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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26화 (225/1,239)

0226 <-- 마적 돌산 -->

안전제일(安全第一). 결국 긴 세월을 놓고 보면 포기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이득임을 〈촌장 그리언〉은 잘 알았다.

“이실레아 기사님의 말씀대로 적의 기병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북쪽에서 터를 잡았던 마적들입니다. 보통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 말에 이실레아와 드낙이 웃음 지었다. 무인(武人)인 것이 그 두 사람이었다. 드낙은 군사적 역량이 매우 낮았지만 그것도 평범한 무인에 비해서 낮을 뿐이었다. 〈정석〉에 대한 것은 이제 그도 좀 알았다.

‘마적들이 그럴 리가 없지.’

마적들이 전쟁 준비를 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평생을 걸쳐서도 국지전(局地戰)형태의 전투도 못 겪었을 것이다.

덩치가 있으면 싸우지 않고도 굴복하기 마련이다. 특히 〈버려진 영지〉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버려진 곳이었다. 마적들이 군벌 노릇, 지역 유지 노릇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항하던 마을도 이제는 없겠지.’

무언가가 뻥하고 터지기 전까지 그 약탈은 전투 없이 이루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십 년, 이십 년 내내··· 순회하듯이 삥 뜯는 시스템이 들어선 것이 〈마적 돌산〉이었다. 그 시스템을 보면 전투를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언의 말은 헛말이나 다름없었다. 준비를 할 생각도 안 들었을 것이고, 해야 할 이유도 없었고 그런 적이 주변에 없었으므로 환경조차도 잡혀 있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전쟁 준비?

오합지졸일 것이 분명했다. 또한 그런 변명이 아니더라도 드낙의 눈은 〈검은 탐욕〉으로 물들어있었다.

말 천 필은 물론이고 저항하는 인간들을 학살해서 얻는 〈검은 문〉.

‘크흐.’

생각만으로도 속으로 웃음이 삐져나왔다.

〈돌산〉의 곳곳에 살림을 폈기에 닥치는 대로 죽일 수 있는 환경이었다. 패배든 승리든 무엇 하나 모른 채 칼을 든 강철의 전사를 상대로 덤벼야 할 것이다. 마적에게도 가족은 있으니까.

압도적인 죽음 앞에서도 일어서서 달려들 것이다. 불나방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실레아에게 훈련을 받은 병사들은 장비만 정규군이 아니다.’

기병이 많다는 것에 겁먹을 이들이 아니었다. 보병이라도 준비한다면 능히 기병을 상대로 패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부분은 일단 제쳐두더라도, 적은 이번 가을 늦게 쳐들어올 텐데. 〈호수 마을〉의 건설 진행 상태를 보면 목책을 세우기는커녕 울타리도 힘든데, 결국 공격하는 게 맞는 소리 아닌가?”

드낙의 질문에 그리언이 입에 침을 묻혔다. 덤비지 않아도 결국 싸우게 되기 때문이었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목책을 세우는데 돕겠습니다.”

뜻밖의 말이었다. 특히 드낙이 눈을 조금 크게 뜰 정도였다.

“그저 돕겠다는 것인가? 임금은?”

“필요 없습니다. 저희 마을은 산이 가까이 있어 당장 장작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하면 가져오면 되기 때문입니다. 겨울 내내 춥기만 하겠습니까? 날이 풀릴 때에 가져오면 그만이지요.”

드낙은 의심이 들어 재차 질문하였다.

“목책을 세우는데 무료로 노역을 하겠다고?”

비슷한 질문에 그리언이 되려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예. 그렇습니다. 드낙 기사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해보십시오. 농사를 크게 짓지 않는 저희 마을은 언제든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대산을 얻었기에 벌써 마을은 풍족하게 되었다. 한 걸음 걸으면 보이는 것이 산나물이고, 약재였다.

“보통은 임금을 받기를 원할 텐데.”

그런 말에 그리언이 웃어 보였다.

“염치가 있지 어떻게 그리하겠습니까? 그리고···”

촌장이 양피지 책을 매만졌다.

“이 책에서 그렇게 하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주려고 노력하고, 하나를 주면 반드시 하나를 받으려 노력하는 것이 서로 아쉬움이 없지 않겠습니까?”

실리적인 중용(中庸)이었다.

“그 책은 무엇인가?”

