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3 <-- 가을을 맞이하며 -->
드낙은 〈그답지 않은〉 사고의 긴 길을 훑어 올라갔다. 왜 그랬는지 그는 나중에 짚어서 고민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그런 인간이었다.
최종적으로 두 가지를 가려냈다.
‘〈뛰어난 기승〉 아니면 〈뛰어난 탈것 훈련〉.’
〈뛰어난 기승(騎乘)〉은 확실하게 기수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힘이었다. 기병을 손에 쥐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고, 나중에 있을 이실레아와의 관련 재능 싸움에서 승리를 쥐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녀와 싸우기 위해서 무리해서 기승을 얻을 필요가 없었다. 기병 훈련은 그녀에게 맡겨버리면 그만이었다. 드낙은 주인으로서 기둥을 단단히 박아 넣으면 그만이었다.
‘이실레아는 믿을만하다.’
배신할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마음 한구석에는 배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드낙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세상의 권력자들은 배신을 두려워하였다.
‘그런 것들을 고려하기에는 내가 가진 것이 보잘것없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가진 비전을 최대한 많이 얻어내야 〈불파겐의 깃발〉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더 극적으로 이용하고 싶다면 미루면 미룰수록 좋았다.
더 멀리. 더 길게.
드낙은 유례없을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다양한 현대인의 잡다하고 얕은 지식들 중에서도 잘 뽑혀져 나오는 것이 있었다.
‘큰 그림.’
큰 그림을 생각한다면 결국 이실레아와의 경쟁은 불필요했고, 효율이 좋지 않았다. 내분이 일어나기에 충분했다. 그녀를 품으려면 오히려 더 크게 생각해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그녀가 배신을 계획하더라도 드낙은 그것을 헤쳐나갈 수 있는 무력을 손에 쥐고 있었다.
전신갑주가 그녀의 손에 들어가더라도 드낙의 힘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다.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는 자신에 대한 확신을 더욱 가지는 것이 좋았다.
‘더 대범하게. 더 넓게.’
그러지 않는다면 품에 자유기사 하나 담아내지 못할 것이다. 배신은 그 뒤에 생각해도 된다. 알렉산더 대왕 또한 원정에서 돌아오면 반란을 일으킨 도시가 수두룩 빽빽하지 않았나.
드낙이 눈을 떴다. 〈뛰어난 기승〉은 포기한다. 기수 훈련에 대한 것은 이실레아에게 맡기는 것이 좋았다. 그는 더욱 본질적으로 〈세력〉에 대해 힘을 보태기로 하였다.
〈뛰어난 탈것 훈련〉은 세력의 힘을 증가시키는데 가장 적합한 힘이었다.
‘다양한 기병의 재원을 확보하기에 충분하다.’
단순히 말을 기병으로 만드는 일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목장을 경영하는데 도와준 드낙은 그것을 가장 잘 알았다.
‘가장 먼저 종마.’
야생마를 잡지 않으면 새로운 종마를 얻기도 힘들고, 튼실한 말이 없으면 아예 다른 지방에서 큰돈을 주고 사 와야 했다. 종마는 매년 새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최소 5년을 두고 사 오는 것이었다.
개량의 필요성이 없다면 세대가 지나도 사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건 배부른 소리였고, 준마 혹은 전투마 이상을 원한다면 무조건적으로 종의 개량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말들을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땅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했다. 땅이 많을수록 유지비가 적게 들기 때문이다. 풀을 뜯어 먹기 때문에 야지가 많은 이 땅에서는 키우기에 좋았다.
물론 그만큼 위협도 있었기에 그에 대한 대비를 준비해야 했기에 사업 초기에 들어가는 돈과 자원이 크게 소비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대로 투자한다면 기병이 무조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중세 용병들만 해도 대부분이 기병이었으니까.’
정규군이 거의 사라지고, 용병이 대신 전쟁을 하는 중세 유럽은 그야말로 악(惡) 중에서도 악(惡)이었다. 전쟁을 빌미로 농가를 약탈하고 다 죽여버리는 것이 일상일 정도였다. 그래서 스위스 용병이 유명하기도 했다.
