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99화 (198/1,239)

0199 <-- 푸른 이리 -->

〈푸른 이리 케샤스〉.

서부 국경지대에서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다는 죄로 죽을 곤경에 처했으나, 부하들의 의리 하나로 탈출에 성공. 도망자 신세로 흐르고 흐르다 이곳 〈버려진 영지〉에 자리를 잡은 순찰자였다.

〈타투〉가 여럿인 오크 전사도 암살에 성공한 적이 있고, 저혈압을 달고 사는 탓에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입술이 파리해서 〈푸른 이리〉라고 불리는 자였다.

병약한 이미지가 있었지만 순찰자로서의 역량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 중의 강자였다. 문제는 케샤스는 남부 왕국에 대한 충성보다는 자신의 밑에 사람을 챙기는 것을 좋아했고, 결과적으로 그 덕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여우상을 지닌 얼굴을 하고 있어서 첫인상이 썩 좋지는 않았다.

옅은 주홍빛의 머리카락에 짙은 검은 눈동자를 지닌 그는 훈련장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활시위를 당겼다.

일일천시(一日千矢)는 순찰자의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집중해서 화살을 쏘면서도 케샤스는 단번에 인기척을 느꼈다. 아직도 그는 현역이었다.

“벤. 예정보다 일찍 복귀했군.”

“예. 대장님. 고블린 놈들의 상황이 크게 변했기에 자극하기가 힘들어 그대로 머리를 돌렸습니다.”

“잘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로비로 가지.”

그가 말하는 로비는 당연히 순찰자들의 본거지 1층이었다. 케샤스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카운터에서 일을 보던 중년인이 벌떡 일어났다.

“뭘 그렇게까지 반응해. 내가 죽이기라도 해?”

“패 죽인 놈이 몇 있지요.”

그 말에 케샤스가 작게 웃음 지었다. 여우처럼 휘어진 눈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척후조장 벤〉 그리고 〈푸른 이리 케샤스〉가 한 테이블에 앉고, 나머지는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은 충분히 다른 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블린의 움직임부터.”

“예. 숲의 남서쪽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관측이 어려웠기에 그때 당시에는 그냥 가볍게 여겼었습니다.”

“그래도, 필요한 처치는 했겠지.”

〈푸른 이리 케샤스〉의 말에 〈척후 조장 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 나가면 절대로 가볍게 일을 처리하지 않는 것이 순찰자였다.

“숫자는 8명. 모조리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기에 말 그대로 패잔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도착지 또한 제각각 달랐습니다.”

“최대한 쫓아간 곳의 지점을 기억하고 있겠지?”

“당연합니다.”

벤이 품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단단하게 굳어있는 가죽으로 된 로브의 속에는 화살부터 작은 가죽 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가 바로 사라졌다. 화살의 종류 또한 제각각이었다. 화살촉이 길쭉한 것이 있는가 하면, 화살깃이 몽땅하고 화살의 굵기가 얇은 것도 있었다.

양피지를 꺼냈는데 점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능숙하게 카운터에 있던 사내가 지도를 펼쳐서는 테이블에 놓고 송곳을 딱딱 박기 시작했다.

“고맙다.”

“별말씀을.”

외팔이 사내는 마지막으로 반들반들하게 갈아놓은 돌들을 가죽 주머니에서 한 줌 꺼내어 테이블에 놓고는 뒤로 물러갔다.

케샤스가 벤에게서 양피지를 받아들였다.

“시작점은?”

“〈깊은 바위〉입니다.”

그 말을 듣고 케샤스가 자갈을 쥐면서 다른 손으로 쥐고 있던 양피지를 벤에게 주었다. 한 번 본 것만으로도 고블린을 마지막까지 추적한 곳을 지도에 놓았다. 지도의 척도는 매우 작았다.

지도의 절반이 〈짙은 녹색 숲〉이었다.

“모두 다른 〈고블린 캡틴〉이 있는 곳으로 갔군.”

“도망치는 방향이 너무 정직해서 의심스러웠습니다.”

“목숨이 위험할 때는 정직해질 수밖에 없지. 무엇보다도 고블린의 움직임이 펄떡 뛰고 있다며?”

케샤스의 날카로운 말에 벤이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장님. 남서쪽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 없어? 사냥꾼 마을이 있지.”