“제목은 저도 모릅니다. 대대로 내려왔지만 지워져버렸고, 아는 이가 없이 전해져내려왔기 때문입니다. 다만 쓴 이는 〈문인(文人) 발세렌〉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대는 문인의 자손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저 책만 내려오기 때문에···”

그리언이 웃음 지었다. 고작 200명이 사는 마을이었다. 장원이었다면 문인 한 가문은 먹여살렸겠지만 그것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몰락한 것이다. 문인이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마을에 화(禍)가 닥쳤을 때나 이 책을 보고 해답을 얻는 것이 전부였다.

그의 설명에 드낙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책의 내용이 궁금했지만, 매우 소중히 하는 듯하여 말하기가 껄끄러웠다.

‘세파리아스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지도.’

“말은 고맙지만 괜찮다. 그 외에 할 말이 있는가?”

역시나였다. 무인이 전투를 싫어할 리가 없었고, 지금까지 승승장구한 것이 드낙의 세력이었다. 이를 오면서 도렌에게 익히 들었기에 실망은 크지 않았다. 자신은 할 만큼 한 것이다.

드낙의 물음에 그리언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실레아가 발언했다.

“아직 〈마적 돌산〉의 수장에 대해서 듣지 못했습니다.”

“아!”

그리언이 소리를 짧게 지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정신머리가 없어서···”

모두 작게 웃었다.

“15년 전에는 〈흰여우 세린〉이라는 여자가 마적들의 두목이었습니다. 항상 뭔가를 피우고 있었고, 방은 연기로 자욱했었습니다. 또 피부는 새하얗고, 얼굴도 미인이라 여럿 힘쓰는 자들을 대장으로 삼고, 온갖 사치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리언의 말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볼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큰 도움이 되었다. 여독을 풀도록 하라.”

축객령이 떨어졌고, 그리언은 밖으로 나갔다. 병사들이 안내를 맡았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 본격적으로 〈전략〉과 〈전술〉에 대해서 이야기가 되었다.

“달빛이 어두운 날에 야습을 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평지이기에 되려 적의 허점을 찌를 수 있을 것입니다.”

드낙 또한 찬성했다. 돌산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분히 죽일 생각에 가득 차있었다.

물론 그와는 반대로 이실레아의 노림수는 강력한 전술적 이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야전에 대해 공부한 지휘관이 아니라면 당할 수밖에 없었고, 적은 그저 주변을 약탈하는 마적에 불과했다.

탁 트인 곳도 때로는 칠흑처럼 어두워진다는 것을 자주 보면서도 적이 그것을 이용할 거라는 생각은 못 할 것이다.

〈야습〉이 1순위로 떠올랐다. 물론 날씨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것도 준비해야 했다.

“단기전을 노려야 하는 것이 저희들입니다.”

다양한 일을 벌이고 있고, 확보한 영토에 비해서 병사 수가 적었다. 때문에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순찰 인력을 빼고, 전투에 투입하기에는 위험이 컸다. 한가을이 찾아오면 온갖 것들이 겨울을 대비하여 살을 찌우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1달~2달 내로 승부를 봐야 했다.

“때에 맞춰서 순찰자를 불러오는 것은 어떤가?”

“그 공으로 내어줄 수 있는 것이 마땅찮습니다.”

드낙의 말에 게제라스가 고개를 깊이 숙이며 깍듯하게 대답했다. 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였기에 이실레아의 눈이 게제라스에 향했지만 금방 다른 곳으로 돌려졌다.

“케샤스는 공을 탐하려고 하지 않아도 오기는 올 것인데···”

드낙의 말에 게제라스는 수긍하였다. 〈짙은 녹색 숲〉의 고블린을 격살하는데 겨울이 가기 전의 시간을 쓰지 않으면 내년에도 고블린이 극성일 터였다.

“순찰자를 동원하는 것은 나쁜 방법이 아닙니다. 그들만 있어도 말탄 마적을 처리하기가 용이합니다.”

“그렇게까지 시일을 맞출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적당히 때만 맞추고 알아서 싸우도록 하는 것이 좋겠지.”

동원하자는 결론으로 다가갔다. 이실레아는 조금 불만이었지만 격하게 반대하지 않았다. 단기전을 노린다면 최대한 많은 자원을 단번에 뽑아내어 후려쳐서 끝장을 빨리 보고 흩어지는 것이 좋았다.

