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6 <-- 가을을 맞이하며 -->
초가을이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높은 하늘과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를 맞이한 드낙은 밖으로 나섰다.
“날씨 좋다.”
‘토성에 있은지도 보름인가.’
그동안 900명의 인구를 옮길 준비를 했다. 짐마차 450대는 물론이고 인력거 짐수레 300대까지 제작해야 했으며 무엇보다 마적을 운용한 〈바세안 토성〉이었다. 당연히 가축이 많았다. 가축의 숫자는 500여 마리였다.
토성민 700명. 그리고 토성민들의 노예였던 토성노예 200명까지 수송할 준비가 되었다. 물론 그들은 걸어서 가야 했다. 짐마차와 짐수레에 실어질 것은 토성의 자원이었다. 말 그대로 그들이 마적질을 하고, 열심히 노동하여 만들어 〈촌장 바세안〉의 가계도를 통해서 모아진 자원들이었다.
‘나쁜 놈들이라 오히려 좋았다.’
마음껏 죽일 수 있어서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다. 토성의 알짜배기를 모조리 뜯어서 가는 것이다. 물론 〈인구〉도 말할 것도 없이 가장 가져가야 할 것이었다.
오늘이 출발하는 날짜였다. 〈사냥꾼 마을〉을 지나고, 〈둥근 언덕 마을〉을 거치면 나오는 것이 드낙이 〈토치라이트 가문〉에게서 받은 토지였다. 그곳에는 마을이 딱 하나 있었다.
〈산지기 산골 마을〉이라 불리는 곳이 드낙의 토지에 있는 유일한 마을이었다.
물론 이곳 토성에서 들은 것이었다. 마적질을 하면서도 다른 마을을 완전히 털어버리지는 않고 야금야금 조공을 받은 듯했다. 여행자는 가차 없이 죽이고 빼앗거나 노예로 삼는 것이 보통이다.
“드낙 경, 일찍 오셨습니다.”
“일찍은 무슨 말씀을. 제가 가장 마지막인 듯합니다만.”
선두에는 18명에서 충원하여 30명이 된 〈전투 노예〉들이 제법 그럴듯하게 사열해 있었는데, 당연히 이실레아의 작품이었다. 짐마차 중에서 중요 물품이 있는 곳에는 드낙이 〈횃불 성채〉에서부터 데려온 노예 88명이 나누어서 배치되어 있었다.
“드낙 기사님.”
성기사 에이담이 아는 척을 했다. 드낙 또한 친한 사람을 만나듯이 빙긋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신전의 인물들을 얻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무식하게 낳고 죽어가고를 반복하며 몸집을 키울 생각이었는데, 그런 야만적인 방법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줄줄이 이어진 짐마차는 당나귀, 말, 준마, 소, 양 따위로 묶여져서는 일관성 따위 하나 없었다.
길고 긴 줄이 서서히 앞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 좋은 길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갈만했다. 여분의 나무 바퀴 또한 넉넉했다.
“하!”
마법사에 의해서 마법이 부여된 〈굴렁쇠 코뿔소 가죽 갑옷〉를 입고, 말에 탄 이실레아가 황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말의 속도를 높였다. 한창 가야 하는데 마차 한 대가 멈췄기 때문이다.
그녀의 뒤로 늑대들 15마리가 따라붙었다. 순찰대나 다름없었다.
“무슨 일이냐!”
거침없이 소리를 치자 허둥지둥하는 이들이 일순 멈추며 그녀를 바라보며 동시에 말했다.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며 눈살을 찌푸리자 그제서야 입을 다물고, 가장 가까이 있는 남자가 대답했다.
“그것이 기사님! 짐마차를 끌던 양이 앞으로 가지를 않고,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웠습니다.”
양 4마리가 묶여있었다. 이실레아는 마차의 짐을 몇몇에게 들게 하였다.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자가 한 명도 없었다. 그녀의 독기 어린 시선을 마주하고 딴 소리를 내뱉을 수 있다면 노예가 되는 게 아니라 병사가 되어야 했다.
그녀는 천천히 다시 말을 몰며 필요한 지적을 했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짐마차에 올라타며 조금이라도 쉬려고 하는 자들이었다.
“또 그런다면 아예 앞으로 보내겠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워낙 길이 길었고, 특수한 곳이 아니라면 탁 트인 곳이 〈버려진 영지〉였다. 멀리서 그녀를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꾀를 부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그러지 않았다고 해도, 그녀가 그랬다고 하면 죄가 되어버렸으니까. 그게 바로 신분의 차이였고, 지위의 차이였다.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엉엉. 발 아프아앙.”
아이들은 특히나 발이 아파지자 울었는데, 그럼에도 그녀는 가차없었다. 결국 아버지가 목마를 태워주거나 등에 업어야 했다. 고된 길은 계속 이어졌다. 빨리 도착하면 도착할수록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드낙에게 좋았다.
‘정말로 사람 만나기 힘든 곳이네.’
