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0 <-- 푸른 이리 -->
〈고블린 캡틴〉 중에서도 〈다이어 울프〉를 조련에 성공한 것이 바로 〈짝눈 부반탕〉이었다. 놈은 가진 힘에 비해서 겁이 많아서 고블린 캡틴으로 남아있었지만, 판만 갖춰지면 능히 다른 캡틴을 잡아먹을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정면으로 싸웠을 때의 〈힘〉이었다.
당연히 교활한 숲 고블린의 고블린 캡틴들은 그와 부딪치지 않고 견제를 단단히 하였다.
‘압박을 느끼고 숲 밖으로 간 것이겠지.’
인간을 죽이고 대량의 식량을 얻기 위함도 있었을 것이다.
〈푸른 이리 케샤스〉는 자신의 추측에 살을 붙이며 테이블에 홀로 앉아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때 〈척후조장 벤〉이 다가와서 말했다. 다른 조장 중에서 가장 막내였기 때문이다.
“저, 대장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응? 그래? 몇 명이나 모였지?”
“4개조입니다. 후속으로 도착하는 이들도 계속 오도록 할까요?”
타고난 사냥꾼이기도 한 순찰자들은 고기를 얻거나 약초, 산채 등을 가져오기 때문에 숫자가 많아도 하등 이상하지 않았다. 생산직으로 돌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특히나 이런 곳에서는 사실 부업이 더 중요하기도 했다.
고블린 토벌을 위한 〈척후조〉가 오직 1개조만 돌아가면서 할 정도였다.
총 40명의 순찰자 중 8명이 경장비를 입고 있었고, 나머지는 모조리 숯가루를 묻혀 검게 변질시킨 단단한 가죽 로브를 입고 있었다. 초가을이 되면서 땀을 흘리는 자는 드물었다.
또한 그런 땀조차도 초록색의 뭔가로 피부에 묻혀놓았기에 티가 나지 않았다. 땀을 단번에 흡수하는 특수한 것이었다. 이탓에 숲고블린들은 그들을 〈그린 스킨〉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곧장 〈짙은 녹색 숲〉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결코 평범하게 험지를 지나가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순찰자의 길〉이 존재했는데, 야생동물이 지나가는 길과 비슷하지만 달랐다.
인간의 〈목적성〉으로 만들어진 길이었기 때문이다.
바닥에는 돌을 깔아서 마찰력을 높임과 동시에 비가 내려와도 충분히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순찰자의 길이었다. 1년만 지나도 돌 사이에 풀이 끼기 때문에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자주 걷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드문드문 흙이 보여도 금방 비가 오고 난 뒤에는 숲의 생명력으로 다시 덮어졌다. 오직 알고 있어야만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팍!
대거로 단번에 자라난 나뭇가지를 잘라내고, 방해하는 수풀을 쳐내었다. 이런 작업은 한여름에도 한 번 했는데, 금방 자라나 있었다.
〈순찰자의 길〉을 통해서 숲에서도 빠르게 움직인 순찰자들이 어느 순간 멈추었다. 앞서 나가던 케샤스가 몸을 낮추고, 걸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이어 울프 특유의 털이었다.
‘흠···’
주변을 훑은 케샤스는 거침없이 순찰자의 길을 벗어났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상급의 흔적 지우기다. 굉장히 공을 들였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지.’
크기가 큰 다이어 울프가 만들어낸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지만, 그 덕에 다른 방향에서 경유한 지워진 흔적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비교를 통해서 눈에 확 들어왔다는 것이 정확했다. 아예 다이어 울프의 흔적까지 지웠다면 케샤스라도 놓칠 수준급의 흔적 지우기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때 수풀의 흔적을 지울 때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으로 지웠다는 점이지.’
하나는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고, 다른 것은 흔적을 지웠으니 곧 서로 다른 세력임을 의미했다. 흙을 이리저리 뒤엎으면서 케샤스가 사람의 머리카락이 손가락에서 흙과 함께 흘러내리는 것을 포착했다.
단숨에 머리카락 한올을 손에 잡아 올렸다.
‘고블린 캡틴을 잡은 것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자연히 〈자유 기사〉겠군.’
〈다이어 울프〉의 체중은 정규군조차도 버거워할 무게였고, 덩치였다. 특히나 이런 〈버려진 영지〉에 정규군이 올리도 없었으니 자유기사일 터였다.
‘물론 혼자가 아니겠지.’
〈전신갑주〉를 착용한 기사라면 이런 버려진 곳에 올 리가 없었기 때문에 제외하고, 무리를 이끈 자유기사일 것이다. 즉, 출세길에 실패했지만 무리를 꾸릴 정도로 제법 오랫동안 활동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중견 혹은 늙은 자유기사.’
