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6 <-- 사냥꾼 마을 소탕 -->
‘시작해볼까.’
드낙이 사람도 패 죽일 수 있는 무식하게 두꺼운 책을 테이블에 놓았다. 이곳은 사냥꾼 마을의 입구에 가장 가까이 있는 집이었고, 드낙이 사용하고 있었다.
군사학의 정석이나 다름없는 책은 비스트 나이트가 건네준 것이었다. 자신의 주석이 달려있었고, 몇 년 지나도 상관없으니 감상을 보내달라고 했다.
드낙이 세운 공을 보고 내어준 것이지만 그는 그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포위섬멸진이 최강의 전술이라고 여겼는데.’
포위섬멸진!
현대인이 가진 최강의 전술이었다. 몇천으로 몇만을 뚜까부숴버리는 압도적인 위용을 가진 전술이었다.
소수로 다수를 포위하는 게 말이 되냐라고 소리치기에는 일찍이 다수의 로마군을 상대로 한니발 바르카가 소수로 털어버린 전적이 있었다. 냉병기 시절에 해낸 그 전과는 지금에서도 전설로 말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많은 현대인들이 수틀리면 포위섬멸진을 외쳐대기 일쑤였는데, 한니발을 따라 하다가는 다리가 찢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찾아봤지.’
드낙은 가장 먼저 이 책을 받았을 때, 포위섬멸진부터 찾았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 그 자체였다.
정석에 당당히 써져 있었지만 그곳에 써져있는 포위섬멸진은 하책 중의 하책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포위섬멸진은 가장 사용하기 까다로운 전술이었다. 그저 무식하게 모루로 갈아 넣을 병사를 앞세우고 양익으로 정예를 붙이고 기병전에서 승리한 기병으로 후방을 치면 완성된다!라고 말하기에는 그 과정은 지휘관에게 있어서 난적(難賊)이나 다름없었다.
적의 전방을 막아섬에 있어서 상대가 정예를 들고 나왔는데 이쪽은 잡병이라면 진형이 뭉개지자마자 탈주하는 병사가 넘쳐난다.
정신무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병사는 보통 진형이 무너지거나 주변 아군이 순식간에 죽어나가면 바로 꼬리를 말고 도망친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지휘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실레아처럼 막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지휘관은 생각보다 적기 때문이다. 그녀가 특별한 것이지 다른 이들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병사의 수준은 항상 다르기 때문에 어느 선택을 하더라도 적에 따라서 승패가 난잡하게 변해버린다.
곧 정예를 양익에 두는 것이 악수가 되어버리는 꼴이다. 그게 바로 변수가 넘치는 전쟁터가 만들어내는 흉악함이었다. 날아다니는 영웅조차도 한순간에 잡아먹힌다.
그렇다면, 〈병사의 수준〉이 적보다 무조건 뛰어나다면 포위섬멸진이 가능하느냐? 결코 아니다.
언덕이 많으면 시야가 엉망진창이기에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기 힘들고 고저차 때문에 전체적인 포위가 불가능하다. 적을 올려다보는 곳에 일부러 기어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곳의 물꼬를 이용해서 돌파를 시도할 것이다.
지형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 포위섬멸진이었다.
허면, 평지에서 사용한다면 가능한 전술이냐? 아니다.
적 기병전에서 반드시 승리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못한다면 후방을 치는 속도가 느려지기에 불가능했다. 그리고 후방을 치는 속도가 느려지면 느려질수록 얄팍한 두께를 가진 채 포위를 형성하려는 부대가 되려 잡아먹힌다.
연결고리가 끊어질 위험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기병전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면 사용할 전술이냐? 결코 아니다.
넓게 퍼지기 때문에 기습에 아주 취약하다. 한쪽 날개의 일부분만 끊어내면 포위는 풀어지고 끊어진 곳에서의 소수 병력은 당연히 학살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되면 자연히 후퇴할 수밖에 없음이다.
전투의 판이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기습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싸워야 하는 것이다. 혹은 대처를 확실하게 하던가. 물론 대처를 하는 순간부터 그에 대한 병력이 빠지는 것이기에 하자는 당연히 존재하게 된다.
1. 아군과 적군의 병사에 대한 수준과 숫자.
2. 지형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
3. 기병전에서의 확실하고 빠른 승리.
