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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03화 (202/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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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제라스가 고개를 숙였다. 그의 표정은 그림자에 드리워졌다. 〈억지로〉 게제라스는 생각을 하며 표정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표정 연기를 실감나게 하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관련된 생각을 강하게 해야했다.

‘그릇이 어찌도 이렇게 작을 수가 있을까? 귀족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는군.’

‘편협해도 저렇게 편협할 수가 있나? 누가 보면 버러지를 데려다 전신갑주에 넣은 것으로 보겠구나.’

‘질투심에 눈이 멀었구나. 하지만 뭐라도 정도가 있어야지. 어찌 이리 속이 좁을꼬?’

드낙이 이실레아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능했지만, 그럼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촌구석의 범인(凡人)마냥 구는 것이 게제라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실망감 속에서도 드낙을 따르는 이유는 그렇게 하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너무 깨끗한 우물에는 잡어든 벌레든 살지 못하는 법이었다.

이미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은 왕족이나 명문가에서나 명성을 드높이 올리는 법이었고, 위업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반면 기반이 없는 자들을 규합시키기 위해서는 차라리 부족한 면이 많은 군주가 필요했다.

물론 그저 부족하기만 했다면 게제라스가 드낙의 곁에 머물 리가 없었다.

'이실레아의 용병술은 현 시점에 가장 필요하다. 군권을 드낙 님이 가져가면 결코 안 된다.'

“드낙 님께서 이실레아 경을 질투하는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지 않습니까?”

드낙이 그 말에 펄쩍 뛰었다.

“질투라니?! 내가 왜 질투를 한단 말인가?”

그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예 각오를 다진 게제라스가 말을 이어나갔다.

“질투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그녀가 직언을 올림에 있어서 직무를 유기한 것도 아니고, 당연히 지금까지 군(軍)을 지휘하는데 계속 드낙 님께서는 그녀를 중용(重用) 하였습니다. 그 임용이 거짓입니까?”

“··· 일관성이 없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재능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드낙은 말끔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동시에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도 거침없이 말하였다. 그 솔직함은 게제라스가 드낙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야기의 진행을 빠르게 하기 때문이고 서로 간의 관계에도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을 총관으로 임명하면서부터 한 배를 탔고, 드낙은 한 배를 탄 사람 중에서도 게제라스에게는 솔직한 생각을 말했는데, 공부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좋은 답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자신을 크게 쳐주는 드낙을 게제라스가 싫어할 수가 없었다.

“너무 그녀를 높게 쳐주고 계십니다. 물론 현재 무인 중에서 걱정 없이 병사들을 맡길 사람은 이실레아 경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낙 님까지 그녀를 어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더 대범해지십시오.”

게제라스가 더 강조하였다.

“대범해져야지만 호랑이마저 자신의 곁에 둘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답답함을 느낀 호랑이는 다른 숲으로, 산으로 옮겨갈 것입니다.”

독하디 독한 직언에 드낙이 어질함을 느꼈다. 대놓고 저렇게 나오니 딱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는데, 게제라스의 팩트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계속 밑에 두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드낙이었다. 그래서 게제라스에게 조언을 구한 것이다.

“드낙 님. 몰락의 길을 걸으셨기에 누구보다도 물욕이 강하시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이 사람이···”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드낙이 입을 다물었다.

“세상 사는 일에 있어서 화폐도 중요하고, 땅도 중요하고 공적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것으로 결코 사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더 위로 올라가고 싶으시다면 현물로 살 수 없는 것을 손에 쥐려고 노력하십시오.”

“······”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제라스를 말없이 드낙이 올려서 손을 맞잡았다. 가슴을 후벼파는 것이었지만 사실 이러한 조언을 주는 이가 곁에 있어야 성장하는 법이었다. 이 세계는 그러지 않으면 백날 노력해봐도 마탑도 세우지 못할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말을 너무 직접적으로 쏘아붙이는 것 아닌가? 병권을 내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실레아 경에게 병권을 줄만큼 신뢰를 주었으니, 끝까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딴마음을 먹을 사람이 아닙니다. 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사람이 바뀌겠습니까? 더 넓게 보십시오. 까짓것 황금마저도 거침없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게제라스 총관이라도 금을 포기하겠는가?”

