주위를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그그···개자식들, 더럽게 아프게 잡네.”

푸른빛 가루는 주변에 고인 물에서도 뿜어져 나왔고, 그의 머리카락에서도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주변을 모두 밝힐 정도로 밝아졌다. 횃불은 잘 타오르다가도 갑자기 훅하고 꺼져버렸다.

[뀨우우우.]

새하얀 흰고래가 높은 음역대의 소리를 내면서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물이 얕게 촤악 터지면서 그에게 튀었다. 하지만 남자는 시원한 웃음을 지었다.

하늘색의 머리카락은 작은 흰고래가 모습을 드러내자 더욱 밝게 빛이 났다. 새하얀 백색의 눈동자는 초점이 잡혀 있지 않았다. 그 눈은 주변의 그 무엇도 볼 수 없었지만 정확하게 작은 흰 고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때가 왔다. 〈엘라한〉. 의탁할 곳을 찾았어. 내가 본 것을 너도 봤겠지?”

[물론이다. 그는 틀림없는 불파겐의 후예다. 그에게서 미약하지만 엘프의 향과 마신장(魔神將) 오거의 악취가 풍긴다.]

“뭐? 불파겐의 후예라고!”

〈페슬라 엘라한〉이 깜짝 놀랐다. 그 말에 〈옹골찬 물의 정령 엘라한〉이 울음소리를 내며 엄격하고 근엄하며 진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뀨우우! 날 믿어라.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농도 짙은 그 향과 악취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불파겐은 수백 년의 세월을 지나 이제야 무덤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페슬라는 팔뚝에 돋은 소름을 쓱쓱 닦았다. 비밀스럽게 엘라한의 〈계승〉은 간악한 마녀의 눈과 귀를 속이며 이루어졌고, 그것은 페슬라에게로 이어져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불파겐이라는 이름은 증오의 대상이기는커녕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날 동아줄이었다.

“운이 따라주는구나! 콜록! 콜록!”

크게 소리를 질렀다가 기침을 하는 페슬라는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성대가 너무 연약해서 소리를 지르면 갈라져서 목에서 피가 나기 때문이었다.

[몸을 추슬러라. 그들이 몸을 일으켜 세우고 다른 방계를 찾는다면 분명 신전 또한 다시 세우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 와서 죽으면 후회해서 원귀가 될 거다. 뀨우!]

페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엘라한 가문을 다시 일으킬 재목이기도 했다. 가장 엘라한의 힘을 많이 담은 〈그릇〉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로 태어났기에 유전병에서도 어느 정도 살아갈 수 있었다. 대부분의 엘라한 가문이 나이 20이전에 요절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는 제법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식솔 다섯 명은 끌려와서 핏물을 토하고 〈엘라한의 힘〉을 격발시키는 것에 비해서 이번에는 그 혼자 온 것만 해도 그러했다.

이곳은 〈옹골찬 물의 정령 엘라한〉의 심처(深處).

그의 힘을 그릇에 담아 몸의 역량만 충분하면 무한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물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식솔들부터 챙겨야 해. 그들과도 이미 이야기가 되어있으니 숨을 쉴 준비를 모두 마치고 있을 거야.”

[조금 과격해도 상관없다는 것이지?]

“그래. 돌산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 짐승 같은 인간 여자의 표정은 구경하고 싶은데. 뀨우!]

작은 흰고래가 파닥거리면서 소리를 냈다. 페슬라는 심호흡을 하면서 몸을 이완시키다가 이내 힘을 주고 긴장시켰다.

“준비됐어.”

작은 흰고래가 푸른빛 가루가 되어서 사라졌고, 이내 페슬라의 몸을 통해서 빛가루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물의 정령력〉이었다.

그 가루는 물이 되었고, 순식간에 차오르더니 이내 파도가 되어서 하나 되어 돌산의 위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페슬라의 입술이 파래지기 시작했고, 팔과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5167자

평추코 감사합니다. 다양한 의견 고맙습니다.

흥민이 형아야!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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