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7 <-- 가을을 맞이하며 -->
〈저녁〉이 되었다. 오늘도 공개처형이 이루어졌다. 저녁을 먹기 전에 장작을 모아놓고 모두가 불을 붙이지 않은 채 괜히 전투 노예들에게 시선이 모아졌다.
“으흐흐흑! 제발··· 전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요!! 난 아무것도 몰라! 그냥, 그냥 남들이 대단하게 보기에 신도가 되었을 뿐이라고!!”
버둥거렸지만 쇠사슬에 감겨있어서 위협조차 되지 못했다. 워낙 시끄러웠기에 놈에게 다시 재갈이 물려졌다. 물론 그렇게 난리를 떨도록 재갈이 벗겨진 것이기도 했다.
“으! 흐흡! 으흡!”
재갈이 물린 채로 단상 위로 올라가진 그가 버둥거리다가 허공에 발이 닿자 벌벌 떨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서 턱밑으로 주르륵 내려갔다. 이미 아랫도리는 축축해져 있었다.
“이 자는 〈피의 신도〉로 활동하며 양민을 죽이고, 여행자들의 물건을 빼앗고! 마적으로 활동했다. 그것은 분명 힘든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죄가 씻어지는 것은 아니다.”
드낙이 직접 처형식에 나서서 죄목을 읊었다.
“자유기사에게 칼을 겨눈 죄는 백번 죽어 마땅하다. 세상의 정의를 흩뜨리고, 사제와 성기사를 구금하는데 한몫을 하였다.”
세세한 죄목까지 드낙이 들먹였다.
물론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이 녀석이 〈피의 신도〉이기 때문이었다. 악신의 은총을 받고 있는 신도는 사도(使徒)까지는 아니지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기습을 하거나 암살을 시도한다면 드낙도 죽을 수 있었다.
인간을 뛰어넘는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은 즉슨, 놈은 충분히 〈검은 문〉을 토해낼 수 있었다. 하찮은 것이지만 능력을 몇 가지지 않은 드낙은 그런 하찮은 검은 문이라도 단점이나 리스크가 없다면 손에 넣고 싶었다.
그가 열정적으로 공개 처형을 주도하는 이유였다.
물론 이것을 원한 것은 그가 아니라 게제라스였다. 900명 중 700명이 토성민(土城民)이었다. 하루마다 그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해서 이 험한 길을 걸어가야 했다. 불만은 정신을 홰까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하루에 한 명씩 〈피의 신도〉의 목이 날아갔다. 단두대나 목을 걸 곳이 없었으므로 처형은 매우 야만적으로 치러졌다. 목을 베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아주 좋았기에 굳이 목을 멜 곳이 있더라도 칼을 써야 했다.
푸슉!
“그르릅···”
열심히 날카롭게 간 대거가 섬뜩한 소리를 내며 목을 베고 지나갔다.
부르르르!
몸을 떨던 피의 신도는 이내 죽어버렸다. 오물의 악취가 났고, 금방 병사들에 의해서 치워지고 물이 뿌려진 다음에 흙으로 그 자리가 덮어졌다.
화륵!
다시 모닥불이 지펴졌다. 저녁 시간이 찾아왔다.
성기사 에이담은 그 광경을 보며 지독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불만을 내려치기 위해서라지만 드낙의 무리가 행하는 공포의 지휘는 끔찍했다. 그러나 말릴 수도 없는 것이 고작 6명의 인력으로 뭘 어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해봤자 이득은 없다. 경계심만 높아질 뿐.’
에이담은 드낙과의 협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결국 이것은 달리기다. 누가 먼저 골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이후가 달라질 것이다. 괜히 지금부터 힘을 빼면 먼저 지치는 것은 자신이었다.
‘피냄새 나는 저녁이라···중립신이시여. 당신이 원하는 세상은 언제 도래하는 것입니까?’
