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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25화 (224/1,239)

0225 <-- 마적 돌산 -->

〈촌장 그리언〉이 야영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도착했다는 이유로 〈부대장 도렌〉은 병사 여럿을 데리고 그를 데리러 갔고, 오늘 마지막 야영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는 능숙함이 있었고, 여유로움이 있었다.

석지에 자리를 잡고, 마른 똥들이 장작이 있는 곳에 뿌려지고 불이 일어났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이들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빠듯하게 불침번을 돌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모두 거침없이 행동했다.

‘음···’

그리언은 초조함을 느끼고 달구어진 돌이 넣어진 땅에 등을 누웠다. 천을 깔아도 딱딱하고 울퉁불퉁했다. 불편하기 그지없었지만, 그에 대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온 것은 그만큼 이번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급하게 올 만했다. 너무 큰 놈들을 벌써부터 송곳으로 찌를 생각을 하고 있는 드낙 때문이었다.

‘〈북부의 마적〉. 그들을 치려고 하다니. 정말 정신줄을 놓았군.’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노쇠한 몸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걱정도 있었지만, 3일의 여정은 힘들었다.

서로 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그 거리는 매우 길었고, 험했다. 〈작은 숲〉과 〈호수〉를 제외한다면 모든 것이 석지(石地)로 된 평야가 두 마을 사이에 있었고, 아래로도 쭉 펼쳐져 있었다.

평생 약초꾼으로 살아왔고, 산을 타는 것이 힘들어졌을 때 촌장 일을 하기 시작한 그리언은 품에서 오래된 책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아무리 기사라 하여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특히 〈책〉에서는 다수에 약한 것이 기사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날랜 기사도 100명, 300명에게 둘러싸이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고민되는군.’

호랑이와 호랑이가 싸우면 그 승패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지만 그래도 숫자가 많은 〈마적 돌산〉의 승세가 조금 더 높아 보였다. 그래서 고민이었다.

‘내가 나서야 한다. 하지만 그래서야 주제를 모르고 날뛴다고 혼이 날 수도 있다.’

바짝 마른 눈을 감자 뻑뻑함에 눈물이 조금 났다. 늙어서 그런 것이었다. 이제 눈물도 잘 나오지 않게 되면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을지도 몰랐다.

〈촌장 그리언〉에게 있어서 두 세력의 싸움은 매우 중요했다.

〈군벌〉인 돌산 마적을 건드리는 것은 매우 위험했기 때문이고, 그 여파가 자신의 마을에 끼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반드시 미칠 것이다. 단단히 찍힐 터였다.

‘막아야 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돌산 마적에게 자신의 마을은 협력하지 않았다고 말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명분보다 이익, 복수를 원하는 감정적인 집단이었다. 빌미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하자가 있어도 사용해서 뜯어먹는 것들이었다.

가을이 끝날 때마다 뜯으러 오는 놈들이었다. 죽어마땅했지만, 드낙 세력을 잃기는 싫었다. 싸움을 부추기보다는 막고 싶은 것이 그리언의 본심이었다.

‘그 도적 놈보다는 차라리 우릴 지키는 세력이 좋지.’

그것은 명백했다. 비교할 가치가 없을 정도였고 무엇보다 자신의 마을에 대산(大山)을 다시 준 세력이었다. 그렇기에 그리언은 〈호수 마을〉로 향하는 것이기도 했다.

‘설득해야 한다.’

그의 판단력으로는 막고, 힘을 기르도록 설득하는 것이 좋았다. 뒤로는 대산과 작은 두 개의 산이 있었고, 앞으로는 석지가 있었으며 호수도 있었다. 족히 천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가만히 있어도 자리를 잡을 수 있는데, 벌집을 건드리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안전제일(安全第一).

그것이 가장 최고의 말임을 늙은 그리언은 잘 알고 있었다. 단 한 번인 인생에서 리스크에 몸을 던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잘 아는 것이 그리언이었다. 사실 그도 젊었을 때는 대산으로 향했지만 그건 옛날 일이었다.

‘쳐들어오는 것이라면 승산이 있겠지.’

