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8 <-- 고블린 연합 -->
〈바위턱 우흘라〉의 거대한 양손도끼가 그대로 횡으로 휘둘러졌다. 드낙이 만들어낸 〈피의 길〉을 봤기 때문인지 힘이 빡 들어가 있었다. 단번에 드낙의 기를 꺾고, 일합이라도 합을 맞대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런 상황을 상상하며 드낙은 검은 꿈에서 자신만의 비전을 신나게 떠들어대었는데, 무인(武人)인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매우 완성도 높은 비전이 완성될 수밖에 없었다.
〈게쯔붕엔 페네트라찌온(Gezwungen Penetration, 강제적인 침투)〉.
그것을 사용할 상황은 딱 한정되어 있었다. 조건 또한 매서웠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비전이었다.
1. 적이 중병기를 사용할 것.
2. 횡 베기 혹은 내려치기 행동을 해야 할 것.
3. 서로 체격이 비슷하거나 자신이 더 좋을 것. 혹은 체중이 더 무거워야 할 것.
체격에서 격차가 있더라도 체중으로 밀어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조건은 모두 통과되었다.
오크의 혈통을 받았지만 고블린인 〈바위턱 우흘라〉였다. 당연히 다른 고블린보다는 컸지만 드낙보다 조금 클 뿐이었다. 체중에서는 비교조차 불가능했다. 드낙의 전신갑주는 전신으로 체중이 분산되어있지만 전신갑주의 실제무게는 30kg에 달했다.
그것은 배낭으로 메고 있는 것과는 달랐다. 고루 퍼져있었기에 실제로 느껴지는 무게감은 덜하기 때문이었다.
“하아아압!”
드낙이 기합을 지르면서 우흘라의 공격에 정면으로 맞이하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우흘라는 짜릿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횡으로 베어지는 것 같던 롱소드가 단번에 위로 올라갔다.
횡으로 베는 척을 한 것이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으니 그 검로는 지나칠 정도로 빨랐다. 내려칠 때 힘을 강하게 주고 체중을 실은 드낙의 검이 정확하게 우흘라의 휘둘러지는 도끼를 내려쳤다.
힘이 -〉으로 향하고 있는데 내려쳤으니 허무하게 땅에 곤두박질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드낙의 롱소드가 단단히 도끼를 짓누른 채 불똥을 튀기면서 그대로 주르륵 양손 도끼를 타고 올라갔다.
드낙 또한 발을 거세게 앞으로 코뿔소처럼 강하게 움직였다.
“웃!”
우흘라가 깜짝 놀라서 양손 도끼를 놓쳤다. 그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잡고 있든 놓고 있든 결과는 똑같았다. 소드 가드 부분이 있더라도 〈엘라스티쉬 제스트렁(Elastisch Zerstorung, 탄력적인 파괴)〉을 사용하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서걱!
단번에 손목이 잘려나갔다. 피가 사방으로 뿌려졌다. 그만큼 우흘라가 격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 걸음 더 물러서는 우흘라가 양팔을 모아서 얼굴과 심장과 폐가 있는 상체를 방어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기를 놓친 전사의 마지막 발악에 지나지 않았다.
“죽어라!!”
우흘라가 뒤로 허둥지둥 물러나면서 옆에서 창이 훅하고 튀어나와 드낙을 노렸다. 하지만 드낙은 그 창을 막지 않고, 검을 휘둘러서 우흘라의 아랫배를 그대로 헤집었다.
“끄업.”
우흘라의 내장이 피와 뒤섞여서는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한 손으로 떨어지는 내장 따위를 받쳤다. 그 손이 벌벌 떨렸다.
카앙!
창은 가장 강력하게 전신갑주를 때렸지만 그대로 빗겨나갔다. 드낙이 가진 〈검은 문〉의 능력 〈투우(鬪牛)의 중갑운용 노하우〉와 〈센다빌의 백병전술〉 그리고 지금까지 입고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늘어난 숙련도.
전신갑주를 정확하게 찌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원형 방패를 내려친 것처럼 주륵 미끄러졌다. 정교한 창술이 아니라면 전신 갑주의 내부에 충격량을 전달할 수가 없었다. 뭉툭한 철퇴라도 소용없는 것이 전신갑주였다.
드낙은 〈몰이머리 빠오풀〉의 창을 옆구리에 끼웠다. 그리고는 단번에 그가 있는 곳의 정반대로 몸을 틀었다. 멧돼지에 올라타있던 빠오풀의 몸이 붕 떠서는 그대로 패대기쳐졌다.
무기를 놓쳤다가 내장이 밖으로 튀어나온 우흘라를 봤기에 결코 놓지 않았다가 생긴 참사였다.
“컥!”
떨어진 빠오풀의 옆구리를 걷어찬 드낙의 눈에 〈흙송곳 짜라〉가 주술을 완성시키는 모습이 들어왔다.
