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5 <-- 가을을 맞이하며 -->
“병사 10명은 사지를 말에 묶어 찢어버리고, 그 뒤에 목을 잘라 장대에 걸고, 남은 시체는 야지에 버려질 것이다.”
극형 중에서도 극형이었다.
“으아아아! 이 개새끼야!!!”
몸만 묶여있던 노예가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팔이 단단히 봉해져 있는데 제대로 일어날 리가 없었다. 그대로 넘어졌다. 죽여달라고 생쇼를 하는 짓이었다. 병사들이 창칼을 놀리기도 전에 이실레아가 발로 등을 밟았다.
“무기를 거두어라. 곱게 죽어서는 안 되는 놈들이다.”
“예!”
병사들이 서둘러 무기를 거두어들였다. 쓰러진 놈이 발악했지만 다른 포승 된 병사들도 마찬가지로 아우성을 쳤다.
“저는 그냥 졸았을 뿐입니다!!! 그냥 잠깐 졸았을 뿐입니다!!!”
“전 도박도 안 하고 그냥 구경만 했습니다!! 정말입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순찰 제대로 돌겠습니다! 발에 땀이 나도록 돌겠습니다!”
모두가 자기 변론을 했지만 형 집행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성기사 에이담〉이 그 모습에 눈을 감았다.
‘지독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나설 수가 없었다. 사제들 또한 그것을 알기에 입을 다물고 그저 기도할 뿐이었다.
군법이 가혹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것을 가볍게 생각한 병사의 죄는 결국 죽음이었다. 하지만 에이담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번 일이 결코 그 〈죄〉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돌아갑시다. 적어도 5일 뒤에는 효수된 자들의 머리는 수습할 수 있을 겁니다.”
사제들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드낙이 눈을 돌렸다. 발악하며 끌려가는 자들은 끝도 없이 입을 나불거리며 목숨을 구걸했다.
‘재갈을 물릴 필요가 없다.’
뭐라고 지껄이든지 결국 죄지은 놈들의 손을 들어줄 놈들은 없었다.
‘괘씸한 놈들.’
드낙이 해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모르고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들이었다. 보통 드낙이라면 하지 않을 짓이 이루어졌다. 병사에 한해서는 적어도 이실레아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고블린과의 전투 직후에 경계를 서며 조는 것은 무덤을 파헤쳐서 한 번 더 목을 베어도 벌이 가벼워 보일 정도였다.
‘물론 그것뿐만이 아니다. 내가 너무 물렁하게 대했다.’
노예 기질이 남아있었다고 해야 했다. 정규군으로 스스로 신청해서 병사가 되는 자와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강제로 병사가 되었는데, 정규군처럼 대우를 해줘 봤자 소용이 없었고, 방법이 다른 것이다.
‘너희들의 성질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런 극형을 한 번은 보여줘야 한다.’
10명은 그 희생이다. 어찌 보면 노예로 태어난 죄를 벌하는 것이기도 했다. 에이담이 괜히 지독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노예를 병사로 했다면 당연히 그 하자가 있는 것인데, 죽음의 공포로 그것을 다루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은 일벌백계라 여길 것이다. 또한 그만큼 큰 죄를 저질렀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자신들을 지킬 병사들이 졸고, 도박을 했으니까. 특히나 실제로 범죄가 저질러졌기도 했다.
이실레아가 아니었다면 그 범죄를 막지 못했을 터였다.
“개새끼가 가만히 안 있어?!”
퍽!
병사가 버둥거리면서 묶이지 않으려고 발악을 하다가 그대로 얼굴에 주먹을 맞았다. 이빨이 하나 피와 뒤섞여서 땅에 떨어졌다. 침과 피가 섞여서 길게 주륵하고 흘러내렸다.
“그으으···.”
한 번의 폭행이었지만 더욱 병사들을 부추겼다. 흠씬 두들겨맞은 죄인들은 진이 빠져서 축 늘어졌다.
“흡! 음!”
병사가 거칠게 밧줄을 묶었다. 하지만 축 처진 놈이라 잘 묶여지지도 않았다.
“야. 이놈 발을 좀 고정시켜봐.”
발로 밟아서 고정시키고 묶었다. 속옷 빼고 다 벗겨졌기에 거친 밧줄이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새어 나왔다.
두툼한 팔뚝과 허벅지에 단단히 밧줄이 묶여졌고, 튼실한 말의 허벅지에 연결됐다.
“으···으흐흐흐흑···흐흐흑···”
반항을 하다가 피떡이 된 병사가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그저 졸았을 뿐이었다. 남들이 하는 짓을 했을 뿐이다. 내가 왜 여기에서 이렇게 끔찍하게 죽어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이 개자식들아!!! 너희들도 잠 잘만 잤잖아!! 너희들도 그랬잖으아아아아아아악!!!!!”