뇌전의 힘을 다루는 수사슴을 데리고 다니는 드낙이었다. 마적들 또한 보급의 문제로 온다고 하여도 단기전을 노릴 터였다. 거기에 도움을 〈산지기 산골마을〉이 준다면, 능히 그들의 생각을 고치게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지금 〈마적 돌산〉을 공격하는 것은 그리언의 상식으로는 옳지 않았다.

‘스스로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특히나 〈촌장 그리언〉은 드낙의 세력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게제라스 총관은 세금을 제외한 마을의 현물에 대해서는 나무판에 직접 공증을 해주었다.

‘대단한 결단이라고 할 수 있지.’

세금 납세에 거짓됨이 없다면 집이든 토지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드낙에게로의 충성을 공고히 하기 좋았다. 불만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산지기 산골마을〉에 〈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호수 마을〉과 인접해있었기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다.

야금야금, 조금씩 이권을 가져갈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게제라스였지만 그 음흉함을 그리언은 몰랐다. 왜냐하면 그의 생각을 흐리게 만드는 먹음직스러운 것을 초장에 던져줬기 때문이다.

‘대단한 일이지.’

토지세는 내야겠지만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임을 그리언이 모를 리가 없었다.

집문서, 토지문서. 하나하나 쥐는 것만으로도 남달랐다. 괜히 뿌듯하고, 하루에 한 번씩은 펼쳐서 까막눈인 농사꾼도 볼 것이다.

화폐를 단단히 움켜쥐고 아래로 풀지 않는 다른 곳에 비하면 그야말로 출세하기 딱 좋은 상황이 지금이었다. 드낙 세력의 치안과 군사력을 빌리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원이 남았기 때문이다.

따로 문인이나 사람을 두지 않았기에 〈산지기 산골마을〉의 대표 자격으로 그리언은 드낙 세력을 설득할 각오를 다졌다.

〈원탁회의〉는 예정대로 열리지는 못했다. 그리언의 상태가 안 좋았기 때문이었다. 한숨을 푹 잔 그리언은 혈색이 제법 돌아온 채로 원탁회의소에 들어섰다. 크게 지어놓은 원형 오두막이었다.

오두막 하나가 통째로 원탁회의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지붕은 아직 완공이 안 되어서 뻥 뚫려있었다.

“흐음···”

짙은 나무 냄새에 그리언이 잔뜩 숨을 들이켜며 향을 맡았다. 뒤에 있던 드낙이 그런 그리언의 앞에 서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드낙이 그리언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가 〈마적 돌산〉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었기에 친근감을 보인 것이다. 그리언은 껌뻑 죽는 표정을 지으며 드낙의 환대에 감사를 표했다.

“요즘 마을은 어떻습니까?”

드낙이 근황을 묻자 그리언은 다른 말을 했다.

“말씀을 낮춰주십시오. 기사님.”

“그러지. 습관이라··· 하하하. 자주 헷갈리네."

드낙이 그리 말하자 그리언도 웃었다. 남을 말로써 기쁘게 하는 것이 몸에 밴 모습에 드낙에 대한 호감이 생겼다.

“대산의 풍족한 자원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되는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 걱정되면 세금을 더 많이 내면 되는 것 아닌가?”

웃음소리가 퍼졌다. 하나둘 빠르게 도착했다.

드낙은 조금 높은 곳에 있는 상석에 앉았고, 게제라스가 빠르게 이야기를 진행했다. 대충 배경을 다시 한 번 설명하고, 그것이 끝나자 드낙이 주도했다. 바로 그리언을 보면서 말했다.

“그리언 촌장. 이미 도렌 부대장에게 들었을 것이다. 〈마적 돌산〉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고, 그 외에 알고 있는 것을 듣기 위해서 그대를 불렀다.”

드낙의 말에 촌장이 냉큼 일어섰다.

주섬주섬.

그리언은 낡은 책을 원탁에 올렸다. 또한 품에 있는 겹겹이 붙인 양피지를 꺼냈다. 헤져있는 양피지는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가고 찢어질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여기 오른쪽에 있는 것이 〈산지기 산골마을〉입니다. 이 뒤로는 대산이 있고, 그 너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몬스터가 득실거리고 있다는 소리도 있고, 고블린이 단단히 세력을 잡는 소문도 있었고, 리자드맨의 왕국이 있다고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세계전도도 없는 것이 이 세상이었다. 또 지금 굳이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과감하게 넘어간 것이다.

