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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10화 (209/1,239)

0210 <-- 도착, 진정한 시작 -->

검은 연기가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잡아먹는 것처럼 항상 느껴졌지만 드낙은 애써 그런 마음을 흩뜨렸다.

바닥에 툭 튀어나온 오른손은 이제 팔뚝 관절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뭔가가 크게 바뀌겠지.’

무엇보다 지금 현재를 유지해도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검은 문〉은 대단한 힘이었다. 다른 걸 원하지 않아도 될 수밖에 없었다. 괜히 건드렸다가 지뢰면 큰일이다.

고블린 주술사를 공개처형하면서 얻어낸 검은 문의 숫자는 총 4개.

드낙은 꼼꼼하게 검은 문의 환상을 확인했다.

후우우!

검은 연기가 그를 맞이하며 환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웅장한 대자연의 모습이었고, 땅의 힘이었으며 나무의 힘이었다. 말 그대로 〈자연〉을 다루는 것이 주술이며 그 힘은 주력이라 불렸다.

〈고블린 주술사의 주력〉.

‘마력과 비슷한 거라 생각했는데 성질이 전혀 다르네.’

마력(魔力)은 그저 순수한 힘(力)이라 봐도 무방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변질이 수없이도 이루어지고, 변형도 생길 정도로 범용성이 많았다. 많은 이들이 만변(萬變)의 힘 혹은 범용성의 마력이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주력(呪力)은 달랐다. 땅과 나무의 힘이었고, 그것을 변화시키기란 어려웠다. 〈금속 지팡이〉를 쓰는 이유도 땅의 힘을 더 크게 받기 위함임을 드낙은 짐작할 수 있었다.

‘전신갑주에 내장된 마력 저장소에는 쓸 수 없는 힘이다.’

휘발유로 달리는데 등유를 쓰는 격이었다. 위험했다. 주술을 배우지 않는다면 쓸모가 없었다. 물론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의 힘이었기에 식물이 잘 자라고, 토양의 질이 좋게 할 수 있었다.

그저 주력을 뿌리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비료인 셈이었다. 그렇다고 비료 얻자고 힘을 얻기도 뭣했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선택해볼 만하지.’

고블린 주술사는 이런 변방에서는 어디든지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주술사를 잡으면 공통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스윽.

다음 검은 문을 건드리자 환상이 또 드낙을 덮쳤다. 그것은 흙과 나무의 주술에 대한 것이었다. 주력이 있다면 당장 사용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수련을 하면 얻어낼 수 있는 지식의 전수였다.

마법 하나 능숙해질 수 있도록 하는 지식과는 조금 달랐다. 깊이가 얕았지만 넓었다. 주술의 개수만 해도 다섯은 되었다.

〈고블린 주술〉.

‘나쁘지 않아.’

무엇보다 사람을 치료해줄 수 있거나 노동력을 대신해서 흙을 파고, 쌓고. 나무의 열매를 빠르게 맺게 하는 등의 유틸성도 좋았다. 물론 전투용 주술도 있었다. 나뭇잎 치유술과 거인의 토사물은 드낙이 직접 눈으로 본 것이기에 그 효과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차선으로 선택할 것이지.’

다음에 고블린 주술사를 잡아 죽이면 얻을 선택지였다.

〈민둥숭이 토기 주술〉의 경우에는 불, 물, 땅, 나무, 금속에 대한 다양한 주술을 담을 수 있었다. 특히 〈불〉 〈물〉에 대한 주술을 담을 수 있는 것은 토기 주술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화염병〉처럼 보였던 〈화염 토기〉 또한 여기서 나오는 주술이었다.

‘점토만 있으면 대량 생산이 가능하기에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다.’

드낙에게는 그저 뜨끈한 것에 불과했지만 일반병들의 싸움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줄 것이다. 방패를 단단히 들고 있지 않고,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터진다면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야만의 선명한 핏줄〉은 기괴했다.

‘다양한 고블린에 대한 기억들.’

나무만 패던 고블린부터, 광산을 손으로 더듬고, 냄새를 맡으며 찾는 고블린까지.

온갖 일에 투입되었던 고블린들에 대한 기억을 받는 것이었다. 드낙은 별 흥미를 가지지 않았지만 〈야만의 선명한 핏줄〉이야말로 〈휴머노이드 종족〉인 고블린이 몬스터들 중에서도 가장 문화를 융성하게 만들 수 있는 이유였다.

