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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84화 (183/1,239)

0184 <-- 성기사 에이담 -->

〈성기사 에이담〉의 진지한 대답에 드낙이 빙긋 웃었다. 속으로는 위선자 취급을 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실로 그런 대답에 동의하며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드낙은 그를 믿지 못했는데, 오메인에게 데인 적이 있고, 사람의 마음은 어찌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로 악수를 나누며 이야기를 더욱 나누었다.

“하하하. 역시 중립신을 믿는 분들이십니다. 이런 곳에까지 만인(萬人)을 위해서···”

드낙의 혓바닥이 입술을 훑으며 침을 묻혔다. 에이담은 고개를 숙이며 그 칭찬을 받아들였다. 몸은 받아들였는데, 입은 달랐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여기에 오시기 전에는 어디서 활동을 하셨는지···?”

“아! 저희들은 남부 지방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며 마을을 오고 가며 병사들을 치료하고, 작은 몬스터를 토벌하다가 〈버려진 영지〉로 오게 되었습니다.”

드낙이 매우 깊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런 태도 때문에 에이담은 막힘없이 자신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위선 같다기보다는 정말로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빛의 전령이랑 생각 자체도 다르고.’

드낙을 의심하는 모습 하나 없었고, 그가 가진 영향력이나 자원을 이용하려는 생각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신성력〉은 인간을 위해서 쓰여야 한다는 것과 귀족과 싸웠던 이야기도 할 정도로 솔직했다.

드낙이 안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채 말했다. 이런 근황은 이미 다른 이의 입으로 전해 들었기에 흘려들어도 상관없을 정도였다.

“게제라스 총관이 아침에 이미 말했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예. 저도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드낙 경이 토치라이트 가문에게서 받은 토지에서부터 〈지역 신전〉을 이 땅에 박게 노력하겠습니다.”

훌륭한 대답이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었는데, 드낙이 도와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호구녀석.’

이미 〈총관 게제라스〉에게 아침에 그들에게 방문하여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한 번 파악하라고 지시했던 드낙이다. 돌다리도 한 번 건드렸으니 드낙은 안심하고 그 돌을 밟고 있었다.

“이렇게 위험한 곳에 온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네? 아, 궁금하긴 궁금하군요. 저야 토지를 받았으니 향한 것이지만···?”

드낙이 순간적으로 의문을 띄웠다. 이미 들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이담은 말을 이어나갔다.

“작은 마을 하나를 위해서 귀족의 삼남과 싸움이 붙었습니다. 마을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모아서 질펀하게 몸을 섞으려고 했던 놈이죠. 병사들이 흉흉해서 누구도 나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몸에 밴 여성까지 끌어들이려고 했죠.”

드낙이 단박에 눈을 찌푸렸다. 생각만 해도 추잡스럽고, 더러운 짓거리였다.

“아주 천하의 죽일 놈이군요. 잘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사실 지금 그렇게 한 것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아주 간사하죠··· 평민을 위해서 귀족과 싸운 것은 평생 가도 잊지 않을 기억이었습니다.”

그 말에 드낙이 손사래를 쳤다.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서 해야 할 일입니다. 나서서 마을 하나를 구한 것 아닙니까?”

그 말에 에이담이 대답하면서 기회를 잡은 눈을 했다. 부드러운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하기 시작했다.

“예.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남부 지방을 떠나야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고백이었다. 그것은 인위적인 수법이었고 당연히 드낙의 눈이 좁아졌는데, 에이담은 그 표정을 보고는 씨익 웃었다. 얇은 그의 입술은 실로 미남의 정석이었다.

테이블 위에 양팔을 올리며 그가 조금 상체를 앞으로 기울었다. 그 모습에 드낙이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함정? 아니, 뭐지?’

그의 분위기가 호구스러운 성기사에서 순식간에 날카로움과 여유로움을 지니게 되었다.

〈신념〉으로 가득 찬 푸른 눈동자가 타오를 것처럼 열정을 뿜어냈다. 드낙은 직감적으로 이 성기사가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강제로 떠나야 했다니.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겠습니다.”

