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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29화 (228/1,239)

0229 <-- 마적 돌산 -->

〈흰여우 세린〉은 몸에 투명한 액체를 바르면서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나는 욕실에서 빠져나왔다. 새하얀 살결에는 잡티 하나 없었다.

〈연금술사〉인 그녀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범용성의 마력(魔力)〉을 액체로 만드는 공정을 하게 되면서부터 더욱 쉬워졌다.

나이에 비해서 어울리지 않는 젊음을 소유한 세린이 실크로 된 가운을 걸치고 〈세린의 방〉에 돌아왔다. 그곳은 방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넓었고, 곳곳에 화덕이 자리 잡고 있어 이 돌산에 가득 찬 특유의 습기를 잡아주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물약을 마시고, 물로 입을 헹구며 바닥에 탁! 뱉은 다음에 나머지 물을 마신 세린은 화덕을 돌아다니며 〈혼몽(昏夢)의 연기〉가 제대로 뿜어지는지 확인했다. 그대로 푹신한 침대에 몸을 드러누웠다.

‘아, 좋다.’

필요한 것은 언제든지 얻을 수 있고, 얻고 싶은 것은 말하면 얻을 수 있는 이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의 마무리가 되었다. 적당히 〈마적 대장〉을 하나 불러 성욕을 채우고, 부족한 약재나 양질의 향신료를 얻고 싶다고 말하거나 그저 욕망에 가득 찬 세월을 지내는 나날들의 마무리였다.

쾅쾅!

거친 노크 소리가 들리며 〈마적 대장〉 중 한 명이 거칠게 들이닥치기 전에는.

“무슨 일이야?!”

신경질적인 모습에도 마적 대장은 명분이 있는지 사과하나 없이 세린의 가녀린 손을 잡았다.

“기사가 들이닥쳤다. 제대로 전신갑주를 차고 있어. 도망쳐야 해.”

적당한 체격에 냉철한 판단을 하기에 〈마적 돌산〉의 경영을 맡기기에 충분하여 마적 대장으로 그녀가 끌어올린 〈욘〉이었다. 이름마저도 대장으로 올라오며 세린의 입맛대로 바꾸어졌다.

“이거 놓고 말해. 아파.”

아프다는 소리에 욘이 바로 손을 놓았다. 그녀가 인상을 찡그리자 그가 부연 설명을 했다.

“기사가 왔다니까. 왜 자꾸 안 갈려고 해? 여긴 이제 끝이다.”

그 말에도 세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상식으로 〈버려진 영지〉에 기사가 나타날 리가 없었다. 또한 자신의 연구는 기사가 본다면 단칼에 목을 베어낼 것이다. 사람을 조종하고, 그 감정을 제어하는 종류의 연구였기 때문이다.

뒤통수가 언제나 근질근질한 귀족에게 있어서 바로 처리해야 하는 것이었다.

음흉하기에 자신이 쓰기 좋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자신조차도 세뇌되고, 제어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 말이 거짓말일 수도 있잖아. 기사가 이런 곳에 올 리가 없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연기를 충분히 흡입한 욘의 표정이 물렁해졌다. 그러자 세린이 단호하게 명령했다.

“돌아가서 대장들이나 이곳으로 모아.”

“알겠다.”

욘이 빠르게 되돌아가자 세린이 잔혹한 표정을 지었다. 새빨간 입술이 비틀린 웃음을 지어냈다.

‘쓰레기 녀석이, 감히 내 손에 자국을 남겨?’

주변 초지에서 말들을 이끌던 마적들이 돌아와서 정보를 전파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지만 〈마적 돌산〉의 경우는 그것이 더 심했다. 특히 〈마적 대장〉 간 정보 격차가 심했다.

운영을 위해서 중히 여겨진 욘이 혼자서 세린에게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이 그 방증이었다. 다섯 명에 이르는 마적 대장은 세린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했지만, 마적들의 힘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지 않기 위한 견제의 도구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세린의 방에 모두가 모이는 데는 크게 차이가 났다. 대부분 지능순 혹은 카리스마순으로 도착했다. 욘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서 되려 혼란이 가중되어버렸기에 1시간이 지나서야 모두가 모일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세린의 외침에 마지막에 도착한 〈마적 대장〉 카신이 뒷머리를 긁었다. 욘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헛말에 귀가 팔랑거려 휘하 마적들을 먼저 모으는데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기사가 온 거야?”

