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6 <-- 대산의 영물 -->
〈늑대떼(wolf pack)전술〉의 시작은 당연히 잠복이었다.
‘나만 보면 튀네. 썩을 녀석이···’
이때까지 야생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잘 아는 놈이었다. 아주 특화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한 번 부딪쳐보고 좀 힘든 것처럼 보이자 바로 빤스런을 놓은 놈이었다.
드낙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기도 했지만 놈의 눈에는 함정을 파지도 않고, 돌아다닐 뿐이었다. 바람을 가늠하며 여러 번 잠복 자리를 옮기며 놈을 기다렸다.
말 그대로 지금까지 오고 가며 놈이 다른 곳을 보기에 좋은 곳들을 선별하여 가장 빈도가 높은 곳에 매복한 것이다.
‘똑똑해도 다양한 경험이 없는 것을 노려야지.’
매일같이 모습을 보이던 드낙이 오늘 모습을 안 보인다면 반드시 찾을 거라 여겼다. 그리고 그 예상은 바로 적중했다. 돌과 자갈이 많아 나무가 자라지 못한 작은 언덕 위에 올라서서는 낭떠러지를 바라보는 〈산골군(山汨君)〉.
짧고 새하얀 털에 높이 솟고 자방으로 뻗은 나뭇가지와 같은 뿔.
덩치는 사슴이라기보다는 황소에 가까운 놈이었다. 체중 덕에 흔적이 잘 남는 특징도 있었다.
‘시작이다.’
드낙이 거침없이 산골군에게 덤볐다. 마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는데, 가죽이 상하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지치게 만들어서 배를 도려내 내장을 적출하고 출혈로 죽일 생각을 가졌다.
검집에 넣은 롱소드가 그대로 산골군의 엉덩이를 후려팼다.
“그헝!!”
깜짝 놀란 산골군은 반격은커녕 그대로 낭떠러지를 미끄러지며 내려가서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노가 그것을 훑고는 단번에 늑대를 이끌고 사라졌다. 드낙은 대신 지도를 꺼냈다.
‘도노가 몰이를 통해서 특정한 포인트로 놈을 유인할 것이다.’
드낙이 쫓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산골군은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았으니, 그게 최선이었다. 그가 반격을 할 때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도망칠 곳이 없을 때뿐이다. 그리고 그런 때를 만들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 드낙과 도노였다. 늑대는 다른 동물을 지치게 해서 죽이기는 사냥법도 즐겨 했다. 특히 덩치 큰 사냥감에게 함부로 덤벼들지 않고, 끈질기게 괴롭혀서 지쳐쓰러진 놈을 잡아먹는다.
앞니로 짧게 물거나 어금니로 길게 무는 방법이 사냥감에 따라서 달라졌다.
이번 일에는 그저 몰이 담당이었다. 드낙이 포인트에 먼저 도착해서 정면으로 짧게 부딪칠 때마다 도노나 다른 늑대가 덤벼들 터였다.
드낙은 지도를 확인하고 진행 방향을 생각한 다음에 서둘러 내달렸다. 아무리 빨라도 이곳저곳에서 짖는 늑대들 때문에 경로를 이리저리 바꾸다 보면 그보다 늦게 도착할 터였다.
“후욱! 후우욱!”
거친 산길을 2박자 3박자로 어긋나게 쉬면서 최대한 호흡을 정돈하며 전력으로 질주한 드낙은 점점 들려오는 늑대의 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포악함, 잔혹함, 공격성이 짙은 울음소리가 숲에서 퍼지자 동물들과 새들이 사정없이 날아다니고 소리의 반대편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끼이익! 끼익!”
수사슴 하나가 도망치다가 나무에 뿔이 걸려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드낙은 그것을 도와주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검은 검집에 넣어져 있었기에 단칼에 죽이기도 힘들었다.
‘도착했다.’
수풀이 잔뜩 있고, 비가 오면 빗물이 모여서 잔뜩 흐르는 곳이었기에 지반이 훅 꺼지는 지형이 있는 곳이었다. 드낙은 단번에 몸을 숨기면서 점점 다가오는 발굽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기회를 노렸다.
제한된 시야, 순식간에 내달리는 속도. 그 상황 속에서 기습은 매우 좋은 상황을 만들어낼 터였다.
특히 빗물에 자주 흙이 쓸려나가서 지반이 갑자기 10cm 이상 훅 꺼지는 곳이었고, 수풀이 많아서 그것을 미리 눈으로 보기도 힘들었다.
“귀이이익!”
