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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14화 (213/1,239)

0214 <-- 대산의 영물 -->

〈산골군(山汨君)〉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획득한 드낙은 가장 먼저 늑대들을 다시 호출했다. 멀리 있어도 도노의 평범하지 않은 하울링 하나로 불러 모을 수 있었다. 다른 늑대보다 덩치가 2배는 커진 것이 도노였다.

몸높이가 50cm에 달하는 것이 갈색 늑대인데. 도노의 경우에는 아주 큰 놈이 되었다. 몸길이로만 따지면 이미 드낙의 머리까지 올 정도였다. 이제는 평범한 사람이 도노를 드는 것도 힘들었다.

드낙은 바람에 주력(呪力)을 퍼뜨렸다. 생각해보니 오늘분의 주력을 바닥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람을 타고 주력은 알아서 곳곳으로 주변 지역에 자리 잡을 터였다. 꾸준히 해도 사실 큰 효과는 없을 것이다.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주력의 일부는 드낙의 갑옷에도 들러붙었지만 별 상관이 없었다. 나중에 농사가 시작되면 그곳에 주력을 집중해서 뿌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의 주술〉이었기에 효과가 분명 있을 터였다.

〈대산(大山)〉으로 드낙이 늑대들을 이끌고 오르기 시작했다. 수많은 동식물들이 많은 대산은 그야말로 자연의 보고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야수가 많은 것은 아니었기에 드낙이 접근해도 눈만 멀뚱멀뚱 뜬 채로 나뭇잎을 뜯어먹는 사슴이 있을 정도였다.

‘참, 신기하네.’

살면서 육식동물 한 번 만나보지 못한 채 자란 사슴 같았다.

서걱!

단칼에 사슴을 죽여버리고, 늑대들에게 식사시간을 주었다. 피냄새가 주변으로 잔뜩 퍼지기 시작했다. 생식만큼 동물에게 좋은 것이 없었기에 겸사겸사 행한 것이다.

식사시간이 끝난 늑대들은 수풀에 있는 과육을 날름 먹었다. 새콤달콤한 것을 곰처럼 좋아하는 것이 늑대들이었다. 개는 못 먹는 포도를 농부들이 진절머리를 칠 정도로 자주 찾아와서 포도를 먹는 것이 늑대이기도 했다.

쿠구궁! 쿠궁!

‘어?’

피 냄새 때문인지 멀리서부터 거친 질주 소리가 들려왔다.

“도노! 물러나!”

드낙이 일단 늑대들을 뒤로 물렸다. 정면은 자신이 설 생각을 가진 것이다. 피냄새를 맡고 그대로 달려온 새하얀 색의 동물은 드낙이 목표물로 삼았던 산골군이었다. 모든 것이 새하얀 수사슴이었다.

하지만 덩치는 집채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엉덩방아를 찧었을 때, 그렇게 보인 것일 터였다.

‘사슴이라기에는 황소 같네.’

뿔만 사슴이었고, 옆으로 떡 벌어진 어깨와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지방과 근육들로 만들어진 육체는 황소에 가까울 정도로 두툼했다. 긴 목도 어찌나 두꺼워 보이는지 통나무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파지직! 파직!

산골군의 길고 쫘악 펼쳐진 뿔의 길이는 1미터가 넘었고, 스파크가 튀기며 전기가 들러붙었다. 그 모습을 본 드낙의 눈에 탐욕이 서렸다.

‘뇌전의 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군침이 돋아서 꿀떡 삼켰다.

산골군이 거칠게 돌진했다. 드낙은 놀라서 심장이 덜컥 들썩였는데, 스피드가 무지막지할 정도로 빨랐다. 회피할 순간이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원래 뿔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각수〉는 되어 보이는 능력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곰이 일각수가 된 것과는 전혀 다르게 덩치가 작았으므로 그것이 스피드로 이어진 것일지도 몰랐다.

‘크윽!’

또한 황소도 인간에게 있어서 거대한 크기였다. 몸을 구른다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상대는 사족보행. 머리와 어깨를 트는 것만으로도 인간이 구른 거리로 움직일 수 있을 터였다.

“〈다섯 마름모 방패(Five Rhombus Shields)〉!”

드낙의 앞에 방어 마법이 발현되었고, 드낙은 그제서야 빠르게 몸을 굴렀다. 방어마법, 다섯 마름모 방패는 중대형 몬스터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지만 일각수마다 강함이 제각각이었기에 드낙이 몸을 피한 것이다.

꽈앙!

