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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09화 (208/1,239)

0209 <-- 고블린 연합 -->

검은 연기가 드낙을 덮쳤다. 이미 익숙한 광경이었다.

수많은 검은 문들이 드낙을 반겼다. 또한 변종 키메라가 된 포낙서스와 앙상한 해골의 모습 혹은 때때로 생전의 모습을 갖추는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드낙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낙은 미소를 지으며 불파겐에게 물었다.

“어땠습니까? 제법이었죠?”

[형편없었다. 기세를 터트리는 것이 너무 느렸어. 어차피 호랑이 질주가 있었다면 병(兵)을 압도한 다음에 쫓아가서 죽이는 것이 더 현명했다.]

쓴소리만 들려왔다. 하여간 경험이 많다고 아주 오만했다. 물론 전투를 복기한 드낙도 인정하는 바였다. 생각보다 고블린 캡틴의 역량이 낮았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강한 건가?’

창을 직격으로 쏘았음에도 흘려버리는 중갑술을 지닌 드낙이었고, 압도적인 방호력을 자랑하는 것이 전신갑주였다. 그덕이 큰 것일지도 몰랐다.

장(將)을 먼저 잡을지 병(兵)을 먼저 잡을지에 대한 판단은 세파리아스가 더 훌륭했다. 그가 충고한 대로 했다면 병사들의 피로도가 더 적었을 것이다. 또한 드낙처럼 다수에 대한 전투력이 막강하지 않더라도 일반 기사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드낙처럼 무식하게 질주하지 않았을 테니까. 정석이라면 정석이었다.

흑마법은 애초에 쓸 수가 없었기에 논외였다. 사용하면 마력의 변질이 일어나 검은 불꽃이 피어오르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변종 키메라와 별다른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무슨 능력이 있으려나.’

가장 먼저 대량 학살한 고블린의 자잘한 능력들이 눈에 들어왔다. 〈휴머노이드 종족〉 중에서도 가장 문화가 발달된 몬스터답게 온갖 기술과 지식이 드낙의 눈을 스쳐 지나갔다.

〈크놀의 제련법〉과는 다른 말 그대로 〈환풍〉을 이용한 지하 용광로의 화력에 기대어 만드는 제련법이 고블린의 제련법이었다.

‘이런 건 배울 필요가 없지.’

드낙이 대장장이로 사는 게 아니라면 불필요했다. 그런 자잘한 것에 신경을 쓰기에는 인간 대장장이를 영입해오는 것이 더 좋았다. 이제 드낙은 그 정도는 생각할 수 있는 깜냥이었다.

물론 고블린들에게서 가져오지 않을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야만의 독과 해독〉.

‘나에게 현재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

암살 그리고 독.

암살이야 도노를 곁에 두고 자면 될 일이고, 잘 때도 전신갑주를 입고 자는 것이 드낙이었다. 찌꺼기를 받아먹어서 본신의 체격에 비해서 더 큰 힘을 보유하고 있어서 전신갑주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독.’

독에 대한 지식이 야만적인 수준이라도 있는 것이 좋았다. 오히려 야만적인 고블린들이었기에 다양한 독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검은 문〉으로부터 얻은 정보로는 대부분이 물에 타는 독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아 보였다. 드낙에게 사용할 법했다.

‘저항력을 늘리기에 이만한 것도 없지.’

소량 먹고, 해독약을 준비해놓고 다양한 독에 대한 저항력을 늘려나가는 것이었다. 괜찮은 방법이었지만 일단은 보류했다.

까다롭고 귀찮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드낙은 〈일각수의 간〉을 획득해 있었다. 절박하지는 않았다.

‘다음.’

고블린들이 내어준 검은 문들을 훌훌 털어버린 드낙은 〈몰이머리 빠오풀〉이 토해낸 검은 문도 깔끔하게 무시했다. 다이어 울프조차도 조련할 수 있게 된 드낙이었다. 물론 당장은 상황이 안 되어서 안 할 뿐이었다.

〈고블린 캡틴의 매서운 창술〉.

정교함이 없는 창술은 거칠었지만 그 덕에 날카로움이 돋보이는 움직임이었다. 당연히 드낙은 부드럽게 넘겼다. 전신갑주에 충격량을 전해주지도 못한 채 흘려버린 일격이다.

하찮게 느껴졌다.

‘오.’

제법 괜찮은 것은 〈바위턱 우흘라〉가 토해낸 검은 문들이었다. 물론 부작용이 있는 것들은 제외했다. 상쇄가 가능하다면 선택해볼 만했지만 아직 드낙이 보유한 능력은 고만고만한 것들뿐이었다.

〈희석된 오크의 혈통〉. 뼈가 강해지는 능력이었다. 단단해져서 나쁠 것은 없었다. 또한 희석이 된 덕분인지 단점도 보이지 않았다.

〈망가진 타투〉. 몸에 점 같은 것이 생기는 대신에 힘의 부여가 생기는 타투였다. 아마 마력처럼 신체 스펙과는 무관한 종류의 힘일 터였다.

