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0 <-- 바세안 토성 -->
〈피의 괴물〉은 거침없이 드낙에게 달려들었다. 워낙 거대해졌기에 천장을 등으로 긁었는데, 등에 튀어나온 뼈가 사정없이 천장을 부수면서 흙과 돌을 떨어뜨렸다.
“크아아아아!!!!!”
놈이 입을 쩍 벌리면서 드낙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그 입속에 있는 〈촌장 바세안〉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어있었다.
몸을 옆으로 구르면서 피한 드낙에게 〈피의 신도〉가 붉은색의 검을 휘둘렀다. 매우 가벼워 보였지만 신의 은총으로 만들어진 피의 검이었다. 그러나 드낙은 자신의 전신갑주를 믿었다. 흉악하게 팔뚝 보호대로 검을 막았다.
캉!
청명한 소리와 함께 전신갑주는 금 하나 나지 않았다.
“컥!”
그대로 역공을 맞아 손목이 말끔하게 날아간 신도의 머리채를 잡은 드낙이 놈을 잡아당기면서 다른 놈들이 공격하지 못하게 이리저리 휘둘러대었다.
“이 새끼가!”
모두 가족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덤벼들지 못했지만 〈피의 괴물〉은 달랐다. 그의 가슴이 쩍 열리더니 갈비뼈가 그대로 드낙을 향해 사출되었다.
‘위험!’
길이도 길이였지만 속도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빨랐다. 크기가 커서 눈으로 좇을 수는 있지만 몸이 반응할 수 없을 정도였다. 때문에 드낙은 머리채를 잡은 신도의 목을 그대로 따버렸다.
〈킬 더 배틀〉의 효과가 일어나며 체감시간이 느려졌다. 동시에 몸도 느려졌지만 길쭉한 갈비뼈들을 기묘한 움직임으로 피할 수 있었다.
“크르!”
〈피의 괴물〉은 엄청난 움직임을 보여준 드낙을 보며 콧김을 뿜었다. 쩍 열려진 상체 가슴이 서서히 닫히고 있었는데, 끝에서부터 다시 뼈가 생성되고 있는 것 같았다. 드낙은 그곳을 향해서 단검을 투척함과 동시에 마법을 사용했다.
“〈열다섯개의 화염 깃털(Fifteen Flame Feathers)〉.”
악신 아토라신의 신도가 불에 약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번지지 않는 마법 불꽃이 전신으로 번진 적이 있었다.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화염 깃털은 모조리 피의 괴물을 향해 쏘아졌다. 피의 괴물은 그것을 전혀 피하지 않았다. 되려 드낙에게 다시 덤벼들었다.
화르르르!!
거대한 화염이 피의 괴물을 덮쳤지만 고통 하나 느끼지 못하는지 괴성을 지르지도 않고, 우직하게 드낙에게 덤벼들었다.
콰아앙!!!
목조 건물이 산산조각 나며 괴물이 양팔을 휘둘러대었다. 걸리적거리는 나무들이 단박에 비산하며 사방팔방으로 던져졌고, 주변에 있는 흙집을 박살내고 숨어있던 시민들이 그대로 곤죽이 되었다.
“끅.”
아기를 안고 있던 어미는 몸에 나무 파편이 깊이 박혔는데, 큰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렇게 죽어갔다. 울음소리가 터져나갔지만 그것도 집이 무너지면서 묻어졌다.
와르르!
무너진 잔해에서 거칠게 드낙이 튀어나왔다.
눈구멍도 없는 투구에 먼지가 자욱하게 공기를 타고 들어와 눈에 들러붙었다. 바람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었다. 드낙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눈을 감지않고 되려 부릅뜨면서 주변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뒤로 뒤집어졌다.
후웅!
무식하고 거대한 팔이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몸을 굴러서 일으킨 드낙이 고개를 휙 돌렸다. 〈피의 신도〉가 찌른 검이 허공을 지나갔다. 왼손으로 옆으로 후려쳐서 회수하는데 시간을 길게 만들고, 무릎을 일으키며 그대로 〈깃털 투구〉를 착용한 채로 머리를 들이박았다.