4. 얄팍한 두께를 지닌 아군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용병술과 지휘력.
5. 기습에 대한 방비. 혹은 기습이 없다는 것이 확실시되어야 함.
이 다섯 가지를 들어서 포위섬멸진은 가장 개 같은 전술이라 여겨지고 있었다. 사용하려면 평지에서 하도록 권장되고 있었다. 물론 회전에 있어서 진형의 기본을 응용하는 것이기에 자주 사용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남부 왕국에서 포위섬멸진에 대한 평가는 정말로 박했다.
드낙은 오랜만에 비스트 나이트의 주석을 살폈다. 그것은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평지가 많은 제국에서 자주 사용하는 전술. 양질의 군대. 숫자적 우위를 확실하게 하는 제국 스타일. 제국군과의 전투에 있어서 반드시 평지를 피해야 하는 이유이고, 평지가 적은 우리나라의 특징상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적 군대와 비교하였을 때, 자신들이 우위에 있을 때 사용하는 전술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또한 제국과의 국경선이 있는 〈북부 지방〉인 메디오 지방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메디오 지방의 형세 자체가 평지가 적기 때문이었다.
또한 지키기보다는 도망쳐서 성에서 버티고, 보급로를 길게 만든 뒤에 국지전 양상으로 가는 것이 남부 왕국 전통의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드워프에 대한 주석도 함께 있었다.
[대포(Cannon)를 사용하는 드워프에게도 사용하면 안 되는 전술이다. 숲이나 언덕에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포위섬멸진을 드워프 전(戰)에서 사용하면 패군지장의 길을 걸어도 할 말이 없음.]
서쪽의 드워프 제국이나 중앙의 인간 제국이 호시탐탐 남부 왕국을 속국으로 만들려 하기에 남부 왕국의 기사들은 대부분 드워프와 제국에 대한 주석을 달기를 좋아했다.
아무튼 군사학 책을 받은 이후로 드낙의 전략전술에 대한 생각은 송두리째 변하고 있었다. 공부하면 한국인이었기에 효율도 남들보다 빨랐다.
‘이번 〈사냥꾼 마을 소탕〉에 있어서 초안이라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내일 있을 원탁회의에서 정석을 모르고 간다면 큰 화를 당할 것이었다.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무너지지 않았어. 하지만 복잡하고, 언제든지 기습을 당할 수 있겠지.’
단단히 방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소탕에 있어서 싸울 수 있는 고블린은 적겠지만 그래도 많을 것이다. 구심점(求心點) 역할을 하는 대장이 죽었기에 〈소탕 작전〉이 될 것이다.
소탕작전의 초안을 철야(徹夜)작업을 통해서 만든 드낙은 눈두덩이를 만지며 잠깐 잠을 잤다가 일어나 새벽 수련을 했다. 피곤함이 남아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나온 이실레아와 스트레칭을 하며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연히 오늘 점심부터 시작될 〈소탕전〉에 대한 전술에 대해서였다.
“저희들은 지휘관이 적어서 소탕전을 오래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특히 부대장들은 경험이 적어서···”
이 세상에서 드낙은 리액션의 귀재라고 불릴 정도였다. 적당히 이실레아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모두가 아는 내용을 살짝 뿌렸다.
“그렇다고 실력이 안 좋으니 장기전을 하자고 하면 반응이 안 좋을 겁니다.”
부하의 마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 실상은 그들의 용병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당연히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그것까지 배려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이실레아가 드낙의 맞장구에 웃음소리를 내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지녀서 사나워 보일 뿐이지, 이실레아의 웃는 모습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얇은 입술이 웃으니까 더 예쁘네.’
“크흠! 요즘 훈련은 잘 되고 있습니까? 전의 체중으로 가는데 힘드시다고 들었는데.”
“가을이니까 살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이걸 근육으로 바꾸는 게 힘들 뿐입니다.”
드낙은 무거운 것을 들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아무래도 그게 더 효율이 좋을 거라고 말했는데, 근육의 크기를 늘리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아주 무거운 걸 들면 들수록 근육이 자극을 크게 받지 않겠습니까?”
“자극? 음··· 한 번 해보긴 해보겠습니다.”