수사슴이 울음소리를 내며 근접한 도노에게 뿔을 들이밀며 울었다. 도노는 능숙하게 두툼한 앞발로 지면을 옆으로 박차며 단번에 거리를 벌리며 이빨을 드러내며 거친 소리를 냈다.
평범한 농부가 그 소리를 들었다면 그대로 뒤로 넘어지며 놀랬을 것이다.
“크르으아앙!!!”
사슴의 동그란 눈망울에 절로 그 이빨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도노는 몸길이만 따지면 각종 능력을 이어받아 기반이 탄탄해진 드낙의 신체와 견줄 정도였다. 체중은 100kg이 넘은지 오래였다.
당연히 큰 경계 대상이었다. 위에 올라타서 목이라도 문다면 곱게 끝나지는 않을 터였다. 흔들어대어도 물고 늘어질 것이다.
거침없이 수풀을 황소처럼 지나며 드낙의 예상지점에 모습을 딱 드러내자 드낙이 그대로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하체에 잔뜩 힘을 주고, 박차는 발에 온 힘을 다 집어넣었다.
옆의 수풀에 숨어있다가 기습적으로 튀어나온 것은 물론이고, 측면 그것도 살짝 뒤늦게 나타나며 더욱 시야를 통한 이점을 빼앗은 드낙이었지만 그것은 전혀 산골군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인간이었다면 사각이었겠지만 사슴의 시야각은 매우 넓었다. 기민하게 움직이는 놈의 뿔에 뇌전의 힘이 넘실거리며 섬광이 터져나갔다. 드낙이 두 번 당할 리가 없었다.
눈을 감은 채로 속도를 전혀 늦추지 않고, 상상을 하며 그대로 이행했다.
뻐걱!!
흉측한 충격음이 들려왔다. 어디에 맞은 지는 드낙은 몰랐지만 그대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어깨를 부딪쳤다. 튕겨진 것은 드낙이었다. 하지만 산골군도 완벽하게 그 충격을 흡수하지는 못했다.
특히 옆에서 들이박았기 때문에 휘청거리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크르르, 크하아아앙!!!!”
늑대들이 정신없이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등에 올라타거나 엉덩이를 할퀴고, 꼬리를 물었으며 다른 늑대는 거침없이 뒷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물론 산골군의 체중과 힘을 막지는 못하고 끌려다녔다.
“구우우어어어!!!!”
뿔에서 전격이 튀겼지만 사방으로 크게 퍼져나갔지만 도노는 거침없이 옆구리의 가죽을 물고 고개를 털며 뒷걸음질을 치려고 노력했다.
파지지직!!!
뿔에서 번개가 더욱 집중되자 드낙이 외쳤다.
“물러서!”
“컹!”
꽈릉!
벼락이 한 번 뿔에서 터져 나왔다. 그 반경은 그리 대단하지는 못했지만 파괴력은 상당해 보였다. 바닥에 있던 풀과 수풀이 불에 타기는커녕, 아예 재로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힘을 모으는 데 시간이 걸리는군.’
순간적으로 사용하면 섬광만 낼 수 있었다. 힘의 사용이 두 가지뿐인 것은 다양한 응용을 하기에 지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기야, 뇌전을 어떻게 사용하고, 이해할까?
그저 감각에 의존해야 했다. 또 위기 때만 사용했을 것이 분명했기에 숙련도도 낮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과는 다르게 새로이 얻은 힘에 대한 연습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번에 묶여있던 것에서 풀린 산골군이 뛰었다. 늑대들이 뒤이어서 내달렸다.
‘도노가 물어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았어. 지쳐 죽여야 한다.’
드낙 서둘러 적절한 포인트로 이동했다. 때때로 들려오는 도노가 자신들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기에 엇갈릴 일은 전혀 없었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드낙 때문에 산골군은 경계심을 끌어올리면서 정신적인 피로가 시간이 더하면 더할수록 커져갔다.
〈드낙의 공격 포인트〉는 영물이라도 알아차리기 힘들었는데, 은신하기 좋지 않은 곳에도 있었고, 거친 험지에도 있었다. 그 포인트에 대한 진실은 간단했다.
‘그곳까지 가는 길이 편하냐, 안 편하냐의 차이!’
길이 편하면 은신이 좋지 않은 곳도 〈공격 포인트〉로 사용됐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뿐이다.
“구우우!!!”
산골군이 말라버린 계곡에 나타난 드낙을 보며 분노의 눈을 가졌다.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 늑대들이 하도 사방에서 우는 탓에 속도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때때로는 한참 달리다가 고개를 돌려야 했다.