“컥!”
아래턱을 맞고 그대로 뒤로 쓰러지는 놈의 사타구니를 발로 걷어찬 드낙이 그 심장에 검을 박고는 발로 단단한 갈비뼈를 밟아서 롱소드를 심장에서 뽑아냈다.
시간이 느려지고 그림자가 드낙의 위에 드리워졌다. 〈피의 괴물〉이었다. 몸을 날린 드낙의 어깨를 아슬하게 스치면서 발이 그대로 바닥을 내려찍었다. 그저 스친 것뿐이지만 드낙은 상체부터 땅에 부딪쳐야 했다.
‘무식한 힘!’
입에 흙이 들어갔지만 퉤퉤거릴 시간이 없었다. 다시 일어나서 겨우 여유를 찾은 드낙은 매캐한 연기를 미친 듯이 토해내며 자신에게 달려오는 피의 괴물을 마주해야 했다.
“이야아아!!!”
그때 피의 신도 하나가 무너진 골목길에서 숨어있다가 튀어나와서 드낙의 허리를 잡았다. 무기를 잃어버렸는지 손에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았다. 드낙은 단단한 팔꿈치로 그대로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동시에 마법 시동어를 말했다.
“〈다섯 마름모 방패(Five Rhombus Shields)〉.”
“꺽!”
놈이 그대로 순간적으로 힘을 잃고 주르륵 미끄러졌다. 동시에 드낙의 정면에 단단한 마름모의 방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꽈아앙!!
공기가 떨리며 거대한 바람이 드낙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름모 방패가 균열이 쫘자작 생겨나며 그대로 깨어졌지만 그 순간의 시간으로 드낙은 피의 괴물이 휘두른 주먹을 피할 수 있었다.
이글거리는 화염에 뒤덮인 〈피의 괴물〉은 지칠 줄 모르고 드낙에게 덤벼들었다.
‘윽.’
그저 스쳤을 뿐인 왼쪽 어깨가 달릴 때마다 욱신거렸다. 뼈가 상한 것은 아니지만, 타박상을 입은 것처럼 통증이 일어났다.
“〈오아시스의 활력(The vitality of the oasis)〉.”
가슴부터 시작된 차가운 물이 전신을 돌았다. 어깨의 통증도 완화되었다. 드낙은 그저 도망만 치면 될 줄 알았지만 이놈은 다른 놈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불길이 20초가 지나가 빠르게 소멸되어갔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드낙은 계속해서 어느 정도 근접을 해야 했다. 화염 깃털의 사거리는 길었지만 유지되는 시간은 최대 20초였다. 근접하면 근접할수록 적을 불태우는 시간이 늘어나는 셈이다.
그 말은 즉,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적을 불태우는 시간도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가까이 덤비는 드낙이 다수마법을 사용하기 전에 피의 괴물의 가슴이 쩍 열렸다. 드낙이 맨정신으로도 전부 피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갈비뼈 사출이었다.
그 숫자만 20개가 넘었기 때문에 드낙의 눈이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왼손에서 체중을 실은 투척 단검이 쏘아졌다. 집에 깔린 채 엉엉 울고 있던 어린아이의 머리에 단검이 퍽하고 정확히 관통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전투에 있어서 어리고 늙고의 차이는 없었다. 그것은 피비린내나는 생존의 문제였다.
강대한 적을 두고 그런 오만한 생각을 드낙이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시간이 느려졌다. 드낙은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나아가면서 갈비뼈를 느린 시간을 이용해서 단번에 모두 회피했다. 스쳐 지나가는 갈비뼈의 길이는 족히 100cm는 넘어 보였다.
적어도 라이트 랜스(Light Lance)나 다름없었다. 맞으면 전신갑주든 뭐든 그대로 뚫릴 것이다. 마상용 전신갑주를 입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철판도 뚫을 수 있어 보였다.
