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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15화 (214/1,239)

0215 <-- 대산의 영물 -->

되돌아온 드낙은 바로 〈촌장 그리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하지만 촌장은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 말을 믿으라고? 어처구니가 없군!’

까불었다가 진흙을 오랫 기간 동안 쏟아부어서 만든 목책 + 토성의 조합인 성벽을 돌진 한 방으로 부순 전적이 있는 것이 〈산골군(山汨君)〉이었다. 산의 정기를 빨아먹은 게 아니라면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그 힘이 대단하였다.

그 공격력은 오우거와도 비견될 정도였다. 또한 벼락까지 뿔을 통해서 다루니 대적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드낙의 말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또 그것을 대놓고 말하기에도 어려웠다. 말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벼락을 다루는 것은 그리언이 의도적으로 감추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사는 기사로구나. 사슴을 죽이고, 놈을 만나놓고 다친 모습조차 없으니.’

귀찮게 굴면 대산에서 쫓아버릴 수 있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죽일 수는 없어도 비빌 수 있는 것이 중요했다. 물론 다른 면에서 다르게 드낙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있었다.

‘대산의 지형지물을 알 수 있는 지도를 달라니.’

오랜 세월 동안 전수되어오며 빈자리가 조금 조금씩 채워진 대산의 지도! 그것을 내놓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홀라당 핥아먹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지도는 있지만 다른 용도로 많이 쓰이는 것이라서 내어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저희 마을의 사정을 봐주십시오. 약초를 캐고, 산에서 빌어먹고 사는 이들입니다. 덫으로 새 따위를 잡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니···빈 양피지를 주신다면 또 하나를 본떠서 드리겠습니다.”

그리언이 불쌍하게 호소했다. 그 말에 드낙이 아차 싶었다. 자신도 모르게 또 다른 이득을 탐하려는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걱정 마시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소. 양피지를 내어드릴 테니 놈이 운신하기 어려운 곳을 최대한 상세하게 그리고 적어주시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자하신 분을 제가 볼 수 있다니. 크나큰 영광입니다.”

말이 통하자 그리언이 냉큼 고개를 허리까지 숙여 보였다. 강자에게는 약하게, 약자에게는 강하게 나오는 것이 바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자는 강자에게 목이 베이거나, 약자를 돕다가 세월을 허비하여 늙어 길거리에 구걸을 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너무 대놓고 거기를 핥아대는 모습에 드낙이 한 소리를 했다.

“저는 아부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마을에 있어서 그 산지도(山地圖)가 중요하기 때문에 배려를 한 것뿐입니다.”

“예. 하지만 분명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저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드낙은 더 이상 별말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고개만 숙일 것처럼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그 비굴함에 혀를 차려다가 멈추었다.

‘귀족 가문을 대하는 나도 다를 바 없지.’

오히려 이런 모습이 더 갑질로 느껴질 수도 있었다.

본뜬 지도를 받은 드낙은 하루를 소비하여 계획을 세웠다. 드낙의 전략은 간단했다. 고민하다 보니 결국 그가 가장 잘 아는 전술이 세워졌다.

〈늑대떼(wolf pack)전술〉.

〈검은 산골 마을〉 시절, 깊은 숲 사냥꾼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때에 큰 놈을 사냥할 때 사용한 방법이었다. 사실 도노에게서 드낙이 배운 것이기도 했다.

늑대들의 전술은 인간이 전쟁에서 참고하기도 했고, 실제로 큰 이득을 받기도 했지만 드낙이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늑대도 동물원에서 한 번 본 것이 전부였다.

4:1이 2:1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란체스터 법칙〉도 드낙은 몰랐다.

그래도 4명이 달려들면 자신도 전신갑주가 없으면 요절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실전으로 깨닫고 있었다.

‘스피드가 높지만 놈은 혼자.’

도노의 전술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또한 자신들은 피해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3일째에 드낙이 다시 대산으로 향하려 했지만, 이스핀이 그를 찾아왔다.

“급한 일이라도 있는가?”

“아닙니다. 그저 총관이 보고를 드려야 한다면서 저를 보냈습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스핀은 글을 읽다가 포기했기 때문에 말로써 보고를 올렸다. 도렌이 오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일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고, 그런 생각도 드낙은 하지 못했다.

