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97화 (196/1,239)

0197 <-- 사냥꾼 마을 소탕 -->

드낙은 목책 위로 올라서서 고블린이 휩쓴 〈사냥꾼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무너진 건물도 있었고, 문이나 창문이 떨어져 나가있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을의 구색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다이어 울프가 난리를 치기 전에 인간들이 와해되어서 그저 살육을 당했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나 마치 도축을 마치고 끌려가는 것처럼 대로에는 피가 바짝 마른 자국이 흥건했다.

목책의 성문이 함락되었거나 목책이 기울어 고블린들의 난입이 시작되었을 때, 순식간에 무너졌을 것이다.

‘어려울 것 같은데.’

전투가 힘들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집들끼리 붙어있고, 구불구불하고 대로가 그나마 일직선이었지 다른 곳은 높낮이까지 달랐다. 땅을 다지거나 평탄하게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노동력의 한계였다. 물론 임금 또한 문제였다.

‘고블린한테 당한 것을 생각한다면 사교를 믿지는 않았겠군.’

혹은 생존자가 있을지도 몰랐다. 지형의 경계선, 숲과 초원의 사이에서 삶을 꿈꾸었던 민초가 얼마나 질긴지 드낙은 잘 알고 있었다.

이상(理想)도 이론(理論)도 사상(思想)도 제도(制度)도 민족(民族)도 국가(國家)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빵 하나보다 못한 것을 터였다. 그만큼 생존력 하나는 뛰어났다. 보이던 보이지 않던 수많은 빛을 내던 것들이 모두 바스러져도 사람은 살아가는 법이었다.

드낙은 목책에서 내려갔다. 바쁘게 일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드낙은 두런두런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확인하였다.

사실, 이번 소탕전에서 드낙은 대기인원이나 다름없었는데 그가 나선다면 순식간에 일이 끝나버리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소탕전은 나도 배울 것이 많다.’

제3자의 입장에서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이었다. 특히나 드낙은 이실레아를 따라다니기로 했다. 가장 확실하게 통솔을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한 구역마다 소탕을 진행하기 때문에 조금만 뛰어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이스핀과 도렌은 걱정할 필요도 없지.’

드낙의 압도적인 실력으로 바닥까지 내몰리는 대련을 자주 한 두 부대장들이었다. 어디 가서 죽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도렌은 후방에 배속되었다. 게제라스의 아래에 배속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담백하고 유들유들한 도렌이기에 게제라스도 쉽게 받아들였다.

이실레아는 굳이 후방에 따라붙은 드낙에게 다가가서 말을 나누지 않았다.

“앞에 방패병! 오와 열을 맞추지 않으면 적이 달려들었을 때, 빈틈이 크게 생긴다고 말했을 터다!”

“예!”

그녀에게 배정된 노예들은 죽을 상을 지었다. 대로를 벗어나서 계속해서 진형에 대한 지적질을 받고, 때때로 특수장검의 검면으로 머리를 두들겨맞기도 했다. 그리 크게 내려치지는 않았지만 톡하고 건드릴 때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소탕에는 병사 30명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횃불 성채에서 구매한 노예 80여 명이 후방 지원 및 보급을 맡았다.

〈전방〉에는 드낙, 이실레아, 이스핀이 투입되었고.

〈후방〉에는 게제라스, 도렌이 투입되었다.

늑대들은 마을 밖을 순찰하였는데, 도노와 카이야가 함께했다. 살아서 도망친 고블린을 의식했기 때문에 아예 외(外)로 늑대 병력을 돌렸다.

곡식과 고기를 섞어서 사료를 주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드낙이었기에 아직까지 늑대들의 숫자는 15마리 선에 불과했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하면서 방패 그리고 무기가 부족해서 대거를 쥔 병사가 침을 꼴딱 삼켰다. 언제든지 고블린이 나올 수 있었기에 목이 벌써부터 뻐근했다. 워낙 긴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실레아는 그것을 놀라운 눈썰미로 단번에 알아차렸지만 빼내지는 않았다. 누구든지 언젠가는 능숙해지는 법이었다. 그저 만약을 대비해서 체크하는 수준에 그쳤다.

“정지. 나무 창문을 뜯어내라. 문쪽에 방패병 한 병이 향하고. 창병은 두 명이다. 나머지 근접병들은 창문을 주시해라.”

근접병은 다섯 명이었고, 궁수 또한 다섯 명이었다. 근접병 2명이 단번에 멀쩡한 나무 창문을 뜯었다. 햇빛이 어느 정도 안쪽으로 들어갔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다른 어두운 곳이 더욱 어두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궁수로 배정받은 노예들이 활을 당겼다. 그대로 화살이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그중에 하나가 운 좋게 숨어있는 고블린을 맞추었는지 끔찍한 소리가 들리면서 가구가 이리저리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런, 제기랄.’

