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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76화 (175/1,239)

0176 <-- 버려진 영지 -->

시작은 중단이지만, 불파겐은 상단의 이(二)부터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강함의 묘리(强, 覇)〉와 〈무거움의 묘리(重)〉였다.

[단순히 양 어깨 위로 양팔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올라간다. 인간은 형태(Form)에 따라서 모든 수치가 천차만별이다. 서로 똑같은 스펙으로 똑같이 내려쳐도 그 차이는 존재한다.]

드낙은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내려치는 것에 있어서도 다양한 방법론이 존재했다. 그런 것을 생각하고 연구했다는 것부터 혀를 내둘렀다.

뛰어들어가는 것에서의 내려치기 그 부분에 대한 다양한 힘의 방향을 이론적으로 짚어내어 점으로 만들고, 직접 몸을 움직이는 연습을 통해서 선으로 확장하였으며, 수많은 변수를 노하우를 통하여 다양한 타격점을 만들어내 단번에 수십 갈래로 뻗어가게 만들었다.

‘미쳤다.’

모두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을 실전으로 사용할 수 있지는 못했다. 현대인의 이해력이 아니었다면 몇 년이나 걸렸을 것이다. 또한 하루만 지나도 대부분 까먹을 것이다. 세파리아스는 분명 천재임이 틀림없었다.

‘하루에 두 개씩 하면 뚝딱이라니. 미친놈인가···’

오늘은 민법. 내일은 형사법. 이런 식으로 하루에 뚝딱!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검은 꿈이 끝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칠주(七主)에 대한 것을 대체적으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상단의 경우 오늘 배웠던 강함(强, 覇)과 무거움(重)의 묘리였다.

중단의 경우 변화(變), 부딪힘(衝), 빠름(快)의 묘리였다.

하단의 경우 분산(散), 휘어짐(曲)의 묘리였다.

‘마치 무협풍이네.’

매우 체계적이었다. 불파겐 가문이 괜히 숙청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 철옹성을 부수기 위해서는 한 손에 쥘 망치로는 부족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끝장을 보는 수밖에 없었겠지.

“이거 말고도 다른 것도 있어?”

[기본을 벗어나면 끌어당기는 힘의 묘리(吸), 튕겨냄의 묘리(彈)가 있다. 마스터는 합(合)이며 그것은 익히 말했던 〈상승(常勝)의 묘리(妙理)〉, 일류의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그 말에 드낙이 눈살을 찌푸렸다. 가장 마지막에 배워야 할 것을 가장 처음에 대충 개념만 가르쳐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가장 마지막에 이뤄야 할 것을 왜 처음에 말해준 거야?”

[손에 쥘 수 없지만 매력적인 목표는 동기를 부여한다. 사람의 열정을 태우는 훌륭한 장작이다.]

거침없는 말에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싸워봤자 손해였다. 얻을 건 얻고, 필요 없는 건 그냥 흘려버리는 것이 〈세파리아스 불파겐〉을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어차피 이놈은 검은 꿈에 속박되어있었다.

[롱소드의 장점은 중단에서 상단과 하단을 취하기에 용이하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가벼운 무기도 가능하지만 롱소드만큼 리치가 길지 않지. 양손으로 쥘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있다. 그것을 항상 생각해라.]

그는 그럴듯하게 스승처럼 조언을 했다. 검은 연기가 드낙을 덮치고 그는 깊은 수면에 빠졌다.

이실레아 브릴리언트는 요즘 큰 고민에 빠졌다. 그것은 드낙이 보여준 무위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사실 〈자유기사〉인 그녀는 드낙의 무리에서도 특출난 계급이었다. 당연히 이스핀과 도렌 부대장은 슬슬 피했고, 그녀를 매우 어려워했다.

이스핀은 울고 있는 이실레아에게 찝쩍거리기까지 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녀와 마주치는 것을 힘들어하고 있었다.

전투 노예와 노예들 또한 기세가 대단하고, 독기로 가득한 눈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이실레아를 무서워했다.

문인이자 총관인 게제라스의 경우에는 항상 눈을 감고, 생각에 빠져있거나 휴식할 때마다 펜을 빼어들어서 양피지에 뭔가를 난잡하게 쓰기 바빠서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이래서는 안 돼.’

기사란 무엇인가. 혼자보다는 다수를 통솔하는 데 있어서도 특출나야 했다. 그래야 더 큰 공을 세울 수 있었다. 나중에 자신만의 병사를 통솔하게 될 것을 생각한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사실 이렇게 전투 무리 속에 들어온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용병단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고, 자유기사로서 명성을 쌓으려고 노력한 결과이기도 했다. 다른 자유기사가 걸어간 길을 좋든 나쁘든 그대로 반복하는 꼴이었다.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검술의 달인이 몸 하나 믿고 가난해도 명성을 좇으니 당연히 걷는 길이 비슷했다.

