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94화 (193/1,239)

0194 <-- 가을을 맞이하며 -->

“원탁회의를 오래 함으로써 다른 병사들에게 해당 사건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하니, 서로 이야기나 나눠보십시오.”

드낙의 말에 이실레아와 게제라스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스핀과 도렌 또한 흥미로운 눈치였다. 서로 부딪치는 일이 거의 없던 것이 이실레아와 게제라스였다. 확실하게 서로 원하는 것이 갈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일에는 겹치는 것이 있었다.

게제라스에게서 들은 〈육중책(六重責)〉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바로 인구였다. 특히나 이번 〈사냥꾼 마을〉이 무너진 것을 봤을 때, 〈버려진 영지〉에서 인간이 가지는 위치는 최하급이었고 당연히 인구를 모으고 키우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실레아 경. 괜히 우리가 사교에 편승한 토성민들을 거두어들인 것이 아닙니다. 강간범은 물론이고, 군법을 어긴 자도 살려둬야 하는 것이 지금 상황입니다.”

인구는 결코 손쉽게 얻을 수 없었다. 운 좋게 신성력을 얻었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출산율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1명의 여성이 1년에 1번밖에 임신을 못하는 것에 반해서 다른 적들은 두 번 세 번이나 가능했다.

못해도 5년 안에 장원(莊園)을 갖추고 시기를 봐서 10년 안에는 버려진 영지를 하사받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해놓고 있어야 했다.

그게 게제라스의 육중책이었다.

당연히, 이실레아도 그것을 일찍이 들었고, 동조를 하기도 했다. 적어도 내정에 관련되어서는 게제라스만큼 확실하게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그 나름대로 특색 있으면서도 효과적인 큰 그림을 그리는 문인(文人)은 드물었다.

앞으로에 대한 내정적 비전을 거침없이 그리는 그는 충분히 가치 있는 자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조를 할 수가 없었다.

현대조차도 군법(軍法)과 민법(民法)이 갈라져 있다. 하물며 귀족들 대부분이 무인(武人)으로 키워져 기사가 되며, 무가(武家)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군법이 약할 리가 없었다.

특히나 정규군의 육성과 훈련에 큰 공을 들이고 있었기에 가장 잘 발달된 체계이기도 했다. 당연히 이실레아 또한 훌륭한 장군감이었다.

“늑대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전시(戰時)에 경계를 서야 하는 병사가 졸고, 도박판을 벌였다는 것은 즉결 처형입니다. 귀족이라고 하여도 야전 지휘관을 맡은 채 잠에 들었다면 사령관의 판단에 따라 처형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처형당한 귀족이 있습니까? 역사를 훑어도 100년에 1명 나올까 말까입니다. 설득력을 크게 가지고 있지는 못하는 말입니다.”

게제라스가 능숙하게 말꼬리를 잡았다.

“또한 상황에 따라서 결정도 변화해야 하는 법입니다. 지금 우리 상황을 보십시오. 지금까지 오면서 마주한 마을은 사교도에 의해서 점령되었고, 한 곳은 고블린에 의해서 폐허가 되었습니다.”

게제라스는 코로 숨을 길게 내뱉으면서 잠깐 뜸을 들이며 마지막 한 마디를 했다.

“이 상황에서 정석을 들이미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군법은 병사가 10명이라도 똑바로 해야 합니다. 적어도 불침번에 졸고 도박한 놈은 효수(梟首) 해야 합니다.”

“장정 10명을 죽인다면 그만큼 성장 속도가 느려집니다.”

“내정만 보시면 안 됩니다. 군은 군입니다. 또한 사고를 쳐도, 노예로라도 살면 된다고 생각을 쉬이 하는 놈이 생기면 어찌하시려고 하십니까?”

“노예가 얼마나 혹독한지 모르는 자들이 아닌데, 노예가 어찌 쉽습니까?”

팽팽하게 말들이 서로 오고 갔다. 설전(舌戰)에서는 게제라스가 시종일관 이기는 것 같아 보였지만 이실레아는 돌처럼 정석. 올곧음. 정직. 일관성만을 외쳤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게제라스를 지치게 만들었다.

이실레아의 말은 확실히 말이 되었기에 게제라스에게 말로는 져도 논거로는 패배하지 않았다. 때때로 예시를 잘못 들어서 게제라스에게 빌미를 주었지만 그래도 하는 말 자체는 대나무처럼 단단했다.

‘이렇게 나오면 별 수 없지.’

게제라스는 그녀를 설득하기보다는 다양한 유화책을 늘어놓기로 했다. 서로 양보를 하자는 소리였다.