“글쎄요. 금덩이를 버리고 사람을 택한 적은 없습니다. 하하하. 한 번도 행동으로 보인 적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나한테는···”

드낙이 그렇게 말하면서 빙긋 웃었다. 뭔가 속이 뚫린 기분이었다.

‘그의 말이 맞다. 한 번 밀어줬으면 끝까지 밀어주고, 한 번 믿었으면 끝까지 믿어줘야지.’

배신을 할 성정이 아닌 이실레아였다.

“꼴사나운 건 나였던 건가.”

자조적인 말에 게제라스가 서둘러 그를 위로하였다.

“결코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실레아 경이 드낙 님의 밑으로 들어왔겠습니까? 잡아먹을 생각을 하고, 대접도 제대로 안 해줬을 겁니다. 그리고 사실 이실레아 경의 행실이 막되먹은 면도 좀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게제라스가 더욱 입을 놀렸다.

“또한 이실레아 경이 뜬금없이 직언을 하며 강하게 나온 이유는 드낙 님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저를 만나서 이야기하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전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우직하게 도울 건 돕고, 얻을 건 얻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정도(正道)의 길을 걷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푸른 이리〉의 성품이 걸립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이며 게제라스의 말을 경청했다. 확실히 그러한 이유도 바탕에 깔려있었다면 그렇게 톡 쏘아붙일만했다. 그녀로서는 꺼림칙한 일을 벌일 것 같은 것이 게제라스 총관의 머리였다.

“무엇보다도 이실레아 경은 기반이 거의 없습니다. 방어구조차도 드낙 님께서 내어준 것을 쓰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조급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이실레아 경입니다.”

“이대로 잘만 대우해준다면 그대로 눌러앉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은혜를 베풀면 베풀수록 배로 갚는 것이 〈브릴리언트 가문〉입니다. 결코 드낙 님께서 불안을 느낄 일이 아닙니다.”

게제라스가 그 말을 하고 그대로 웃으면서 마무리했다.

“이실레아 경이 드낙 님의 마음을 얻고 싶어서 무리했다고도 말할 수 있죠.”

“응? 뭐라고?”

“말 그대로의 뜻입니다. 사실 두 사람만큼 어울리는 한 쌍이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제가 중매를 해드릴까요?”

“그런 소리 하지 말게.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그래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생각은 무슨 생각! 돌아가게.”

게제라스가 웃으면서 돌아갔다. 드낙은 괜히 볼을 긁으면서 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내 굳은 표정을 지었다.

‘더 대범하게. 더 넓게.’

어려운 주문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가 없었다. 앞으로 관리할 마을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에 마땅한 그릇이라도 갖춰야 했다.

동이 트기 전에 드낙이 간부들을 이끌고 〈푸른 이리 케샤스〉에게로 향했다. 그는 밤을 새웠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겠지.’

게제라스의 반협박을 받았고, 드낙 무리가 생각하는 길을 조금 보여주었다. 머리가 좋은 케샤스는 저울질을 하기 바빴을 것이다.

“고블린 토벌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당연한 소리부터 입에 올렸다. 하지만 분위기 자체는 더욱 좋아졌다. 적어도 거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실레아는 아예 대놓고 미소를 지었는데, 테이블에 앉지 못한 순찰자들이 절로 그녀의 미소에 눈이 꽂혔다.

케샤스가 일단 전투에 합류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기세가 부드러워져 있는 이실레아는 남자들의 눈길을 받기에 좋았다.

“게제라스 총관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자연히 주변이 조용해졌다. 숨 쉬는 소리조차 안 들렸는데, 빠르게 케샤스가 대답했다.

“조금 더 시일을 주십시오.”

