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8 <-- 이리의 무리 -->
〈60시간 전〉
〈총관 게제라스〉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낙은 결코 자신의 주관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놈···’
“휴우···”
그것은 단순히 드낙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지배 구조를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쓰일 것이 바로 〈상단〉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드낙의 성품상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정상이다.
이것은 게제라스의 기를 죽이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그렇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유독 고집스럽게 밀어붙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통이라면 굽혀야겠지. 그게 더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최고 권력자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간 프로젝트를 반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것이 망하든 말든 그냥 꿀떡을 넘기듯이 넘어가야 했다.
하지만 게제라스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당연했다. 드낙의 무력은 인정하지만 다른 것은 모두 낮게 보고 있는 것이 게제라스였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을 왜 자꾸···’
그는 이리였다. 이리가 아니라면 이런 곳까지 올 리가 없었다. 모두가 그의 이빨을 두려워하고, 그 독립성을 경계했다.
유일하게 바닥이 얕았던 드낙만이 그를 받아들였다. 받을 수밖에 없었고, 또 사람의 성격은 고치라고 해서 고쳐지는 것이 아니었다.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것은 하책이지.’
게제라스는 이번 일에 정면으로 부딪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드낙도 단단히 힘을 주고 있을 터였다. 부딪쳐오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울려주면 피 보는 건 나다.’
게제라스만큼 드낙을 잘 아는 이가 없었다. 그는 좋은 생각이 있다면 대우해주고,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럴듯하면 일을 맡기고 그 공을 일을 행하는 자에게 거침없이 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때때로 의심을 하고, 경계를 하다가도 빌미가 있기 전까지는 가만히 있는 편이었다. 또한 먹음직스럽게 자신을 포장해서 죽여보라고 시위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마치 배신을 하고 싶으면 해보라는 식이다.
그 모순된 드낙의 성격은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면이 컸다.
유일한 장점은 남의 재능을 높게 쳐주는 것뿐이라고 혹평할 수도 있었다.
단순히 병을 통솔하는데 재능이 있고, 용병술이 뛰어나다고 병사를 통솔하는 권리를 전부 내준 일의 과정만 봐도 그 모순을 잘 알 수 있었다. 자기가 내어주고 또 자기가 걱정했기 때문이다.
‘다르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지.’
이런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각을 세우는 일은 피하는 게 좋았다. 직언(直言)은 예외였다. 그것은 드낙을 위해서 하는 말이기 때문에 드낙도 크게 나무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런 직언을 기분 나빠하면서도 기분이 풀리면 몇 번이나 곱씹기도 했다.
드낙이 진정으로 추진하고 싶은 일에 정면으로 부딪치면 따라올 일을 게제라스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근거가 나에게 많기 때문에 그는 마지못해서 물러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문인이 영입되면 바로 날 한직으로 물리겠지.’
자신이 하고 싶다는 것을 몇 번이고 말했음에도 정면으로 부딪쳤으니. 영토가 커지면 자연히 잊히게 만들 것이다.
‘장원조차도 변형된 시스템을 채택했다. 세금을 매길 생각을 하는 것부터 강력한 힘을 손에 쥐기 위함이고, 기사들을 단단히 움켜쥐고 싶어 한다.’
그것은 제국과 비슷한 시스템이면서도 달랐다. 완전한 급여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사들이 애써 납득할만한 정도에 불과했지만 게제라스는 그것이 지닌 무서움을 잘 알았다.
장원을 주고도 일부분 자신에게 이득이 꾸준히 들어오기 때문에 세월이 지날수록 그의 역량은 꾸준히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을 넘으면···
‘드낙의 도를 지나친 욕심.’
가진 재능에 비하면 무시무시한 탐욕이었다. 그리고 빈틈이 많은 군주를 모시는 데 있어서 내정관의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드낙과 게제라스는 천생연분에 가까웠다.
누구 하나가 그 이익 관계를 부수지 않는 이상.
‘상단 창설에 대한 욕심을 막는 순간부터 틀어질 관계가 된다.’
