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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02화 (20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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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이 지펴졌다. 체격이 떡 벌어지고, 배가 두둑하게 올라온 〈오크 주술사〉가 그곳에 앉아서는 조용히 불을 보다가 이내 손에 재를 만져서 손뼉을 쳤다.

짝!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났고, 이내 사라져갔다. 그 맞은편에는 〈형 도네투스〉와 〈동생 아만투스〉가 있었다.

그들은 몸 곳곳에 상처가 있었지만 약초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나뭇잎으로 잘 감싸고 있었다. 큰 전투를 벌인 듯했다.

특히 〈형 도네투스〉의 팔에 있는 히드라의 문신은 이제 목과 가슴을 지나 아랫배까지 이어져 있었고, 크기도 커져있었다.

마치 그 자신을 잡아먹는 것처럼 보였다.

점을 친 오크 주술사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 모습에 도네투스가 손을 까딱거리며 재촉하였다.

“뭘 그렇게 뜸을 들이시오? 빨리 말씀하시오.”

“오크 전사. 내 점괘를 들으려 하지 말게. 그저 여기서 10일 동안 상처를 돌보고 그대로 다시 인간 세상으로 가게. 다시는 백설산맥으로 돌아오지 마!”

그 말에 〈동생 아만투스〉가 귀신처럼 웃음을 흘렸다.

“동족의 손에 죽는 것보다는 인간의 손에 죽어 목이 효수되어 놀림감이 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 말에 〈형 도네투스〉가 팔뚝으로 동생의 옆구리를 찔렀다.

“켁.”

“말이 지나치다.”

하지만 그 말에 오히려 오크 주술사가 손사래를 쳤다.

“오크의 미래를 위해서지, 자네들의 죽음에 대해서 말한 것이 아니네.”

“그렇다면 더더욱 말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오크 주술사는 우물쭈물거리다가 이내 육포 하나를 집어넣었다. 시간이 다시금 흘러갔다.

“자네들의 원한.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겠지. 누가 그대들을 막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네.”

“주술사.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들의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서 이긴 하지만 이유도 모른 채 그쪽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는 없소. 말해주시오.”

“······ 그렇다면 한 가지만 약속해주게.”

“뭡니까?”

이에 주술사가 입을 열었다.

“〈울가렌의 가을〉이라고 알고 있는가?”

“알다마다요. 대전사가 되고 나서 〈오크의 가을〉을 가장 최근에 벌였던 대전사 아닙니까? 말도 많고 탈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오크의 피해가 컸죠.”

동생 아만투스가 거침없이 대답했다. 오크의 가을은 오크들의 꿈이기도 했고, 야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성공시킨 오크가 하나 없었다.

“일이 잘 풀리더라도 〈오크의 가을〉을 할 생각이 없다고 말해주게. 그리한다면 내가 본 점괘를 말해주겠네.”

그 말에 〈형 도네투스〉가 크게 웃음을 꽝꽝 터트렸다. 오크 주술사의 안색이 나빠졌다.

“어디서 얕은수를 쓰느냐? 너 또한 다른 오크들과 같다. 그놈의 전통. 그저 악습에 불과한 것. 세치 혀로 개지랄을 떠는구나.”

오크 주술사의 입이 벌어졌지만 그러기도 전에 〈형 도네투스〉의 오른팔이 움직였다.

단번에 단단하기 그지없고 두꺼운 오크 주술사의 목이 그대로 도끼에 잘려나가 땅으로 떨어졌고,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인간보다 족히 3배는 굵은 것이 오크의 목이었다.

안내를 마치고 게제라스 총관이 드낙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를 나눈다고 조금 늦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하나? 한참을 기다렸다.”

드낙은 2시간이나 오지 않은 게제라스 때문에 간단한 식사를 하고 술을 한 병 비워놓았다. 그 모습을 본 게제라스는 별 표정 변화 없이 자리에 착석했다.

“딱 봐도 여우 같지 않았습니까? 얕은 수만 굴릴 줄 알았는데, 이야기하는 맛이 났습니다.”

“그것은 다행이네.”

게제라스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코로만 길게 숨을 내뱉으면서 생각을 조금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드낙은 조용히 그것을 기다렸다.

눈을 뜬 게제라스는 가장 먼저 〈푸른 이리 케샤스〉에 대한 인물평을 내렸다. 혹평이었다.