이실레아는 술통 하나를 가져왔다. 조율을 했는지 반쯤 비어있는 것이었다. 무식한 짓이었지만 저게 가장 근육을 키우기에 좋았다. 작은 무게를 100번 드는 것보다는 큰 무게를 10번 드는 게 나았다.
*
〈원탁회의〉가 아침 식사 이후에 열렸다.
〈사냥꾼 마을 소탕〉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실레아가 대략적인 개요를 말하였는데, 그녀만큼 군사작전에 있어서 잘 설명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인인 게제라스는 내정과 행정에만 몰두한 자였기에 이번 일에서는 크게 의견을 말하지 못하기도 했고, 깊이가 없었다.
이스핀과 도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싸울 수 있는 고블린은 대부분 죽였고, 십여 마리만 도망쳤기 때문에 큰 무리가 없는 소탕전이 될 겁니다.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숲 고블린〉은 복잡한 지형에서 싸운 경험이 많고, 그것을 빠르게 전수하기 때문입니다.”
쉽겠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이실레아 경, 의견이 있으면 말해보십시오.”
드낙이 먼저 의견을 구했다. 가장 처음을 준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를 신뢰한다는 뜻이고, 이곳에서 가장 군략에 밝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과 같았다. 우쭐해지기 충분했다. 하지만 이실레아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소탕전은 저희 군에게 있어서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고블린 전사 대부분을 섬멸하였기에 실전을 안전하게 경험하기에 좋습니다. 대부분이 고블린 암컷이나 어린 고블린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책이 높기에 도망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집은 음습하고, 안전해 보여서 숨어있을 겁니다.”
일차원적인 생각은 아니었다. 고립된 사람들 대부분이 선택할 일이었는데, 피난길이 막혔기에 숨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목책을 뛰어내리기에는 직접적으로 뻗쳐오는 고통이 컸다.
그저 자신에게 위험이 다가오지 않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사태가 발생하고 집에 박혀있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생각한다면 고블린들의 선택은 가장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장 답이 없으니 그저 현재 상황을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금만 길게 보면 어떻게든 도망쳐야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과 그런 행동을 직접 하는 사람은 드물다.
고블린은 더했다. 인간보다 탐욕적인 놈들이기 때문이었다.
“제가 생각한 것은 입구를 막아놓은 채 순차적으로 구역을 정하여 방위별로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것입니다.”
드낙이 그것을 받았다.
“그렇게 한다면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예. 하지만 전투노예들의 실전을 여러 일로 나누어 길게 경험하게 하는 것이 더 큰 이득입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특히나 게제라스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투 회의임에도 행정 관련 이득을 생각하고 있었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고블린 시체가 적게 발생하겠지. 그럼 부산물의 관리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시체가 하루 방치되는 것만으로도 상태가 안 좋아진다. 〈고블린 심장〉의 피를 씻겨내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작업 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소탕을 장기적으로 행한다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구역별로 방위를 정하여서 소탕을 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문제가 발생해도 지원군이 빠르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고블린 중에서 누가 음험하게 덫을 놓아도 피해가 크게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빠른 지원이 가능한 것이 몰려가서 〈일정 구역〉을 소탕하는 전략이었다. 특히나 이스핀과 도렌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실레아는 그들에게 하자가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고블린의 음험함을 이야기했기에 자존심도 상하지 않았다.
“활로 먼저 집 내부를 쏘고, 그다음에 근접으로 들어갈 겁니다.”
“집 사이사이마다 거리가 좁은데 괜찮겠습니까?”
드낙의 물음에도 이실레아는 거침없었다.
“오히려 덤비면 더 좋습니다. 활을 든 전우를 도와주면서 막는 방법을 터득할 겁니다.”
“긴장한 상태로 활을 당겨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기는 될테니, 나쁘지는 않습니다.”
“예. 그리고 지금 상황을 가장 이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드낙은 이실레아에게 필요한 부분을 물음으로서 작전을 전파함과 동시에 작전을 완성했다. 곁다리고 왼손 역할에 불과했지만 이 정도로 구색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이스핀과 도렌은 입도 뻥긋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5812자
평추코 감사합니다. 의견 고맙습니다.
이 세상의 드워프는 화약을 사용합니다. 물론 총기는 없습니다. 대포만 사용합니다. 또한 기존의 판타지처럼 부락 단위로 산 하나에 처박혀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