드낙이 상투적인 말을 띄웠다.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에이담이 다시 의자에 등을 대며 몸을 뒤로 뺐다. 누그러진 기세를 가졌다.

“예. 본래라면 북부로 가야 했지만 저는 그곳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드낙은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는 두려움이 생겨 다른 질문을 뱉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왜 그런 말을 제게 하시는 겁니까?”

그 물음에 순간적으로 에이담의 눈에 실망감이 서렸지만 금방 사라졌다. 도리어 드낙에 대한 믿음마저 가졌다. 저렇게 부족한데도 여기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그의 주위에서 그를 받쳐주는 이들이 있다는 소리였다.

“아침에 저희를 방문했던 게제라스 총관과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습니다. 그저 근황일 뿐이었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모르는 것도 없고,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주관이 확고하신 데다가··· 병사가 게제라스 총관을 굉장히 어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게제라스 총관〉에게 큰 영향력을 병사에게까지 뻗치게 한 드낙이 다른 자들에게 주는 믿음. 그것은 드낙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분업(分業)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그저 일을 나누는 것은 공을 나누는 것과 같았다.

그것을 오롯이 일을 해결한 자에게 주는 드낙은 군주로서의 면모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그것은 훌륭한 파트너를 불러오는 마력이기도 했다.

남에게 큰 재량권을 주는 드낙에게 이끌린 에이담이었다.

게제라스에 대해서 말하며 그것을 돌려 말했지만 드낙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경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

‘괜히 나불거려봤자 나만 손해다.’

게제라스의 깊은 생각을 여러 번 접하면서 때로는 다무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은 드낙이었다. 지금 상황은 그에게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드낙 경, 이 버려진 영지는 말입니다. 자유기사든 귀족이든 이곳으로 흘러들어오는 자는 모두 패배자들뿐입니다. 저 또한 비슷합니다. 남부에서 귀족과 문제를 일으켰고, 〈지역 신전〉은 저를 좌천 시키듯이 북부로 쫓아냈습니다.”

한숨을 한 번 쉰 에이담은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총관에게서 들은 말은 제법 달랐습니다. 그는 저를 매우 헌신적인 성기사로 생각하고 있던데 전 그렇게 호락호락한 성기사가 아닙니다.”

드낙이 눈썹을 찡그리며 손으로 문질렀다. 게제라스가 말실수를 하고 더 많은 정보를 그에게 건네준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성기사 에이담은 기이한 열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무엇인지 몰라도 내가 에이담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드낙이 손을 들어 올리며 일단 에이담의 입을 막았다. 그는 이 이야기를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답답했다. 계속해서 에이담에게 끌려가는 기분도 들었기에 아예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길 원했다.

짝!

손뼉을 치며 드낙이 말했다.

“솔직하게 말합시다. 저에게서 원하는 것이 뭡니까? 시원시원하게 갑시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드낙 경의 배에 타고 싶습니다. 승선을 허락해주십시오.”

“······어째서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까?”

“말했다시피 드낙 경께서는 저와는 다르게 스스로 이 버려진 영지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 각오. 그 비전. 그 마음가짐 그리고 당신을 따라온 인재들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는 드낙이 생각하는 것보다 컸다.

〈성기사 에이담〉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다. 〈남부 왕국〉의 수도가 있는 남쪽 지방에서 기득권과 각을 세운 것이다. 그것도 평민을 위해서.

북쪽 지방에서도 그런 일은 〈지역 신전〉의 손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수도에서···〈빛의 전령〉도 아닌 성기사가 귀족과 각을 세운다? 빛의 전령이라는 완충제 없이 벌인 일이었다.

당연히 좌천되고도 남았고, 죽지 않은 것이 용했다. 남부 지방의 지역 신전은 그를 도와주지 않고, 다른 곳으로 방출하는 것으로 일을 해결했다.

