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2 <-- 바세안 토성 -->
드낙이 〈촌장 바세안〉을 죽이고 얻은 〈검은 문〉은 여전히 〈피의 악신 아토라신〉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피, 살덩이, 내장이 흐르고 떨어지고 튀어나오는 곳이었지만 그와 관련된 힘은 획득하지 못했다.
〈신의 힘〉이기에 〈촌장 바세안〉을 죽여서 얻는 것은 아닌 듯했고, 만약 가능하더라도 악신이 곱게 내어줄 리가 없었다. 드낙은 악신의 기괴함과 섬뜩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드낙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또한 하찮은 놈이라도 사교도가 되는 것만으로도 〈검은 문〉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를 죽이고 얻은 〈검은 문〉은 황당하게도 〈대장장이 기술〉이었다. 평범한 수준의 대장장이 기술을 주는 검은 문이었다.
‘나쁘지는 않지만.’
짐작이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광물을 얻기 힘들지만 약탈을 통해서 획득이 가능했고, 그것을 다시 녹여서 필요한 것을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마을에서 순식간에 높은 지위를 얻었을 것이다.
〈촌장 바세안〉의 가계도는 대장장이의 가문이었던 것.
그 이후로 게제라스에게서 진행된 심문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피의 신도〉들은 정확히 18명으로 모두 포획되었다. 그들 중 다섯 명은 사악한 단검을 가지고 저항을 했는데, 처참하게 창칼에 온몸이 난도질당했다.
숨겨둔 단검을 꺼내든 순간 전투 노예들이 너도나도 무기를 찔렀기 때문이다.
실전을 경험하고 난 뒤로는 무기를 쥔 놈에 대한 손속이 크게 매서워진 전투 노예들이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한 번 마주하고, 전투에 대해서 체감하고 안 하고는 큰 차이였다.
“배신자들아아아아아!!!!”
“죽어서 그분을 뵐 낯짝도 없는 쓰레기들아아아!!!”
13명의 피의 신도들은 고함을 지르면서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한 누군가를 노리고 소리를 지르다가도 전신갑주를 입은 드낙을 보고는 입을 다물고 눈을 깔았다.
“조용히 하라.”
“······”
“이놈들의 신체능력은 제법이니, 쇠사슬로 온몸을 칭칭 묶어야 할 것이다!”
“예!!”
쇠사슬로 꽁꽁 묶인 13명의 피의 신도들이 따로 격리되었다.
급한 일이 지난 뒤에서야 겨우 〈원탁 회의〉가 열렸다.
전투로 하루. 그 뒤의 수습으로 하루를 보내고 3일 만에 중요 인물들이 모이게 되었다. 앞으로에 대해서 정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기 위함이다.
회의의 진행은 게제라스가 맡았다.
“가장 급한 불은 껐습니다.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피의 신도〉들을 모조리 색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13명을 더해서 신도들의 숫자는 17명입니다. 그들은 모두 토성에서 얻어낸 쇠사슬로 묶어놓았습니다.”
“이다음에 논의할 것은 바로 토성의 주민들에 대한 처우입니다.”
게제라스가 자리에 앉자마자 드낙이 먼저 그의 생각을 물었다.
“총관의 생각은 어떤가.”
“크음.”
그가 헛기침을 한 번하고 발언했다.
“심문작업을 도와준 이들에 대해서 먼저 우대를 해줘야 합니다. 그들을 상(上)으로 분류하여 뭐든 일에서 먼저 선택권을 주거나, 다른 자들에 비해서 휴식 혹은 배분되는 식량에 우위점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몰라서 말 못 한 이들도 있겠지만, 알면서도 무시한 자들도 있기 때문에 신도들에 대해서 말을 해준 자들에 대한 우대는 확실히 필요했다. 그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좋았다.
작은 차이라도 크게 보일 것이다.
“가족단위의 분류도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난리통에 헤어진 가족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일단은 양피지가 부족해서 그들이 짊어질 죄목을 구두로 말해주는 것 또한 진행해야 합니다. 사교도에 가담하였기에 횃불 성채로 호송하느냐,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살아가겠느냐,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당연히 후자를 택할 것이다. 노예로 3년을 일해도 후자가 나았다. 여기까지 말하고 게제라스가 다른 이들과 눈을 하나하나 맞추었다. 혹여나 의견이 있다면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모두 별말이 없었다. 게제라스의 말이 그럴듯했고, 그 이상으로 뭔가 말할 것도 없었다. 드낙은 〈어린 아이〉에 대해서 말을 해볼까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이 세상에서는 어린이날도 없을 정도로 아이에 대한 처우가 엉망이었다.