“새벽 수련 안 하십니까?”

드낙이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면서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 이실레아에게 물었다.

“아, 예. 합니다.”

비전을 염려해서 서로 떨어져서는 수련을 하지만 대체로 수련하는 시간은 비슷했다. 드낙은 기본 공격을 연습했다. 가만히 서서 내려치기를 하는데도 세파리아스가 가르쳐준 묘리가 생각났다.

‘너무 어렵다. 몸으로 숙달하는 수밖에 없겠어.’

단순히 롱소드를 한 손으로 쥐고 있다가 밑에 손을 추가하여 양손으로 만드는 데에도 세 가지 이상의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올려 받치는 것으로 상대의 기민한 움직임에 이점을 얻는 것. 둘은 손목을 이용해서 스냅을 주어 돌리며 순간적으로 롱소드를 체공하게 하여 오른손을 고쳐잡아 다양한 공격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잡으면서 당겨 원심력을 더 빠르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처럼 머리 아픈 것이 많았다. 특히 두 번째는 그 이후에 강(强)으로 이어지거나 중단세를 잡을 수도 있어서 가장 먼저 숙달해야 했다.

휘릭! 휘릭!

마치 묘기를 부리듯이 손목으로 검을 돌리며 체공시켰다. 검이 회전하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의 손목에 집중하지 않도록 시선을 검신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이다.

얕은수였지만 효과적이었다.

〈탑〉을 쌓고 아침 식사를 하는데 이실레아가 접시를 들고 다가왔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예. 실은 고민이 있습니다.”

드낙은 전투 노예는 물론이고 다른 자들과 잘 지내는 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한국 사회에서 누구보다 밑바닥에서 살아야 했던 박호훈이었다. 먹고살기 위해서 고개를 숙인 시간은 너무나도 길었다.

접대는 물론이고 사교성 하나만큼은 특히나 밑바닥 인물들에게 잘 써먹기 좋았다. 또한 드낙은 이실레아처럼 독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런 고민이···”

드낙이 난감해했다. 기질을 바꾸라고 하기에는 이실레아의 성격이나 태도는 너무나도 특출나서 변하기 힘들어 보였다. 한쪽으로 크게 치우쳐진 캐릭터성이었다. 외모까지 받쳐주고 걸어온 길도 녹록지 않아서 눈은 가만히 있어도 독기를 흘려보냈다.

‘그래도 그냥 나 몰라라 하기에는 좀 그렇다.’

이실레아를 오랫동안 잡아두고 함께하고 싶은 것이 드낙이었다.

“일단은 시간입니다. 시간을 들이세요.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워하는 것이라면 시간이 지나도 어느 정도는 완화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요.”

그녀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럴듯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는 눈웃음입니다.”

“눈웃음···”

드낙이 광대뼈를 올렸다. 자연스럽게 입술이 올라갔다.

“광대뼈만 올려도 입술이 웃는 것처럼 변합니다. 눈도 웃고요. 거기서 입술만 조금 힘을 빼시고···”

“이, 이렇게 해야 합니까?”

“아니요. 입술이···”

이실레아가 당황하면서도 애를 썼다. 사실 표정에 대한 관리는 몰락한 가문에서 겨우 이론만 수업하고 대충 넘어가기 일쑤였다. 귀족 가문은 대부분 무가(武家)였기 때문이다.

“읏?”

드낙이 풋하고 웃었다. 광대뼈에 힘을 줘서 올리는 것에는 성공해서 적당히 웃는 것이 되었지만 입술이 계속해서 덜덜 떨렸기 때문이다. 그가 웃자 그녀가 단박에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장난 치신 겁니까?”

“아, 아닙니다. 연습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웃은 겁니다. 나중에 물웅덩이나 거울을 이용해서 연습해보세요. 분명 차차 나아질 겁니다.”

그 말에 이실레아의 흉터 지고, 굳은살로 가득한 왼손을 올려 진한 황금색의 머리카락을 긁으며 쓸어내렸다. 드낙의 눈이 그 왼손으로 향했다.

‘브릴리언트 가문은 왼손이 주류군.’

비전의 출발지점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오른손과 왼손의 〈특징적인 굳은살〉의 비율이 확연히 달랐다.

“표정···”

이실레아의 말에 드낙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얼굴이 좋은 이유를 말해주었다. 승진 한 번 하고 나서는 주제도 모르고 후배들에게 이것저것 조언해주면서 술집을 전전해왔던 때처럼 오랜만에 불타올랐다.