드낙은 결코 영웅이 아니었다. 그것을 게제라스는 잘 알았다. 지금까지 많은 이들 앞에서 자신의 욕심을 숨기고 싶지만 그가 때때로 말하는 제도와 생각에 대해서 들을 때면 그의 그릇이 부족할 정도의 힘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한테는 나쁘지 않지.’
드낙이 계속해서 승승장구해서 크게 될수록 그 시스템을 뒷받침해줄 문인들의 힘도 자연히 커질 수밖에 없었다. 기사에게도 세금을 내라고 큰소리 떵떵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드낙을 편협하게 생각하면서도 그가 드낙을 겉으로 따르는 이유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를 영주로 만들면 좋은 것은 귀족이 아니라 문인이었다.
장원에 세금을 매긴다는 미친 생각을 공공연히 말했기 때문이다. 그 세율은 크지 않겠지만 그것 자체가 중요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게제라스는 정면이 아니라 측면을 후려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주관을 꺾을 마음이 없었다. 꺾어야 할 것은 천지분간 못하고 자기 주제를 모른 채 날뛰는 황소같은 드낙이었다.
‘그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드낙은 결코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세세한 것을 짚고가는 면은 좀 많이 안 좋았지만 그래도 쓸만한 인물이었다.
‘측면을 후려칠 방법.’
그 방법을 알아도 그것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은 어렵고 힘들며 번거로웠으며 생각하기도 곤란했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외치더라도 지방에 따라, 지형에 따라, 백성의 성향에 따라, 마을에 따라 그 방법을 다르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르게 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드낙이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접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목적을 명확하게 규정한다고 해서 그것을 현실에 적응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그리고 게제라스는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문밖을 나섰다. 방문해야 할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이실레아 브릴리언트〉는 총관의 방문을 맞이했다. 갑옷을 벗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밖에서 만나던 것과는 또 달랐다. 항상 투구를 쓰기 위해서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아서 목 부근에서 묶은 것과는 다르게 풀어헤쳐있었다.
선명한 황금색 머리카락과 무구를 입지 않아서 그런지 날카로운 연녹색 눈은 카리스마보다는 매력적인 퇴폐미를 풍기고 있었다.
“총관이 저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니, 놀랍군요.”
하도 사방팔방 돌아다녔기에 이실레아가 눈을 조금 내리며 졸린 표정을 했다. 긴 속눈썹이 자연히 게제라스의 눈에 들어왔다.
“크흠. 무엇이 놀랍습니까?”
헛기침을 하며 자신을 다스리며 게제라스가 대화를 이어나갔다.
“혼자서 척척해내시는 분 아닙니까? 저에게 오셨다는 것은 군이 필요하다는 뜻이고··· 그것은 자연히 지금 총관이 해야 할 일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해서도 안 되지요.”
이실레아의 말에 게제라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드낙 님 때문에 왔습니다.”
게제라스는 일단 발뺌을 했다. 선후 관계 때문이라도 일단은 아니라고 잡아떼야 했다.
“드낙 경에 대한 일이라면··· 대산의 영물을 토벌에 관한 겁니까? 아니면 〈산지기 산골마을〉에 관한 겁니까?”
“둘 다 아닙니다.”
“잠시···”
이실레아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자 술과 안주를 꺼내왔다. 잠을 깨기 위해서 뭐라도 먹기 위함이었다. 술 또한 잠시 잠을 깨기에는 좋았다.
“말씀을 계속하십시오.”
“예. 저희 〈호수 마을〉에서 벌이는 일은 지금도 빠듯하게 많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당장만 해도 지역을 두 곳으로 나누어 오두막을 짓고 있고, 임시 울타리에 불과한 방비는 곧 목책을 지어야 합니다. 가을이 끝날 즈음에 온갖 것들이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이실레아는 게제라스의 말을 경청했다. 요는 호수 마을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것이었다.
“호수 마을의 정상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이런 상황에서 드낙 님은 저에게 상단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목책도 없는 마을에 상단이라니요? 말이 될 소리입니까?”