잔뜩 뭉쳐있었을 때에는 사실 이실레아의 고함소리와 카리스마로 자리를 지켰던 이들이지만 지금 이곳에는 오직 10명뿐이었고, 거기에 근접으로 고블린을 잡아야 하는 것은 고작 5명뿐이었다.

실전을 경험했지만 하루 만에 간덩이가 크게 부풀어 오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진입해.”

작은 말이었지만 겁을 먹었음에도 병사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횃불을 든 이가 2번째에 섰기에 가장 앞에 있는 병사는 사방을 정신병자처럼 격렬하게 훑었다.

“끼엑!”

고블린 암컷이 구석에 숨어있다가 그대로 덤볐다. 무기로 쓸만한 뭔가를 쥐고 있었는데 날렵하고 체구도 작아서 제대로 확인한 병사는 없었다.

“으악! 씨발!”

방패로 놈을 후려치자 그대로 튕겨져 나가 벽에 부딪친 고블린 암컷에게 병사들이 들개처럼 뛰어들어가서는 말 그대로 피떡으로 만들었다. 목을 따는 것보다는 그냥 마구잡이로 무기를 휘둘렀다.

그것을 본 이실레아의 눈이 찌푸러졌다. 훈련한 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의 전투는 그저 방어만 하면 되었지만 이번에는 걸어가면서 진형을 유지해야 했기에 난이도 자체가 달랐다. 조금만 달라져도 적응을 해야 하는 것이 인간이었다. 물론 능숙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내부를 수색한 병사들이 고블린 새끼들의 양팔을 한 손으로 잡아서 나왔는데, 이실레아가 입을 열었다.

“병사. 고블린 새끼는 왜 포획했나.”

“예? 그게··· 반항을 하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은 포획했습니다.”

단칼에 이실레아가 대답했다.

“모든 고블린은 죽인다. 저항하지 않아도 죽여야 한다. 장성하면 어차피 인간의 적이다.”

이실레아가 턱짓했다. 병사들이 서로를 보고는 이내 각자 무기를 뽑아들었다. 대거부터 시작해서 철퇴와 숏소드 등 다양했다.

거칠게 피가 튀었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병사들의 기세가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실레아는 그대로 강행했다.

“다음으로 향한다.”

“······예.”

약자가 약자를 죽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었다. 그것에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눈이 크고 체온이 높고 귀여운 고블린 새끼는 애완용으로도 쓸 정도였지만 크면 괴물 같은 것이 되었다.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기에 병사들도 이실레아의 말을 들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이야기했던 것과는 다르게 말 그대로 〈살육〉을 하는 작업이 반복되듯이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고블린 전사들은 대장을 따라가서 죽음을 맞이했고, 숲으로 도망쳤기 때문이다.

남은 고블린 중에서 조금 자라있는 놈들은 방패조차 지나가지 못한 채 피떡이 되었다. 집을 한 채씩 처리할 때마다 이실레아는 하나씩 교정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병사들의 수준이 높아졌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드낙도 집중해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소탕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쉽게 진행되는 사이에 후방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아니, 아니, 아니!!”

“예?”

도렌이 드물게 반말로 소리쳤다. 게제라스가 철통같이 유지하라고 했던 우측통행을 하지 않고, 무식하게 밀고 들어오는 노예들 때문이었다. 때때로 전투에도 동원되는 이들은 이번에 후방에서 고블린 시체를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고블린 새끼도 마찬가지였다. 가죽이 부드러워서 희소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을 오면서 하나를 똑바로 못합니까! 갈 때는 오른쪽, 올 때는 왼쪽. 큰 길이 하나라서 그렇게 안 하면 골치 아프다니까.”

그 말에 노예들이 히죽 웃었다. 서글서글하게 도렌에게 불평했다.

“아니, 부대장님. 언제 고블린이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왼쪽이고 오른쪽이고 무슨 상관입니까?”

‘왼쪽이나 오른쪽이나 그게 그거지. 별 시답잖은 걸로 갈궈? 어린놈이.’

이미 한 번 사람들이 모인 상황에서 크게 쩔쩔매면서 고개를 숙였던 도렌은 호구 중의 상호구였다. 불만을 거침없이 말했지만 도렌의 성장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너. 부산물에서 손 떼.”

“예?”

“손 떼라고.”