3일을 내리움직였다. 이실레아의 방식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녀가 말을 멈추는 빈도도 거의 없어졌다. 그리고 초원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곳곳에 나무가 홀로 있고, 주변은 풀로 가득했다.
“저기 보십시오. 야생마 무리입니다.”
이실레아는 특히나 말들을 좋아하는 모습을 가졌다.
“몰락하고 난 뒤로 저희 가문은 목장을 운영했습니다. 그 덕에 제가 이렇게 자유 기사를 할 수 있었지요. 평범한 농가였다면, 검 대신에 흙을 손에 쥐었을 겁니다.”
“그러시군요.”
드낙은 짧게 대답했다. 자유기사인 이실레아는 어디에서든 무슨 일이든 다재다능으로 뛰어나서 사적으로 말을 나누기가 어려운 여성이었다. 실력이 있기 때문에 괜히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점점 커져갔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해서 겉으로 드러낼 정도는 아니었다. 드낙의 처세술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었고, 친화력 하나만큼은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다.
“전에 마적들의 말을 한 번에 휘어잡으시던데, 야생마는 어렵습니까?”
“어렵습니다. 말을 탈 줄 아는 이가 다섯은 되어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야생마들은 포악해서···”
드낙이 웃으면서 말했다.
“농담으로 한 소리입니다.”
잡담만 나눈 것이 아니었다. 생명이 있는 초원지역에는 분명 적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에 대한 대비를 논하기도 했다.
초원을 달려오는 일단의 무리가 멀리서 관측됐다.
‘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의 구성을 본 드낙은 그들을 살폈다. 몬스터에 대한 지식을 쌓으려고 노력을 했기에 무엇인지 딱 알 수 있었다.
〈펄발드(Fur Bald)〉.
털이 북슬북슬 났지만 목부터 말끔하게 털이 사라져있는 휴머노이드 몬스터였다. 얼굴만 보면 파충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리자드맨이라고 하기에는 덩치가 작고, 털이 많았다.
털의 색상은 삼색부터 흰색과 검은색이 섞여있거나 갈색빛을 띄기도 하는 등. 워낙 다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야만적인 무기를 들고 있었다. 또한 체격은 사람보다 조금 못했는데, 150~160cm 사이를 오고 갔다. 큰 차이는 아니었기에 드낙의 세력을 보고도 달려오고 있었다.
“뭘 타고 있는 건지 보이십니까?”
“멧돼지입니다.”
“초원에 멧돼지가 삽니까?”
“의외로 안 사는 곳이 없습니다. 굴 파고도 사는 놈들이 멧돼지입니다. 사막이나 황무지를 제외하면···”
이실레아가 멧돼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태평하기 그지없었는데 그것도 그럴 것이 적은 고작 10여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고블린은 다양한 기술을 지니고 있었고, 크놀들은 제련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펄발드〉는 전혀 아니었다.
갑옷이 필요 없을 정도로 털이 굵고 단단하며 파충류의 장점을 지닌 휴머노이드 종족이었다. 쥐고 있는 창은 나무를 베이스로 돌을 날카롭게 갈아서 묶은 돌창이었다.
멧돼지들을 타고 달려온 그들을 보며 이실레아가 말했다.
“대열을 멈추게 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전투병들을 오는 방향에 세우겠습니다.”
“예. 하!”
이실레아가 준마의 옆구리를 한 번 툭 치면서 기합을 넣었다. 해당 훈련이 되어있는지 준마가 단번에 전력질주를 했다. 멈춰라는 이실레아의 목소리가 쩡쩡 울려나갔고, 늑대들이 그녀를 따라갔다.
괜히 전투의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그 효과는 대단했는데, 토성민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돌창을 쥐고 멧돼지에 올라탄 채 질주해오고 있는 펄발드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토성에서는 흙의 벽이 그들을 막아주었지만, 이곳에서는 아니었다.
“이스핀 부대장은 왼쪽으로! 도렌 부대장은 오른쪽으로! 병사들은 창을 높이 세워라!”
전투 노예 30명과 부대장들이 서둘러 움직였다.
그 앞에 드낙이 딱 섰다.
파충류의 몸에 목 밑으로는 털이 수북한 펄발드 10여 마리는 왼손으로 멧돼지의 턱밑을 촤촵, 거칠게 턱살을 만지면서 잡아당겼는데 멧돼지들이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는 단번에 눈에 들어왔는데, 앞가슴에 온갖 뼈들로 치장한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손에는 약탈해서 얻은 구리, 은반지를 끼고 있었다. 또한 몸에 난 털들이 윤기 없는 반백이었고, 나이가 들어 보였다.
노련한 펄발드 대장이 소리를 질렀다.
“켈레트씨아!!!”
시퍼런 혓바닥을 놀리면서 뭐라고 지껄였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거리는 고작 300걸음이었기에 당장 활을 쏴서 위협할 수 있었는데 대화를 하는 것 같자 이실레아가 일단 장궁을 내렸다. 휴머노이드 종족은 일단은 몬스터로 구분되지만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놈들이었다.
“어찌하겠습니까?”