“아주 가혹한 노동을 부여해서 죽을 때까지 혹사당하다가 죽게 만드는 겁니다. 살아있을 때든 죽어서 버려지든 병사들에게 큰 경각심을 줄 것입니다. 이득도 보고, 벌도 주고 일석이조 아닙니까?”

“살아있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죽이고 시체를 훼손하지 않는다면 겉으로만 변화된 척을 할 겁니다. 인간은 간사하여 겉과 속이 다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강경책입니다.”

이실레아는 게제라스의 타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단번에 퇴짜를 놓았다. 자유기사로 활동하며 여럿 뒤통수를 맞아본 그녀였다. 특히나 투구만 벗었다 하면 머리로 생각하기보다는 사타구니로 생각하는 새끼들이 넘쳐났다.

그 덕에 인간이 얼마나 간악한지 잘 알고 있었다. 충격적인 심판이 아니라면 결코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일반적인 정규군처럼 정신무장을 갖추기 위해서는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현재로서는 벌로써 다스리는 것이 유일했다.

정신무장은 길게 보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드낙이 베풀어주고, 규율에 대해서 교육하는 것이 이 영역에 속했다.

“그럼 10명 중에 1명만 극형에 처하는 겁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인 벌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효율성을 생각하면 최고의 방안이었다. 하지만 이실레아가 코웃음을 쳤다.

“군법을 무슨 상인 마음으로 하십니까? 여럿이서 죄를 저질렀는데 운으로 솎아내어 한 명만 벌을 준다? 오히려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농, 부상이 있는 집을 약탈하고 서로 나눠가지고서는 한 명만 극형에 처한다면 나머지는 더 큰 이득 아닙니까?”

“이번만 그렇게 하자는 것이지요···”

“관례를 남기는 것이 될 겁니다. 피해야 할 일입니다.”

이실레아는 그렇게 말하며 속사포처럼 말했다.

“병사들에게 그렇게 개선의 여지를 주는 것부터 잘못된 일입니다. 10명 중에 1명만 극형에 처하든, 노예로 삼아서 일하다 죽을 때까지 혹사를 시키든, 오늘의 일은 나중에 두고두고 이야기될 것입니다.”

그녀가 날카로운 눈을 했다. 문인인 게제라스가 괜히 눈을 피했다.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병사는 거래의 대상이 아니고, 이득과 손해를 보고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용병입니다. 전투 노예든, 노예든 이미 병사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병사로 여겨야 합니다.”

그녀의 연녹색 눈이 드낙에게로 향했다.

“드낙 경께서도 그들을 병사처럼 대우해줬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앞과 뒤가 맞지 않으니 모순될 것이며 지식 있고, 교양 있는 자들의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독기서린 눈이 게제라스에게 다시 향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찌하시려고 인구 늘리는데 급급하신 겁니까?”

“음··· 그렇게까지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돼서···"

게제라스가 궁색하게 말을 붙였다. 귀족들이 시민과 노예출신의 병사들에 대해서 비웃음을 살 리가 없었다. 애초에 그쯤 되면 드낙의 기반도 세워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분적으로는 결코 좋은 것은 아니었다.

많은 자들이 보는 앞에서 그 처리가 명명백백히 모습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에게 공포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나중의 평가를 생각하는 것.’

게제라스는 너무 내정만 봤다. 물론 이 일은 사실 크게 다루어지지 않을 터였다. 몇 년만 지나도 잊힐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실레아의 발언은 드낙의 마음을 건드렸다.

“강간범들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크게 의논을 해야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드낙이 끼어들어 주제를 바꾸었다. 여기에 대해서 이실레아는 손을 뗐다. 이것은 게제라스가 선택할 문제였다. 그녀는 선을 지킬 줄 알았다.

그 모습에 게제라스가 괜히 불편해졌다. 자신은 군과 병에 대해서 참견을 했는데, 그녀는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사들을 극형에 처한다면, 그것보다는 벌을 가볍게 주어야 합니다. 노예 중에서도 상노예로 만들어 볼에 낙인을 찍고, 목줄을 채워 평생 노예로 삼게 해야 합니다.”

드낙이 병사 주제를 돌린 것부터 이미 이실레아의 편을 들어주겠다는 것이기에 게제라스가 짧게 강간범들에 대한 처우를 말하였다.

“병사들에 대한 처우는 이실레아 경의 주장대로 하겠다. 이유는 내가 병사들의 대우를 너무 급하게 해버렸다는 점이고, 그로 인한 하자가 생겼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게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는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귀족 출신인 드낙은 명예를 생각하기에 이실레아의 말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실용적으로 보이는 것도 명예나 평판 혹은 명분이 쑥하고 들어오면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 귀족이었다.

물론 드낙은 귀족 출신이 아니었다. 다만 명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고, 민심이나 평판에 대한 중요성도 가장 잘 알았다.