경험이 많다는 뜻이었고, 특히 흔적을 지웠다는 점은 그를 따르는 자 중에 실력 있는 사냥꾼 혹은 순찰자가 하나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위를 점하는 것이 좋다.’
노련하기 때문에 이쪽의 실력을 한 번 보여주는 것이 상황을 좋게 이끌어가는데 좋았다. 나이가 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실력을 보여준다면 적당히 타협할 생각을 가질 것이다.
한 번 마주하여 그들이 가진 전투력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케샤스의 판단은 정확했다.
“〈숲 진흙〉을 사용한다.”
물이 흐르는 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점토를 베이스로 나무 향이 강한 속껍질. 피부가 올라오지 않는 버섯을 재료로 사용해서 만든 특수한 아이템이었다.
효과는 인체의 체향을 숨기고, 인위적인 물건 냄새를 지우는데 사용된다. 숯가루 또한 그런 면에서 좋고, 색을 어둡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면 〈숲진흙〉은 말 그대로 냄새를 지우는데 특화된 물건이었다.
특히나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다져서 만드는 냄새 지우는 것보다 좋은 점은 강렬하지 않다는 점이었고, 피부가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순식간에 아낌없이 가죽 주머니에서 꺼내어 전신에 발랐다. 수분이 많은 점토였기에 손이 멈추는 일이 없었다. 급할 때 사용하기 좋았다.
“이동한다.”
길에서 벗어나서 바람까지 자신들의 편으로 삼아서 움직였다.
‘운이 좋다면 수색을 도는 놈들을 볼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러지는 못했고, 상대의 순찰을 피해서 〈사냥꾼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숲에서 나오자마자 당연히 드낙의 병사들의 눈에 들어왔다. 무려 40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댕딩덩텅!!!!
소리가 일정하지 않은 저급한 종소리가 미친 듯이 울려대었다. 당연히 초병들은 목책에 아예 엎드려서 종만 거칠게 흔들어대었다.
곳곳에서 소란이 크게 일어났다.
‘대응이 빠르다.’
종소리가 울리고 10초도 안되어서 병사들이 나무 방패를 들고 목책 위로 올라섰으며 기울어진 목책에 있는 장애물이 들썩거렸는데 장애물을 더 배치시키면서 오는 움직임이었다.
반쯤 열린 성문 또한 순식간에 닫히기 시작했다. 나머지 반은 성문이 무너져 있었는데, 그곳에는 장애물로 가득했고, 창 세 자루가 비스듬하게 쑥 솟아났다.
순식간에 전시로 돌입한 것이다.
이실레아 또한 목책 위로 올라갔다. 투구를 쓰고, 그 양옆을 아주 큰 나무 방패를 든 체격이 가장 좋은 병사 두 명이 호위를 했다. 목책에서의 지휘관은 당당해야 하기 때문에 방패만 양손으로 쥔 호위가 붙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누구냐!!!”
여성 지휘관의 모습이었지만 배에 힘을 꽉 줘서 소리를 외치는 이실레아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다. 피나는 발성 연습 덕분에 소리를 크게 지를 때마다 이실레아의 목소리는 조금 갈라졌는데 성대결절에 한 번 크게 걸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래전의 일이라서 평상시나 적당히 외칠 때에는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았다.
숲에서 나온 40명의 순찰자들의 위용은 대단했다. 그것은 그저 그들의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병력수로 보면 적었다. 하지만 순찰자들이 보여주는 명성과 이야기 때문에 병사들의 표정은 잔뜩 굳어있었다.
자신을 구해주고, 마을을 구원한 자유기사를 죽인 오크 전사를 7일을 추격하여 가지고 있는 단 한 발의 화살로 오크 전사의 목을 꿰뚫은 〈울파렌의 사수〉에 대한 이야기는 북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중에 하나였다.
〈푸른 이리 케샤스〉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섰다. 장궁조차도 갑옷처럼 단단한 〈중전투 로브〉를 꿰뚫기 힘들었다. 뚫으려면 못해도 15걸음 내외에서 쏴야 했다. 당연히 15걸음에서 화살을 쏘는 미친 장궁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푸른 이리의 케샤스다!! 이 숲에서 멀지 않은 〈둥근 언덕 마을〉의 리더이기도 하다! 그대들의 지휘관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
케샤스는 당당했다. 남부 왕국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자유기사의 세력이었다. 당연히 저자세로 나올 필요가 없었다.