“우리들이 행한 전술을 쓰고, 병사들을 보내어 때를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순찰자의 동원이 확정되었다. 모두 단기전을 위해서였다. 힘의 집중 그리고 빠르게 흩어지기를 위해서였다.

“야습이 안 된다면, 적의 돌격을 한 번은 막고, 공성전으로 돌입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나무로 된 마름(caltrop)을 제작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보통은 과일을 통째로 쓰거나 이후 쇠로 만든 것이 마름쇠였다. 하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되었다. 거푸집도 없었고, 화력이 좋은 대장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산지기 산골마을〉에 덫이 온갖 잡광물로 된 것을 봤습니다. 그들에게 화로가 있을 것이니, 마름쇠를 제작토록 의뢰를 넣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게제라스의 말에 이실레아가 크게 좋아했다. 나무로 마름을 만드는 것보다 그것이 더 빠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마름쇠를 만들도록 하고, 들고 다닐 수 있는 장애물을 만들어 돌격하기 전에 만들어 인내심 싸움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양을 사방에 뿌려도 기병을 감당하기는 힘듭니다.”

생산력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실레아가 웃었다.

“좌익만 놔두어도 큰 효과를 볼 것입니다. 리치 싸움으로 간다면 놈들은 덤벼들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드낙 님께서 쓸어 담으면 될 일입니다. 들어보니 산도 늑대보다 빠르게 오르는 것이 〈흰사슴 발룬〉이 아닙니까?”

저지만 하면 된다는 소리였다.

“또 도망치는 자들이 생기면 제가 나서서 포승해오겠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야습〉이었다.

그다음에는 시간을 좀 끌면서 확실하게 적의 전투력을 밖에서 깎고, 안으로 들어가서 처리하는 것이었다.

똑똑똑.

화덕의 옆에 드러누워서 깜빡 졸던 〈촌장 그리언〉이 일어났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몸을 이끌고 문을 열었다.

문이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실례합니다. 어르신.”

이스핀 부대장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한창 바쁘실 텐데···”

“하하, 별일이 없어서 왔겠습니까?”

“예?”

그리언이 눈을 깜빡였다. 절로 이스핀의 적의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촌장. 누가 원탁회의에서 그렇게 말을 하라고 하였소? 눈치가 왜 그렇게 없으시나.”

그 말에 그리언이 침을 삼켰다. 잔뜩 굳은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이스핀이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드낙 님께서 그대의 직위를 왜 그저 촌장이라고만 했겠나··· 다른 일이 있다면 다른 감투를 내렸겠지. 아닌가?”

“맞습니다.”

글을 읽는 데 있어서도 단어를 훑어봐야 하는 것이 그리언이었다. 문서의 검수를 하는 것도 오래 걸려 결국 도렌의 일을 도와주지도 못했다.

그런 놈이 헛소리를 원탁회의에 나불거린 것이다.

“그저 촌장에 걸맞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소?”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드낙 님의 성품 하나 믿고, 아무렇게나 행동하다가는 그 밑에 있는 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음을 기억하시오. 그 분과는 다르게 나는 미친놈이거든.”

이스핀은 그렇게 경고를 한 다음에 술병을 하나 쑥 내밀었다.

“이것은?”

“하나 받으면 하나를 줘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소? 내가 하나를 빼앗아갔으니 또 하나를 주면 퉁치는 것 아닌가?”

무식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리언은 그것을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술병을 그가 받자 이스핀이 그대로 나가버렸다.

‘허. 드낙 님의 곁에 저런 놈이 있다니···’

그리언이 인상을 찡그리며 술병을 테이블에 거칠게 놓았다. 머리에 든 것이 없는 깡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부대장들이 드낙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것은 유명했다.

공신 중의 공신이라며 평민으로 크게 성공할 자들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기 때문이다.

크게 이슈화가 될 수 없다면 그저 묻어버리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었다. 큰 피해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전을 몇 개나 전수받고 있는 이스핀이었다. 순위에 밀려있었지만 확실하게 간부에 속하고 있었고, 무력을 쌓아올린다면 능히 장원을 받을 수 있는 위치였다.

산골마을의 촌장 따위 눈에 차지도 않았다.

========== 작품 후기 ==========

5566자

평추코 감사합니다. 다양한 의견 항상 고맙습니다!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출시가 코앞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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