“그래서 사회생활이 힘든 법이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을 바라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 관계가 적당히 좋게 유지되어야 하는 게 가장 어려운 법입니다.”

이실레아는 밥도 먹지 않은 채 드낙의 사교성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게 얼마나 성과를 낼지는 드낙조차도 몰랐지만 어쨌든 이실레아의 고민에 해결책을 내어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입을 턴 드낙은 이실레아가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째서입니까?”

“병사나 부하나 결국에는 실력으로 판가름이 납니다. 아무리 웃고 다녀도 실력이 형편없는 기사를 모시는 병사가 있겠습니까? 그저 겉으로만 기사 대우를 해주겠죠. 이실레아 씨는 아직 무위(武威)를 떨치지 않았지 않습니까.”

“아. 확실히. 제가 간과했습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어지간히도 당황하셨나 봅니다. 군사학의 기본 중의 기본이죠.”

드낙은 사람도 때려죽일 수 있는 두꺼운 군사학책의 표지를 탁탁 손으로 두드렸다. 결국에는 강자를 따르는 것이 칼을 쥔 자들의 숙명이었다.

“감사합니다. 한동안 병사를 다루지 않아서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보여주는 실력이 전부인 것을.”

친해질 필요는 없었다. 군략에서 말하는 장군은 사기를 위해서라면 작은 잘못을 한 병사를 단칼에 목을 베어 장대에 걸어야 했다.

“별말씀을··· 저도 기본부터 다시 한 번 훑어볼 생각으로 군사학을 다시 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실레아는 잠시 드낙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평상시에는 거의 웃고 계시던데, 원래 그런 성격이십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노력의 산물이죠.”

이실레아가 눈을 조금 다른 곳에 돌리면서 말했다. 드낙을 보고서는 할 말이 아닌 듯했고,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저도 표정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사실 전 생각보다 딱딱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눈웃음을 지었다.

점심 이후에는 곧바로 주요 인물들이 모였다. 이유는 확실하게 있었는데, 바로 〈마을의 토벌〉에 대한 건이었다.

“마적의 운용부터 사교를 믿고 있다는 것까지 분명 토벌을 진행해야 하는 마을입니다.”

드낙은 초장부터 마을을 박살을 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리고 24명의 마적 포로를 통해서 얻은 마을에 대한 정보를 언급했다.

“마을의 규모는 500가구 내외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1천 명 이상이 모여있는 마을입니다. 마적질을 했기에 노예 또한 상당수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실레아가 날카로운 눈으로 진중한 표정을 한 채 귀를 기울였다.

“목책은 버려진 영지에서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나뭇잎 따위가 섞인 진흙으로 쌓여진 토성(土城)이고 높이는 2미터가 안 된다고 합니다. 경사진 성벽입니다.”

성벽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경사는 밧줄이 없으면 올라갈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사다리를 내면 밟고 달릴 정도이긴 하지만 저희로서는 토성벽을 공략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다른 정보도 이야기 되었다.

“스스로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입구라고 할 만한 곳은 한 곳뿐입니다.”

그리고는 드낙은 게제라스가 말한 계략을 이야기했다. 먼저 호응하여 안으로 들어간 다음에 겁박해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었다.

“··· 이런 상태에서 디테일을 조금 살려보려고 합니다. 의견이 있습니까?”

단박에 이실레아가 발언권을 따냈다.

“드낙···님이 전신갑주를 가지고 있기에 전투는 짧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규군이 아니기에 죽거나 다치는 자가 많아지면 단박에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조건적으로 수비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녀는 원형진. 활을 통한 응수. 무엇보다도 제식을 통해서 확실하게 적을 패주 시키는 것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특별한 다른 의견이 없었고, 드낙 또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식이 일천했기에 단번에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실레아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리를 드낙이 만들어줬다고 착각한 것이다.

이유는 드낙이 다른 의견을 내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실레아의 전술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날 등용하고 싶은 건가?’

만약 이 영지에서 기반을 단단히 하는데 일조를 한다면···

‘브릴리언트 가문 또한 장원으로 삼을 마을 몇 개는 얻을 수 있을 터.’

이실레아의 마음속에 열정이 가득 타올랐다. 드낙이 진실로 크게 밀어준다고 생각했는데, 전술에 대한 공은 곧 전투에서의 공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드낙 또한 공을 세우겠지만 이실레아가 병(兵)으로 공을 세운다면 드낙은 전(戰)으로 공을 세우는 것이었다.

한 싸움에서 확실하게 나누어진 공이었다. 그것은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눈에 다르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녀가 착각할 만도 했다. 드낙은 그렇게 섬세한 사람이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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