어둠이 크면 클수록 빛은 아름다운 법이었다.
괜히 현대에 와서도 스위스 용병이 로마의 바티칸을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박호훈도 알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였다.
또한 현대인만큼 기병을 맹신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주인 없는 땅이 많은 이곳에서 말을 키우는 것은 확실히 좋다.’
개간하면 내 땅이었다. 꿀물을 보고 찾아오는 귀족이 아니라면, 충분히 이득을 보기 좋았다.
‘굳이 말만 키울까 봐?’
〈다이어 울프의 왕관〉처럼 단번에 통솔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짝눈 부반탕〉의 조련술이었다. 다이어 울프를 조련할 수 있었고, 그 노하우를 다른 이에게 내어주는 것 또한 가능했다.
‘내 무력이라면 새끼 훔쳐 오는 것은 일도 아니다.’
물론 100~200kg인 다이어 울프를 다수 유지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기에 장기적으로 생각을 해야 했다.
‘멧돼지도 좋고.’
못 먹는 게 없는 것이 멧돼지였다. 덩치와 체중 또한 인간이 올라타기에 충분할 정도로 키울 수 있었다. 〈숲 고블린〉답게 온갖 짐승을 탈것으로 조련했고 그 능력을 가장 크게 보유하고 있는 것이 〈짝눈 부반탕〉의 조련술이었다. 그것을 손에 얻는 것이 〈뛰어난 탈것 훈련〉이었다.
‘믿고 가자.’
용병들조차도 고용한 드낙이었다. 어차피 인생은 그런 것이다. 그런 리스크 하나 감당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계속해서 삐걱댈 것이다. 질주하기 위해서는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오히려 위험에 뛰어드는 것이 좋았다.
일각수 때처럼 목숨을 걸어야 했다.
드낙은 〈뛰어난 탈것 훈련〉을 선택했다. 다양한 기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수 훈련에 대한 것은 이실레아가 맡게 될 것이기에 위험 요소가 컸다. 〈군(軍)〉의 양성에 있어서 이실레아의 입김이 커질 것이다.
*
마지막 지휘관 불침번을 서는 이실레아는 2시간을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는 주변을 순시했다. 그저 그런 기분이 들었다. FM 중의 FM이 이실레아 브릴리언트였다.
고블린 시체를 지키는 병사들은 졸고 있다가 단번에 걸렸다.
“왜 졸았느냐. 불침번이 얼마나 중요한 임무임을 모르는 것이냐?”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이실레아는 두말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며 내일 아침을 먹고 자신을 찾아오라고 말하였다.
“예. 알겠습니다.”
빼지도 못하고 병사 다섯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이실레아는 칼같은 지휘관이었다. 찾아가지 않으면 더 크게 화낼 것이고 애초에 그런 생각조차 병사들은 하지 못했다.
두렵기 때문이었다.
전투로 죽는 이보다 벌을 받아 죽는 이가 많다고 여겨질 정도로 이실레아의 지휘와 통솔은 혹독했다. 이스핀과 도렌 부대장이 평소에 병사들을 통솔하고, 이실레아가 큰 테두리만 잡고 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횃불을 다시 교체하고 시체 먹으러 오는 새를 잡아 식량으로 삼도록 하라.”
“예!”
이실레아는 대단히 분노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병사들이 냉큼 대답했다. 그녀가 떠나자 병사들이 히히덕거렸다.
“정말 예쁘다.”
“눈매가 날카롭긴 하지만, 저 황금색 머리카락 한 번 만져보고 싶다.”
“내일 또 뺑뺑이 엄청나게 돌리겠네.”
“에휴. 갑자기 왜 순시를 해서는··· 내일 정말 큰일 났다. 숨 넘어갈 정도로 굴리겠지?”
“개 같은 년.”