“케샤스라는 순찰자의 대장은 미심쩍고 의심스러운 놈입니다. 함께 대업은커녕 소업을 이루기에도 문제가 될 공산이 큰 놈입니다.”

“그럼 내쳐야 한다는 것인가?”

드낙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에 게제라스가 고개를 저었다. 기반이 잡혀있었다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자의 손이라도 빌려야 했다.

“상황이 그렇지 않지요. 앞으로는 〈숲 고블린〉이 있고, 뒤로는 순찰자가 있는 형세나 다름없습니다. 여기서 〈뒤〉를 버린다는 것은 선택하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적으로 봐야 하는 것 같은데.”

여우상을 한 케샤스는 진실로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자였다. 첫인상부터가 그랬기에 의심이 더욱 들었다. 드낙은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인물만 두고 봐서는 안 됩니다. 제 생각에 그는 언저리에 두거나 멀리 내치기에는 아까운 자입니다.”

본론의 시작이었다. 드낙이 이번에도 리액션을 취해주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참으로 궁금한데···”

“인물이 아니라 〈둥근 언덕 마을〉이 가지는 이득을 생각했습니다.”

드낙이 단번에 답을 말했다.

“순찰자 전력을 말하는 것이로군.”

“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게 더 있었나?”

그 말에 게제라스가 가볍게 웃으며 조금 자세하게 내용을 풀었다. 드낙을 배려하는 것이었다.

“저희들이 정착해야 할 〈버려진 영지〉는 북동쪽의 끝에 있는 토지입니다. 사실 〈접근성〉과 〈발전 속도〉를 생각한다면 〈바세안 토성〉에 정착하는 게 옳습니다. 그러나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버려진 영지〉의 토지는 갈기갈기 찢겨서 수많은 귀족들에게 쥐어져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첫 기반이 될 곳을 바세안 토성으로는 할 수 없지. 전에도 말하지 않았나.”

당연한 말이었다. 왕족들이 잘 나가는 귀족들에게 세금을 먹이기 위해서 이용하고 있는 곳이 〈버려진 영지〉였다. 그것을 이용해서 드낙은 자신의 신분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토치라이트 가문〉에 토지를 받을 수 있었다.

“예. 나중에 내 땅이라고 귀족의 사절이라도 도착하면 골치가 아파집니다. 그렇기에 〈토치라이트 가문〉에게서 받은 토지로, 오지로 향하는 것입니다.”

가장 첫 거점은 무조건 그렇게 해야 했다. 신경도 안 쓸 것들이었기에 다른 토지에 마을을 둬도 상관없었지만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게제라스는 말을 이어나갔다.

“또한 저희가 기반을 잡을 곳에는 산이 있기는 하지만 숲은 드물고 그 규모도 작습니다. 자연히 〈둥근 언덕 마을〉의 임업(林業)에 기대를 많이 해야 합니다.”

드낙이 귀를 쫑긋했다. 임업은 원료를 공급하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장작만 해도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었다. 여름에도 바람이 잘 부는 남부 왕국의 겨울은 칼바람이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있을 정도로 매서웠다.

“저희는 자처해서 오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거래를 틀 마을이 필요합니다. 〈바세안 토성〉의 경우에는 운이 좋아서 노예로 삼았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최상은 인구를 닥치는 대로 끌어모으는 것이었다. 〈바세인 토성〉의 경우가 그러했다. 실제로 목줄은 채우지 않았지만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순찰자 전력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임업 그리고 사냥술은 원료와 식량을 공급 가능하였기에 놔두고 협력하는 것이 좋았다.

“귀찮은 전투력을 가졌으니.”

숲으로 숨어들어가서 활만 쏴도 항복을 해야 했다. 드낙이 그들을 못 죽일 리가 없었지만 그들을 잡는데 시간이 크게 걸릴 터였다.

“또한 굳이 노예로 삼을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그대로 두고 거래만 해도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그냥 이대로 둬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네. 사실 이대로 그냥 빠져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연합을 이룬 고블린들이 〈둥근 언덕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

드낙이 납득했다. 결국 이러나저러나 그쪽에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소리로 들려왔다.

“결국에는 고블린을 잡아야 한다는 소리 같은데.”

“하지만 그냥 은혜를 베풀어주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지요. 가장 좋은 방법은 방심하지 않고 거래만 하는 것입니다.”

그 말에 드낙은 속지 않았다.

“다른 생각이 있지 않은가.”

“물론 있기야 있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방법이고, 정치적으로 조금 들어가는 것입니다.”