그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세린의 혈색이 안 좋아졌다. 하지만 희망적인 소식이 대장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병력은 기병이 두 기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보병이다.”

“그 보병도 고작 40명뿐이지.”

“무엇보다도 흉갑도 입고 있지 않아서 경보병들이다. 방패가 있긴 하지만 단궁으로도 능히 목을 따버릴 수 있어.”

너도나도 세린에게 자신이 쥔 정보를 토해내기 바빴다. 그 혼란 속에서도 세린은 찰떡같이 알아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가 한 놈이라면 승부수를 던져봐도 괜찮다고 생각됐다.

‘40명이면 우리가 4배는 더 많다.’

이실레아가 당초 예상했던 것 다르게 마적들의 숫자는 매우 적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린에 의해서 파벌싸움이 매우 과격했기 때문이다. 세력이 크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도 시체가 여럿 쌓였다. 연구가 진행이 안되면 닥치는 대로 눈에 걸리는 놈을 고통스럽게 죽였기 때문이다. 성기가 파열되는 것은 물론이고, 심하면 내장까지 산 채로 꺼내서 눈앞에서 쥐어짜는 등의 가학성을 지닌 것이 〈흰여우 세린〉이었다.

비틀린 감성을 지닌 그녀가 사람의 감정을 강제로 제어하기 위한 연구에 매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잔혹함은 마적들과 제법 잘 어울렸다.

“기다려. 연구실에서 가져올게 있으니.”

길고 짙은 분홍색 머리카락을 손으로 뒤로 넘기며 세린이 발걸음을 옮겼다. 일어나면서 풍만한 가슴이 출렁거렸는데 자연스럽게 마적 대장들의 눈이 쏠렸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그녀가 일부러 실크 가운에서 다리 하나만 드러내며 한 걸음을 쭉 뻗어나갔다.

침 삼키는 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연구실로 향했다. 짐꾼으로 쓸 마적의 부대장이 몇 명 따라붙었다.

세린의 연구실은 잘 정리가 되어있었다.

곳곳에 양피지가 잘 돌돌 말려있었고, 차곡차곡 분류가 이루어져 있었다. 누군가의 겁에 질린 숨소리가 들려왔지만 세린은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았다.

“여기에서 여기까지 있는 상자들을 모두 밖으로 옮겨. 거기 하나는 들고 내 방으로 옮겨.”

양이 많았음에도 부대장들은 거침없이 따랐다.

목함 하나가 세린의 방에 옮겨졌다. 그것을 열자 가죽 주머니가 가득했다. 액체가 들어있는지 출렁거리는 소리도 났다.

“〈전투의 물약〉이야. 기사 놈을 잡는데 어려움이 없을 거야. 전신갑주가 아무리 대단해도 우그러들 정도로 힘을 올려줄 거야. 부작용은 조금 있는데, 근육통이 심할 뿐이고.”

그 말에 다섯 명의 눈이 빛났다. 기사를 죽이고 얻는 것이 근육통뿐이라면 할 만했다. 모두가 가죽 주머니 여러 개를 챙겼다.

“밖에 옮긴 것 중에는 이 가죽 주머니보다 작은 게 있어. 그건 말들에게 먹이면 돼. 〈용기의 가루약〉이라고 말들이 창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아직 전투마로 키울만한 말이 하나도 없잖아? 이거라도 먹여야지.”

말은 기본적으로 겁이 많았다. 그런 말은 아무리 덩치가 커도 돌격마로는 사용을 할 수가 없었다. 훈련으로 돌격마가 될 수 있는 비율은 크게 낮았기 때문에 기병대를 꾸리는 것은 더더욱 힘들었다.

때문에 보통은 〈라이트 랜스〉 혹은 〈헤비 랜스〉를 통해서 투창 중기병으로의 발달이 먼저 이루어졌다.

기반이 커지고 나서야 돌격 기병이 자리를 잡았다.

그전까지는 보병진에 돌격은 꿈도 못 꾸고 짧게는 145cm에서 길게는 315cm에 달하는 렌스를 투창하며 말의 습성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말머리를 돌리는 투창 중기병이 주류였다.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돌격 중기병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못해도 10만 마리 중에서 뽑기를 하듯이 훈련하여 돌격을 할 수 있는 말을 뽑아내야 했다.

비싼 자동차를 뽑기 하는 기분을 매일 맛보는 것이 마부들이었다.

