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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20화 (219/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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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이 상단에 대한 일을 뒤로 미루라고 말했다.

〈마적 돌산〉을 토벌한다면 그곳에서 오는 이득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먼저 타격하기를 이실레아가 권하였기 때문이다.

게제라스가 입을 열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또한 제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호수 마을〉이 정상화가 되고 나서 상단을 이루고, 그전에는 주변 치안을 확충하고, 보부상을 통해서 관계를 맺은 마을만 다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한 드낙에게 꿀단지를 내놓았다. 그것은 드낙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도 체면치레라도 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또한 게제라스에게 있어서도 이득이었다.

“보부상부터?”

“예. 상인을 할 인재를 찾지 못했기에 저희가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실패를 할 수 있기에 차라리 횃불 성채에서 상인을 구하는 것이 좋다고 사료됩니다.”

“믿을만한 상인이 있는가?”

그 말에 게제라스가 고개를 숙였다.

“이 세상에 믿을만한 상인은 없습니다. 그저 서로 이익을 나눌 수 있는 상인이 있을 뿐입니다.”

상인의 역량은 물론이고 그를 믿기 위해서는 또 다른 것이 필요할 것이라 게제라스가 첨언하였다. 드낙은 그것을 듣고는 괜히 불편해졌다. 뒤통수. 죄를 저질러도 다른 영지로 가버리면 찾는 것도 힘든 것이 범죄자였다.

그 증거를 찾는 것도 힘든 것이 당연했다.

게제라스의 그런 말은 그를 불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혈연, 지역, 학연 등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믿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혈연이 최고의 보증 수표로 잘 써먹히고 있는 것은 드낙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드낙은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목장일을 하고 있는 아버지와 형을 상인으로 키울 수 없는 노릇이다.’

“잘 아는 상인 하나 없는가?”

드낙이 민감하게 반응하자 게제라스가 속으로 음험하게 미소 지었다. 권력자의 의심은 예부터 가장 심한 의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누구도 그것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있었어도 이런 곳에 오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믿을만한 상인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손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보부상〉들 중에 실적을 많이 내는 이를 잘 다독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상단을 맡길 책임자도 잘 가려서 뽑아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큰 코를 다칠 수 있었다.

“알았으니, 이제 일 보시오.”

“예. 물러가겠습니다.”

게제라스가 물러가고 드낙은 오늘 일어날 일을 짚어나갔다. 왠지 속이 불편하고, 뭔가 속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말로 2일 걸리고, 걸어서는 4~6일이 걸리는 곳까지 왜 이실레아가 굳이 가서 정찰을 하고 왔을까?’

평지라서 그까지는 가지 않았겠지만 명확한 정찰을 위해서 근접했다. 그것은 기본적인 군사학의 정석을 이제야 배우고 있는 드낙에게도 의심스러운 정황이었다.

‘모른척하는 것이 상책 아닌가?’

그녀의 말대로 〈호수 마을〉은 방비가 하나도 안 되어있기 때문이다. 적들을 정찰한다는 것은 적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검은 문의 탐욕에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드낙이지만, 이렇게 되짚으면 그것이 보였다.

‘정리가 안 되네.’

하지만 드낙의 수준은 범인(凡人) 그 자체였다. 생각을 되짚어서 다른 생각을 또 하기에 어려움이 있었고, 이실레아와 게제라스의 판단을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양피지를 하나 꺼내고 펜으로 하나하나 적으면서 본 것을 또 보고 고민을 해야 했다.

그렇게 〈정리〉해서 보지 않으면 머리가 아파졌다. 동시에 드낙은 빠르게 정답에 닿을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도와줬구나.’

게제라스는 호수 마을의 빠른 안정화를 위해서 드낙의 명령을 피하고 싶었다. 정면으로 피하면 드낙에게 명분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돌아가서 피하려 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집어서 기를 죽이기도 쪽팔리고.’

하찮은 것으로 꼬투리를 잡으면 그것만큼 쪽팔리는 것이 없었다.

앉아있으면서 허리를 펴지 않았다고 3시간이 넘게 꼽을 준 상병신 새끼를 맞선임으로 둔 적이 있는 드낙은 그런 부분에서는 꼬투리를 잡아 기를 죽이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실레아의 경우에는 전투와 전쟁이 있어야지 두드러나는 공이 있었기에 환영했을 것이다.

‘내정에도 일정 지식이 있을 테니, 상단을 꾸리는 것은 시기상조라 여기겠지.’

