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1 <-- 바세안 토성 -->
쿠웅!
그어어-!
“···!”
기어서라도 드낙에게 향하려고 했던 〈피의 괴물〉은 끝내 무너졌다. 거칠게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몸 곳곳이 재가 되면서 흩날렸다.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악어의 아가리처럼 길고 두툼한 괴물의 머리도 사라지고, 그저 타면서 죽어가는 거체(巨體)를 지니고 있는 〈촌장 바세안〉의 일그러진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끔찍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피의 괴물〉의 육신이 사라지면서 이내 인간 크기로 되돌아온 그의 다리에는 화염이 가득했다.
“끄, 끄아아악! 아아아악!!!”
촌장이 타는 발을 잡았다가 손으로까지 번지자 버둥거리며 구르고, 흙으로 덮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법 불꽃이었기 때문이다.
“죽여줘! 죽여줘어어어어!!!!”
촌장이 발악하면서 드낙의 앞에 다가왔다. 드낙은 거침없이 그의 목을 베었지만 살덩이가 들러붙더니 다시 촌장이 눈을 부릅 뜨면서 정신을 차렸다.
“으, 으히히히히!! 히히히히히히!!!”
미친 웃음소리를 내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양손을 모아서 구걸했다.
“제발! 으흐흐흑! ···아토라신이시여!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모두 가져가십시오! 제발!!!”
피를 토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보는 이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귀를 막을 정도로 피맺힘이 가득 들어있는 울부짖음이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 채 마법 불꽃은 점점 촌장을 더욱 잠식해 들어갔다. 사도라서 그런지 번져나가는 것이 느렸다. 또한 따로 추가로 화염 마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촌장은 계속해서 고통에 몸부림쳤다.
“마, 마법을 취소해! 취소해주십시오! 그륵, 그뤠엑. 꺾. 꺽.”
말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목젖이 새까맣게 타다가 다시 재생되기를 반복하면서 촌장이 헛구역질을 했다. 끝없이 재생되는 몸!
‘빌어먹을.’
드낙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촌장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힘〉이 그의 생명을 억지로 되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몸이 계속해서 재생되다 못해 정강이에서 발이 하나 더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촌장 바세안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얼굴에 어찌나 힘을 많이 주었는지 이가 부러지고, 잇몸이 뭉개지며 피가 주르륵 침과 뒤섞여 타들어가며 바닥에 투둑하고 흘러내렸다.
그것은 악신 아토라신의 사랑이었다.
계속 그를 재생시켜주고 있었지만 인간의 정신은 결코 무한하지 않았다. 이미 촌장의 전의(戰意)는 화상의 고통으로 꺾여나간지 오래였다.
태아처럼 웅크리자 그제서야 마법 불꽃이 팡하고 소리를 내며 터져 사라졌다.
“······”
축 늘어진 촌장은 죽은 것이 확실했다. 악신의 총애가 사라진 것이고, 〈피의 사도〉로서의 힘이 그 몸에서 떠났다.
목을 벤 드낙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피의 악신(惡神) 아토라신〉의 힘이 두려울 정도로 대단했고, 사도든 신도든 죽기 위해서는 아토라신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 허락 없이는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는 소리였다. 정신이 붕괴해도 그 육신은 계속해서 마법 불꽃에 타오를 지도 몰랐다.
‘지독하다.’
결코 큰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놈이었지만, 그저 힘을 바치는 것만으로도 악신의 총애를 받은 것이다. 일순 호구스러운 신이라고 생각한 드낙은 그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저 끔찍한 악신이었다. 오히려 그렇게 죽여달라고 애걸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자신의 힘을 주는 것일지도 몰랐다.
‘끔찍하다. 끔찍해.’
모든 것이 끝이 났다. 단신으로 〈피의 괴물〉을 토벌한 드낙에게 덤빌 생각을 하지 못하는 〈피의 신도〉 5명이 무기를 버리고 손을 들어 올렸다. 그들은 잔해를 뒤져서 알아서 밧줄을 찾아 서로 묶었다.
〈피의 괴물〉이 날뛴 토성의 중앙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못해도 백 명 이상은 매몰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을 구할 노동력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런 판단을 내리는 것은 드낙이 아니었다.
득과 실을 저울질하여 게제라스가 말해줄 것이다.
흥분이 사그라든 드낙은 가장 먼저 마을의 유일한 출구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진지가 구축되어있었고, 노예 이십여 명이 보였고, 이실레아가 눈에 딱 들어왔다. 그들 주위로는 시체가 많았는데 못해도 칠십구는 되어 보였다.
