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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11화 (210/1,239)

0211 <-- 도착, 진정한 시작 -->

드낙은 게제라스가 자신에게 준 양피지를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물밑작업〉을 한 것이 적혀져 있었다. 자세히 말하면 최대한 그 사람을 떠보고, 원하는 것을 게제라스가 대충 때려맞힌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했는데, 원하지 않은 것을 손에 쥘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이실레아가 〈둥근 언덕 마을〉을 장원으로 얻고 싶지 않다는 것은 의외였지.’

그녀는 숲 마을을 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게제라스의 이어지는 설명 부분에서 드낙은 납득할 수 있었다. 물론 이미 여러 번 읽은 것이었다.

〈목장〉을 운영하는 〈브릴리언트 가문〉의 일원들에게 숲 마을로 이주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투로 이실레아가 야생마에 대한 지식도 풍부한 것을 그걸 읽고 나서야 상기할 수 있었다.

‘생각 없이 지나친 것인데.’

게제라스가 물밑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했을 터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실레아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계승〉을 받았다고는 해도 이런 큰 자리는 처음일 터인데도 그러한 이유는 당연히 원하는 것이 당장 없었기 때문이다.

‘군권을 단단히 움켜쥔 것만으로도 만족할 법하지.’

공을 약속받더라도 상을 다음으로 미룰 것이다. 마일리지처럼 쌓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당연히 드낙에게서 공식적으로 병사를 관리하고 통솔하는 것에 대한 힘과 권리를 부여받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초원지대에 대한 마을을 추가 건설할 때에 큰 도움을 달라는 소리를 나중에 할 터였다. 그러기 위해서 착실하게 공을 쌓을 것이 분명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초원 지형에 대한 마을 건설〉 〈그곳을 장원으로〉 〈도움도 팍팍!〉.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는 것이다.

‘케샤스는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이니.’

그는 지금 가진 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일 터였다. 〈둥근 언덕 마을〉은 물론이고 순찰자 전력에 대한 간섭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적당한 감투를 받고 싶어 했다.

‘과하지.’

고블린 기병 200기 잡은 것에 비하면 과한 것을 원했다. 당연히 그렇게 해줄 수가 없었다.

도렌과 이스핀은 끽해야 금일봉을 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또한 드낙이 탄생시킨 비전을 하사받는 것으로도 감사할 터였다. 게제라스 또한 두 사람이 이름만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크게 감사하고 있다고 적고 있었다.

드낙은 다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었다. 이 세상의 논공행상은 말 그대로 검을 휘두르기까지 하는 무식한 짓을 벌일 정도로 격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 공을 세우는 자들이 귀족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족은 99.9%가 모두 기사였고 무인이었다. 자신의 마을, 토지를 지키지도 못한 놈이 귀족이 되면 바로 영지전부터 시작해서 결투까지 이어져서 단번에 홀라당 털어먹힐 것이다.

제국의 경우에는 조금 달라지고 있다지만 남부 왕국은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괜히 귀족들이 아래에 문인을 두는 것이 아니었다.

“도망치는 적을 잡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되려 측후방을 노리는 기병 200기가 더더욱 무시무시한 것 아닙니까?”

“경기병에 불과하고, 장력도 낮은 단궁으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덤벼든다고 하여도 그전에 보병진이 무너졌으니. 탐욕적인 고블린이라면 숲으로 도망쳤을 겁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보병이 도망치기도 전에 기병이 들이닥쳤겠지요.”

〈만약에〉 〈if〉로 치고받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이실레아는 담담한 표정 관리를 걷어내고 단번에 케샤스와 각을 세우고 있었다. 이렇게 둘이서 각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주인공이 될 수 있었고, 서로의 공을 되려 높이는 효과도 주었다.

또한 이미 게제라스가 〈물밑작업〉을 했기 때문에 속마음은 편안했다.

케샤스 또한 게제라스의 방문을 받았지만 결국 〈과하다〉라는 평가를 받아서 이실레아와는 다르게 더욱 열을 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드낙은 〈토치라이트 가문〉에게서 받은 토지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지금뿐이다. 이실레아 경도 게제라스의 언질을 받았을 터. 나와 각을 세우는 것에 부담감이 없을 것이다. 되려 도와주면 도와줬다.’

군권을 지닌 이실레아는 케샤스와도 잘 지내야 하고, 게제라스와도 잘 지내야 했으며 부대장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함과 동시에 드낙이 의심을 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케샤스를 도와주고 있었다.

전략과 전술. 고블린들의 행동부터 시작해서 온갖 이야기가 주르륵 나열되었다.

드낙은 흥미롭게 들었는데, 최근 군사학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어서 절로 눈에 상황이 눈에 그러졌기 때문이었다.