게제라스가 구색만 맞춘것이 아니라 진실로 드낙을 모셨다면 그런 세밀한 것까지 생각하여 정식적으로 양피지에 보고할 것을 적어 도렌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실용적인 드낙은 도렌은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겨버렸다.

거기까지 생각이 뻗지 않은 것이다.

“〈숲길〉을 내고, 마차와 짐수레를 옮겼습니다. 또한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올려 햇볕에 말려 보존식품을 만드는 한편, 베어낸 나무로 집을 지으며 거주할 곳을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처리가 빠른데?”

“예. 모두 자기 일이라 그런지 쉬는 시간에도 이것저것 집 짓는 과정에 대해서 말한다던가 자기 집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금은 내야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집이었다. 땀을 흘려도 기쁠 것이 분명했다.

“거주에 대한 일이 끝나면 숲을 개간하고, 농지로 만든다고 합니다. 혹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드낙은 별다른 주관이 없었다. 유일하게 그것이 있는 것이라면 바로 〈상단〉에 대해서였다.

“상인이나 셈이 밝은 자를 가려내고, 상인일을 할 사람을 미리 10명은 뽑아놓도록 해라.”

“예! 바로 전하겠습니다.”

이스핀이 냉큼 대답하며 가려고 했지만 드낙이 그를 잡았다.

“다른 보고도 해야지. 이실레아 경은 무엇을 하나?”

“주변 정찰 이후에 곳곳에 망루를 세우고, 병사를 배치시키고 있습니다. 홀로 말을 타고 순시를 자주 돌고 계십니다.”

“도렌은?”

“녀석은 여전합니다. 게제라스 총관의 명령을 수행하느라 요즘은 밥도 함께 못 먹습니다.”

“넌 수련 잘 하고 있고?”

“예. 요즘에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습관이 되어서, 하하하.”

그가 너스레를 떨었다. 드낙은 그 외에 시민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강제로 3년은 노동을 해야 했지만 대부분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니 불만은 없었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게제라스의 명령을 듣고 있다고 했다.

이스핀이 그대로 〈호수 마을〉로 향했다. 모두가 호수가 있는 곳에 정착했으니 호수 마을이었다. 단순했다. 하지만 그것만큼 마을을 잘 나타내는 것이 없었다.

드낙은 이스핀 덕분에 조금 늦은 아침에 대산으로 향했다. 오늘부터 놈과 드잡이를 할 생각은 없었다.

‘도노에게 포인트를 알려주고, 이곳 대산에 적응시킨다.’

산골군의 공격력은 무시무시했다. 한 방이라면 도노든 자신이든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준비를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산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사슴이 특히나 많이 보였다. 한 마리를 죽여 피냄새가 사방으로 뻗어나가게 했지만 산골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머리가 좋은 놈이야.’

강하게 한 방을 넣고, 안 통하자 바로 내뺀 것이다. 그렇기에 사슴 주제에 일각수가 된 것일지도 몰랐다. 사실 일각수라기에도 뿔이 두 개니, 〈이각수〉일지도 몰랐다.

‘계속 싸워보면 알게 될 일.’

놈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붙어보면 알게 될 일이었다. 드낙은 또 3일을 더하여 대산의 지형지물을 늑대들에게 익숙해지도록 만들고, 자신 또한 적응하려고 노력하였다.

‘저 새끼.’

때때로 높은 곳에서 자신들의 동태를 살피는 산골군을 볼 수 있었는데, 조금만 접근하려고 해도 바로 도망줄을 움켜쥐고 엉덩이를 드낙에게 보였다.

‘지금 그 태도가 널 죽음으로 몰게 만들 것이다.’

드낙이 눈을 빛냈다. 저 소심함 혹은 신중함은 되려 놈을 죽일 도축칼이 될 터였다.

〈사냥〉 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놈이 분명했다. 그 발 빠름으로 위기 다운 위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고, 그 스피드로 한 방의 돌진으로 위협적인 적에게서 크게 승리하는 길만 걸었을 것으로 여겨졌다.

