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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23화 (222/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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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은 불파겐의 의견을 종합해보았다. 그의 조언은 과외나 다름없었다. 무슨 문제를 봐야 할지, 어떻게 보아야 할지, 어디서 판단을 해야 할지, 그리고 그 결단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점을 찍어주었다.

시험지를 내어준 것과 같았다.

그것은 엄청난 가치였다. 세상 살아가는데 있어서 누가 자신의 앞길에 대해서 조언을 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인생살이 헤쳐나가는데 그런 시험지를 내어준 것만으로도 드낙은 많은 것을 짚어낼 수 있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조언을 통해서 판단을 하나씩 하면 될 일이었다.

과외를 받고 안 받고의 차이보다 더욱 심했다. 굉장한 효과였다.

정리를 마친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불파겐의 의견은 너무 막장이고, 급진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효과는 확실하고, 도리어 자신의 안위를 살필 수 있다.’

게제라스에게 〈호수 마을〉을 주고, 그다음에 〈브릴리언트 가문〉을 추켜올린다면 균형을 잡을 수 있고, 그 사이에 한 발씩 걸쳐서 올라서는 것이 불파겐의 노림수였다. 위태해 보여도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누구 하나 섣불리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자극적으로 말하자면 삼파전이 만들어진다. 또한 거침없이 세력을 데리고 오도록 재촉하고 밀어주고 받쳐주는 일이었기에 영지의 성장 또한 급격하게 치솟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야.’

비슷하지만 달랐다.

매우 빠른 성장 속도는 드낙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또한 다른 세력에게 위협과 경계를 불러올 것처럼 보였다.

‘노련한 가주이기에 지금 상황을 뚫음과 동시에 이득까지 챙기는 방법이지만 몇 가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

너무 급하게 달리기 때문에 고꾸라지기 딱 좋아 보였다. 물론 그만큼 장점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야. 너무 난이도가 높아.’

불파겐의 의견은 가려서 들을 필요가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기에 짚어보면 짚어볼수록 드낙에게는 어려운 것이 많았다.

스윽.

드낙이 다음 양피지를 꺼냈다.

‘게제라스.’

그에 대한 의심은 영지의 정상화까지 접어두는 것이 옳았다. 불파겐의 말대로 의심을 너무하면 결국 게제라스도 딴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이 내쳐진다는 것을 알면 살아날 구멍을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었다.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게, 그의 꿈을 최대한 실현시켜주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다.’

반란을 생각하고 움직인다면 게제라스 또한 그 움직임을 포착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되면 잘 될 일도 안 될 것이다.

‘최대한 도와주고, 영지가 그럴듯하게 살이 올랐을 때, 다시 판단하면 된다.’

드낙은 양피지에 펜으로 〈인간관계 노력할 것〉이라고 적었다.

‘이번 전쟁에 〈푸른 이리 케샤스〉와 순찰자들을 불러오지는 못해도 자주 방문해야겠지.’

수많은 마을의 문제에 대해 무력이 필요하면 반드시 도와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쌓여나가야지 나중에 자신이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고, 그것을 거부하면 벌을 주기에 명분도 살았다.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 것.’

그것은 명분을 세우기에 아주 좋았다. 거부하면 힘으로 찍어누르는데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었다.

‘불파겐의 말은 씹고 씹을수록 옳다. 크게 내어주고, 수틀리면 박살을 내면 된다.’

그것은 전례가 되어서 모든 이들에게 확실하게 드낙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면 조용히 따르게 만들 것이다. 오히려 배신자가 일찍 나오면 나올수록 좋았다. 그가 동원할 수 있는 것이 작을 테니까.

잔혹한 말이었지만 드낙은 되려 게제라스가 차라리 빠르게 배신을 해주었으면 좋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그저 생각뿐이었다.

세파리아스의 말대로 게제라스는 지금 상황에서는 크게 써먹어야 할 인재였다.

스윽.

드낙은 다음 양피지를 꺼내 펜을 들어서 단번에 글을 써 내려갔다.

‘이실레아.’

계속 받쳐주고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불파겐조차도 그녀를 험담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녀는 실리도 추구하면서 동시에 드낙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지닌 자였다.

‘그래도 크게는 못 주겠다.’

장원을 주는 것이 드낙이 해줄 최대한의 것이었다. 나중에 감당이 안 되면, 독립을 시켜야겠지만 시기상조라 여기고 있었다. 도리어 게제라스를 더 크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생긴 상태였다.

‘식솔들을 내년 봄에 데리고 오라고 미리 말을 해놓고 장원을 주는 것만으로도 크게 기뻐할 것이다.’

한 번에 가문의 부흥까지 내어주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았다. 계단식으로 꾸준히 도와주는 것이 관계 활성화에 더 좋았고,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었다.