이실레아의 눈이 좁아졌다. 걸어오면서도 돌처럼 굳어있는 저 로브는 확실히 순찰자의 로브였다. 또한 40명의 순찰자들은 숲지형인 이곳에서 가볍게 볼 수 없었다.
‘드낙 경은 지금 밖에 있는데··· 일단은 받아들여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하지만 그대로 들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총관 게제라스의 의견도 들어봐야 했다.
“기다려라!”
말을 하고 나서 이실레아가 목책을 한 번 순회하며 병사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150걸음에 들어왔을 때, 경고를 하고. 100걸음에 들어왔을 때 마지막 경고를 하라. 50걸음에 들어온다면 활로 응사하지 말고 방패로 단단히 자신들의 몸을 보호해라.”
“예!”
어깨를 단단히 잡아주기도 하며 사기를 돋아준 다음에서야 내려갔다.
게제라스 총관은 당연히 후방에 있었다. 부대장 도렌은 무장한 채 그 옆에 있었는데, 이실레아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도렌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게제라스가 서둘러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떤 자들입니까?”
게제라스는 고블린이냐고 묻지 않았다. 고블린이었으면 이실레아가 자신에게 올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둥근 언덕 마을〉의 순찰자들입니다. 하지만 숫자가 많습니다. 40명이나 됩니다.”
“순찰자들이라는 말씀은···”
“네. 아무래도 도망자들인 듯싶습니다.”
게제라스는 그 말에 동의했다.
“그것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숫자가 40명이라니.”
만만찮은 전력이었다. 날아가는 새 조차도 활로 잡는 것이 순찰자였다. 현 상황에서는 가장 까다로운 적이었다. 물론 패배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고, 단지 피해가 클 것이라는 것이 걱정이었다.
이실레아의 말을 들은 게제라스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오만한 것은 지금 현 상황에서 자신들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무시 못 할 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실레아 경께서는 오만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사실을 따지자면 저렇게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그러니 개의치 마십시오.”
직언(直言)에 이실레아는 불편함을 느꼈다. 게제라스는 입에 단 것을 바르지 않는 자였다.
“자유 기사인 것을 보고도 그렇게 나온 것이 문제지요.”
이실레아의 말에 게제라스가 웃음 지었다.
“〈중전투 로브〉를 착용한 자가 몇입니까?”
“못해도 서른다섯은 넘어 보였습니다.”
게제라스가 목례를 하며 말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은 보이는 행동과는 다르게 매서웠다.
“말이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이실레아가 헛기침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투 로브를 입은 순찰자 35명이면 전신갑주를 입은 기사 3명도 어찌저찌 막을 수 있었다. 물론 죽이는 것은 힘들었지만, 순찰자의 특징으로 저지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들은 남부 왕국 국경선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절대로 그들을 자극하지 마십시오. 늑대들의 후각조차도 이겨내고 떡하니 나타난 놈들입니다. 결코 보통이 아닐 것입니다. 드낙 님이 오실 때까지는 놔둬야 합니다.”
“그럼 응대는 그대가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제가 옆에서 지켜드리겠습니다.”
이실레아의 말에 게제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
그녀는 전형적인 귀족이었다. 몰락했다고 해도 〈계승〉을 받았기에 귀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를 존중하지 않는 순찰자와 부드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차라리 뒷짐지고 드낙을 기다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았다.
성문이 열렸다. 푸른 관복을 입은 게제라스를 본 〈푸른 이리 케샤스〉가 조금 놀랐다.
‘문인이잖아.’
이런 곳에서 보기 힘든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문인이 따라나설 정도의 리더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자연히 그 시선이 이실레아에게로 향했다.
기세로 보아 그녀가 대장인 듯했기 때문이었다.
“반갑습니다. 게제라스 총관이라고 합니다.”
고개를 빳빳이 든 채로 게제라스가 인사를 했다. 케샤스 또한 목례도 하지 않고 인사를 했다.
“푸른 이리 케샤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게제라스는 그를 안내했다. 가장 큰 집으로 향하였다. 순찰자는 오직 셋만 동행했기에 큰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굳이 그런 것으로 다투고 싶지 않은 것이 게제라스였다.
‘병사의 질은 좋다. 하지만 장비는 정규군이라고는 할 수 없군. 하지만 용병이라기에는 대응이 빠르고, 충성심도 보인다.’
그는 빠르게 주변을 훑으며 보이는 정보를 취득하기 바빴다.
========== 작품 후기 ==========
5815자
전편 눈치 관련 서술 삭제했습니다. 드낙이 그냥 무신경하고, 〈눈치〉 대신에 〈몸짓 언어〉로 대체하였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