전에는 쉬워 보이던 오르막길도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부딪쳐도 확정적으로 회피를 할 수 있다.’
뿔에 스파크가 튀기기 시작했다. 아예 드낙을 죽여버린다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놈들은 고만고만 작았기 때문이다.
몸길이가 길어도 높이가 낮고, 정면에서 보면 홀쭉한 늑대에게 위협을 느끼기에는 산골군의 덩치가 너무 컸다. 드낙이나 비빌만해 보였다.
“〈다섯 마름모 방패(Five Rhombus Shields)〉.”
방패는 만들어지자마자 단박에 부딪친 뿔에 의해서 박살이 났다. 동시에 주변을 벼락이 휩쓸었다. 드낙은 손에 닿은 전격이 왼팔을 타고 흐르자 눈을 찌푸렸다. 통증은 참을 만했지만 경직 때문에 양손으로 쥔 검을 휘두를 수가 없었다.
휘둘러도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냥 몸을 빼내었다. 산골군이 드낙에게 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도노는 벼락이 지나가자 그대로 옆구리를 밟으면서 등을 물었다.
거칠게 흔들렸고, 미끄러지면서도 매달렸지만 워낙 힘이 좋은 것이 산골군이라 그대로 떨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벌떡 일어나서 다시 내달렸다.
“컹컹!!”
갈색 늑대가 곳곳에서 짖어대었다. 뒷다리나 엉덩이가 보이면 달려들어서 조금이라도 물었다. 가죽이라고 해서 감각을 전혀 못 느끼는 것은 아니었기에 한 바퀴 빙글 돌며 뿔을 앞세우던 산골군은 드낙이 일어서자 냉큼 뛰었다.
발굽에 밟힌 돌이 그대로 박살이 나며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 올라왔다.
추격은 10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도노조차도 가죽을 뚫지 못했고, 애초에 드낙은 검집으로 후려패거나 옆으로 몸을 부딪쳐서 몸에 충격을 줄 뿐이었다.
“쉬익! 쉬이익!!”
거친 숨을 내뱉으며 대산을 헤집고 다니던 산골군이 발이 삐끗하면서 나무 하나를 무너뜨리고 그대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흘려내려왔다.
드낙이 생각한 경로대로 몰이가 진행되면서 오르막길을 계속 올라야 했던 산골군이었다. 체중이 700kg이 넘었기에 늑대보다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었다.
뒷다리가 주저앉자마자 늑대들이 아니라 드낙이 나서서 후려팼다.
“구우우!!!”
사슴이 울부짖으면서 거칠게 다시 일어나 드낙에게 스파크가 튀는 뿔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도노가 뒷다리를 물고 뒤로 바짝 당겼다.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강하게 버둥거렸다.
늑대들은 계속 움직이면서 산골군의 눈에 눈도장을 찍으며 짖어대다가 갑자기 달려드는 모션을 취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드낙에게 엉덩이를 맞아야 했다. 이윽고 입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바짝 마른 구강에서 거칠게 호흡하다 보니 찢어져서 피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아예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공격도 못할 정도로 지쳐버렸고, 뿔에서는 항상 스파크가 튀던 전격도 나오지 않았다.
스르릉.
드낙이 완전히 주저앉아서 거친 숨을 고르다 못해 입에서 피를 흘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새하얀 수사슴을 향해 검을 뽑았다. 아랫배를 깔끔하게 베어내어 죽일 생각이었다.
칼을 뽑으면서 드낙이 지닌 살기(殺氣)가 그대로 산골군에게 내비쳤다.
벌러덩!
‘응?’
갑자기 산골군이 배를 뒤집으면서 넘어졌다. 도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목을 물었지만 산골군은 그래도 저항하지 않았다.
“도노야. 물러서봐.”
입맛을 다시며 도노가 뒤로 물러났다. 드낙이 검으로 쿡쿡 찔러도 산골군은 눈알만 굴려대었다. 죽은 척은 아니었다.
‘굴복했군.’
드낙이 헛웃음을 지었다. 검을 뽑고 나서 죽을 때가 되어서야 자기 살길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놈을 어찌한다?’
죽이면 그 부산물의 가치야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굴복시켜서 살려두면 아깝지는 않게 써먹을 수 있어 보였다. 특히 전신갑주를 입고 탈 전투마가 없는 것이 드낙이었다.
‘음. 그래도 검은문을 통해서 확실하게 능력을 얻는 것이 확실하고 좋은데.’
드낙의 눈에 검은 탐욕이 서렸다.
“구우우···”
산골군이 애처롭게 울었다.
‘고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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