이실레아는 일단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 판단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고, 게제라스가 생각하는 바를 모두 듣기 위해서는 수긍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드낙 경은 지금까지 많은 것을 다른 이에게 맡겨왔는데, 그것을 추진하는 일을 포기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거침없이 어렵다고 말하자 게제라스가 턱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누구에게 이미 들으셨습니까?”
“드낙 경에게 보고를 하러 간 것이 이스핀 부대장 아닙니까? 들을 수밖에 없지요.”
이미 자신의 사람처럼 이실레아가 당연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제라스가 도렌을 휘하에 둔 것처럼 이실레아 또한 이스핀에게 선을 놓고 있었다.
‘겉으로는 고고한 척하더니··· 너도 결국에는 이리구나.’
게제라스가 눈썹 위를 손톱으로 긁었다.
“정면으로 부딪치면 되려 더 크게 부딪쳐오는 것이 드낙 님입니다. 그래서 방법을 다르게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실레아 경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저 혼자만 일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실레아가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야 당연했는데, 자신 혼자 일을 추진했다가 게제라스가 뒤통수를 칠지 모를 일이고, 일이 잘못되어서 손해를 보는 것은 그녀뿐이었다. 당연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독박을 씌우면 경께서 냉큼 하겠다고 제가 생각했겠습니까?”
게제라스가 품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돌돌 말려진 것을 받은 이실레아가 그것을 펼쳤다. 천천히 움직이던 눈에 힘이 들어가고 중간을 넘어가서는 빠르게 좌우로 움직이다가 아래로 쭉 시선을 내린 뒤에 양피지를 다시 돌돌 말면서 냉큼 옆에 두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게제라스가 웃어보았다. 이실레아 또한 작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마음에 드셨다면 미리 약속드릴 걸 그랬습니다.”
“총관이 일을 잘하니, 이런 약속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어떻습니까?”
게제라스는 침을 삼키며 이실레아의 답을 기다렸다. 그녀는 조용히 앞의 수를 내다보았다. 얻는 것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사실 거의 운에 가깝다. 하지만 그 운은 확실하게 존재할 것 같았다.
확률이 높은 도박이다.
“거래는 이루어졌습니다. 내일 새벽에 나가서 드낙 경의 시선을 빼앗을 일을 물어올게요. 대신에 이 양피지에 대한 것은 반드시 지키시길 바랍니다.”
“이미 그렇게 대문짝만 하게 제 필체로 썼는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게제라스가 일어났다. 볼일을 마쳤기 때문이었다.
“드낙 님이 돌아오시기 전에 일을 가져오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게 안된다면 계약은 무효입니다.”
“걱정 마시고, 돌아가십시오. 이런 변방에 무엇 하나 없겠습니까?”
이실레아의 말에 게제라스가 고개를 까딱이며 목례를 살짝 하고 떠나갔다. 그가 떠나자 그녀는 지독한 표정을 지었다.
‘여우 같은 놈.’
게제라스의 음험함을 이실레아가 경멸하면서 양피지를 비밀스러운 장소에 숨겼다. 그리고 다시 테이블에 앉아서 술잔을 기울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호수 마을〉의 정상화가 먼저이지 상단이 먼저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럴듯하게 돌려서 드낙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기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무엇보다도 〈거래〉에 올려진 것이 그녀가 거부하기에 힘든 것이었다. 또, 자신이 피해를 볼 것도 적었다.
‘미안하지만 이번에 드낙 경의 손을 들어줄 수가 없다.’
모두 그를 위하는 마음에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더럽다고 해도 이실레아가 나서야 할 필요가 있기도 했다. 굳이 게제라스가 〈거래〉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적당히 구색을 맞추었다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만큼 이실레아는 드낙에게 은혜를 갚고 싶은 마음이 컸다. 또한 그가 잘 되면 결국 그 이득 또한 이실레아에게 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번 일에 손을 대고 싶기도 했다.
게제라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은 그저 고결해서만은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5746자
평추코 감사합니다. 다양한 의견 고맙습니다.
대구에 비가 엄청 내려서 약속 취소 되었습니다. 막둥이라 아침일찍 다 씻고 준비 다하고 나니까 영문도 모른채 약속 취소 되었다고 말하는 짝누야···당신은 도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