“저···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게제라스가 중재를 하자 원탁이 조용해졌다.

“어느 누구라도 없었다면 전황이 달라졌을 겁니다. 전쟁의 승패는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드낙은 그렇게 말하며 게제라스를 불렀다.

“케샤스에게 순찰자에 대한 권한만 내어주는 게 좋겠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둥근 언덕 마을의 세수와 노동력을 주는 것은 과합니다.”

물론 인재가 없었기에 암암리에 케샤스가 마을의 관리를 할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나중에 다른 이에게 맡길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잘 한다면 장원으로 내어줄 것이다. 또한 그전까지는 숲의 관리를 대행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이실레아 경에 대한 것은 나중으로 미루는 것으로. 그녀도 그것을 원하니. 순위는 이번에는 후순으로 두도록 하는 게 좋겠다.”

케샤스에게 감투를 주는 것이니 그녀가 그다음으로 오는 것이 모양새가 좋았다.

모두가 조용히 기다렸다.

이 세력의 주인은 드낙이었기에 게제라스는 자신이 쥔 양피지를 건네주었다.

“내 공을 내가 치하한다면 웃긴 일이니 나는 제외하도록 하겠다.”

드낙이 웃어 보이자 다른 이들도 웃어 보였다. 분위기가 괜히 좋아졌는데, 전투에서나 무섭지 때때로 다양한 비전을 상상하면서 걷다가 평지에서도 발을 헛디디는 것이 드낙이었다.

그만큼 평시에는 허점 투성이가 드낙이었다. 몇몇 병사가 그때 말을 걸면 존대를 하기도 해서 병사를 당황케 하기도 했다.

멍하게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도 보여줬는데, 그때는 상상으로 세파리아스 불파겐과 상상 대련을 할 때였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지루함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고, 무(武)에 입문하면서 드낙의 짜릿함을 충족해주는 것은 전투가 아니면 그런 실제와 비슷한 상상이었다. 그런 상상을 할 때면 척추가 때때로 곤두서고 전율이 타오르기도 했다.

익스트림 스포츠의 극한이라고 할 수 있었다.

“1순위는 케샤스다. 기병을 성공적으로 막아냈고, 그들을 모조리 죽여 보였다. 그대는 앞으로 〈순찰 대장〉으로 순찰자에 대한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장원을 얻은 기사와 동등한 직책이다.”

“감사합니다!”

케샤스가 크게 외쳤다. 속으로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무력을 지켰다는 것이 중요했다. 계속 고블린을 토벌하며 숲을 지켜낸다면 그 공로는 계속해서 쌓일 것이다.

“순찰 대장의 급여는 게제라스와 따로 상의 후에 정하도록.”

“알겠습니다.”

말이 급여였지 사실상 숲에 대한 권리를 휘두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물론 마을에 대한 세금은 따로였다. 이중고일 수 있었지만, 숲에 대한 자원의 관리를 케샤스에게 맡김으로써 세금이 제대로 측정되게 할 수 있는 방도였다.

월급도 안 주고, 그렇다고 현물도 안 주고 숲으로 퉁치는 것이다. 동시에 세금 징수에 대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산림자원을 얼마나 가져갔는지를 보면 세금을 자연스럽게 적정량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폐해가 없을 수는 없었지만 자신을 생각하면 그것도 힘들 것이다.

세금은 곧 드낙에게 들어가는 돈이었기 때문이다. 성공하고 출세하고 싶다면 그 주머니로 향하는 돈을 두둑하게 해줘야 했다. 남들과 비교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2순위는 이실레아 경입니다. 이번에 원하는 것이 있습니까?”

“지금은 없습니다. 상은 다음에 받고 싶습니다.”

미리 언질이 게제라스라는 다리를 통해서 오고 갔기에 순식간에 결정이 났다.

“3순위는 도렌 부대장이다.”

도렌이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전신에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금일봉과 비전을 몇 가지 더 내려주겠다. 이것은 4순위인 이스핀도 마찬가지다.”

이스핀도 냉큼 일어났다. 순위가 달랐지만 받는 것은 똑같았다. 마지막은 게제라스였다.

“게제라스 총관.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소.”

“검이라도 배워야겠습니다. 하하하.”

그가 너스레를 떨었다. 자신을 대체할 문인이 없었기에 스스로를 거침없이 마지막에 끼워 넣은 게제라스였다. 여유로움이 넘쳤다.

‘오히려 이게 나중을 위해 더 낫다.’

또한 보급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내정관이 전쟁에서 빛을 발휘하는 법이었다. 이번 전투에서는 그럴만한 것을 내세울 수가 없었다.