드낙이 맥이 탁 풀렸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는데, 애초에 게제라스가 고블린 토벌 이후에 케샤스가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당장은 순찰자 40명이 전투에 참가하는 것이 의미가 있었다.

“이번 전투는 나와 둥근 언덕 마을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과 고블린의 싸움이다.”

“맞는 말입니다. 허면 당초의 예상대로 지금 당장 숲으로 향하실 생각이십니까?”

케샤스의 말에 드낙의 눈이 이실레아에게로 향했다. 신뢰로 가득한 드낙의 눈길에 그녀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니요. 그들 중 하나의 고블린 캡틴을 처리한다면 연합은 붕괴할 것이고, 다시 넓은 숲으로 도망칠 것입니다. 저희들에게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실레아가 주먹을 쑥 내밀어서 테이블에 올리며 말했다.

“회전(會戰)을 걸어 단번에 박살을 내야 합니다.”

게제라스 총관이 물음을 던졌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이실레아는 아예 일어나서 말하였다.

“하나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가을에 토벌전과 소탕전을 섞어서 하기에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때문에 단기전을 노리는 것이 옳습니다. 겨울이 되면 어차피 고블린들도 흐지부지 물러날 겁니다. 어찌 보면 지금이 적기입니다.”

겨울 전에 고블린의 숫자를 크게 감소시킨다면 내년에 살아남은 고블린이 있다고 하더라도 더욱 그 숫자가 줄어져 있을 것이다. 당연히 다시 세력을 불리는 것에 어려움이 컸다.

“둘은 저희의 형편입니다. 〈토치라이트 가문〉에게서 받은 토지로 향해야 하는데 예상보다 더 늦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기전을 노려야 합니다. 겨울이 되어서 정착하는 것보다는 가을에 도착해서 정착하는 것이 당연히 좋기 때문입니다.”

명백하게 〈우리〉의 울타리가 정해져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케샤스는 아무런 대꾸도 안 했고, 반대도 하지 않았다. 〈전신갑주〉를 입은 기사가 이번 고블린과의 전투에 투입되는 것만으로도 큰 이득이었다.

“셋은 병사들의 수준 때문입니다. 외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케샤스 순찰자가 있음에도 그냥 진실로 말하겠습니다. 훈련받은 세월이 1년도 안 되는 병사들로는 숲에서의 전투는 제가 허락할 수 없습니다.”

흥분한 기색마저 보였기에 게제라스가 괜히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드낙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맞습니다. 이실레아 경이 안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실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고블린 캡틴〉을 모조리 죽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숲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도 만만찮을 것이고 포위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한자리에 모였을 때, 죽이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이실레아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따로 말하지 않았는데도 완벽한 답변이었다. 마치 답지를 보고 말하는 것 같았다. 드낙이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의견이 있습니까?”

“도움을 받는데, 제가 무슨 의견이 있겠습니까? 받아들이겠습니다.”

어차피 정면은 드낙의 세력이 맡아야 했다. 그것에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케샤스가 대답했다. 하지만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숲에서 싸운다면 순찰자의 역량이 커지는 것이 당연했는데 그 지형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케샤스의 모습에 군사학에 막 입문한 드낙마저도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생각하는 것이 아무리 여우 같다고 해도 군략 앞에서는 허무하리만치 코가 베여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명예욕이 귀족보다 강한 것이 자유기사다. 그걸 모르는군.’

어떻게든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

숲에서의 싸움을 자신들의 병사가 지닌 단점을 말하면서도 밖에서 싸워야 하는 이유. 그것을 케샤스는 전혀 몰랐다.

전투에서 누가 주인공이 되느냐에 따라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지는지 체감이 적었다. 그저 〈신성한 의무〉라 말하며 제대로 된 논공행상을 하나 겪어보지 못한 것이 순찰자들이기 때문이다.

회전이 무리없이 결정되었다. 순찰자들은 그림자 속에 숨었고, 전투를 준비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빠르게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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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추코 감사합니다. 항상 의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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