“이거라면 거침없이 들이받을 수 있을 거야. 그냥 말들에게 먹여도 상관없고.”

“고작 40명을 상대하는데 무슨 그런 짓까지 해? 마약은 말들에게도 안 좋은데. 이제 곧 겨울이고 우리 세린에게 마약 먹인 말고기를 먹이면 어쩌려고?”

가슴에 털이 수북이 나고 상체를 아예 벗고 있는 산적 같은 놈이 느끼하게 말했다. 세린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것조차도 좋은지 껄껄 웃었다.

연기를 충분히 들이켠 상태였기에 세린이 강하게 강조했다.

“무조건 총력을 다해. 말들을 얼마나 잃어도 상관없으니 기사를 죽이는데 신경을 쓰란 말이야.”

“좋지. 좋아.”

침을 주륵 흘리면서 취한 듯이 말하던 마적 대장 하나가 갑자기 낄낄거렸다. 세린이 손짓하며 그들을 내보냈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기병을 못 쓰게 되면 큰일이었다.

마적 대장들이 밖으로 나가는데 곳곳에 여자를 하나 끼고 널브러진 마적이 아직도 보였다. 바로 멱살을 잡아서는 뺨을 한 대 때렸다. 노예는 그대로 벌벌 떨었고, 뺨을 맞은 마적이 허우적거리면서 일어났다.

“어억.”

“이 새끼가, 적이 왔는데도 자고 있어? 똑바로 안 일어나!!”

그 외침에 대답을 하면서 마적이 휘청거리다가 고꾸라졌다. 엉덩이가 하늘로 올라가자 그대로 마적 대장이 발로 걷어찼다.

“낄낄낄.”

“부대장들은 다시 한 번 돌산을 뒤져서 떡치고 있는 놈들 끌고 와!”

“예!”

부대장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대장들은 밖으로 향했다. 마적이 뒹굴던 곳에는 먹다 남은 고기와 과일이 한 두입 물려져서 남겨있었는데, 날파리와 벌레가 가득했다. 더러운 꼴이었지만 병을 앓는 사람이 하나 없었다.

그 옆에 놓인 바가지에 고여있는 물에는 날파리 하나 둥둥 떠다니지 않았고, 아주 맑았다.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마적 부대장의 말에 돌산의 성문이 열렸다. 그리 높지 않은 성문이었다.

〈마적 대장〉 5명

〈마적 부대장〉 20명

〈마적〉 160명

모두가 말에 올라탄 채 돌산 밖으로 나섰다. 예비를 생각해서 말 200필이 따라나왔다. 무리의 덩치를 키우기에도 좋은 선택이었다. 싸우기 전에 덩치 차이만 나도 그대로 적이 굴복하거나 크게 겁을 먹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적들의 말들은 상태가 굉장히 좋았다.

하나같이 덩치가 좋은 말들이 가득했다. 물론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전투마는 하나 없었고, 훈련을 받아도 그 겁 많은 성격을 고친 훈련마도 하나 없었다.

“말들에게는 작은 가죽 주머니에 든 가루약을 먹이고, 너희들은 물약을 마셔라!”

가루약을 말의 주둥이에 쑥 집어넣고, 마적들 또한 가죽 주머니를 열어 물약을 마셨다.

“으! 고약하군!”

“씨발, 퉤퉷!”

마적들이 끔찍한 맛에 몸서리쳤다. 특히 물보다 뭔가 농도가 짙어서 식감조차 끔찍했다. 단번에 가죽 주머니를 버렸다. 그들에게 가죽은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 인원수에 비해서 많은 마을을 수탈하기 때문이었다.

“가자! 이놈들아!!!!”

마적 대장들이 하나같이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자 마적들도 따라 소리를 질렀다. 그 기세가 대단했다.

“죽여버리자!!”

“죽여버리자아아!!!!”

마적들의 눈에 드낙의 군세가 보였다. 그것은 형편없는 크기에 불과했다. 이실레아의 강력한 통솔에 의해서 단단히 뭉쳐있었기에 아주 작아 보였고, 40명이 20명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보잘것없이 보였다.

“으하하!”

마적 하나가 갑자기 크게 웃더니 휘청거렸다. 단번에 낙마했는데, 발목이 기이하게 비틀렸는데도 번쩍 말에 다시 올라탔다. 기괴한 묘기였지만 누구 하나 그것을 제대로 보지 않고 소리를 지르기 바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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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추코 감사합니다. 다양한 의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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