논공행상은 서로 손을 잡은 채로 말다툼을 한 이실레아와 케샤스가 주역이었다. 두 사람이 공을 두고 경쟁했다는 것은 금방 퍼져나갔다.

케샤스가 〈순찰 대장〉이 되었고, 사실상 순찰자 40명에 대한 군사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드낙의 그릇이 크다는 것 또한 퍼져나갔다.

이스핀과 도렌은 특히나 공의 순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무엇보다도 누가 더 큰 공이냐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다.

술자리 안주로 딱이었다. 물론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기들이 드낙이 된 것처럼 굴기를 즐겼다.

“에이! 그래도 800마리나 죽였는데 이실레아 기사님이 더 높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기병 200기 못 봄? 목책 위에가 아니라 무서워서 집 안에 있었냐?”

“이 새끼가? 화살 몇 발 쏜 순찰자가 어떻게 더 높아.”

“숲에서 멧돼지 보고 오줌 지린 놈이 누구더라?”

몰래 꽁쳐서 만든 밀주로 홀짝이던 사람들끼리 크게 다투기도 했다. 당연히 소란에 나타난 병사들에게 모조리 포승 당해서 이실레아의 카리스마에 짓눌려 찍소리도 못한 채 벌을 받아야 했다.

〈둥근 언덕 마을〉에는 새로운 공문이 붙고, 케샤스가 직접적으로 입을 열어 〈깊은 녹색 숲〉에 대한 권리가 드낙에게 있음을 공표했다. 또한 자신이 확실하게 숲에 대한 자원에 값을 매기겠다고 말하였다.

입장료를 비롯해서 가져가는 자원에 대한 값을 매긴다는 소리였다.

반발은 전혀 없었는데, 애초에 이 마을 자체가 순찰자들의 존재로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예 3년은 어느샌가 쏙 들어가 있었는데 케샤스의 기반이 숲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대해서 이미 게제라스와 합의를 봤기에 당장 내년 봄부터 시행된다고 떠들어대었다.

하루를 더 머물고, 드낙의 세력은 〈산지기 산골 마을〉로 향했다. 그곳이 바로 〈토치라이트 가문〉의 토지가 있는 곳이었다.

드낙은 술을 여러 병 꺼내어 마셨다.

혼자만의 축하이기도 했다. 마을 하나를 지배에 두었기 때문이다. 매년 가을이 끝날 때마다 세금을 징수할 수 있을 것이다. 숲마을이었기에 관련 자원으로 세금을 받을 터였다.

‘〈순찰대장 케샤스〉.’

여우 같은 남자였지만 그렇기에 수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 숲 권리에 대한 공문을 붙이고 내년 봄부터 그렇게 하겠다고 했을 때도 불만 하나 없었다. 확실하게 마을을 쥐고 있었다는 뜻이다.

‘인재도 하나 얻었지.’

배신?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그는 분명 검은 문을 토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인자하게. 모든 이들에게 중책을 맡기고 확실하게 모든 것을 내 밑으로 끌어모은다.’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암살 기도가 생길 수 있었으며 삼삼오오 뭉쳐서 하나의 세력으로 독립을 꾀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낙은 그렇게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만큼 빠르게 성장하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오히려 그것을 한 번 더 확신하게 되었다.

케샤스에게 순찰자에 대한 군사력을 거침없이 주고, 숲 권리를 대행하는 것 또한 급여 대신 내어주었다. 그렇기에 마을에 대한 세금 징수를 어려움 없이 확보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둥근 언덕 마을〉에 똬리를 튼 군벌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준 것이다. 또한 완벽한 독립도 아니라 그 마을의 이권을 어느 정도 받아먹기에 통제권을 겉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군벌이라면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드낙에게 세금 한 푼 안 냈을 것이다.

‘오히려 이 방법이 좋아.’

본진을 꾸리게 되면 다른 마을에 대한 관리를 위해서는 보고를 받는데만 1주일은 걸렸다. 기사를 두거나 그와 비슷한 감투를 배치하는 것이 관리에 더 좋았다. 모두 게제라스의 생각이었다.

현대인인 드낙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있다고 해도 생각나는 것은 둔전제 하나뿐이었다.

병사의 불만이 많은 둔전제는 당연히 기각되었다. 애초에 모병제의 형식을 따르는 것이 이 세계의 정규군이었다. 시민에게서 돈을 받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만큼 적을 보고도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먹을 것을 농사짓는다면 분명 병력수는 높일 수 있지만 정신 무장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케샤스도 결국에는 장원으로 〈둥근 언덕 마을〉을 소유하게 되겠지.’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고분고분 드낙을 따르는 것이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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