그 말에 벤이 이마를 긁으며 말했다.

“···〈사냥꾼 마을〉은 고블린과의 전쟁을 할 놈들이 아닙니다. 또한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고블린 캡틴 여럿의 엉덩이를 떼게 만들 수는 없을뿐더러 그전에 저희에게 연락을 했을 겁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코쟁이 놈들의 반응은 정확히 어느 정도냐?”

“큰 전쟁이라도 벌일 생각을 하는지,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면서 아주 난리가 아닙니다. 〈멧돼지〉놈은 야수까지 사냥하고 있습니다.”

케샤스의 긴 눈썹이 꿈틀거렸다. 인상을 찡그린 그가 턱을 문질렀다. 고블린의 습성은 순찰자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런 적은 순찰자라도 경험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케샤스는 아니었다. 그는 〈푸른 이리〉. 타투가 있는 오크 전사마저도 암살하는 순찰자였다.

“분위기를 뭘 그렇게 잡는지.”

벤의 말에 케샤스가 고개를 저었다.

“분위기를 잡는 게 아니다. 내실을 다지는 거다.”

“내실 말씀이십니까?”

푸른 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휘하의 부하들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기 위해서 야수를 사냥하는 것이다. 크게 무기를 휘두를 날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그것도 같은 고블린끼리에서의 내전이 아니다. 외부의 세력이 밀고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외세의 침입은 항상 분열된 여론을 하나로 만들 수 있었다. 또한 종족이 달랐기에 더욱 그 반응이 즉각적이었고, 케샤스는 명확하게 그것을 꿰뚫어보았다.

“사냥꾼 마을의 장정은 많아도 50명이 안 될 텐데요.”

외팔이 사내가 벤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갓 〈애송이〉를 벗어난 척후조장인 벤의 판단력은 심히 유감스러웠다.

“고블린 캡틴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한 번 짚어보며 내실을 다지고 있다.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가 그렇게 할 지경인데, 그 적이 사냥꾼 마을이겠냐? 당연히 아니지.”

케샤스가 그리 말하며 돌 하나를 집어 손으로 만지며 말했다.

“고블린 놈들은 탐욕스럽고, 열등감이 강해서 항상 허세를 부린다. 고블린 캡틴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푸른 이리가 뜸을 들였다.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눈두덩이를 누르며 잠시 뒤에 입을 열었다.

“···고블린 캡틴 하나의 목이 날아가는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빠르게 반응을 보일 리가 없다.”

“······”

벤이 조용히 숨을 죽이며 케샤스의 말을 기다렸다.

“내 추측으로는, 생각일 뿐이지만 고블린 캡틴 하나가 사냥꾼 마을을 조져버렸을 것이다. 어차피 막을 수 없었겠지. 며칠 전에 〈다이어 울프〉들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않았나?”

“예. 하지만 그 후 사냥꾼 마을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시간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추가적인 재원의 소모를 하지 않았죠.”

케샤스의 명령이었다. 덩치가 큰 다이어 울프를 조련에 성공한 고블린 캡틴은 겁쟁이로 유명했다.

“그 뒤로는?”

“뭐···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다 보니, 없었습니다.”

벤의 말에 케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자신의 명령이었기도 했다. 그때 당시에는 그런 판단이었다.

“놈이 기회를 보다가 사냥꾼 마을을 조지고, 그다음에 어찌 된 영문인지 밖의 세력에서 누가 들이닥쳐서 놈의 멱을 따버렸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된다.”

“고블린 캡틴의 죽음. 새로운 세력의 등장.”

귀를 기울이던 순찰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게 아니라면 지금 숲 고블린들의 반응은 이상할 정도로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대로 가면 전쟁이다. 당연히 우리도 피해를 입는다. 그전에 뭣도 모르고 균형을 깨뜨린 그 외세를 만나야겠지.”

“누가 갑니까?”

벤의 말에 케샤스가 엄지로 자신의 가슴을 딱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이런 중요한 일에 대장이 나서야지. 왜? 널 보낼까 무서웠어?”

“예? 제가 뭐가 무섭다고!”

웃음소리가 로비에 퍼졌다.

“봉화를 피워올려라. 강행군이 되겠지만 하루 뒤에 모인 놈들만 이끌고 바로 간다.”