그 비밀을 탐닉했지만 드낙은 심드렁했다.

‘나무꾼 고블린에 대한 기억을 얻어서 뭘 어쩌라고?’

광산을 찾아내는 방법은 탐이 났지만 그걸로 검은 문을 퉁치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것은 〈고블린 주술사의 주력〉이었다.

주력을 손에 넣은 드낙이 빙긋 웃었다. 또 다른 고블린 주술사를 쳐죽여서 〈민둥숭이 토기 주술〉을 배우기 전까지는 그냥 비료나 과수원 나무에나 쓸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당장 사용 가능하고, 나중에는 더 쓸만해지기 때문이다.

일어나서 곧장 〈오아시스의 활력〉을 사용해서 몸을 대충 헹구고, 드낙은 새벽수련을 했다. 수련이 끝난 다음에는 전신갑주를 벗어서 꼼꼼하게 손질하였다.

시원한 물이 흐르는 〈오아시스의 활력〉은 본래 목적은 기사의 달구어진 체온을 낮추고, 활력을 돋아주고 상처를 회복하는 마법이었지만 드낙은 자신이 마력을 운용할 수 있었기에 땀을 씻기는데 사용하고 있기도 했다. 훌륭한 마력 낭비였지만 스스로 마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짓이었다.

‘원탁회의. 휴···’

드낙은 좋지 않은 표정으로 오늘 약속된 원탁회의에 참석했다. 중대한 문제를 결정하는 날이었기에 벌써부터 도착한 이들이 많았다. 특히 케샤스는 아직도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에게 오늘만큼 중대한 일은 없을 것이니까.’

많은 것이 결정되는 날이었다.

“그럼 원탁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의 안건은···”

게제라스가 회의를 주도했다. 고블린 부산물에 대한 것이나 노예들과 토성민 그리고 토성민들의 노예였던 이들의 자잘한 분쟁에 대한 처리 같은 것들이 자잘하게 앞서 나왔다.

모두 빠르게 처리되었다. 대부분이 거기에 대해서 큰 주관이 없었기 때문에 게제라스의 말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현대인인 드낙이 시답잖은 인본주의(人本主義)를 말해서 게제라스가 몇 번이나 말을 길게 해야할 때도 있었다.

전투에서는 아기도, 어린이도, 여자도, 늙은이도 거침없이 죽이는 드낙이었지만, 평상시에는 인자한 면모가 두드러졌다.

전투에 있어서 큰 결심을 하고 나서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과 적의 죽음이었다. 오직 그것뿐이다. 그런 각오를 드낙은 항상 하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이번 토벌로 획득한 〈깊은 녹색 숲〉에 대한 권리에 대해서입니다.”

그 말에 케샤스가 민감하게 움찔거렸다. 〈둥근 언덕 마을〉에대한 목줄이었으며 동시에 〈푸른 이리 케샤스〉를 비롯한 순찰자를 통제하기 위한 칼자루였다.

“일단 당사자인 케샤스의 말부터 듣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드낙의 오만한 턱짓에도 케샤스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일어났다. 하지만 무인에다가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않은 그가 바로 답변하기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뭐라도 말해야 했다.

“제가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깊은 녹색 숲에 대한 권리는 그날 싸운 모두에게 있으며 특히 드낙 님에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둥근 언덕 마을〉의 사람들을 생각해주십시오.”

말은 제법 길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였다.

‘명예만 세우라는 소리로군.’

그 공에 대해서 둥근 언덕 마을의 시민들에게 공고하고 입으로 전하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그들을 생각하라는 소리는 그 권리를 이용해서 이익을 탐하지 말아 달라는 소리였다.

당연히 드낙에게는 불편한 소리였다.

명분을 적당히 쥐면서 이득을 챙기고 싶은 게 드낙의 본심 때문이었다. 특히 받아내야 할 돈을 안 받는 것은 거북했다. 명분이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양보하는 것도 성질에 맞지 않았다.

나무는 인류에게 있어서 매우 필요한 자원이기 때문이었다.

드낙의 눈이 게제라스에게 향했다.

“불만이 없을 수야 없습니다만, 그저 공으로 이득을 탐한다면 감사한 마음을 잊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판단을 해야 할 때는 지금이 아니지요. 최대 3년을 두어 유예시간을 주고 숲에 대한 권리금을 마을에 매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최대 3년이라 함은 마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소리처럼 들렸지만 그 대상은 마을이 아니었다.