동트기 전에 시작된 원탁회의는 아침이 되어도 파(破) 하지 않았다. 의도적이었다. 대신에 이스핀과 도렌이 불침번과 강간범을 따로 분류하도록 지시하고, 도망자가 없도록 철통같이 지켰다.

“보통 일이 아니라던데.”

아침 식사 때 이미 소문이 쫙 퍼졌고, 토성민들도 상황을 인지하고 관심이 크게 집중됐다. 병사들은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온갖 것들에서 대우를 받고 있었기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또한 강간범까지 끼여있으니 드낙 무리의 모든 눈과 귀가 집중되기에 좋았다.

게제라스가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더더욱 전파되는 속도가 빨랐다. 그 덕에 점심 전에 원탁회의를 마쳤다.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고, 고블린 시체를 빨리 도축하기 위해서였다.

판결은 당연히 드낙이 맡았다. 이 세력의 장(長)이나 다름없었다.

하이라이트가 병사들의 처우니 강간범들에 대한 처우를 먼저 하기로 했다.

“강간을 저지른 죄는 무겁다. 평생 그 죄를 기억하며 참회를 하여야 할 것이다. 현행범으로 잡힌 3명은···”

드낙이 한숨 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판결이 굉장히 빨랐고, 거침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긴장감이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 몇몇은 숨도 쉬지 못했다.

눈이 검게 죽은 피해자 여성이 가족에게 둘러싸인 채 보고 있었다. 비록 미수이기는 해도 남자 셋에게 둘러싸인 경험은 끔찍했다.

“모조리 목에 목줄을 채우고, 볼에 낙인을 찍어 평생 노예로 살아간다.”

“으허어어어엉!!!”

그 말을 듣자마자 강간을 저질렀던 놈들이 대성통곡을 했다. 낙인이 찍힌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노예는 낙인이 찍히지 않는다. 상품성을 위해서였다.

도망친 전적이 있는 노예가 아니라면 보통은 다른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만큼 〈낙인〉이 가지는 의미가 컸다. 또한 목줄이 채워진다는 것은 인간 취급을 안 하겠다는 소리였다. 평범한 노예보다 더욱 가혹하게 다뤄짐을 의미했고 그냥 일하다가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눈물과 콧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전 아닙니다!! 전 넣지도 못했습니다!!!!”

악다구니를 쓰면서 해보지도 못했다고 소리를 꽥꽥 지르는 놈이 하나.

감정을 이기지 못해서 고함을 지르거나 버둥거리는 놈도 있었다.

“끌고 가라!”

모두 재갈이 물려져서는 다른 곳으로 끌려갔다. 남은 병사 10명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주 제대로 날이 잡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를 지키기 위해서 먹을 것도 더 얹어주고, 잠자리에도 최대한 피곤함을 느끼지 않도록 천을 여러 겹 건네주고, 훈련에 있어서 아낌없이 가르쳐주고···”

가장 먼저 병사들에게 해주었던 것을 이야기했다. 특히나 3년 이후에는 집은 물론이고, 급여를 약속함은 물론 노예나 노비를 아래에 최소 하나를 두기로 한 것까지 이야기했다.

이것은 그저 〈구두 약속〉에 불과했지만 구경하던 토성민들의 질투심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벌써부터 욕을 지껄이든 자들이 있었다.

“주제도 모르는 잡것들이 저런 대우를 받고도 헛짓을 해?”

“미친놈들이네. 나라면 불구가 되더라도 병사했다.”

그다음에는 병사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말하였다. 하나의 죄를 세 개로 만들어서 세세하게 구분하여서 죄를 크게 늘리지는 않았다. 게제라스가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해도 드낙은 정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작은 죄라도 병사의 신분으로서는 무겁다는 것을 확실하게 전해주고 싶었다.

“경계를 서면서 초병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죄! 순찰을 제대로 못하여 치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죄!”

깔끔했기에 확실하게 귀에 들어왔다. 재판도 아니라 그저 통보였다. 입을 다물고 있던 죄인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다음에 말할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에 대한 판결이었다.

“씨발···씨발···”

병사 한 놈이 계속해서 욕을 하며 바닥을 본 채 중얼거렸다. 스트레스가 전신을 지배했다.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머리에 들었고, 가슴에 돌이 든 것처럼 깝깝했다.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 전신을 지배했고, 왠지 모르게 몸이 꿉꿉했다.

컨디션이 정말로 안 좋아서는 식은땀이 생겨났다. 그 상황에서 드낙의 입이 열렸다.

========== 작품 후기 ==========

6145자

추천 감사합니다.

많은 의견 감사합니다. 사실 1/10이 가장 효율성이 좋지만, 귀족의 명예욕이 크게 높은 이 세상에서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적어도 이실레아는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았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