케샤스가 말을 하며 일어서려 했지만 외팔이 사내가 그것을 막았다.

“왜?”

“작전은 설명해줘야지. 또 혼자서 생각하다가 그 꼴 나려고?”

“아차.”

푸른 이리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따라서 일어서려고 했던 벤도 엉거주춤 한 채 앉았다. 다른 순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산맥〉 같은 험지에서 활동해야 하는 순찰자들은 아무리 악수(惡手)를 두어도 무조건적으로 그 방향으로 향하는 습성이 있었다. 아무리 나쁜 작전이라도 힘을 모으면 그러지 못한 것보다는 좋은 결과가 나기 때문이다.

또한 순간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덕에 제대로 안 알려주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고블린 캡틴들의 힘이 하나로 모일 정도가 되면 우리도 여길 떠나야 한다. 그리되면 끝이지. 〈경계〉에 있었기에 숲과 초원의 이득을 가지고 있지만 초원으로 떠난다면 놈들이 본격적으로 달려들 것이다.”

“어느 쪽이든 여기에 짱박혀있는 게 좋다는 말씀이시군요.”

벤의 추임새에 케샤스가 수긍했다.

“숲고블린 무리를 하나 토벌해도 도망자가 나오게 만든 허접한 놈들이다. 당연히 고블린들의 연합에 쑫대밭이 될 것이고, 그다음 목표는 우리 마을이 되겠지.”

“눈에 가시였으니···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놈들을 방패막이로 써서, 전투에 참여해 승리로 이끈다.”

“협력한다는 말씀이십니까?”

푸른 이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왜? 숲 고블린들을 건든 죄를 왜 우리의 피로 씻겨내야 해? 당연히 아니지. 고블린 연합군이 놈들을 치면 측후방에서 기습을 가해서 큰 피해를 준다. 그럼 적어도 우리 마을은 지켜낼 수 있다.”

“피해도 적겠군요.”

“그렇지.”

다른 방법도 설명했다.

“놈들에게 경고를 해주고, 은혜를 베풀어준다. 〈순찰자의 길〉을 통해서 은폐시켜 도망치게 만든다. 우리 쪽 길을 통해서 살길을 터주는 것이지.”

“헉. 그럼 놈들을 어찌 막습니까? 뭉쳐서 기세가 대단할 텐데. 목표물이 공중으로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벤이 펄쩍 뛰었다.

“들어봐라. 목표물이 사라졌으니, 연합을 유지할 필요가 없지. 주동자를 잡아서 공개처형하고 다시 흩어질 것이다. 난전이 벌어지면 더 좋고. 특히나 연합을 해야 한다고 소리 지르던 고블린 캡틴이 다굴 맞고 죽을지도 모르지.”

“아하···”

하지만 케샤스는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그렇게 할 이유가 없지. 자선사업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자기들이 고블린 캡틴을 건드렸으니, 자기들 피로 씻겨내게 하는 게 가장 좋다.”

“근데 왜 보러 갑니까?”

벤의 말에 케샤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세상 일이라는 건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거든. 그래서 확인하러 가는 거다. 이야기 한 번 나눠보고, 대충 답해주고 빠져나오면 그만이다.”

“다른 몬스터면 어쩝니까?”

“그럼 공멸을 노려야지. 승리했지만 지친 놈에게 화살을 먹여주면 그만이다.”

케샤스가 그제서야 일어났다.

“이게 내 작전이다. 벤! 너는 너희 조를 이끌고 가서 봉화에 불을 붙여라.”

“예!”

서둘러 벤이 움직였다. 마을은 언덕에 지어졌지만 봉화는 없었다. 대신 숲 가까이에 있는 곳 중에서 바위 언덕에 세워진 봉화로 향했다.

봉화는 누구도 지키지 않았고 그저 바위틈에 기름 그릇이 하나 단단히 봉해져 있을 뿐이었다. 또한 기름 그릇 위에는 부싯돌 두 개가 가죽에 감싸져 있었다.

나무만 잘 쌓아놓은 곳에 단번에 불이 붙었다. 연기가 크게 올라갔다.

========== 작품 후기 ==========

5306자

평추코 감사합니다. 의견 고맙습니다.

가열형에 대한 피드백에 대한 답변입니다. 제 실수였는데 마땅히 덮을 것이 없어서 수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에는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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