어린아이는 그저 어른의 하위 대체재에 불과했고, 놔두면 알아서 크는 것들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비록 신전이 있다고 해도 열에 다섯은 크기도 전에 죽기 때문이었다.
애지중지해도 죽기 일쑤라서 하나 더 낳는 마인드가 보통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끔찍이 자기 새끼를 아끼는 자들 또한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없는 듯했다. 드낙이 주도적으로 아이들을 보살필 정책을 내놓기에도 궁색했는데, 어린아이가 제공하는 노동력을 생각한다면 그냥 어른 하나 더 잘 먹이는 게 좋았다.
‘그래도 한 번은 말하는 게 좋겠지.’
〈피의 괴물〉 때문에 대충 200명 이상이 매몰되었고, 전투에서 100명 내외가 죽어나갔다. 그 때문에 고아들이 많이 생겼는데 그 숫자는 거의 150명이 넘었다.
“가족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는게 좋겠는가?”
자신의 생각을 접어두고 물었다. 이 또한 게제라스가 대답했다. 행정과 내정에 관련된 것은 그가 가장 특출나게 공부한 것이었다.
“이곳에 남겨두는 것이 가장 현명합니다. 150명을 돌보려면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앞으로 이 척박한 땅을 개간하고, 저수지를 만드는 생각만 해도 뼈가 아릴 정도의 노동력이 크게 필요합니다.”
남겨둔다는 말은 사실상 버린다는 뜻이었다. 어린 고아들은 이곳에서 굶어죽거나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실패를 거듭하며 야인처럼 살아갈 것이다.
냉정하지만 현실적인 말에 도렌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제법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고, 많은 가족과 살을 부대끼며 자라왔기에 특히나 인성이 따뜻했다. 도렌이 입을 열어 반대했다.
“그래도 버리는 것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전에도 총관님이 인구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린아이는 노동력을 크게 제공하지 못합니다. 실수도 많이 하고, 힘도 약합니다. 제가 원하는 인구는 아닙니다. 여자아이라면 모를까. 지금 저희가 이끌고 가야 할 토성의 시민만 900명입니다. 그들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빠듯한데, 고아들 150명까지 책임을 진다니요?”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게제라스가 반박했다.
“하지만···”
게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낙의 표정을 읽어보니 제대로 한 번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가족 없는 어린아이들을 위해서는 못해도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줘야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제국에도 고아원이 있지만 그건 기반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저희의 상태는 현재 유목민이나 다름없습니다.”
“또한 곧 가을이 다가오고 겨울이 올 텐데 내년 여름까지는 사실상 식량을 대량으로 얻을 길이 없습니다. 입을 줄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말했다시피 150명의 고아들은 제대로 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굳이 저희들의 자원을 내어줘서 키울 필요도 없고요. 손해입니다. 손해. 아이들은 가족의 품에서 키우는 게 가장 돈이 안 듭니다.”
냉정한 말이 오고 갔는데, 특히나 주관이 강한 게제라스는 거침없이 날것만을 이야기했다. 한 마디로 제국처럼 크게 부흥한 나라가 아니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이었고, 이득이 전혀 없었다.
“자라서 갚게 하면···”
“노예를 사는 것이 차라리 이득입니다. 5년 동안 곡물만 먹이고 키워도 얼마입니까?”
도렌이 이내 입을 다물었다. 게제라스가 이야기를 정리했다.
“가족 없는 어린아이는 토성에 두고 가야 합니다. 저희들이 향해야 할 토지의 상태가 어떤지,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아무런 도움 안 되는 150명이 넘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게제라스는 손을 들어 올리며 확정적으로 말했다.
“150명이 넘는 아이들을 관리할 인력, 그들이 장성할 때까지 소모되는 자원. 모두 저희들에게는 여력이 없습니다. 만약 한다면 부대장들은 물론이고, 노예들 중에서도 가려내어 투입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쓸데없는 곳에 투입되는 〈관리 인력〉과 〈필수 소모 자원〉.
“자연스럽게 노동력이 감소할 것입니다. 1년 내지는 3년까지 필요 노동력이 애 돌보는데 쓰일 겁니다. 그 반대급부를 감당할 정도로 아이들의 가치가 높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동력의 감소와 아이들의 무가치성.