“〈거인의 토사물(Giant Vomit)〉!!”
그의 지팡이가 땅을 찍자 그대로 땅이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사람 크기만큼 튀어나와서 빠르게 드낙을 향해 쏘아졌다. 그 양을 생각한다면 그대로 놔두면 단번에 휩쓸려서 매장될 것이다.
특히나 갑옷을 입은 드낙을 노리고 사용한 주술이었다. 매장된다면 드낙은 갑옷까지 입고 있었으므로 빠져나오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겉으로는 허접해 보였지만 땅이 가지는 질량을 드낙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몰이머리 빠오풀〉 그리고 〈바위턱 우흘라〉를 마무리하기보다는 방어 마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다른 기사라면 다른 방법을 강구했겠지만 마력을 운용 가능한 드낙은 거침없이 입을 달싹거렸다.
“〈다섯 마름모 방패(Five Rhombus Shields)〉.”
중대형 몬스터에 대한 공격을 단 한 번 정도는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고안된 강력한 방어 마법이 드낙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쿠구구구구!!!!
전력을 다해 사용한 주술이 단번에 막히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흙송곳 짜라〉는 다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의 입, 코, 귀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무리하고 있다는 것이 절로 보였다.
이미 거인의 토사물만 해도 주력을 대부분 사용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생명력을 소모해야 했다. 요양하는데 1년은 걸릴 것이지만 거침없이 주력을 뽑아올렸다.
검게 죽은 피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계속 주력을 지팡이에 집중시켰다.
“끄으으으으읍!!!!”
덜덜덜!
짜라의 몸이 사시나무 떨 듯이 떨려왔다. 자신의 한계 이상의 힘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녹색빛은 나뭇잎이 되었고 그대로 우흘라의 아랫배에 단단히 모여들어갔다.
“아···”
우흘라가 편안함을 느꼈다. 떨어지면서 꼬인 내장이 알아서 자리를 잡고, 잘린 피부가 순식간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또한 발에 걷어차여서 갈비뼈가 한 대 부서진 빠오풀의 옆구리에도 나뭇잎이 몰려들었다.
“커억!”
짜오가 이내 피를 한 번 게워냈다. 그리고는 콜록거리며 소리쳤다.
“이, 개새끼들아! 똑바로 안 싸워?! 정말로 죽고 싶은 거냐!!”
“크크크!”
우흘라가 짜라의 분투에 웃음소리를 냈다. 그가 다시 일어섰다. 거칠게 쏟아지던 거인의 토사물도 그 사이에 효력을 다했다. 모습이 드러난 드낙은 산 채로 고블린 전사 하나의 목을 왼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3마리의 〈고블린 캡틴〉의 표정이 굳어졌다. 드낙은 거침없이 고블린 전사의 목을 졸라 죽이고 그 시체를 땅에 버렸다.
“개새끼가!!!!”
우흘라가 한 합만에 내장을 줄줄이 쏟아냈음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달려들었다. 자존심이 실로 대단했다.
드낙이 순식간에 내달렸는데, 그의 검이 하단으로 내려놔져 있었다. 거기에 우흘라의 간합에 들어갔음에도 검을 놀리지 않았다.
‘병신 같은 인간 놈!!!’
그가 승기를 확신하며 도끼를 휘둘렀다. 전처럼 횡으로 휘두르지 않고, 이번에는 대각선으로 내려쳤다. 내려치기 또한 드낙의 왼편으로 하며 드낙의 검을 의식했다.
〈파우스트 리바운드(주먹 반동, Faust Rebound)〉.
드낙의 주먹이 그대로 자신의 롱소드를 후려치며 로켓처럼 찔러들어갔다. 또한 주먹을 후려친 손이 롱소드를 치면서 반동을 받아 올라갔는데, 그것으로 휘둘러진 도끼의 날을 붙잡고 그 힘에 편승하며 따라 움직이면서 적당히 힘을 주어 그 속도를 줄이더니 아예 지나가버렸다.
“···!”
양손 도끼의 손잡이로 드낙을 공격한다고 한 들 무슨 피해를 줄 수 있을까. 전신갑주에 소리 하나 내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찔러들어간 드낙의 롱소드는 정확하게 갈비뼈 사이를 지나 심장을 관통했다.
단번에 손잡이를 꺾자 틈이 쩍 늘어나면서 피가 콸콸콸 쏟아져 나왔다. 고통에 전신에 힘이 들어가서 경직된 우흘라의 가슴을 발로 걷어차면서 롱소드를 회수했다. 동시에 몸을 뒤로 한 걸음 빼내었다.
체감 시간이 줄어든 드낙의 옆을 친 〈몰이머리 빠오풀〉의 창이 간발의 차이로 드낙의 투구를 긁으며 지나갔다.
빠오풀은 보이지도 않았지만 드낙의 시선을 느끼고 섬뜩함을 느꼈다. 하지만 다행이라면 멧돼지가 드낙의 무릎에 들이박으려고 했다는 점이었다.