“휴우···”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오늘 드낙의 자존심을 적당히 세워주는 방법을 게제라스가 놓고 갔다. 그것이 보부상이었다. 명분 또한 있었다. 믿을만한 상인을 직접 키우고, 그 손해에 있어서 보부상 정도의 피해만 입겠다는 것.

완벽하다. 하지만 드낙은 속이 아파옴을 느꼈다.

‘늑대도 이런 늑대가 없다.’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추궁한다고 수긍할 자들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드낙은 그들이 필요했다. 문서작업부터 코피를 쏟아야 하는 상황에 드낙이 게제라스를 쳐죽일 수 있을 리 없었다.

세력을 일구기 위해서, 마법 물품을 펑펑 쓰며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혼자서의 힘으로는 무엇 하나 할 수 없었다.

〈마적 돌산〉을 빠르게 토벌한다고 했지만 보급의 준비만 먼저 하고, 그다음에는 전략과 전술부터 조정한 뒤에 가야 했다. 시일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실레아가 〈마적 돌산〉에 대한 지형을 가져오고, 원탁회의가 하나 둘 준비되어갔다. 그러는 동안 해는 저물었고, 최대한의 정보 교환만 이루어지는 회의만 짧게 열렸다.

“돌산 주변은 평지이며, 대부분이 초지(草地)이고, 몇몇 곳이 석지(石地)아니면 황무지입니다.”

“돌산의 방비는 대단히 좋습니다. 노예가 있는지 돌로 된 담이 쳐져 있고, 사람이 올라서서 무기를 휘두를 정도로 폭이 넓습니다. 다만 높이는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문의 경우에는 평범한 나무 성문입니다. 마법 불꽃으로 능히 태울 수 있습니다.”

“돌산의 크기는 작은 산 정도이며, 곳곳에 굴이 보여서 마적들이 곳곳에 퍼져 살고 있을 거라 여겨집니다. 사실상 돌담만 넘으면 천천히 토벌 가능합니다. 적이 모이기 좋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초지에는 많은 말들이 있었습니다. 공성전 전에 회전을 먼저 할 수 있습니다. 기병에 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그 내용을 모두 들으며 머릿속에 집어넣기 바빴다.

“총관. 보급에 대한 준비는 가능한가?”

“예. 하지만 길이 없어서 석지를 피해서 가야 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먼저 〈보급로〉를 설정하는데 며칠을 소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거친 석지를 무거운 짐을 실은 채 움직인다면 나무 바퀴가 금방 부서질 것이다.

“못해도 보름 뒤에 돌산에 도착할 수 있겠군.”

이실레아와 게제라스가 드낙의 말에 수긍했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을 때, 게제라스가 의견을 하나 내었다.

“드낙 님. 순찰자들을 불러오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 말에 이실레아의 눈이 곱지 않았다. 기병이 많았기에 궁수가 활약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순찰자들의 속사와 화망(火網)은 대단히 높은 수준이었다. 다수의 고블린을 상대하면서 강제로 단련되고 특화된 탓도 있었다.

그 훈련도와 숙련도가 매우 높았다. 아무리 경기병이라고해도 상식적으로 달리는 말을 맞춘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보통은 수천의 궁병을 보유해야지 밖에 나가서 기병을 상대할 하다고 여겨졌다.

순찰자 40명이 경기병이나 200기를 잡은 것은 사실 군사학으로 보자면 말도 안 되는 운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을 실력으로 끌어냈기에 대단한 것이다.

당연히 이실레아의 입장에서는 〈굳이〉 순찰자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공을 나눠먹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이제 곧 겨울입니다. 도망친 고블린들 그리고 남겨진 고블린들을 처리하기도 바쁠 것입니다. 그만큼 〈깊은 녹색 숲〉은 넓습니다. 숲에 대한 권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지금 뺀다면 나중에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실레아가 막아섰다. 게제라스는 웃음 지으면서 이실레아와 티격태격 싸웠다.

“큰 싸움이 될지도 모르는데 필요한 재원은 모두 모아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전쟁입니다. 전쟁.”

“마적들 상대로 준비만 제대로 하면 일백의 병사로도 능히 박살을 낼 수 있습니다.”

“돌산 마적의 숫자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둘은 언제 협력했냐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그것은 그거. 이것은 이거라는 마인드였다.

드낙이 보다 못해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그만.”

조용해진 회의에서 드낙이 말했다.