‘놈이 괜히 자신만만한 것이 아니다.’
“〈열다섯개의 화염 깃털(Fifteen Flame Feathers)〉!”
화염 깃털 열다섯개가 그대로 놈의 사지와 가슴 머리에 아무렇게나 틀어박혔다. 그리고 드낙이 다시 무너진 집 사이를 뛰어다녔다. 술래잡기는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30초 간격으로 공방이 이루어졌다. 드낙은 효율적으로 놈을 태우기 위해서 근접해야 했고, 놈 또한 그것을 기다리기도 했다.
“후우, 훅!”
무너지는 집들이 거칠게 드낙을 후려팼다. 흙과 벽돌, 크고 작은 돌멩이로 얻어맞으면서도 드낙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집이 무너지면서 생긴 흙먼지 속에서 불에 타오르는 〈피의 괴물〉이 드낙이 있던 곳을 주먹으로 꽝 내려치며 훌쩍 도약했다.
요리조리 피하는 드낙을 아예 추월한 것이다. 하지만 드낙은 그림자가 휙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놈의 생각을 읽고는 그대로 왼편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콰자작!
제법 공을 들여 돌로 기둥을 세워 3층까지 올려놓은 벽돌집이 무참하게 무너져내렸다. 갑자기 튀어나온 놈을 보고도 드낙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에 놈을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꾸직!
드낙의 손가락 하나가 그대로 분질러졌다. 롱소드로 공격을 흘렸음에도 힘을 받치던 왼손 엄지가 꺾였다. 드낙의 한쪽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열다섯개의 화염 깃털(Fifteen Flame Feathers)〉!”
화염깃털의 놈의 눈에 그대로 타다다닥 박히자 시야를 잃은 괴물이 발광을 했고, 그 사이에 드낙이 다시 도망쳤다.
‘제발 좀 죽어라!’
그렇게 속으로 아우성을 치면서 강철 글러브 째로 꺾인 엄지를 확인했다. 지금 〈액체 치료봉〉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치료는 불가능했다. 일단은 전투를 속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헉! 헉! 후우우우우웁! 헉헉!”
그 뒤로도 마법을 사용하여 총 8번의 마법을 사용한 드낙은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호흡을 강제로 조율하기 위해서 크게 숨을 들이켰지만 쾅쾅 뛰는 심장과 거칠게 혈맥을 질주하는 두근거림이 전신에서 아우성을 쳤다.
‘죽겠다. 생각보다 놈의 생명력이 대단해.’
“〈호랑이 질주(Tiger Scamper)〉.”
마지막 9번째의 마법을 사용했다. 드낙은 능숙하게 하체에 힘을 빼고 균형을 잡기 위해서 팔만 움직였다. 또한 최대한 숨을 골랐다. 다시 호흡을 찾지 못하면 크게 힘들 것이다.
3초는 거친 활동으로 뜨거워진 몸에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했다.
동시에 드낙의 몸에 있던 마력이 밖으로 뛰쳐나와서 전신갑주의 심장 부근에 있는 곳으로 몰렸다. 〈마력저장소〉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눈을 좁히면서 또 한 곳으로도 마력을 옮겨야 했다.
〈72년 전신갑주〉에 내장된 마법 중에서 〈방어 마법〉은 그 효과에 비해서 효율과 소비가 커서 마력 저장소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마력이 나누어져서 아랫배로 향했다.
호랑이 질주는 딱 3초만 유지되는 마법이었다. 그 시간 동안 일직선으로 무식하게 달렸다. 그 시간 내에 〈피의 괴물〉은 드낙을 앞질렀다. 일직선의 질주라면 괴물이 질 수가 없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드낙은 비전(祕傳) 〈오거 야크트(Oger Jagd, 오우거 사냥)〉를 사용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오거〉를 잡는 것이지, 〈중대형 괴물〉을 잡는 것이 아니었다.
“우오오오오오오!!!!”