방법이 구리다는 소리였다.

그 말에 드낙은 이실레아가 떠올랐다. 하지만 굳이 그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는데, 일단은 게제라스의 말을 가감 없이 모두 듣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의견을 말해 봐.”

“품어야 할 여우. 내쳐야 할 여우. 가만히 둬야 할 여우가 있다면 그런 여우를 어떻게 선택하겠습니까?”

드낙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책이랍시고 1억으로 3억 벌기 같은 자기발전서만 읽었던 박호훈이었다. 드낙이 되어서도 책이라고는 기본 군사학책을 읽고 있었다.

대답이 없자 게제라스는 서둘러 말을 이어나갔다.

“시련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 선택에 따라서 그 여우가 어떤 여우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동시에 저희는 명분을 세운 채 큰 이득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드낙이 솔깃해했다. 명분을 세우고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이실레아와 부딪치지 않는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드낙은 자유기사인 이실레아를 생각보다 높게 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거침없는 언사에도 그러려니 한 것이다.

“정확히는?”

“겁을 조금 주었습니다. 동시에 저희가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서 살짝 언급했습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자이기에 능히 적은 정보로도 닿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제가 준 시련입니다.”

“너무 약해 보이는데.”

“전혀 아닙니다. 이제 그는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희가 고블린을 토벌하는 것은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겁을 줬으니 뭐라도 내놓겠지요. 저희가 보통 귀족 무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을 겁니다.”

국경지역에 있어야 할 순찰자 무리가 이런 곳에 있음에도 목을 베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리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그쪽에서는 명예를 줬으니 퉁친 것이라고 나올 수 없었다.

“저희는 그의 판단에 따라서 행동을 달리하면 됩니다.”

“만약 그가 자신의 기반을 그대로 바친다면 크게 그를 반기며 등용(登庸)하면 됩니다. 그 마을은 숲이기에 〈자유기사 이실레아〉에게 장원으로 건네주어 케샤스와 경쟁하도록 하십시오. 반드시 이길 겁니다.”

게제라스는 흉흉한 소리를 냈다. 리더 경쟁에서 이실레아가 승리한다면 케샤스는 그저 순찰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마을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잃기 때문이었다. 완벽하게 〈계승〉을 받은 이실레아의 역량은 단순한 순찰자가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정부터 시작해서 행정 절차까지 단번에 차이가 날 것이다.

품어야 할 여우라도 딴마음 품을 생각을 접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기반을 잃은 푸른 이리는 드낙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음이다.

“만약 그가 적당히 타협하여 자원만 내어준다면 토벌한 고블린의 머릿수대로 악착같이 뜯어내십시오. 마을의 불만을 이겨내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숲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여 그 이용에 따른 값을 매년 매기도록 하십시오.”

철저한 계약 관계였다. 무엇보다도 정면으로 피를 쏟은 것은 드낙의 무리였기에 뭐라고 하지 못할 터였다. 특히나 〈고블린 캡틴〉을 드낙이 모두 잡아낸다면 빼도 박도 못할 것이다.

말이 기사 셋을 저지할 수 있지 그것은 기사를 죽일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드낙은 병력마저 가지고 있었다.

〈여우〉가 전면전을 선택할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만약 그가 명예를 운운하고 거절한다면 피해가 있더라도 순찰자를 모조리 죽여야 합니다. 앞으로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저희의 목에 화살을 들이밀 놈들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게제라스는 추가로 말했다.

“사실 마지막 선택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겁니다. 그도 머리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드낙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단히 좋아했다.

“총관이 생각하기에 케샤스는 무엇을 선택할 것 같나?”

“이야기를 나누어본 그라면 타협을 할 겁니다. 모든 것을 내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내어준다면 다른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래? 일단은 그럼 고블린들을 죽여야겠군.”

죽이고 나서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 했다. 어찌 되었든 이 〈짙은 녹색 숲〉은 자원 가치가 높았다. 어차피 죽여야 할 고블린이었고, 그것을 토벌하면서 숲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드낙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드낙은 모든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하나를 더 물었다.

“실은 이실레아 경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대가 가고 나서 이런 일이 있었소. 어찌 생각하는가 싶어서···”

그가 이실레아의 선을 넘은 행동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일이 잘 풀리면 그녀에게 〈둥근 언덕 마을〉을 장원으로 줘야 한다는 게제라스의 말에 더욱 그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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