아무리 좋은 신념을 가져도 세울 때와 접을 때를 모르면 발에 걷어차이고, 정을 맞는다. 착한 사람은 항상 먼저 나서고, 일을 해결한 뒤에는 소리 소문 없이 내쳐진다. 누구도 그를 돕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최소한의 인복은 있었다. 다섯이나 되는 사제들이 그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부보다는 아예 버려진 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북부 지방인 메디오 지방으로 향하기에는 그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컸다.

“완전히 새로운 시작. 저는 그것을 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습니다.”

“너무 거창한 것 아닙니까?”

그 말에 에이담이 즉답했다. 강렬한 열망이 그의 입에서 토해지는 것 같았다. 드낙은 팔뚝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엄청난 기백이었고, 무엇보다 깔끔하게 그것이 피부를 타고 올라와 가슴에 스며들어왔다.

“그런 목표조차 없다면 애초에 이곳으로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드낙 경을 만났습니다. 운도 이런 운이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런 말에도 드낙은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믿을 수 없다.’

〈성기사 에이담〉과 대화하면 할수록 그는 진국이었다. 진실로 현 신전의 시스템과 체계를 부정하고 완전히 새로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그 시작점이 바로 〈버려진 영지〉였고. 모든 것이 그럴듯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믿지 못하시는 눈치로군요.”

믿지는 못하지만 자신과 한 배를 타고 싶다고 말한 에이담 때문에 드낙도 거침없이 말했다. 오히려 지금이 서로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때였다.

‘대화를 더 깊게 끌고 가보자. 더 많이 말하게 만들어보자.’

“네. 사실 〈횃불 성채〉에서 빛의 전령 오메인에게 한 번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

그 말에 에이담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중앙 신전〉의 놈들은 지역 신전에 속해있었던 그도 싫어하는 족속들이었다. 〈흑마법사〉 〈악의 사교도〉 〈네크로맨서〉 같은 자들을 죽이기 위해서 인명(人命)을 경시하는 자들이었다.

에이담과는 상극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에이담의 반응에도 드낙은 꿈쩍도 안 했다. 그에게는 더 강한 확신이 필요했다. 그가 지금의 신전에 불만을 가지고 있더라도 완전히 믿지는 못했다.

드낙은 지역 신전의 상승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신전에 몸을 담은 에이담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확신이 필요하다면 그 부분을 긁어주면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에이담이 추구하는 곳이 아니기도 했다. 개혁을 위해서 왔는데, 귀족과 타협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고, 모순이었다.

‘부러지지 않았고, 기울어지지 않았기에 여기까지 왔다.’

그것을 굽힐 생각은 전혀 없었다.

“······”

말을 잊던 에이담이 딴소리를 했다.

“무엇이 걱정입니까? 그것보다 드낙 경께서는 지금 〈신성력〉이 가장 필요할 때가 아닙니까?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은 또 찾아오겠죠. 특히나 이런 척박한 곳에서는 신성력만큼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말을 돌리시다니,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과는 다르십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당연히 하나뿐입니다.”

그러자 〈성기사 에이담〉이 먼저 선수를 쳤다.

“절대로 신성력의 분배에 대해서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것만은 약속하십시오. 어차피 내년 여름이 되면 신성력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으면 겨울에도 저희가 필요하다고 여기실 겁니다.”

“으, 음.”

자원에 대해서 말을 뱉으려던 드낙이 다시 말을 쏙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서는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에이담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신성력의 독점!’

귀족들을 위해서, 기득권층을 위해서 항상 신성력의 여분은 남겨둬야 한다는 것. 그것을 걱정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반응은 실로 명확하게 표정에 드러났지만 에이담은 무엇 하나 짐작해내지 못했다.

오히려 역으로 드낙이 정곡을 찔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되려 드낙에게 기회였다.

“신성력의 분배에 대해서 신전에게 모든 걸 일임하면, 무엇을 내주실 생각이십니까?”

그 말에 〈성기사 에이담〉이 실로 진실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뿐입니다. 중립신이며 모든 신들을 이끌며 항해를 떠나셨던 엘 마르토 카사다민. 그분을 닮으려고 노력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정확히 무슨 말입니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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