〈신들의 땅〉에서 수많은 인신(人神)들을 이끌다 이 세상에 도달하여 추락한 중립신. 그는 모든 것이 갈기갈기 찢어져 이 세상에 별빛처럼 떨어져내렸다. 그리고 수많은 지성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기사 에이담은 중립신의 이름을 속으로 세 번 읊조리며 모닥불을 향해 걸어갔다.
신전의 인물들은 모닥불을 돌아다니며 기도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최대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전부였다. 혹은 신성력을 통하여 물집이 잡히고 피로감에 찌든 발을 치료해주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 까마귀 카이야가 밝은 백색으로 변하고 있는 꼬리털을 부리로 한 번 쪼아서 긁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휘적거렸다.
시원한 바람이 카이야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검은 눈동자는 드낙에게 잠깐 향했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돌려졌다.
*
드낙의 중진(重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 배를 채우고 난 뒤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앞으로에 대한 방침과 계획은 하루에 저녁마다 똑같은 말이라도 매번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람은 하루가 달라져도 생각이 바뀌고 다른 의견을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은 새로운 것에 대해서였다.
“펄볼드 대장은 우호적이었습니다. 고블린이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게제라스가 운을 떼면서 양피지를 옆으로 돌렸다.
“횃불 성채에서 받은 지도입니다. 그것을 보시면 전부터 〈짙은 녹색숲〉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 번씩 대충 보고 다음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양피지의 크기가 작았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있던 숲입니다. 아무래도 버려진 영지의 진형을 보면 나무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 숲 초입에 마을들이 좀 있습니다. 초원은 다른 몬스터와 싸워서 움켜쥐어야 하기 때문에 포기하였을 겁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은 지형의 경계선이 고작이었다. 힘이 없기 때문이고, 포악성이 낮기 때문이다. 제대로 붙으면 결국 체중이 있고 키가 큰 자가 이기겠지만 인간만큼 자신의 생존을 생각하는 종족은 많이 없었다.
들짐승이면 모를까. 크놀만해도 대장의 말에 껌뻑 죽는다. 그만큼 권위가 있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대장을 죽이면 바로 대장을 추대하기 위해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런 특징은 인간에게 없었다.
호전성을 키우기에는 쉽지가 않았다. 단순히 펄발드와의 분쟁이 터진다면 멧돼지의 돌진만으로도 박살이 날 것이다.
〈정규군〉의 중요성. 〈기사〉의 존재가 없는 〈버려진 영지〉의 인간들은 말 그대로 생태계의 최하위였다.
지형이 변하는 경계에 마을이 지어지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토성의 경우는 사교를 믿었으니 가능한 부분이었다.
“토성을 떠난 지 3일. 앞으로 2일만 더 가면 〈사냥꾼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고블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생각입니다.”
고블린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뿌려졌다. 조잡한 주술과 섬세한 함정 그리고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고블린이었다. 특히나 〈숲 고블린(forest Goblin)〉은 〈교활〉하며, 〈다양한 들짐승〉을 조련시키는 것은 물론 〈원거리 무기〉를 잘 사용하는 놈들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떠돌이 생활을 많이 했던 이실레아가 세부적으로 설명했다.
“···그렇기에 부락마다 다른 특징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것을 확인하지 않고 강하게 나오는 것은 어리석으니 나무를 구한다면 토성민들에게도 방패를 지급해야 합니다.”
“시일이 걸리겠군.”
드낙이 안타까운 감정을 담아서 말했다.
“네. 하지만 숲 고블린은 고블린 중에서도 매우 교활한 놈들입니다. 방패를 소지하지 않으면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악(惡)한 몬스터인 고블린은 호전성이 인간보다 뛰어났다. 결코 곱게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펄발드와는 달랐다. 무조건 적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크놀의 경우에는 그들의 집인 굴에만 쳐들어가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였다. 물론 기사에게 있어서 다 쳐죽여야 할 것들이었지만, 자유기사에게는 조금 달랐다.
이슈화가 되면 토벌하는 것이 좋았다. 마을 대부분이 고블린을 제외한 휴머노이드 종족과 공생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욕심 많은 고블린과는 달랐다. 그렇기에 전투가 강제되었다. 하지만 〈사냥꾼 마을〉에서 정보를 모은다면 또 상황이 어찌 될지 몰랐다.