드낙을 보며 말하자 드낙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펄발드들은 드낙 무리가 반응이 없자 멧돼지의 엉덩이나 옆구리에 단단히 고정해두었던 것들을 꺼내들었다.
두 마리가 펄발드 대장의 앞으로 나와서는 연기를 하듯이 시늉을 했는데, 펄발드 하나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면서 까치발을 들어 올렸다. 척 봐도 인간의 체형을 흉내 내는 듯했다. 키가 높다는 특징을 살린 것이다.
다른 펄발드는 야만스러운 행동을 했다. 가슴을 두드리거나 팔을 쩍 펼쳐서 성을 내기도 하였다. 자신들이 아주 무서운 종족이라는 것을 드낙에게 말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인간 흉내를 낸 펄발드가 대뜸 굽신거리면서 인간이 만든 것이 분명한 가죽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캬카캬!”
반대쪽에서 야만적인 모습을 하던 펄발드가 그것을 받으면서 크게 웃더니 가죽 주머니 안에서 곡물을 꺼내서 한 입 물었다. 바로 대장에게 한 대 맞았다. 아까운 양식을 입에 넣었기 때문이다.
“켁!”
그래도 입에 삼킨 것은 뱉지 않은 펄발드였다. 또한 손에 쥐고 있던 동물 가죽을 건네주었다. 그 모습을 본 드낙이 손뼉을 쳤다.
“거래를 하자는 거로군!”
“가죽과 식량을 거래하자는 것 같습니다.”
이실레아가 맞장구를 쳤다. 이에 드낙은 후방에 있던 게제라스를 불렀다.
“식량과 가죽을 거래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내가 아니라 저 펄발드들이 하자고 하는데.”
게제라스는 당연히 찬성이었다.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곧 겨울입니다. 동물 가죽은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또한 민심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은 크게 베푸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 어느 정도면 가능할까?”
“1인분이나 3인분에 소동물(小動物)의 가죽을 얻을 수 있으면 대박이고, 5인분의 식량으로 얻으면 중박입니다.”
먼저 가격을 맞추었다. 드낙이 짐마차 한 대를 병사들 앞으로 가져왔다. 그러자 펄발드 대장이 망설임 없이 멧돼지에 다시 올라타서 혼자 다가오기 시작했다.
‘대범한데?’
겁이 없는 놈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니 더욱 확실하게 펄발드 대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름이 곳곳에 있었고, 피부에는 검버섯도 피어있는 것이 나이가 많이 든 것은 확실했다.
그가 뭐라고 말했지만 드낙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안전한 것 같자 게제라스가 작은 가죽 주머니를 가져와서는 짐마차 위에 올라가서 1인분에 펄발드 대장이 쥐고 있는 토끼 가죽을 가리켰다.
그러자 펄발드 대장이 펄쩍 뛰었다.
“다루, 다룸!”
그리고는 손가락을 3개 폈다. 그 가죽 주머니를 3개 분량만큼 달라는 소리였다. 게제라스가 말했던 대박에 걸친 가격이었다.
“좋다. 좋아!”
게제라스가 고개를 끄덕끄덕이자 드낙도 끄덕였고, 펄발드 대장도 끄덕였다. 이들이 어째서 인간과 거래하는지는 몰랐지만 부락 특유의 지식인 듯했다.
소동물 가죽 10여 개와 물소의 두꺼운 털가죽이 하나 거래되었다. 펄발드 대장은 이리저리 살피는 시늉을 하면서 방향을 가리켰는데 어디에 가는지를 묻는 것 같았다.
드낙은 재미가 들려서는 팔을 쩌어억 벌리면서 ‘크다’라는 것을 말하며 길을 가리켰다. 그러자 펄발드 대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리저리 시늉을 했다.
입으로는 으르렁거리며 들짐승처럼 굴다가도 두 팔로는 열심히 뭔가를 만드는 척을 했다. 정답은 매우 집중해있는 드낙이 아니라 이실레아가 말했다.
“고블린입니다. 가는 길에 고블린이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초원을 벗어날 때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서는 가진 가죽들을 모조리 식량으로 바꾸었다. 게제라스는 짐마차 3대 분량을 모조리 가죽으로 바꾸었는데, 엄청난 이득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래된 가죽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방어구로 만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짐마차 3대가 비워지고, 다시 가죽으로 1대가 채워졌다. 훌륭한 거래였다.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까?”
드낙의 말에 게제라스가 말했다.
“굴에 사는 놈들 아니면 대부분 거래를 합니다. 물론 부락의 상태가 안 좋으면 닥치는 대로 덤벼들긴 합니다. 이 초원은 꿀이 떨어지는 곳인지 펄발드들이 여유로워서 이런 겁니다.”
“아하.”
환경따름이라는 것이다. 괜히 그들이 휴머노이느 종족이 아니었다. 드낙은 이곳을 〈파충류의 초원〉으로 이름짓고 현재 작성하고 있는 지도에 새겨넣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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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헌터 pc판이 출시되었습니다.
연참 시스템의 작동을 정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