“마을에서 호수를 지나 서쪽에 있는 돌산이 바로 마적들이 있는 곳입니다. 이 주변은 초지가 많아서 말을 키우기에 좋고, 목장을 세우기에도 좋습니다.”

돌산의 밑으로는 〈짙은 녹색 숲〉이 있었다.

“마적 돌산은 대단한 세력입니다.”

그리언이 침을 삼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들과 마주친 적이 있습니까?”

“예. 가을이 끝날 때마다 뻔질나게 찾아옵니다. 모아놓은 장작이나 약초 따위를 빼앗아갑니다. 때때로 예쁜 여자를 데려가기도 합니다.”

그리언은 그들의 악한 행위를 말했다.

“올 때마다 기마를 탄 이들이 50명은 되었고, 끌고 오는 짐수레가 다섯 대가 넘습니다. 이 땅에 퍼져있는 마을을 순회하며 약탈을 자행합니다.”

전형적인 마적은 아니었다. 수금하듯이 돌아다니는 것이 정형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버려진 영지〉의 특징적인 모습이었다.

‘지역 유지 내지는 군벌과 비슷하지만 다르군.’

주변 자원을 그 아가리로 집어먹기 바쁜 놈들로 생각하면 지역 유지였지만 수금하듯이 약탈을 하기 때문에 지역 유지라 보기도 힘들었다. 치안이나 다른 것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정복 욕심이 없다는 것에 군벌이라고 하기도 아쉬웠지만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군벌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살기가 팍팍해서 조금이라도 삶이 나아질 줄 알고, 한 번은 대단히 좋은 약재를 바친 적이 있는데 그때 돌산에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리언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생각만 해도 끔찍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보다는 그리언이 끌려가며 얻은 돌산에 대한 정보에 관심이 갔다.

“돌산에 끌려가다니, 좋은 것을 줘도 맞고, 안 줘도 맞는 꼴 아닌가?”

드낙이 그렇게 말하자 그리언이 그때의 기억이 나서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천하의 죽일 놈들입니다.”

몇 번 토닥여준 드낙이 다시 물었다.

“돌산에 갔다면 자세히 둘러볼 기회가 있었겠군.”

“예. 대장 놀음하는 놈들만 다섯 명이 넘었고, 그 아래로 부대장이라 하는 자들도 20명은 되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적절한 감투를 쓰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병력의 숫자는 모르고?”

“안다고 하더라도 15년 전의 일이라···”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시간 차이가 있다면 들어도 소용이 없었다. 반면 이실레아는 또 달랐다.

“말들의 숫자는 봤을 겁니다. 그 숫자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여러 무리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총 합해서 천 필은 되었습니다.”

이에 이실레아가 눈을 빛냈다.

“15년이 지나도 한 곳에서 계속 똬리를 튼 세력입니다. 말들이 증가했더라도 인구는 비슷하게 유지되었을 겁니다. 사교를 믿지 않는 이상 적이 총력전에 투입할 수 있는 기병의 숫자는 많아봤자 400기 내외이고, 보통은 200~300기일 것입니다.”

“헉. 엄청나게 많은 것 아닙니까?”

그 말에 그리언이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먹으며 말했다. 누구 하나 그를 탓하지 않았다. 기병 300기! 그것은 평지에서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내기 때문이었다. 그저 죽어나자빠져도 돌격하면 보병진이 와해될 것이다.

“사교를 믿는 흔적을 본 적이 있는가? 촌장.”

“전혀요. 있었다면 저희들에게 권유를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전염병을 어떻게 피했는지 궁금했다.

그 외에 많은 것을 물었고, 자잘한 것까지 남김없이 들을 수 있었다.

“앉아도 된다.”

드낙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지만 그리언은 앉지 않았다.

“드낙 기사님. 무례한 것을 알지만 〈산지기 산골 마을〉의 대표로서 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스핀의 표정이 단박에 찡그러졌다. 하지만 크게 나무라지 못했는데, 원탁 회의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드낙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드낙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봐서 손해 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례는 무슨. 말해보라.”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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