고블린에 대한 대처법을 이야기하며 좋은 전술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오늘의 회의는 끝이 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게제라스는 남았는데, 드낙과 따로 할 말이 있는 듯하였다.
“무슨 이야기가 남았나?”
“예. 제가 말씀드렸던 〈횃불 성채〉에서의 육중론(六重論)에 대한 것입니다.”
〈게제라스의 육중론〉은 〈버려진 영지〉에서 나아감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여섯까지에 대한 것이다. 그중에 하나의 요소는 바로 〈인구〉였다.
“그중에 어떤 것?”
“연금술사에 대한 것입니다. 곧 상단과 밀접하기도 합니다.”
드낙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상업〉은 곧 〈경제〉이기도 했고, 또한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필수 수단이었다.
“드낙 님도 아시다시피 저희들의 손에 신전이 들어왔습니다. 고작 여섯명이지만 충분합니다. 그러니 일단은 〈버려진 영지〉에 대한 경제를 휘어잡기 위해서라도 횃불 성채 나아가 제국으로 향하는 상단을 계획하는 것을 향후 5년 이후로 미뤄야 합니다.”
“음···”
드낙이 눈을 감았다. 그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명문 중의 명문. 오죽하면 왕족이 두려워하여 먼저 그 목을 칠 정도로 대단한 무가(武家)가 가진 기본 비전 칠주(七主)를 배웠기 때문이다.
그 엄청난 힘. 중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불파겐의 말을 최대한 빨리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게제라스가 그것을 미루자고 하니 답답할 수밖에.
‘어떻게 게제라스를 설득한담?’
그의 행정력과 내정력은 실로 대단했다. 괜히 수틀리면 제국으로 떠날 놈이 아니었다. 능력만큼은 인정할만했다. 그래서 더 걱정이었는데, 그를 설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떻게 둘러댄담?’
드낙의 머리가 돌았다.
“총관이 생각하는 것보다 지역 경제가 망가져 있으면 차라리 〈횃불 성채〉 근처의 마을과 교류하는 것이 더 이득 아닌가?”
“예. 하지만 그 정보를 모으기 전에 무엇을 판단하는 것은 손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한 지역 경제를 살려야지 나중에 좋습니다.”
게제라스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드낙도 지지 않았다. 경제하면 현대인 아닌가? 수박 겉핥기 식 지식이 쏟아져 나왔다.
“큰물에서 놀아야 작은 물에 물이 더 많이 흐르지 않겠는가. 우리가 북부나 남부에서 자원을 가져와서 풀어버리면 그만이지.”
“생각보다 더 열악할 수 있어서 손을 대기는 대야 할 겁니다. 직접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거래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럼 상단을 두 개 두는 것은 어떤가? 상업에 크게 투자하는 것이지.”
“그건 더더욱 힘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다른 곳에 쓸 자원과 인력이 부족해집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고민 끝에 드낙이 강행돌파를 시전했다.
“우리의 위치를 생각해봐. 결국에는 횃불 성채에서 오는 좋은 물건들을 이곳으로 가져와서 이곳에서 풀어야 해. 그래야지만 그 토지가 성장할 수 있어. 결국에는 어차피 해야 할 일이잖아.”
그럴듯했지만 이미 게제라스와 전에 한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네. 그렇긴 합니다만, 초년부터 그것을 이루기에는 근거가 부족해졌지 않습니까? 연금술사의 물약을 구매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어졌기 때문에 더더욱 지역 경제부터 확실하게 적정선까지 올려야 합니다.”
이야기는 밤늦게까지 이루어졌다. 게제라스는 결국 드낙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주관을 꺾으라는 말에 결국 게제라스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물론 그는 여기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항상 차선이 있기 마련이지.’
게제라스의 머리가 팽팽 회전했다. 비벼볼 구석은 이실레아였다. 분명히 드낙과 한 배를 타면서 꺾으라고 했던 성격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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