멧돼지의 체중을 의식한 드낙은 멧돼지의 목을 롱소드로 그대로 내려치면서 한 걸음 더 물러났다.
“꾸이이익!”
멧돼지가 핏물을 쏟아내며 그대로 땅에 주르륵 미끄러졌다. 섬뜩함을 느낀 빠오풀의 눈이 우흘라에게 향했다. 가슴에서 피를 쏟아내던 우흘라의 큰 몸이 그대로 뒤로 고꾸라져서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전신이 움찔, 움찔거릴 뿐이었다.
‘도망쳐야 한다!’
빠오풀이 몸을 돌렸지만 그대로 우뚝 멈추었다. 등을 돌리자마자 드낙이 투척한 투척 단검이 정확하게 목과 두개골 사이의 옴폭 들어간 곳에 틀어박혔기 때문이다. 즉사였다.
‘고블린 주술사.’
느리게 쓰러지는 광경을 보며 드낙의 눈이 왼쪽으로 움직였다. 고블린 전사 네 마리가 팔다리를 잡고 허둥지둥 기절한 〈흙송곳 짜라〉를 운반하고 있었다.
10초 남짓 한 시간 동안 대량의 흙을 쏘아보내는 주술과 중상을 입은 고블린을 단번에 치료한 여파로 모든 주력을 탕진한 짜라는 피부가 바싹 말라있었고, 운반되면서 흔들거리는 머리카락이 숭텅 숭텅 뽑혀져서 흘러내렸다.
주력(呪力)의 소비로 따지면 폭발성을 띈 파이어볼을 세 번이나 쓴 격이었다. 당연히 생명력에도 타격이 올 수밖에 없었다.
“〈호랑이 질주(Tiger Scamper)〉.”
드낙의 몸이 튕겨지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번에 몸으로 도망치는 고블린 네 마리와 짜라를 덮쳤다. 그야말로 박살이 나서는 나뒹굴었다.
“히극! 헉헉헉!”
고블린 전사는 깜짝 놀라서는 공포에 물들어서 숨을 헐떡거리며 도망쳤다. 기절한 짜라의 목을 취하지는 않았다. 생포해서 내일 죽일 생각을 가졌다.
그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어갔다. 혁대에 걸린 밧줄로 도망을 못 치게 사지를 묶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 전황을 살폈다.
고블린 전사들은 이미 와해가 되어서 사방팔방 도망치고 있었고, 병사들과 순찰자들은 그들을 쫓으면서 닥치는 대로 베고 찌르며 쫓기 바빴다.
드낙도 그 행렬에 참가했다.
전투로 죽인 고블린 전사의 숫자는 200마리를 넘기지 못했지만 도망치는 고블린 전사를 죽인 숫자는 800마리가 넘었다. 고작 200마리의 고블린 전사만 도망칠 수 있었다.
“끄악!”
물론 칼침을 맞고도 살아있는데 죽은 척을 하는 고블린 전사의 숫자도 많았다. 확인 사살을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시체가 평지와 숲에 가득했다.
“고블린 시체를 따로 한곳에 나열해라! 숲에 있는 고블린 시체를 가져오도록 하라!”
이실레아는 확인 사살이 끝나자 시체를 정리하고, 숲에 있는 시체를 수거하도록 명령했다. 전투다운 전투를 하지 않았기에 병사들의 체력은 아직 팔팔했다. 명령을 한 이실레아는 가슴이 크게 뛰는 것을 느꼈다.
‘이야기로만 전해져오던 비전.’
뒤에서 지켜보았기에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특히나 기사였기에 알 수 있었다. 이야기를 실제로 본다고 누구나 그것을 알아차릴 수는 없는 법이었다. 특히나 〈비전〉은 워낙 찰나의 순간에 사용되는 것이었기에 병사들과 부대장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오직 검을 지독하게 수련하고, 비전에 대한 개념이 단단히 잡혀있는 그녀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뱀처럼 휘어지는 강철.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전신을 타고 흐르는 전율을 느낄 수 있었고, 팔뚝에 소름이 계속해서 연달아 피어오르고 줄어들고를 반복했다.
‘불파겐 가문의 후예.’
드낙이 왜 전투술 빼고 다른 귀족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지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불파겐 가문 정도로 제대로 멸문을 당하고 10년 내내 추적을 당한 가문이라면 그럴 수 있었다.
전투에 관련된 것만 전수하는 데에도 시간이 다하였을 것이다.
‘미쳤다. 내가 불파겐 가문의 후예와 한 배를 타다니?’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짜릿함 그녀의 감정을 더욱 격하게 만들었다. 왕족들에게나 귀신의 가문이었지 귀족에게 있어서는 현재 가장 보고 싶은 가문이 불파겐 가문이었다.
========== 작품 후기 ==========
5715자
평추코 감사합니다.
항상 다양한 의견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