말이 거칠게 움직였다.
끔찍한 고함소리가 퍼져나갔다. 병사들 대부분이 고개를 돌렸지만 모두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을 위해서 마련된 공개처형이었다. 재갈조차 물려지지 않았다.
이실레아는 병사 10명이 그렇게 죽어가는 것을 또렷하게 눈에 담았다. 결코 피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견으로 죽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녀의 기억으로 스며들어왔다.
‘무인의 마음(心). 강철보다 단단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검을 잡지도 않았다.’
연녹색의 눈동자에서 독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그 누구보다도 단단한 전사의 눈이었다. 여자였기에 다른 자들보다 〈자격〉에 있어서 엄한 잣대를 마주해야 한 이실레아의 모습은 이상적인 기사의 모습 그 자체였다.
푹!
삽으로 몇 번을 파고, 그곳에 장대가 놓였다. 병사 몇 명이 쥐어서는 그곳에 장대의 끝을 박아 넣고 발로 흙을 끌어와서 덮어 단단하게 밟았다. 그리고 흙을 또 적당히 쌓아놨다.
바람이 잘 불었기 때문에 꼭 흙을 쌓아둬야 했다. 안 그러면 그대로 기울어져서 쓰러질 터였다.
“씨발.”
그렇게 하면서 병사 하나가 욕을 내뱉었다. 죽은 자의 머리카락이 입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퉤퉵.”
머리카락을 뱉어내며 그대로 병사들이 몸을 돌렸다. 효수된 목은 아차 하면 자신들이 될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끔찍한 하루야.’
병사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드낙이 주고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그 대가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체감한 것이기도 했다. 오늘은 노예출신 병사들의 근본이 송두리째 뜯겨져 나간 날이었다.
또한 범죄자에 대한 징벌을 그대로 행하였기에 드낙 무리의 민심도 좋아졌다. 강간범들은 공개적으로 불에 달구어진 것에 볼이 쿡하고 짓눌렸는데 고통스러워하는 꼴을 보며 피딱지가 생긴 입술에서 피가 흘려도 웃는 피해자가 있었다.
물론 그 이야기는 식사시간 때마다 올라와서는 뭔 잘못을 해도 〈사타구니 관리 잘 해라〉라는 말이 유행이 되었다.
특히나 범죄자를 미연에 방지 못한 병사들에 대한 처우 또한 매우 심하였기에 병사들이 받는 것에 대한 질투나 불만도 나오지 않았다. 되려 병사가 되고 싶어 하는 자들도 많았다.
설마 드낙이 그렇게까지 대우를 해준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드낙은 자신도 모르게 잡으면 잡히는 〈금줄〉이 되어있었다.
*
도렌이 목청을 높였다.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이 부끄러운 듯했다.
“일을 하고 싶은 자는 나오시오!! 고블린 도축을 하는 일이오!”
전투의 피로를 가지고 있는 병사들은 마을 내부에 숨어있는 나머지 고블린들을 토벌해야 했다. 그 때문에 고블린 시체를 도축하는 일은 자연히 토성민(노예)들에게 배분되는 것이 옳았다.
물론 말만 노예고 사실상 시민 대접을 받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을 모집하는 실무는 〈부대장 도렌〉이 맡게 되었다. 요령이 없어 보이는 도렌은 의외로 실무적인 행정 쪽으로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게제라스의 입김으로 결정되었다.
“임금은 얼마나 줍니까?”
그 말에 도렌은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게제라스에게 들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임금에 대한 건 말이 없었습니다. 그냥 100명만 채워오라던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십니까?”
도렌은 말이 궁색해졌다. 그러고 보니 게제라스가 임금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하고 싶어 하는 남자들이 많았다. 일단 뭐라도 떡고물이 떨어지지 않겠냐는 마인드였다.
특히나 드낙의 호구썰은 유명했다.
노예 출신 병사들을 정규군으로 대접했다는 소문이 이미 쫙 퍼져 있었다. 드낙으로서는 짜증도 날 법했다. 그렇게 호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목숨을 걸고 전투를 하는 자들이었기에 대우를 해주었는데, 이렇게 통수를 맞을지 몰랐다.
뒤통수를 맞기 전에만 해도 별 상관없던 것이 한 대 맞으니 크게 화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나쁜 평판은 아니었다. 되려 좋은 평판이었다.
“나요, 나요!”
어디서든지 소리를 쳐대는 남자들이 많았다. 남자만 해도 토성민, 토성민들의 노예였던 자들까지 다 합치면 400명은 넘었다. 그 덕에 되려 눈이 바빠진 것은 도렌이었다.
“두 분류로 나누어서 가야 합니다. 노예 출신 분들은 왼쪽으로, 사교도였던 분들은 오른쪽으로···”
“사, 사교도라니!”