드낙은 한 번 더 양피지 3장을 살폈다. 썩 괜찮은 답안지였다. 게제라스의 약점은 인간관계. 그러니 드낙은 발품을 팔며 많은 이들을 도와주고, 또 시간이 날 때 그들을 방문하거나 그들을 초청해서 이야기를 자주 들어줘야 한다.

이실레아의 약점은 기반이고, 가문의 부흥이다. 그것에 많은 도움을 줘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당분간은 제어가 가능했다. 〈버려진 영지〉의 3할을 따로 내어주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불파겐의 말은 확실히 들을만했다. 그의 과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정리도 못했을 것이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급한 면이 있었고, 드낙과 방향이 맞지 않는 것도 있었다.

‘이걸로 가자. 상황이 바뀌면 또 생각해서 바꾸면 된다.’

드낙이 몸을 일으켰다. 아침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새벽 수련조차 하지 않고, 정신없이 생각했음을 확인하고 빙긋 웃어 보였다.

그는 가장 먼저 〈총관 게제라스〉가 있는 집의 문을 두드렸다. 피곤한 기색으로 문을 연 게제라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드낙님?”

“피곤한가보군. 눈 밑이 검어.”

게제라스가 뒷걸음질치자 드낙이 안으로 들어섰다. 따뜻한 수프로 몸을 데우고, 잠을 깨우고 있었던 듯했다. 의자 옆에는 큰 담요가 걸려져 있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경계심을 품은 말에 드낙이 웃으면서 말했다.

“앞으로 영지의 〈내정관〉이 될 사람인데, 이유가 없어도 자주 와야지.”

드낙은 그리 말하며 의자에 앉았다. 게제라스는 수프를 한 모금하며 앉았다가 다시 일어났다.

“뭐, 마실 것이라도 드시겠습니까?”

“내어주면 고맙게 마시겠네.”

게제라스는 먼지가 조금 묻은 술병을 가져왔다.

“술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자주 안 마시나?”

“일이 너무 바빠서··· 너무 정석을 고집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가랑이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습니다.”

“행정관이라면 응당 가랑이가 찢어져도 정석을 고집해야지. 잘 하고 있어.”

드낙은 그리 말하며 술로 목을 축였다. 제법 독했다. 자연히 게제라스의 취향이었다. 쓰디쓴 세월을 보냈으니 마실 술도 독한 것이다. 보통의 문인은 차 혹은 부드러운 포도주를 즐기는 것과는 달랐다.

‘무슨 꿍꿍이지?’

게제라스가 드낙을 보며 눈을 내리깔며 김을 내는 수프를 쳐다보았다.

“〈호수 마을〉은 물론이고 상단에 대한 것 또한 총관의 말을 듣겠네.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드낙 님···”

게제라스가 고개를 들었다. 이 말을 듣고 싶었지만 그간 제대로 확답 하나 주지 않고, 간만 본 것이 드낙이었다. 온갖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드낙이 확답을 준 적은 한 번 없었다.

〈내정관〉부터 시작해서 〈호수 마을〉과 〈말을 듣겠다〉는 둥의 말이 연거푸 쏟아진 것이다.

“오늘 원탁회의를 열어서 그에 대한 정리를 할 생각인데, 총관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아침 일찍 찾아온 것인데, 괜찮나?”

“괜찮고 말고가 어딨겠습니까? 저는 드낙 님의 신하입니다. 무엇이 고민이십니까?”

드낙이 사람 좋은 웃음을 만들어냈다. 이제 게제라스의 생각을 들을 차례였다. 앞서 말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뜬금없는 말이 드낙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자네가 요즘 하는 것마다 열심히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사실 의심스러운 것도 있어. 특히 이실레아 경이 말로 이틀 걸리는 거리를 멀리 나가 물어온 것을 보게. 기본적인 군사학서에도 그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아는데, 왜 그녀가 그런 짓을 했겠는가?”

“드, 드낙님···”

“총관과 자유기사 하나가 작당하고 나의 관심을 돌리려고 했고, 그것은 자연히 자네와 나의 문제가 걸려있지. 아닌가?”

게제라스가 눈알을 굴리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맞습니다.”

“본래라면 당장이라도 〈브릴리언트 가문〉을 내년 봄에 끌어들여 가문의 부흥을 이뤄주고 한 축으로 크게 내세우고 싶은 마음인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게제라스의 눈이 커졌다.

“그,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 매우 위험하지. 하지만 자네가 그렇게 하도록 나에게 자꾸 부채질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대에게 묻고 싶네. 정말로 어떻게 하면 되는가?”

드낙이 진실되게 물어오자 게제라스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는 술을 다시 마시며 말했다.