드낙은 마치 정면으로 부딪칠 생각을 하는 것처럼 놈에게 함성을 내지르며 그대로 질주했다. 놈 또한 전신이 불에 타면서 매캐한 검은 연기를 잔뜩 하늘로 피어올리며 덤벼들었다.
그의 시선이 피의 괴물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3자루의 투척 단검 중 마지막 투척 단검이 이 장소를 그저 지켜보고 있는 사교도의 목으로 투척되었다. 빛살과도 같았고, 그는 피의 괴물의 거대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 한껏 머리를 올리며 목을 드러내고 있었다.
“컥!”
피가 뿜어져 나왔다.
시간이 다시 한 번 느려졌다. 드낙이 예상했던 갈비뼈 사출은 더 이상 없었다. 대신 입에서 온갖 토사물이 뿜어져 나왔다. 딱 봐도 검은 것이 제대로 된 피가 아니었다.
드낙은 그대로 슬라이딩을 하면서 주르륵 미끄러졌다. 괴물의 아가리가 그런 드낙을 정확하게 겨냥했지만 드낙의 오른발이 그대로 이빨을 걷어차며 옆으로 굴렀다.
체감 시간이 느려지지 않았으면 현재의 드낙은 꿈도 못 꿀 묘기였다.
“크아아아!!”
몸을 일으킨 드낙은 다시 한 번 화염 깃털을 뽑아내며 그대로 달려들었다. 시간이 느려지면서 단번에 괴물의 상태를 전부 확인했기에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거친 드낙과 괴물의 싸움을 따라가지 못한 피의 신도 몇몇은 뒤에서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지만 이번 격돌에 영향을 줄 수는 없었다.
‘약점은 놈의 머리. 하지만 그것을 노릴 수는 없다.’
태워 죽이는 것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괴물의 신장에서 나오는 스피드는 무지막지했다. 온갖 집들이 많은 이런 지형이 아니었다면 드낙은 진작에 잡혔을 것이다.
타닥, 뚝!
왼쪽 발목 힘줄이 타들어간 끝에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거대한 힘에 그대로 균형이 단박에 무너졌다. 드낙을 스치지도 못한 팔에서 나오는 거친 바람 앞에서도 그는 눈을 감지 않은 채 거칠게 앞으로 뻗어나갔다.
‘기동성을 무너뜨린다!’
양손이 그대로 어깨 위로 올라가서는 그대로 모든 힘의 방향이 롱소드의 끝으로 몰리며 내려쳐졌다. 반대편 남아있던 발목의 힘줄이 끊겼다. 드낙이 놈의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롱소드는 하단으로 내려져서 검 끝이 땅에 걸쳐져 있었다.
그의 어깨가 위아래로 향했다. 호흡은 안정되어있었지만 심장이 아플 정도로 거세게 뛰고 있었다. 드낙의 눈에 다리의 힘을 잃은 괴물의 머리가 드낙으로 휙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끝을 모르겠네.’
온 몸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드낙은 전투를 더 유지할 수 있었다. 전신갑주에서는 계속해서 오아시스의 활력이 차가운 물이 되어 전신을 돌고 있었고, 다수 마법 또한 앞으로 3번은 더 사용할 수 있었다.
‘방어 마법을 두 번 쓴 것이 아쉽다.’
방호력은 확실했지만 소비가 너무 컸다. 못해도 20번을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마법의 횟수가 단박에 반토막이 났기 때문이었다. 보통 기사라면 총 합쳐서 10번 내외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드낙은 자신이 보유한 마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몇 번 남지 않을 정도로 방어 마법의 마력 소비가 컸다.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그것은 〈악신 아토라신〉의 신도와 사도가 신체능력에 은총을 받았고 놈들의 생명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 가능했음에도 장기전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리가 재생되지만 않으면 된다.’
드낙이 〈피의 괴물〉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따라오던 〈피의 신도〉들 소수 또한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드낙의 무위 때문에 자신들만으로 덤벼들기는 겁이 났기 때문이다.
욱신.
왼손의 통증이 크게 드낙에게 다가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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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