“이실레아 경의 말대로 순찰자들은 숲에 남겨진 고블린들을 모두 잡아죽이기 바쁘다. 고블린 전사 1천을 뽑아내었으니 암컷 고블린만 해도 천을 넘을 것이 분명하다. 전사가 없을 때 처리해야지. 때를 놓치면 수백의 고블린 전사가 자라날 것이다.”

이실레아가 웃음을 지었다. 반면 게제라스는 헛기침을 했다.

“대신에 마적들이 궁기병이나 경기병을 사용할 것이 분명하니 거기에 대한 대처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드낙이 이실레아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실레아 경은 그것에 대해 고민해보십시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또, 게제라스 총관과 잘 상의해서 이번 전투에서 병사들의 피해가 적게 하시오. 원탁회의는 이틀 뒤에 열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촌장 그리언〉도 〈호수 마을〉에 도착할 것이다. 걸어서 오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밤이 깊어졌다. 드낙은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검은 연기가 드낙을 덮쳤다.

“세파리아스? 나와.”

〈변종 키메라 포낙서스〉만 모습을 드러내고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드낙이 그를 불렀다. 무려 세 번을 불러서야 세파리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앙상한 해골의 두개골만 떡하니 나왔고, 나머지는 검은 연기 속에 묻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겠냐? 알면서 숨었잖아.”

[귀찮다.]

다시 들어가려는 것을 드낙이 막았다.

“우리 한 배를 탄 거 아니었어? 왜 이래?”

[네놈의 처세(處世)에 내가 왜 조언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상단 꾸리는 게 물 건너 갔는데도 그러냐?”

[차근차근 진행하면 되겠지. 생각보다 〈버려진 영지〉의 수준이 많이 부족하다. 푸른 옷을 입은 늑대의 말을 잘 따르는 것이 좋다.]

“조언이 그냥 허수아비처럼 움직이는 것뿐이야?”

그 말에 세파리아스의 두개골에 근육이 붙고, 피가 흐르며 살이 붙었다. 단번에 생전의 모습을 갖추고 검은 연기에서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드낙을 바라보았다.

짙은 녹음의 색을 지닌 눈동자와 야수와도 같은 적발은 기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드낙은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건방진 놈.]

그의 욕에도 드낙은 부드럽게 넘어갔다. 한국에서 살면서 들은 욕에 비하면 세파리아스의 욕은 귀여울 지경이었다.

“뭐라도 조언을 해 봐. 내가 잘 되어야, 제국에 있는 너희 가문의 생존자에게 불파겐의 비전을 전수하지 않겠어?”

드낙이 손을 까딱였다. 그만큼 그는 그의 조언이 절실했다. 대영지를 소유했던 대가문이며 명문 중의 명문이었다. 이 늙은 해골 아저씨의 조언은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시건방진 놈.]

“부탁 좀 하자. 상부상조해야 하잖아.”

[멍청한 놈.]

드낙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그 모습에 세파리아스가 몸을 돌렸다.

[늑대 두 마리를 집안에 들이고 평온할 줄 알았더냐? 〈늑대의 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딱딱한 머리를 잘 굴려봐라. 불파겐의 이름을 논하기 전까지 네가 가진 것은 그 알량한 무력 하나뿐임을 기억해라.]

드낙이 세파리아스가 말문을 틀자 부탁하며 호소했다.

“같은 배를 탔는데. 너무하네. 좀 더 말을 좀 해줘.”

[싫다.]

드낙이 비굴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부탁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이에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고개를 다시 홱 돌려서는 그대로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아, 새끼. 함께 해온 지 오래인데. 이상한 소리만 하고 그냥 그렇게 가버리네.’

물론 포기할 드낙이 아니었다. 그 또한 지금이 중요한 시기임을 알고 있을 터다. 노력하면 그가 생각하는 조언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늑대의 왕. 분명 해결책을 알고 있어.’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누구인가. 명문 중의 명문의 가주를 지냈던 자였다. 단번에 지금 상황을 꿰뚫고 있을 것이다.

“간만 좀 보여주고 그렇게 가버리는 게 어딨냐? 늑대의 왕 할 테니까. 방법만 좀 알려줘. 크게 되면 내가 너희 생존자들 잘 보살펴줄게. 정말이라니까.”

혼잣말을 하듯이 드낙이 온갖 소리를 냈지만 세파리아스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건방진 건 네가 더 건방지다. 아무것도 못하면 나한테 굽신거려야 할 놈이! 센 척은···’

드낙이 속으로 그를 욕했다. 물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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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추코 감사합니다. 다양한 의견 항상 고맙습니다.

게제라스 안티가 많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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