초전(初戰)에 오십 명이 죽었으니 나머지 20구는 드낙이 빠져나가고 나서 생긴 시체들이었다. 드낙은 자신이 끌고 온 자들을 양도하며 말했다.
“피의 신도들과 오면서 투항한 자들입니다. 따로 포승줄로 묶어주십시오.”
“네. 그러하겠습니다. 다치신 곳이 있습니까?”
드낙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쪽으로 들어섰다. 몸에 힘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몸이 식으면서 고통은 더 심해졌고, 탈력감은 입 안쪽까지 바싹 마르게 만들었다.
“여기 물입니다.”
“소금부터 한 줌 주십시오.”
〈깃털 투구〉를 벗어서 물보다 먼저 소금을 한 입 집어넣고 물을 가죽 주머니 하나를 통째로 비웠다. 못해도 1L는 있는 가죽 주머니의 물이 싹 비워졌다. 가죽 냄새가 나는 물이었지만 매번 세척을 하고 뒤집어서 햇빛에 잘 말린 것이라 드낙은 상관하지 않았다.
“후우!”
그제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진지에 있는 곳에서 〈액체 치료봉〉을 꺼내어 왼쪽 엄지손가락에 발랐다. 이실레아가 도와주었다. 꺾인 손가락을 제대로 잡았다.
‘윽, 미친!’
드낙이 눈을 질끈 감았다. 끔찍한 고통이었다. 액체는 빠르게 스며들며 서서히 꺾였던 것이 제대로 돌아오고, 고통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대체 뭐랑 싸운 겁니까?”
방어구는 멀쩡한데 손가락만 꺾였다. 그것이 말하는 바를 모를 이실레아가 아니었다. 한 방 제대로 클린 히트를 당하면 죽는 것이 당연한 큰놈이랑 싸웠다는 뜻이다.
“피로 만들어진 괴물이었습니다. 3미터 정도 하는 놈이었죠.”
〈피의 괴물〉에 대해서 드낙이 이야기를 하며 〈액체 치료봉〉을 몇 번을 더 바르고 나서야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제서야 전신갑주를 벗고 체인메일을 벗고, 두꺼운 천과 그다음에 실크로 된 옷을 연달아 2겹 벗었다. 몸 곳곳에 상처와 피멍이 많았다.
‘격렬했었지.’
체급으로 따지면 성립도 안 되는 싸움을 했었기 때문이다.
왼쪽 어깨의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잔뜩 부어있는 것은 물론이고, 곳곳에 죽은 피가 피부에 고여있었다. 바늘로 쿡 찌르면 나올 것 같았다.
액체 치료봉은 타박상이 큰 왼쪽 어깨에만 발라졌다. 나머지 곳은 매우 독한 소독용 술이 부어지고 붕대가 감겼다.
그곳 외에는 딱히 비싼 치료 아이템을 쓸 곳은 없었다. 치료를 마치고 다시 장비를 걸쳐 입은 드낙이 〈깃털 투구〉를 마지막으로 착용했다. 그리고는 이실레아에게 물었다.
“전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예. 피의 신도로 보이는 자가 40명가량을 끌고 덤볐습니다. 이미 진지를 구축해놓은 상황이라 어렵지 않게 20명을 죽이고, 투항을 받아냈습니다.”
그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듣는 사이에 진지의 후방에 있다가 드낙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기어 나온 게제라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대충 치료했습니다. 이스핀과 도렌 부대장은 뭐하고 있습니까?”
게제라스가 빠르게 대답했다.
“이스핀과 도렌 부대장에게 40명씩 묶어서 투항자들을 데려오라고 지시했습니다. 투항자들은 현재 묶어서 뒤쪽에 놔두었습니다.”
토성의 시민들을 노예로 삼기 위해서 잡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한 번 흩어진 그들은 결코 다시 뭉치지 못했기 때문이고, 뭉친다고 해도 10명 내외가 전부였다. 정신없이 도망쳐서는 가족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노예〉가 아니라 〈투항자〉로 말하도록 지시하여 투항하는데 거부감이 없도록 하였다.
토성의 벽은 높았다. 경사도 심해서 도구 없이는 올라가지도 못할 것이다. 살아남아도 성인 남자들이나 도망칠 수 있는 곳이었다.
가족이 있다면 혼자 도망칠 수 없었다.
“주동자만 죽인다고 말하고 있으며 동조해도 큰 죄를 받지 않는다고 외치고 다니도록 했습니다. 상황이 더 안정된다면 도망치는 자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치밀하게 그들의 구심점을 줄이기 위한 기만술도 부렸다. 그리고 그 말은 그대로 현실화되어서 나타났다.
