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85화 (184/1,239)

0185 <-- 성기사 에이담 -->

“가만히 놔두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입니다. 귀족이든, 농민이든. 공평하게 신성력이 나누어질 것입니다. 썩혀 묵혀두는 신성력이 없기에 자연히 다른 곳보다 크게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곧 드낙 경이 가질 기반이 단단해짐을 의미합니다.”

그 말에 드낙이 대답했다.

“결국 저에게 주는 것은 신성력으로 만들어질 세상이라는 겁니까?”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에이담은 매우 진지했다.

“···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저에게 내어줄 것은 신성력이 뻗친 세상?”

“〈버려진 영지〉는 신성력을 사용하는 자가 없습니다. 그런 매력이 없다면, 다른 지역 신전에서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에이담은 그렇게 말하며 호소하듯이 말하였다.

“기득권층의 불간섭. 신전과의 상호 존중. 그것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엄청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체계에 불편함을 느끼는 자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드낙이 고민했다. 하지만 당장 대답을 하기가 곤란한 것이었다.

“저녁에 다시 한 번 봅시다. 제가 혼자 결정을 지을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상의를 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에이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드낙의 위에 누가 있느냐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 머무른 인재들과 상의를 할 것이다.

〈자신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은혜를 베푼다고 말하는 〈성기사 에이담〉의 헛소리는 사실 헛소리로는 들리지 않았다.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안 그랬다면 게제라스가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또한 드낙은 계속해서 에이담에게 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자리를 파(破)하고 싶어 하는 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너무 급하게 결정지으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물러설 이유는 충분하다.’

에이단이 담판을 지으려고 했기에 도리어 드낙으로서는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달리는 상대에게 무리해서 함께 뛸 마음은 없었다. 아직까지 〈성기사 에이담〉은 드낙과 한 배를 탄 것이 아니었다.

그가 담판을 짓고 싶으면 싶을수록 드낙은 시간을 버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드낙이 인사를 하며 빠져나가며 문이 닫혔다. 에이담이 작게 한숨 쉬었다.

‘분명 잘 풀리는 것 같았는데.’

자신의 이야기에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확정된 것이 하나도 없었고, 되려 자신의 생각만 저쪽에 많이 주게 되었다. 드낙은 대부분 동조하는 듯해 보였지만 자신의 입으로 ‘OK’를 한 것이 없었다.

“책임 회피라고 해야 하나요? 이야기를 들어보는 내내 드낙 경은 능구렁이 같은 면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머리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어디에 내놓아도 집사 정도는 할 것 같습니다만.”

〈사제 벨리타〉와 〈사제 엘리스〉가 단번에 다가오며 드낙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제3자의 입장에서 거리를 두고 대화를 들었을 때, 드낙은 훌륭한 청취자였다. 하지만 그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에이담은 거기에 낚였다고 할 수 있었다.

“그 정도 인물은 아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어. 보통 인물이라고 폄하해도 그 세력은 계속 커져나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처신을 잘하는 것을 보니 어디서 손해를 볼 자는 아니다.”

‘시종일관 내가 주도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드낙은 압박감을 느끼고 대화 내내 지고 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문제는 그 대화를 하면서도 드낙은 능숙하게 한국의 사회생활을 하는 이처럼 능숙하게 확실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훌륭한 청취자로써 에이담의 계획을 들으며 그 생각을 대부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자존심도 없는지 〈자신이 결정할 것〉이 아니라며 대화를 파(破)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효과적이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말하며 나가는데 뭘 어떻게 붙잡겠는가? 직접적으로 상의하겠다고까지 말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주관 따위, 재능 따위 없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기사로서는 굴욕적인 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도저히 귀족으로는 볼 수가 없는데.’

아무리 몰락했다고는 하나, 자유기사의 〈사명〉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선민사상에 절여있을 터여야 했다. 무언가 사건을 크게 겪은 것이 분명했다.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성기사 에이담〉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드낙에게 얻고 싶은 것은 〈불간섭〉 그리고 〈상호존중〉과 〈죄는 죄로 다스릴 것〉에 대한 것이었다. 애초에 쫓겨난 이유가 불의를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전은 그 역할에 미쳐서 권력을 탐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나 혼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신전이 괜히 귀족과 손을 잡은 것이 아니다. 필요악에 의해서 손을 잡았고, 그 손에서부터 시작된 타락은 점점 번지고 있었다. 그가 내쳐진 것으로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기도 했다.