도렌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자연히 게제라스의 입김이 들어간 인위적인 행동이었지만 노예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도렌이 숏소드를 뽑아들자 노예들 세 명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도렌의 표정 또한 좋지 않았기에 어정쩡한 상황이기도 했다. 칼을 뽑은 도렌이 자신들을 벨지 안 벨지를 잘 몰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얼굴과 기세가 날것 같은 이스핀이 뽑았다면 당장 죄송하다고 할 것이고, 애초에 불만을 말하지도 않았겠지만 도렌의 경우에는 달랐다.

그는 나이도 젊었고, 인상도 착해 보였다.

지하철에서 친구를 기다린다면 10분에 1명씩 도를 믿느냐. 요즘 안 좋은 일이 있으시죠? 혹은 주님은 사실 여자였다면서 파마하신 분을 보여주는 사람도 득실거리면서 달려들 상(相)이었다.

이스핀과 함께 임무를 수행할 때는 덮어졌던 것이 이번에 전후방으로 갈라지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부, 부대장님. 왜 이러십니까? 그러다가 사람 베겠습니다.”

“손 떼. 그리고 너희들은 열외다.”

노예 3명이 서로 눈치를 봤다. 먼저 시작한 놈에게 눈총이 쏘아졌는데, 그래도 이놈은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말빨로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앞으로는 왼쪽으로 다니겠습니다. 갈 때는···허억!”

도렌이 숏소드로 쿡하고 찌르자 노예가 뒤로 나자빠졌다.

“다시 한 번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손목을 날려버리겠다.”

“죄, 죄송합니다!”

단번에 손을 능숙하게 비는 노예들이 손을 빌자 도렌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숏소드를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앞으로는 말을 잘 들어야 할 것이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노예들이 서둘러 일어나면서 깍듯하게 대답하면서 시체를 들려고 했지만 도렌이 다시 한 번 말했다.

“또! 옆으로 안 빠져? 너희들은 열외다. 앞장서서 게제라스 총관님에게 간다.”

“아, 아이고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도렌 부대장님! 정말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도렌에게 애걸을 하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여긴 노예들이 싹싹 빌며 도렌의 발을 잡으려고 길려고 했지만 그가 다시 검을 뽑았다. 이미 게제라스에게 상담을 해서 다루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들은 제 발로 게제라스의 앞으로까지 갔다. 후방에 투입된 노예들이 절반 정도 그 일을 알았고, 못 본 노예들도 입소문으로 금방 알게 되었다. 모두 열심히 땀을 흘리는 상태였기에 도렌이 감독할 필요도 없었다.

3명을 본 게제라스는 한숨을 쉬었다. 흙으로 범벅이 된 노예들이 얼마나 도렌에게 빌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애걸하고 구걸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그렇게 빌면 용서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해서 게제라스가 이미 말을 했기에 도렌의 표정은 잔뜩 굳어있었다. 그의 상냥한 마음을 악용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총관이 말하는 대로 되다니.’

누구보다도 병사들과 노예들 그리고 토성민에게도 친절하게 대했던 도렌은 상심이 특히나 컸다.

“토성 노예들 쪽으로 너희들은 편입해라. 고블린 도축하는 일이다.”

그 3명의 이름은 딱히 써지지 않았다. 힘쓰는 남자들은 모두 소탕전 하는 당일에 모조리 동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고블린 전사〉가 아닌 고블린을 잡아죽이는 일은 간단했다.

노예 3명이 죽을 상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게제라스 총관이 빙긋 웃었다.

“저와 한 내기를 기억하십니까?”

“예. 기억합니다. 휴우··· 설마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게제라스가 죽을 상을 짓는 도렌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거침없이 총관이 말을 놓았다. 전부터 놓아도 되었지만 드낙이 부대장들을 아끼기에 놓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서 놓기도 하고 반존대를 하기도 했지만 지금에는 완전히 놓아버렸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저녁 먹고 난 뒤에 찾아오시면 됩니다. 앞으로 공부할 것이 많습니다.”

“예···”

도렌이 대답하며 그대로 물러갔다. 오늘 저녁부터 도렌은 게제라스에게서 내정과 행정에 대한 수업을 받게 되었다.

‘쓸만해.’

게제라스가 도렌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청렴한 마음 때문이었다. 남들에게는 호구지만 공직(公職)에서 일하기에는 딱 좋았다. 믿을만한 놈이 필요한 게제라스이기도 했고, 워낙 빈틈이 많은 도렌은 사실 하라는 대로 하기 때문에 굴리기에도 좋았다.

‘드낙 님도 허락하셨으니.’

========== 작품 후기 ==========

6001자

도렌이 전직했습니다. 문관으로요. 아, 정확히는 게제라스 따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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