“알겠습니다. 이실레아 경에게 가서 일을 도우시오.”

“예.”

도렌에게 반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스핀 부대장에게는 반말을 쓰지 않은 게제라스가 그를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이 중한지 모르는 건가? 순서에 있어서 결코 상단이 1순위가 아닌데···’

생각 같아서는 드낙의 머리 위에 서고 싶었지만 빈틈이 많고, 어리석은 면모가 있어도 드낙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것도 모를 리가 없었다. 자잘한 것은 놓쳤지만 큰 것은 놓치지 않는 것이 드낙이었다.

자신의 주관이 들어간 의견에 대해서는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그건 설득을 해봐야 알 일.’

게제라스는 자신의 의견이 좋으면 일단 들어주는 드낙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다. 내 의견, 네 의견이 아니라 좋은 의견, 나쁜 의견으로 나누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을 믿고, 다시 한 번 설득을 해야 한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뒤로 미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받쳐줄 근거는 넘쳐났다. 또한 아예 안 한다는 소리가 아니었기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드낙은 내정과 행정에 대해서 매우 신중한 포지션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총관님! 호수의 자리를 놓고, 남자 두 명이 싸웠습니다! 지금 포승을 하고는 있지만 다른 이들도 문제가 있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게제라스가 일어났다. 수심의 고저차가 심한 호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드낙에 대한 생각을 접고 게제라스가 서둘러 호수로 향했다.

사정을 듣기 시작했는데, 구경꾼들도 많았다.

“저 자식이 어제 제가 분명히 찜을 놓은 자리에 와서는 대뜸 낚시대를 놓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 어제의 자리는 어제고. 오늘 자리는 오늘 아닙니까?”

티격태격하자 이실레아가 고함을 질렀다.

“시끄럽다! 네놈들 사정을 봐주려고 내가 여기에 와있나? 문제를 일으켰으니 볼기짝을 몽둥이로 후려쳐도 시원찮다!”

“사, 살려주십시오!”

그녀의 독기 서린 카리스마에 두 놈이 포승 된 것도 잊고 그대로 땅에 고개를 처박았다. 보통 사람은 결코 온갖 고생을 하면서 피의 길을 걸은 이실레아의 기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일주일을 두고, 두 패로 나누어서 좋은 목을 번갈아가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것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바로 신고하라! 그는 다시는 호수의 자원을 얻지 못하도록 조치를 하겠다.”

게제라스는 명확하게 두 패로 나누었는데, 동쪽의 토성민 집단과 서쪽의 노예 집단으로 간단하게 나누었다. 인원을 생각하면 오히려 비합리적이었지만 지금 당장의 행정 여력으로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호수를 관리하는 사람을 아직 둘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은 〈임시조치〉에 불과하다! 나중에 더 좋은 방법으로 나눌 것이니, 당분간은 고생이 있더라도 넘어가도록 해라.”

사람들이 흩어졌다. 점심 이후부터 해질녘까지만 노역에 동원되고 있었기에 다른 시간에는 자신들의 재산을 불리기에 정신이 없어서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드낙 경은 언제 돌아온다고 합니까?”

이실레아가 게제라스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오래 걸린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보고를 올렸는데 충분히 만족스러워하고 계셨습니다.”

“저에 대해서 따로 말씀은 없었습니까?”

“네. 그저 잘하고 있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이실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빙긋 웃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사들을 통솔하더니 어디론가로 향했다.

‘쯧.’

게제라스는 그 모습이 영 마땅찮았다. 자신에게 있어서 사실 가장 좋은 것은 드낙과 이실레아가 서로 경쟁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는데, 드낙이 전적으로 그녀를 크게 총애하면서 이실레아는 마치 드낙의 가신처럼 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칭찬을 받으려고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특히 상단 문제를 드낙이 잊지 않고 언급해서 그는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새마을의 정상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5613자

평추코 감사합니다.

다양한 의견 항상 감사합니다.

이번주 토요일에 2연참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일요일은 연재가 불투명할지 모릅니다.

일요일에 둘째누나야 결혼식 관련하여 예식장 밥 시식하러 가기 때문에 미용실에 다녀옵니다. 시범 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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