“마지막으로 저희가 향할 토지에 대한 환경과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큰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변수의 증가.
도렌은 입을 우물거렸다. 그저 감정만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고 싶었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드낙 또한 아이들을 데려가서 고아원을 만들 생각을 바로 접었다.
범죄자 인권을 생각하는 현대에서야 어린아이가 아주 소중하게 여겨지지 이런 곳에서는 그냥 실수 연발에 〈애송이〉라 불리는 시절을 겪고 나서 어른 대접을 받는다. 보험 따위 없으며 피임조차 불가능한 세상이었다.
그 피비린내 속에서 고아원을 짓기에는 드낙이 가진 상황이 언제든지 악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낙은 머리를 굴렸다.
“고아원을 창설해서 그들을 영지에 충성하게 만들어 사병으로 삼는 것은 괜찮지 않나? 매우 충성도가 높을 것이다.”
게제라스는 잠시 고민했다.
“괜찮은 방법입니다. 충성도가 높은 병사로 만들기에는 좋습니다. 가족을 잃었으니, 정신무장을 어렸을 때부터 시킨다면 노예들보다 더 강한 병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했듯이 저희의 상황이 그리 좋은 건 아닙니다.”
“식량을 엄청난 양으로 얻었으니 한 번 해볼만하지는 않나.”
드낙의 거듭된 말에 게제라스가 자신의 주관을 접었다. 사실 상황만 좋으면 그도 고아들을 병사로 만들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드낙이 스스로 강하게 주장했으니 추진해볼만했다.
“일이 잘만 풀리면 군사력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 번 크게 추진해봤으면 한다.”
“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자원이 투입될 것입니다. 그것만 생각하고 계셨으면 합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못해도 150명의 고아 중에 100명은 살아남지 않겠나 싶었다. 100명의 충실한 병사들이 벌써 눈에 선했다.
게제라스는 결코 병사 100명을 유지하는데 1만 명의 인구가 필요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고아를 병사로 만드는 말은 말 그대로 제대로 된 봉급, 제대로 된 무구를 챙겨주지 않는다는 뜻이었으니까.
말 그대로 용병처럼 쓴다는 것이었다. 명칭도 병사라고 쓰지 않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드낙 자경단〉 정도면 족할 듯했다. 드낙의 이름을 써서 자긍심을 주는 것과 동시에 자경단이라 이름을 붙여서 병사는 아니라는 것을 명시하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 좋을 수도 있다. 전투가 많이 일어날 수 있으니, 급하게 고아들을 병사로 쓰는 것은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죽어도 슬퍼하는 이가 없기에 크게 장례를 치러줄 이유도 없었다.
게제라스는 오히려 드낙의 말로 또 다른 생각도 가졌다. 마을 대부분이 강도짓을 일삼고 있다면 전투는 빈번하게 일어날 터였다. 잔인한 말이지만, 어린 병사들을 써서 전투를 이겨낸다면 신체 건강한 농민들을 더 많이 살릴 수 있었다.
‘고아병사는 능히 묘수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드낙과 게제라스가 생각하는 것이 서로 크게 다름을 의미했다. 게제라스는 소년병을 생각했지만 드낙은 그들이 장성해서 정예 병사가 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드낙을 제외한 이들 모두가 소년병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다. 머릿수만 채워줘도 진형을 갖출 수는 있으니까.’
비단 게제라스만 소년병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실레아 또한 화살받이로 고아들을 사용하자는 소리로 알아듣고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현대인의 양심이 찔려서 최소한으로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말한 것이 뒤틀려서 전해졌다. 드낙의 어린이에 대한 생각이 도리어 고아들의 손에 창칼을 들게 만든 것이다.
게제라스가 딱 생각을 마쳤을 때, 보고가 하나 올라왔다.
“특수한 장소에 대한 정보를 토성 시민들에게서 획득하는 와중에 〈지하 감옥〉에 중립신의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갇혀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전투 노예의 말에 모두가 일어났다. 특히 게제라스는 빠르게 다그치기도 했다.
“서둘러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지역 신전〉이 망했다고 봐도 무방한 〈버려진 영지〉에 사제와 성기사라니? 큰 수확이었다. 그들을 돕는다면 자신들의 토지에 신성력이 자리 잡을 터였다.
========== 작품 후기 ==========
5900자
추천 감사합니다. 어린이에 대한 언급이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하지만 피비린내나는 전쟁과 전투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노약자임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는 최대한 언급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