병사들이 그녀를 신랄하게 까대며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미인(美人)이라고 할 수 있는 이실레아는 날카로운 눈매와 독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엉망진창이군.’
토성민이 있는 곳도 순시를 홀로 하였는데, 겁도 없이 여자에게 천을 입에 물린 채로 강간을 하고 있는 놈들의 현장을 잡기도 했다. 이실레아는 가죽을 입고 있었기에 발소리가 크지 않았고, 반항하는 여성과 흥분한 남자 세 명의 거친 움직임과 숨결에 파묻혔다.
퍽!
기습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하체를 미리 벗어서는 허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스트레칭하는 한 놈의 사타구니를 단단한 가죽부츠로 걷어차자 남자는 숨도 못 쉰 채 바들바들 떨면서 그대로 엎어져서는 태아처럼 웅크렸다. 그런 놈의 배를 한 번 더 걷어찬 이실레아가 레이피어를 뽑아들었다.
날카로운 쇳소리에 남자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그건 이실레아의 어그로를 끌기에 충분했다.
“이, 이런 씨발!”
한 놈이 도망치려 했지만 단숨에 허벅지가 긴 레이피어에 의해서 순식간에 베어졌다. 절뚝거리는 놈은 그래도 무슨 힘이 그렇게 났는지 도망쳤지만 혈흔과 상처는 결코 숨길 수 없을 것이다.
“사, 살려주십시오!”
나머지 한 놈은 바짝 엎드려서는 손을 싹싹 빌었다. 음울진 화덕의 불빛에도 이실레아를 모를 사람은 여기에 없었다.
“치안에 있어서 분명 드낙 경의 말을 들었을 터다. 그런데도 이런 범죄를 저질러?”
“제가, 너무 쌓여있어서···”
말같지도 않은 변명은 이실레아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
범죄자에 대한 이실레아의 행동은 거침없었다. 〈피의 신도〉조차도 치안을 위해서 저녁시간마다 처형을 시키는데, 이런 범죄자는 오히려 사람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혁대에 걸어놓은 밧줄을 던졌다.
“쓰러진 놈을 묶어라. 허투루 묶는다면 목이 베어질 것이다.”
“예···예예!”
그곳을 잡은채 웅크린 놈의 팔을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양팔마저 단단히 묶었다. 이실레아는 그 두 명을 이끌고 토성민들을 밤새 지키는 불침번을 선 병사들에게로 향했다.
“헉! 이실레아 기사님을 뵙습니다.”
도박을 하고 있던 병사 다섯이 벌떡 일어났다. 이실레아가 눈을 부라렸다.
“분명 못해도 30분마다 조를 지어서 순차적으로 순찰을 돌라고 명했을 터다.”
“죄, 죄송합니다.”
이실레아가 판돈을 확인했다. 적어도 한두 판만 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또한 그림자진 곳에 한 명이 숨어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레이피어의 끝이 향하자 숨어있던 병사가 일어났다.
“넌 뭐냐?”
“불침번이 끝나고 잠이 잘 오지 않아서···”
변명을 한 병사의 정강이가 그대로 걷어차였다.
“끄허헙!”
“누가 변명을 하라고 했느냐? 제대로 된 이유도 아닌데 그 입을 함부로 놀려?”
“죄, 죄송합니다···”
그들의 이름도 제대로 찍혀야 했다. 또한 그들은 허벅지가 베인 놈을 찾으러 피를 추적해야 했다. 땀을 빼고 나서야 잡을 수 있었다. 이미 부상을 입은 놈이고, 도망도 제대로 못 쳐서 나무에 기대서 쉬고 있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결코 자신들이 큰 위기에 빠졌음을 몰랐다. 그저 크게 몸을 굴리고 혼나는 것으로 끝날 것이라 예상했다. 그것은 드낙이 병사들을 애지중지하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편애였다. 그것을 알고 있는 이실레아는 특별히 병사들에게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다. 대신에 곧바로 드낙에게로 향했다.
“드낙 경? 일어나 보십시오.”
“아니, 이실레아 경.”