〈오크의 골반〉. 하체에 힘을 주는 능력이었다. 당연히 드낙으로서는 이쪽으로 관심이 갔다. 사실 몸에 두드러기처럼 검은 점이 생기는 망가진 타투는 선택하기가 싫었고, 희석된 오크의 혈통의 경우 공격적이지 않았다.

‘전신갑주를 착용한 상태로는 어지간한 일에도 방어가 된다.’

특히나 드낙이 박살이 날 수밖에 없는 공격은 방어 마법이 있었다. 결국 드낙이 고른 것은 〈오크의 골반〉이었다.

‘아직 성장기니까. 더 커져야지.’

크면 클수록 더 강해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앞으로 드낙은 더 커지고 싶어졌다. 못해도 센다빌 정도는 되고 싶었다. 사실 그가 그렇게 큰 이유를 아직도 드낙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야만인이 그렇게 유전자가 좋나?’

그저 혈통빨이라기에는 3m에 달하는 키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드낙은 그에 대해 생각하다가 세파리아스와 수다를 떨었다. 당연히 자신이 생각한 비전에 대한 것이었다. 대부분이 허점 투성이었지만 가장 즐거운 때였다. 비전만큼 재미난 스포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투가 있고 나서 자정이 지난 시간.

〈푸른 이리 케샤스〉는 나무에 올라서서 숲의 밖을 보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횃불의 불빛과 졸린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초병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보고 있지 않았다.

선명한 피의 자국.

시체는 치워졌지만 그 길은 사라지지 않았다.

붉은 염료를 크게 적신 붓으로 점을 찍고, 그대로 쭉 그은 것처럼 땅에 한 줄기로 나있는 피의 자국은 선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붓물 터진 것처럼 쫙 퍼져서 흙을 피로 물들였다.

‘봐도 봐도 믿을 수가 없군.’

고블린 기병 200기를 붙잡고 그것들을 죽이기도 전에 보병진 1천이 무너진 것이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전투였다. 그렇다고 고블린 전사들이 잡병(雜兵) 인가? 아니다. 포악함으로 무장한 고블린의 군세였다.

〈고블린 캡틴〉만 해도 세 마리였다.

남부 왕국에서도 보기 힘든 규모 있는 전투였다. 단기 돌격을 천 마리를 두고 한다면 말라죽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드낙이 보여준 무위는 그것을 송두리째 뽑히게 만들었다.

‘사람의 팔은 두 개일 뿐인데.’

닥치는 대로 죽이며 직선으로 질주하는 드낙의 모습은 말 그대로 괴물 그 자체였다. 간을 보고 도와준 대가를 나중으로 미룬 케샤스는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마음만 먹으면 드낙이 단칼에 자신은 물론이고 순찰자는 기본으로 깔고 마을을 홀로 격파하여 모두 노예로 삼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드낙이 다수를 상대로 보여준 무력은 모든 판단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가 알던 기사의 무력이 아니다.’

기사도 사람이다. 아무리 마법이 받쳐줘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정예를 잡고, 중대형 몬스터나 야수를 잡는 것에 특화된 기사는 되려 다수를 상대함에 있어서 힘을 못 쓰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

케샤스가 추위를 느끼고는 술병을 꺼내어 마셨다. 거침없이 들어갔는데, 그만큼 마음이 심란했기 때문이었다.

꿀꺽. 꿀꺽. 꿀꺽.

강한 독주가 목을 타고 흐르며 괴로움을 호소했지만 오히려 그 느낌에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듯했다.

“크으···”

케샤스는 흐르는 술을 닦으며 달빛이 내려앉은 〈피의 길〉을 바라보았다.

‘결코 대적해서는 안 된다.’

암살할 생각도 싹 사라졌다. 애초에 암살할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한 번은 상상해봤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귀족만큼 이득을 취하는데 폭압적인 존재가 또 없었다.

다른 순찰자들도 기회가 되면 한, 두 마디씩 오늘 있었던 전투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대부분이 드낙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순찰자들이었기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봐도 봐도 오금이 꿈찔 꿈찔하네.”

“미친 새끼. 변태냐? 난 끔찍함밖에 못 느끼겠던데.”

“소름이 그런 소름도 없었다.”

쉬익!

말을 하다가도 나열만 하고 피냄새를 풍기는 고블린 시체에 접근한 여우 하나가 그대로 화살에 관통 당하며 짧은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멀리서 지켜보던 독수리가 그것을 보고는 딴 곳으로 날아갔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아침해가 서서히 떠오르자 순찰자들이 마을로 들어가고, 병사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고블린 도축을 해야 했다. 고블린의 고기는 잘 말려서 늑대들의 식량으로 쓸 생각이었기에 도축한 고블린의 잔여물이 햇빛이 쨍쨍한 곳에 말려졌다.

관리와 감독은 도렌과 게제라스가 맡았다. 새벽 훈련에 참가한 도렌은 피곤에 절어있었음에도 착실하게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농땡이를 부리는 자들은 없었다.