저항을 포기한 자들이 줄줄이 스스로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줄줄이 팔과 목이 묶여졌다. 이 세계만의 독특한 포승법이었다.
“가족들은 가족들끼리 모아놓아라!”
또한 가족과 함께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해질녘에 시작된 전투는 밤이 되어서야 대충 마무리가 되었다.
딴마음을 품기에 딱 좋은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병사들은 순찰을 돌지 않았다. 토성 밖에 늑대들이 돌아다니면서 때때로 하울링을 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진형을 잡고 버티는 것에 있어서 늑대는 사실 필요가 없어서 전투에 투입되지는 않았고, 도망자를 찾는데에만 쓰여졌다.
새벽에 다시 시작된 수색작업에서 줄줄이 사람들이 엮여 나왔다. 식량 창고처럼 보이는 곳에서는 이들에게 노예로 부려진 자들이 수십 명이 있었는데, 모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얼마나 학대를 당했는지 피골이 상접해있었고, 여자는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피오줌을 눌 정도로 아랫부분의 상태가 끔찍하였다.
‘개새끼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단숨에 어린이도 죽이는 드낙이었지만 그것과 이것은 달랐다. 성행위에 생존이 걸려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름이 그득할 정도로 끔찍한 상태에서 죽어가는 소녀를 서둘러 돌보도록 지시했다.
다른 노예들 또한 정상은 아니었다. 엉덩이 살이 삽에 찍혔는지 뭉그러진 자가 있는가 하면, 머리털이 손으로 계속해서 쥐어뜯은 모습을 한 자도 있었고, 모두 하나같이 불로 지진 흉터를 가지고 있었다.
고문의 흉터였다.
“무슨 이유로 고문을 당했나?”
드낙이 노예 하나를 보며 말하자 그가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하였다.
“피가 전보다 적게 나왔다고···”
드낙이 혀를 찼다. 미친 새끼들이었다. 하여간 사교도 새끼들이 문제였다.
‘지들 피나 빼내지.’
토성의 노예들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그 수가 200명이 넘었다. 또한 그들을 통해서 얻어낸 거대한 곡물창고 또한 찾아낼 수 있었다. 수천 명이 1년은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하지만 가죽, 광물, 화폐는 극히 드물었다. 〈촌장 바세안〉의 집에서 제법 나왔지만 화폐는 은화 몇 닢이 전부였고, 광물은 없었다. 대신 약탈한 무기나 방어구가 100여개가 나왔다.
가죽의 경우 대부분이 헤진 것뿐이었다.
사람과 곡물 빼고는 얻을 것이 크게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얻은 이득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에 게제라스는 〈피의 신도〉를 색출하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가족만 따로 불러서는 그중에서도 가장이 되는 이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했다.
“사교도에 공조를 했다는 것은 빼도 박도 못하는 일이다. 못해도 10년은 노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다. 특히 나이 차이가 심하면 더더욱···”
“···으흐흑.”
이제 3살 된 애를 가지게 된 남자가 그대로 울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게제라스의 뒤에 있는 전투 노예가 칼을 뽑아들 것만 같았다.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변했다. 그것을 인정시키기 위해 뺨을 후려칠 정도로 강렬하고도 자극적인 이야기가 그 귀로 흘러들어갔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그, 그게 뭡니까?”
게제라스는 뜸을 들이면서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던가, 어차피 타인은 타인이라는 소리를 하며 그를 더욱 부추기고 나서 본론을 꺼냈다.
“〈피의 신도〉! 놈들을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해서 도와준다면 가족과 함께 농지를 개간하는 일을 하게 해주겠다. 물론 3년 동안 노예의 신분이겠지만 가족과 떨어질 일도 없고, 자네가 개간한 땅은 자네의 것으로 약속해줄 수 있네.”
게제라스는 그 믿음을 위해서 자신들에 대해서 자세히 풀어냈다. 〈버려진 영지〉를 다시 한 번 남부 왕국의 품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하면서 은근히 〈피의 괴물〉을 단신으로 토벌한 드낙의 무위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게이산이라고 싸움에 타고난 놈이 있습니다. 단번에 피의 신도가 되었습니다. 노예들이 모여서 밥을 먹을 때 봤습니다.”
“그래? 어떻게 생긴 놈이지?”
그는 자세히 〈피의 신도 게이산〉의 외모에 대해서 말하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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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추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