몸을 한 바퀴 구르자마자 끔찍한 충격음이 귀로 들려왔다. 두 번 굴러서 충분히 옆으로 피한 드낙이 벌떡 일어났다. 무리한 동작으로 갑옷끼리 부딪쳐 쇳소리가 크게 났지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었다.

‘맙소사.’

뿔은 정확하게 방패를 관통했고, 발굽이 그 균열을 그대로 아래로 짓눌러 박살을 내면서 산골군이 콧김을 뿜었다. 도노와 늑대들이 반월 진형을 그리며 포위하듯이 섰다.

몸을 한 바퀴 빙글 돌린 산골군이 뇌전을 꽝!하고 터트렸다. 스파크가 튀면서 순간적으로 주변이 번쩍이며 드낙이 눈을 감았다.

호다닥!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산골군은 저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뭐야?’

자신이 크게 우세를 점했음에도 한 방에 승부가 결정되지 않자 그대로 빤스런을 친 것이다. 드낙이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이 보유한 방어력 중에서도 가장 좋은 방어력을 단번에 깨부순 녀석이 그대로 도망을 친 것이었다.

제한된 숲과 산이었기에 놈의 모습은 3초도 되지 않아서 사라져버렸다.

‘긴 싸움이 되겠군.’

물론 드낙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놈처럼 뇌전을 다룰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일각수〉는 가장 좋은 능력을 준다. 곰에서 진화한 일각수가 드낙에게 해독의 힘을 준 것처럼.

드잡이질을 하기 전에 일단 드낙은 물러났다.

‘준비를 좀 더 하고, 대산에 대한 지형과 지도부터 만들어야 한다.’

속도가 매우 빨랐기 때문에 지형지물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잡기 어려울 터였다. 드낙의 눈에 탐욕이라는 감정이 가득 차올랐다. 물론 목숨을 잃을 수 있었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는 〈검은 문〉이 주는 금덩이가 대단히 커 보였다.

드낙은 일단 마을로 돌아갔다. 지도를 얻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수준이 너무 형편없어서 그냥 안내할 사람을 여럿두어 직접 대산의 지도를 만드는 것이 좋아보였다.

“크···.크크크···버러지 같은 것들.”

육체가 붕괴되고 머리만 남은 〈악마 숭배자 타탄훔〉이 킬킬거렸다. 그의 수위로는 수많은 키메라가 가득했고, 흑의 로브를 입은 흑마법사들과 그들의 하수인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이름 모를 산의 계곡에서 벌어진 전투는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수백 년 묵은 노괴(老怪)가 오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재능이 평범하고, 탐욕이 크지 않아 평이한 칭호를 가지고 있는 〈흑마법사 게페락스〉부터 시작하여 〈키메라의 알파던〉. 〈던전마스터 골굼〉은 물론이고 7개의 크고 작은 배낭을 짊어지고 있는 〈흉화(凶禍)의 산베로스〉까지.

전부가 함정을 팠기 때문에 타탄훔이 빠져나갈 길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키메라 수십이 죽고, 하수인은 핏물이 되었으며 〈던전마스터 골굼〉은 몸의 절반이 잿더미가 되었을 정도였다. 물론 승리를 했기 때문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카타베루〉에게 모든 것을 바친 것만큼 전투력 하나는 정말 대단하군.”

“빌, 어먹을 하찮은 놈들이!”

모든 것이 붕괴되었음에도 타탄훔의 정신은 아직도 살아있었다. 악마에게 대부분의 것을 바침으로써 이미 인간이 아닌 상태였기 때문이다. 심장이 멈추고, 혈액이 돌지 않게 되었음에도 움직였고, 성대가 없음에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너 때문에 〈남부 왕국〉에서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모든 역량이 우리들의 거처를 찾고, 하수인을 찾아내는데 쓰고 있어.”

귀족들은 결코 멍청이들이 아니었다. 횃불 성채의 근처에서 발견된 〈흑마법사의 거처〉는 엄청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흑의 양피지만 해도 수천 명을 장비시킬 수 있을 정도였으며 천막에 가려졌지만 몇몇 심신이 약한 이들은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영지는 물론이고 국가를 송두리째 전복시킬만한 자원이었다.

곳곳에서 자신들의 소중한 거처와 힘들게 얻어낸 하수인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그 원흉은 당연히 타탄훔이었다. 모든 자원을 빼라고 했음에도 그저 넘겨버린 것이다. 이것은 〈악마 아카타베루〉 때문에 성격에 있어서 변질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앞으로를 위해서라면 〈악마 숭배자 타탄훔〉을 죽이는 것이 옳았다.