상황을 정리한 이실레아는 곧바로 드낙에게로 향했다. 해가 뜨지도 않은 이른 새벽이었다. 말 그대로 거침없는 행보를 걸었다. 드낙은 이실레아에게서 엉망진창이었던 불침번의 일을 확인했다. 아무리 늑대들이 있다고 해도 너무한 일이었다.
‘이 새끼들이?’
드낙은 그들을 크게 대우하며 직업군인으로 키워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매우 괘씸했다. 눈에서 분노가 튀어나왔다.
무엇보다도 지휘관이 없으니 일을 개판으로 했다는 것이 가장 화가 많이 났다.
훈련을 빡세게 함과 동시에 군율을 숙지시키는데도 노력했다. 또한 풀어줄 때는 풀어주며 대우를 해주었다.
“그 10명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불침번을 서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드낙이 고민했다. 이에 이실레아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였다. 애초에 훈련과 규율을 외치는 드낙은 병사들을 너무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물론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좋지 않은 상황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이 그때였다.
“그대로 놔둔다면 똑같은 일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입니다. 한 번 제대로 벌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추가로 의견을 쭉 말하였다.
“〈원탁회의〉를 열어 지은 죄가 중(重)하다는 것을 사방에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나 아침 전, 새벽에 연다면 다른 병사들 또한 경각심을 가질 것입니다.”
드낙이 크게 수긍했다. 좋은 방법이었다. 순식간에 병사들은 게제라스 총관과 이스핀 부대장, 도렌 부대장을 깨워서 드낙에게 안내했다. 이 소식은 금방 퍼져나갔는데, 어수선함 때문에 일어난 병사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게제라스 총관은 당연히 눈을 부라렸다. 그 말을 듣자마자 병사들을 모두 깨우고 다녔다. 거침없이 헤집었다.
“가서 불침번을 서고 있는 병사 10명을 한 명도 남김없이 포승해서 한곳에 모아놓아라! 어서!”
“예, 예!”
난리를 치는 게제라스는 드낙과 이실레아의 생각을 단번에 꿰뚫어보았기에 이런 행동을 한 것이었다.
‘잘 됐다! 아주 잘 됐어!’
드낙의 의견만 아니었으면 그들이 받을 〈병사 대우〉는 마을에 들어섰을 때 하고 싶었던 것이 게제라스였다. 노예들에 대한 믿음 자체가 적었고, 드낙의 호의가 너무 일찍 베풀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노예 시절을 잊고 드낙 님의 배려에 똥칠을 했습니다. 엄격하게 벌하여야 합니다. 바로 그들을 빼내어 노역을 시킬 노예로 강등시키십시오. 토성민들이 있는 곳으로 자리 또한 옮겨야 할 것입니다.”
강수를 두었다. 물론 추가로 한 마디를 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본래라면 목을 베어 효수해야 할 짓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중요하기에 노예로 부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이실레아의 생각은 달랐다. 더 지독했다.
“모두 죽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군의 기강이 살지 않습니다. 노예로 삼는 것도 가볍습니다.
군벌은 엄해야 하는 것이 첫 번째고, 상황에 구애받지 않아야 함이 두 번째며, 다른 이들에게 경각심을 최대한 크게 심어줘야 함이 세 번째입니다. 어차피 노예였던 자들에게 다시 노예를 시키는 것은 이 3가지 모두에 반(反) 합니다.
”
이실레아가 독기가 가득한 연녹색 눈으로 간부들에게 눈을 주고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했다.
“몸은 짐승의 개밥으로 던져주고, 머리는 효수하여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장대에 놓고 끝까지 끌고 가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도렌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스핀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로쌍놈의 개새끼들은 공포감을 줘야 하지.’
밑바닥 놈들일수록 원초적인 공포로 다스려야 했다. 밑바닥에 살아본 적이 있는 이스핀이기에 더욱 그 생리를 잘 알았다.
“음.”
드낙이 고민했다. 둘 중에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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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노예들 : 나를 믿었음? 노예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