“게제라스. 자네를 등용할 때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네의 주관을 접으라고 말했는데, 하는 일마다 주관을 끼워 넣기 바쁘니··· 내가 어떻게 자네를 믿고 크게 여길 수 있을까? 웃기는 일 아닌가. 하하하. 당장 마을 몇 개가 정상화되면 내쫓을 생각마저 하게 되었는데.”

게제라스가 침을 삼켰다. 드낙이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자 할 말이 없었는데, 모두 자신이 자초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드낙이 자신을 내치면 무엇 하나 쥘 수 없는 상황이 지금이었다.

〈마을 여럿의 정상화〉 상태에서 내칠 수 있는 것이 드낙이었고, 〈버려진 영지가 탐날 때〉 통수를 칠 수 있는 것이 게제라스였다. 전후를 보면 드낙이 전이었고, 게제라스가 후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서 그칠 일이면 이렇게 찾아오지도 않았지. 내가 모를 줄 알았는가?”

“그 건에 대해서는 모두 영지를 위해서···”

게제라스가 궁색한 변명을 하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개소리, 잡소리, 시답잖은 소리였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드낙님을 궁지로 내몰았구나.’

그 그릇을 폄하하면서도 드낙이 날카롭게 가시를 뿜으며 경계하고 의심을 하는 것을 부채질했다.

‘어리석은 것은 나였구나.’

실력과 재능에 눈이 멀어 다른 것을 살피지 않은 것이다.

“저를 내칠 생각이십니까?”

“그랬다면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지. 머리 좋은 총관이 나에게 조언을 해주게.”

“저는···”

게제라스가 복잡한 눈을 했다. 어떻게 그의 의심을 접게 만든단 말인가.

“드낙님은 언제나 제 목을 칠 수 있습니다. 이런 의심은 말도 안 되는 의심입니다.”

“영지가 살이 오르면 거래를 통해 외세를 끌어들일 수 있지. 거기에 대해서는?”

“제 꿈은 〈내정관〉입니다. 남부 왕국의 귀족과 결탁해서 얻는 것이 없습니다.”

“제국이 있지.”

드낙의 막힘없는 말에 게제라스는 그가 단단히 준비하고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제가 제국에게 투신할 것이라 여기십니까? 〈버려진 영지〉만 고스란히 얻을 수 있다면 이곳에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 꿈을 펼치기에 가장 좋은 곳입니다.”

“용의 꼬리가 되는 것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겠다는 것인가?”

“정치든, 뭐든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행정과 내정에 관련된 일만 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거기에 대한 재능도 부족한 것이 접니다. 다른 사람의 의중을 읽는 것은··· 사실 많이 부족합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이 꼴이 난 것이다.

‘나나, 너나 똑같이 부족한 놈이다.’

그렇기에 서로 이용하기에 좋았다.

“총관. 그대가 제국과 내통하지만 않으면 우린 서로 끝까지 갈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사실 행정이니 뭐니, 뭐 아는 것이 하나 없지.”

게제라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자네가 필요한 것이고. 자네는 영지를 관리하며 〈내정관〉으로 크게 크게 놀 수 있고. 자네가 원하는 대로 영지를 발전시키고, 만들어갈 수 있네. 아닌가?”

“맞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서로 의심하고 경계를 해야 하느냐 이 말이네. 그러니 확답을 주게.”

“무슨 확답을 줘야 합니까?”

“제국이든 남부 왕국이든 〈버려진 영지〉가 풍족해져도 등을 돌리지 않겠다는 확답! 그 믿음을 나에게 주게. 그리해준다면 영지 하나 자네에게 주지 못할까?”

그 말에 게제라스가 손을 떨더니 이내 테이블 아래로 손을 옮겼다.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음을 느낀 것이다. 또한 드낙이 아직까지는 자신을 믿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확답.’

드낙에게 자신이 영지의 내정관으로서 살아가는데 만족하고, 꿈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줄 수 있는 것. 그것을 내어준다면 드낙은 자신을 더욱 크게 여겨줄 것이라는 소리였다.

‘너 스스로에게 목줄을 채운다면, 굳이 배신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것이 어디에 있는가?’

없었다.

애초에 이런 대화 따위 무용(無用) 했다.

게제라스 또한 그것을 깨달았는지 환희에 찬 표정이 금세 사라지고, 고개를 숙였다. 무엇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침묵이 방 안에 가득 내려앉았다.

드낙은 깃털 투구를 벗은 채로 담담하게 게제라스를 바라보았다. 그 숙여진 고개는 한참이나 들리지 않았다.

‘똑똑한 너라면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겠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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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추코 감사합니다. 다양한 의견은 항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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