‘새롭게 시작한다면, 모든 것을 바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하나의 벽이 남아있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총관 게제라스가 웃었다. 실수를 하지 않고, 섣불리 대답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드낙은 훌륭했다. 남들이라면 설레발을 치거나 하나 정도는 확답을 내어줬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저울이 기울었을 터였다.

드낙은 오랜만의 설전(舌戰)으로 머리가 띵했다. 역시 머리는 자주 써야 하는 법이었다. 나름 머리를 굴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게제라스의 임용으로 말다툼을 한 적이 드물었다.

“잘한 것 맞나? 솔직하게 말하면 도망친 것이나 다름없지. 하하하.”

드낙이 웃어 보이며 농담을 던졌다. 이에 게제라스가 크게 드낙을 칭찬했다.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정말로 잘하셨습니다. 특히나, 이것으로 에이담 성기사의 노림수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총관이 보시기에는 어떤가?”

게제라스가 당연하다는 듯이 즉답했다.

“마시면 독에 중독되어 죽을 맹독입니다.”

“음?! 하지만 분명 신전의 신성력은 꼭 필요하다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는 결코 우리의 울타리에 넣어서는 안 되는 자입니다.”

“필수적인 신성력을 버리더라도 말인가?”

게제라스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성기사 에이담은 위험한 자였다. 그리고 드낙이 생각 없이 멍청한 소리를 하니 게제라스는 작게 한숨 지었다. 물론 그런 드낙이기에 그가 몸을 담을 만했다.

물론 그렇게 얕은 질문을 하는 이유는 게제라스를 그만큼 신뢰하고 있어서였다. 〈버려진 영지〉에서 자신의 기반을 위해서 한 배를 탄 게제라스는 적어도 〈내정관〉과 관련된 다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믿어도 되었다.

너무 높은 수준의 탑에 손을 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처신은 잘하면서 생각이 얕은 드낙은 실로 게제라스에게 있어서 완벽한 군주였다.

“신성력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에이담은 독이지요. 독이 든 성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에 쥐기는 쥐어야 하는데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품어야 하는가, 버려야 하는가?”

“품어야 합니다. 하지만 목줄을 더욱 강하게 조여놓아야 합니다. 그리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가서 저희의 심장을 비틀어버릴 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듣고 싶은데.”

드낙 또한 짐작하고 있었지만, 게제라스의 입으로 듣고 싶었다.

“〈중앙신전〉과 대립할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친해져서는 안 됩니다. 언제든지 타오를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전의 체제를 무너뜨릴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 각오가 없었다면 〈버려진 영지〉로 흘러들어오지 않았을 겁니다.”

게제라스는 썩은 단어를 내뱉듯이 이어 말하였다.

“말 그대로 반골 중의 반골. 그를 품는다는 것은 멀리 보았을 때,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럼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은 또 다릅니다. 이용할 수 있는데, 이용해야지요. 포기하기에는 〈신성력〉은 필요합니다.”

“저울질을 잘 해야겠군.”

드낙의 말에 게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실로 들여다보면 말도 안 되는 것들뿐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곳을 파고들면 괜찮은 답안지가 나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이득을 취한다?”

“예. 〈불간섭〉에는 불간섭을. 〈평등〉에는 공정과 공평을.”

하지만 그 말에 드낙은 불안함을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신념 있는 성기사였다. 일이 잘 풀릴 리가 없었다.

“하지만 기득권과 각을 세우고, 불의를 못 참는다면 어찌하나?”

“드낙 님. 결국에는 명분론입니다. 민심을 잡는 놈이 이기는 싸움이 바로 불의입니다. 최소한 흑백을 확실하게 가려내지 못하게만 해도 그는 스스로 자신의 목을 움켜쥘 것입니다.”

반만 가면 된다는 소리였다. 자신들의 힘이 있기 때문에 결국 건드리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드낙은 그 뒤에 대해서 물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안위가 가장 중요했다.

“만약 이곳에 내려앉은 〈지역 신전〉의 힘이 우리를 뛰어넘었을 때는?”