‘나구나. 이번 공적에 대해서 손을 떼라는 것인가?’

푸른 이리가 원탁 밑에서 손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반협박이나 다름없었다. 게제라스가 이실레아와 케샤스 중에 누구에게로 팔이 굽혀질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기분이 나빴지만 아직 확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케샤스는 적어도 순찰자에 대한 독립을 요구하고 싶었다. 이번에 기병의 돌진을 막은 것은 큰 공이었다. 순위권에 반드시 들어갈 수 있었다.

“불만을 종식시키기에는 시간을 주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지.”

겨울을 생각하면 바로 장작을 대량으로 끌어모아야 하지만 드낙은 태평했다. 게제라스가 알아서 안을 낼 것이다. 혹은 경제를 위해서 구매하는 방법도 있었다. 돈은 써도 세금으로 결국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계약서는 〈둥근 언덕 마을〉에 돌아가서 계약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3년의 유예. 변경이 가능한 유예였다. 하지만 케샤스는 반대를 할 수 없었는데, 드낙의 무력 때문이었다. 벌써부터 그 괴물 같은 단기 돌진 때문에 민간에서는 그를 〈청혈 기사(Blue Blood Knight)〉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였다.

드낙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토성민들조차도 그를 대단하게 칭송하기 바빴다.

고블린을 말끔하게 쳐죽인 것 때문에 숲에 대한 권리에 대해서 약식으로 결정을 짓고, 바로 가장 중요한 안건으로 넘어갔다.

‘논공행상(論功行賞).’

누가 큰 공을 세웠는지, 누가 작은 공을 세웠는지를 가려내어 상을 주는 일이었다. 이제 제법 구색을 갖추고, 큰 전투를 치른 상황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일단 〈고블린 전투〉에 대한 경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직접적인 전투를 한 드낙이나 병사를 다루기에 급급했고, 나중에 가서는 고블린 엉덩이를 쫓기 바빴던 부대장들에게 다시 한 번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정리는 필요한 행위였다.

“드낙 님께서 홀로 고블린의 1천 군세에 돌진하여 길을 뚫어내어 고블린 캡틴 두 마리를 죽이고 한 마리를 생포하였습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고블린 전사들은 단번에 와해되어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실레아 경을 비롯한 부대장 두 사람은 병사들을 지휘하여 패주하는 고블린 전사를 닥치는 대로 죽여 수급을 800마리나 얻어내었습니다. 또한 숲으로 끝끝내 도망친 고블린 전사 200마리는 늑대들에게 대부분이 물어뜯겨 죽었습니다.”

살아서 돌아간 고블린 전사는 수십도 되지 않았다.

“또한 케샤스 순찰자는 휘하 순찰자들과 함께 고블린 기병 200기의 발을 묶고, 그들을 죽였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사후처리를 감독, 관리를 한 저와 도렌 부대장이 있습니다.”

도렌은 전투에도 투입되고 그다음에는 게제라스를 도와야 했다. 무식한 업무에 시달린 것은 당연했다. 워낙 속으로 힘든 것을 삭히고 마음이 여려서 힘들다는 말을 안 했다가 게제라스에 보고를 하다가 코피를 쏟고는 3일을 내리쉬게 되었다.

자신의 몸도 생각하지 않고 하라는 대로 하는 도렌의 모습을 보고 게제라스가 더욱 그를 이쁘게 여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케샤스가 이실레아를 살폈다. 이실레아는 담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될 만한 것은 그녀와 나의 공 중에 무엇이 더 높으냐는 것이다.’

케샤스는 바짝 긴장했다.

“일단은 제가 생각하는 순위를 말하겠습니다.”

게제라스가 목을 가다듬었다.

“일공은 당연히 드낙 님이십니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었다.

“다음은 이실레아 경과 케샤스 순찰자에 대한 것인데, 저는 사실 명확한 판단을 못 내렸습니다.”

케샤스가 속으로 웃었다. 게제라스가 이실레아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그럼에도 이실레아는 담담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다음으로는 전투에도 나서고, 행정 일을 도와준 도렌 부대장입니다.”

이스핀이 그 뒤로 왔고, 게제라스는 스스로를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1200의 군대와 맞선 것이 중하다고 여겼다. 보급이라고 해도 바로 코앞이었기에 공이라고 치기도 힘들었다.

말 그대로 이름만 올린 것으로도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고 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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