온갖 저주를 퍼붓던 타탄훔이 이내 완전히 소멸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이 끝이 아니었다. 오늘은 그로 인하여 생긴 문제를 논하기 위해서 모인 자리였다.

일찍 모이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호되게 역공을 당하게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뒤엎을 정도가 아니라면 궐기(蹶起) 하지 않겠다고 모두 의견을 합쳤기 때문이었다. 바퀴벌레처럼 납작 엎드려있다가 한 방에 모든 것을 끝장내고 어둠의 제국을 세우는 것이 흑마법사들의 목적이었다.

〈남부 왕국〉은 그 목적에 매우 적합한 국가였다.

물론 그것도 이미 한물 건너갔다.

“모든 것을 더욱 깊은 곳으로 옮겨야 한다.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은 쳐내야 한다.”

“버리는 것조차 위험이 될 수 있다. 〈백금 왕가〉가 움직이면서 수많은 고수준의 마법 아이템이 밖을 돌기 시작했다. 완전한 소거를 통해서 모든 흔적을 지워야 한다.”

“왕국에 있던 하수인들의 철수는 끝났다. 중진을 맡고 있던 이들은 핏물로 만들어 하수구로 흘렸다.”

“나 같은 경우는···”

오랜만에 만났기에 서로가 행한 것들을 이야기하며 놓친 것이 있나 확인하기도 했다. 치밀한 검증은 달이 느긋하게 움직이는 내내 계속됐다.

그때, 〈던전마스터 골굼〉이 조심스럽게 음습한 소식을 전했다.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

“무엇인가?”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잘 된다면 남부 왕국의 수도를 제외한 곳에는 소각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될 정도다.”

게페락스가 특히 관심을 보였다. 그는 이런 종류의 〈음모〉를 만드는 일을 특히나 재밌어했다.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하게.”

“〈백설산맥(白雪山脈)〉에서 오크끼리의 내전이 서서히 본격화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믿을만한 소식인가?”

“당연히. 그곳에 내 던전이 몇 개인데. 악마의 힘으로 열린 귀가 수십이고, 보이는 눈만 수백 개다. 오크들끼리 패가 갈려진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골굼이 자신들이 쓰기에는 아쉬운 점을 말했다.

“너무 격렬해서 〈북부 순찰자〉들이 못 알아차릴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대전사(大戰士)〉에 오르려고 하는 오크의 행동력이 실로 무시무시하다는 것이지.”

“잘 되면 우리에게 좋고, 못 되면 결국 기사의 전공 하나라는 소리인가.”

게페락스가 중요한 점을 찍어 보였다. 그 말을 들은 산베로스가 헛웃음 소리를 냈다.

“미친 소리군. 오크를 돕는데, 자원을 쓰자고? 그들이 받을 리가 없다.”

악마를 숭배하는 흑마법사는 모든 지성 종족의 적이었다. 크놀 같은 문화가 제대로 크지 못한 놈들은 제외하더라도 고블린조차 악마를 숭배하는 흑마법사를 크게 적대했다.

자연의 주술을 사용하는 주술사가 있는 부락은 100이면 100 조잡한 칼을 들이밀었다.

하물며 전사의 종족 오크는 더욱 격렬하게 반응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욕망이 그 정도 있다면, 한 번 접촉해볼 만하지 않나?”

“가능성은 있다고 봐야겠지. 눈에 뵈는 것이 없는지 인간이 반드시 그 내전에 개입할 텐데···”

오크와 오크의 내전이 벌어진다면 당연히 인간은 그 피해를 크게 만들기 위해서 개입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오크 내전은 더욱 빠르게 종식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오크 대전사를 둘로 만들어버리면 인간의 입장에서는 크게 좋았기 때문이다. 끝장을 못 보도록 서둘러 허둥지둥 순찰자들부터 투입될 공산이 컸다.

“우리로서는 그것을 당연히 막아야 한다.”

“허면? 어쩌려고?”

“선물을 들고 가야지. 북부에 유명한 식인 트롤이 있지 않나.”

“〈애꾸눈 트롤〉을 말하는 건가?”

그 물음에 〈흑마법사 게페락스〉가 음흉하게 웃었다.

“인간들이 〈애꾸눈 트롤〉이 자신들의 영토에서 마을을 박살내면 오크보다는 자국 영토의 트롤부터 사냥하겠지.”

“오크에게 있어서는 좋은 선물이군.”

이렇게 해도 인간들의 개입을 지연시키니 좋았고, 오크와의 협정이 안 되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또한 만약 오크의 대전사가 되려는 자의 그 행동력이 정말로 모든 것을 앞지르고 있다면 자신들과도 손을 잡을 터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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