그 말에 게제라스가 빙긋 웃었다.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울타리를 원하고 있지만, 그 울타리 속에서 팽창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매우 자신이 있어 보였다. 시작부터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드낙은 그런 게제라스를 믿기로 했다.

“불간섭을 이용한다는 것은 뭔가?”

“그가 우리의 간섭을 원하지 않듯이, 그가 우리를 간섭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연한 이치 아닙니까?”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디로 같은 곳에서 활동하지만 알아서 서로가 벌이는 일에 간섭하지 말자는 소리였다.

“불편한 일이 있더라도 참을 수밖에 없겠군.”

“한두 번은 부딪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연금술사도 없는 저희들은 신성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가 먼저 입을 연다면 〈불간섭〉을 말하고 상응하는 대가를 달라고 말하면 됩니다.”

부딪쳐도 품으면 이득이라는 소리였다. 적어도 〈버려진 영지〉에서는.

“···그럼 평등을 이용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평등(平等)이 진실로 공평(公平) 한 지 공정(公正) 한지는 또 다른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 진흙탕으로 끌고 들어오면 별 수 없을 겁니다.”

“예를 들면?”

“군사력에 대한 것입니다. 남들을 대신하여 싸우는 만큼 그들은 위협에 더 많이 노출되는 법입니다. 그런 자들과 일반 시민을 비교하였을 때, 누구를 위해서 신성력을 사용해야 합니까?”

“평범하게 생각하면 둘 다 똑같아야 하는 것 아닌가?”

“예.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울타리 밖에 있는 병사가 자주 다치는데, 그들이 언제 팔이 떨어져 나가서 신전을 찾아올지 압니까? 하지만 그 빈도는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신성력이 질병 하나만 치료할 정도라면?”

“······”

“누구보다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자에게 신성력을 내려주지도 못하는데 무엇이 평등입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말한다면 에이담 성기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공평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서 신성력이 다르게 부여되어야지만 비로소 공평한 겁니다. 병사를 위해서 신성력을 남겨둘 수밖에 없을 겁니다.”

드낙이 실로 감탄했다.

“이미 모순된 가치라는 것이로군.”

“예. 남을 지키기 위해서 병사가 된 자가 치료도 못 받고 그대로 불구로 남는다면. 그 상황 자체를 이용한다면 크게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게제라스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늦게 터트릴수록, 그 효과는 배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게제라스는 다른 말도 했다.

“반골이지만 중앙 신전과의 다툼을 그리 쉽게 내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침에 저를 속였을 정도의 인재라면 자신의 욕망 때문에 일을 그르칠 자는 아닙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자일 수도 있습니다.”

게제라스가 이야기를 종합해서 드낙에게 정리하여 말하였다.

“결론은 그와 손을 잡으십시오. 허나 불간섭을 통해서 그의 간섭을 우리 또한 받지 않게 하도록 하고, 평등함에 대해서는 모른척하십시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그가 하는 것을 봐서 터트리든, 타협하든 하면 됩니다.”

“또한 그는 저희들에게 목숨을 빚졌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확실하게 받아내야 합니다.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는데, 어림도 없습니다. 사제 하나를 시민을 지킬 울타리를 위해서 봉사하라고 하십시오.”

말을 마친 게제라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드낙의 표정을 살폈다.

‘에이담의 행동에 따라 향후를 살핀다. 괜찮은 방법이다.’

그는 웃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기사 에이담〉과의 협정이 마무리되었다.

서로에 대한 불간섭. 신성력의 평등함. 목숨을 빚진 대가로 사제 한 명을 드낙 무리의 소속으로. 서로 상호 존중하는 것이 적힌 협정이었다.

에이담은 가장 중요했던 신성력의 평등함을 손에 넣었으며, 서로에 대한 불간섭을 통하여 팽창할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서로에 대한 상호 존중이라는 애매한 조항을 넣어서 나중에라도 이를 통해 계약을 변경할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

드낙은 신성력의 평등함을 통하여 함정을 후벼파서 집어넣었으며, 은혜를 입힌 대가로 사제 하나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상호 존중의 조항으로 언제든지 부딪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에이담의 말에 드낙이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이것이 최선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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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의견 감사합니다. 덕분에 더 좋은 글이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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