곳곳에서 불만이 튀어나오자 도렌이 펄쩍 뛰었다. 속마음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서둘러 사과를 연거푸 했는데, 노예 출신인 자들도 성을 내었기에 양쪽으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저런 게 부대장이라니. 쯧쯧.”
혀를 차는 이들도 있었다. 형편없는 실력이었다. 하지만 도렌은 착실하게 50명 50명으로 맞추었다.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둘러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 게 도렌이었다.
‘토성민은 700명이 넘고, 토성노예는 200명인데 왜 나눠서 50명씩 데려갈까? 비율이 맞지 않는데.’
그런 생각도 잠깐 했다. 물론 총관에게 묻지는 않았다. 도렌은 자신의 주제를 너무 깊게 생각하는 면이 있었다.
“총관님! 모집하여 데리고 왔습니다.”
“잘했습니다.”
묻고 따지지도 않고 딱 맞춰서 가져온 도렌을 칭찬하며 게제라스가 면면을 살폈다. 체격은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임금 없이도 온 것부터 남다른 자들이었다. 게제라스가 양피지를 여럿 옆에 둔 채로 펜을 들어 올려 잉크에 살짝 넣은 채로 말했다.
“긴말하지 않겠다. 일단은 토성의 시민이었던 노예부터 나와서 이름과 가족사항을 말해라. 오늘 이 일을 도와주는데 임금은 없겠지만 앞으로 두고두고 대우를 받을 것이다.”
게제라스의 〈노예〉라는 소리에도 불만 하나 나오지 않았다. 문인들만 입는 청색의 긴 옷 때문이었다.
진하게 용병 냄새를 풍기는 도렌과는 다르게 잡담 하나 나누는 이 없이 조용하게 이름이 적히기 시작했다.
“제 이름은 존디라고 합니다. 가족으로는 이제 젖을 뗀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부모는?”
“집이 무너져서··· 빠져나오지 못하셨습니다.”
게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동생이 있다면 팔이 으스러지도록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일터에 우선적으로 꽂아 넣으면 효율이 좋을 터였다.
‘인구가 적다! 이건 다른 마을을 거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특단의 대처가 필요했고, 그것은 절박한 놈들을 선별하여 확실하게 관리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게제라스 휘하의 일꾼 부대였다.
양피지는 총 4장이 소모되었고, 각각 2장씩 다르게 분류되었다. 일부러 다르게 분류하는 것을 본 사람들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는 괜히 다른 편에 있는 놈들을 쳐다보기도 했다.
경쟁 또한 중요한 것이었다.
100명의 성인 남자들은 곧바로 투입되지는 않았다. 고블린 도축에 대한 지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고블린은 일단 심장을 따로 적출해야 합니다. 모두 다들 잘 아시죠? 심장이 힘에 좋고, 말려놓으면 잘 썩지도 않고 벌레가 안 먹어서 보관 식품으로 아주 좋습니다.”
단검을 하나 목에 놓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목과 쇄골이 시작되는 곳. 목젖에서 일직선으로 내려가면 깊은 틈이 있는데 거기를 통해서 단검을 쑥 집어넣은 다음에 뒤집어서 단검을 발로 밟거나 고정한 다음에 고블린의 목을 이렇게 잡아! 당깁니다.”
뿌득!
갈비뼈가 손쉽게 뜯겨져 나갔다. 쇄골과 들러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목뼈만 빠지니까 최대한 목을 움켜쥐고 뒤로 바짝 당겨야 합니다.”
모두가 매우 집중했다. 게제라스가 양피지에 이름을 적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적힌다는 것은 책임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했다. 특히나 가족 이력까지 적었기 때문에 집중력이 대단했다.
“고블린 두개골은 고블린 녀석들에게 경고를 주기에 충분합니다. 뒷목을 여러 번 밟아서 목을 부순 다음에 따로 마련된 도끼로 잘라내면 됩니다. 목뼈를 안 부수고 도끼를 쓰면 날이 빨리 상하기 때문에 절대로 하시면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손뼈였다. 마법사들이 좋아하는 재료였고, 어디에서나 사고 싶어 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무조건적으로 수요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팔아버릴 수 있는 물품이었다.
고블린 손뼈를 노리고 따로 〈고블린 토벌〉만 주업으로 삼는 용병단이 있을 정도다.
“손목에 연골이 있습니다. 거기를 따라서 단검으로 살살살 자르면 금방입니다.”
단검이 지급됐다. 단검 대부분이 전리품으로 얻어낸 것들이었다.
작업이 시작되었다.
도렌이 감독을 했는데, 설설 하는 사람의 이름을 묻기도 했기 때문에 모두가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작업을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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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추코 감사합니다! 의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