정신없이 고블린 도축과 부산물에 대한 세척 그리고 바짝 가죽을 말리는 사이에 점심시간이 빠르게 다가왔다. 삼삼오오 자리를 잡아 사람들이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식사시간은 현대인인 드낙이 1시간 30분을 주라고 했기 때문에 대단히 넉넉했다. 또한 술도 한두 잔을 걸칠 수 있도록 지급되었다.

일을 시키는데 그런 것 정도는 해야 한다는 드낙의 판단이었고, 게제라스는 매번 반대하였지만 그리 크게 각을 세우지는 않았다. 치안에 있어서 배를 불리는 것은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손을 놓은 것도 있었고 마을 두 개를 털면서 얻은 식량이 많았기에 외면하는 것도 있었다. 복합적인 이유였다.

“장관이었지. 장관.”

나오지 말라는 말이 있었지만 목책 위로 올라가서 구경하지 말라는 소리는 없었다.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책 위에서 전투를 구경했다. 슬금슬금 기어 나와서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불특정 다수가 그렇게 했기에 겁이 없어져서는 구경을 멋대로 한 것이다. 뭉치면 잔혹한 짓도 서슴없이 하는 것이 인간이었고, 책임감도 옅어져버려 죄악심마저 가지지 않게 되는 것이 인간이었다.

“혼자서 그냥 그렇게 많은 고블린 전사들한테 우~직하게 들어가는데! 크!”

술이 당기는지 남자가 단번에 술을 한 잔 마셨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멀리서 봤기에 더욱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단 한 명의 단기 돌격이었다. 누구도 막을 수 없었고, 기어코 고블린 캡틴 둘을 죽이고 하나를 생포했다.

“일직선으로 닥치는 대로 돌진하는데, 진짜 미치겠더라.”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것만 하면 끝이냐? 그다음이 더 대단했지.”

찢은 밀빵을 쥔 손이 수프로 향하며 일하던 남자들이 서로 드낙의 전투를 말하기 바빴다. 마치 자기가 한 일처럼 떠들어대었다.

“단번에 와해가 되어서는 도망치는데! 크, 그런 장관을 내 생전 처음 봤다니까. 이야기로만 들어봤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대단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봤는데 〈청혈 기사(Blue Blood Knight)〉가 어때?.”

“어떠냐니. 뭐가?”

“칭호 말이야. 칭호! 버팔로 나이트처럼! 블루 블러드 나이트인거지!”

그 말에 남자들이 매우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드낙의 새로운 칭호를 말한 노동자가 괜히 마음이 안 좋아졌다. 하지만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제법 멋있는데? 귀족이니까.”

자신들과는 다른 혈통을 지닌 기사의 등장을 말하는데 푸른 피는 적당해보였고, 멋있어 보였다.

“나쁘지 않아. 오히려 좋은데?”

드낙의 새로운 칭호가 곳곳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마을을 버리고 떠나야 했기에 드낙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토성민들은 드낙을 호구 기사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청혈 기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해질녘에는 생포한 고블린 주술사가 드낙의 손에 공개처형 당했다. 그 이벤트에 크게 사람들이 호응을 해주었다. 목은 잘려 마을 입구에 효수되었고, 쇠지팡이는 짐수레에 넣어졌다.

또한 남은 시체는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 처참하게 짓이겨져서는 병사들의 손에 숲 아무 곳에나 버려졌다.

밤이 깊어졌음에도 게제라스는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 옆에서 도렌 또한 정리를 도왔다. 바로 이번 공적에 대한 정리였다. 내일 바로 논공행상을 하겠다고 드낙이 말했기 때문이다.

못해도 자기 전에 확정은 정리는 해놔야했다. 물론 이것은 1차적인 분석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공을 나누는 자리에서 또 많은 이야기가 오갈 것이다. 최소한의 판단인 것이었다.

‘1순위는 당연히 드낙 님이고.’

〈천인적(千人敵)〉이라고 말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어진 것이 드낙이었다.

혼자서 천의 군대를 박살 냈으니 당연했다. 또한 그렇게 해서 고블린 캡틴도 둘을 죽이고 하나를 생포했다. 지휘부를 격멸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공적이었다.

‘2순위는 이실레아 경으로 봐야 하나··· 순찰자들의 것으로 봐야 하나.’

2순위가 가장 고민되었다.

기병을 잡은 케샤스냐. 보병을 쫓아가 닥치는 대로 죽여 800마리를 죽인 이실레아냐.

‘모르겠다. 사실만 써놓자.’

밤이 점점 깊어갔기에 게제라스는 이실레아를 2순위로 두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해도 내일 박 터지게 원탁회의에서 싸울 것이다.

‘케샤스는 드낙을 두려워하기에 우리쪽에 완전히 붙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공적을 포기할 수는 없을터다.’

더 절박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실레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장원을 받아서 서둘러 브릴리언트 가문을 이주 시키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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