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75화 (174/1,239)

0175 <-- 버려진 영지 -->

게제라스가 세 번째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말하였다.

“하나는 인구입니다. 이 척박한 땅에서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인구를 획득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세월이 걸릴 것입니다.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교도든 마적이든 닥치는 대로 목줄을 채워서 저희들의 토지에 사람들을 바둑판 깔 듯이 깔아야 할 것입니다.”

가장 먼저는 인구였다. 인구는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많은 것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적정 수준에서 오르지를 않았다. 그것을 단기간에 얻는 방법이 바로 노예였다.

그곳에 인권이니, 민주주의니 그런 것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았다. 이데올로기 이전의 근본적인 문제였다.

〈버려진 영지〉에서의 도약을 위해서는 인구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그것을 어떻게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터였다. 또한 다른 공을 세운다면 버려진 영지의 일부에 불과한 토지를 더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구가 최대한 많이 필요하다.’

중산층 1천 명이 병사 10명을 유지할 수 있었고(1%), 서민들 1천 명이 병사 5명 미만을 유지할 수 있었다(0.5%). 이것은 법칙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계산법이었고, 문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법칙이었다.

인구는 모든 것의 밑바탕이었다.

‘노예 영지를 만들더라도 인구는 많은 게 좋다.’

인구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었기에 이것만으로도 능히 고개를 끄덕이고 강경책을 선택할 만했다.

“둘은 그들 대부분이 〈군벌〉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타협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마적이라고는 하지만 기병을 50기를 약탈로 쓰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기형적으로 군사력이 발달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정규군을 이길 정도는 아니지만, 숫자 하나만큼은 구색맞춤을 했을 겁니다.”

타협이 어렵다는 점은 드낙이 양보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또한 군사력을 쥐고 있기에 생각 이상으로 거치고 오만방자할 것이라는 점이다. 고로 피를 보는 것이 좋았고, 이왕 피를 본다면 아주 개박살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버려진 영지에서의 일은 누구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효율이 좋은 것은 패도(覇道)입니다.”

사정을 봐주고, 남의 평판을 의식하고, 명예를 좇는 것은 〈버려진 영지〉 밖에서나 해야 할 일이었다. 사교도까지 판치고 있는 이곳 영지는 〈지역 신전〉의 와해가 일어나 신전에서조차도 기피하는 곳이었다.

만인을 위해서 봉사와 헌신을 하지만, 〈빛의 전령〉이라도 지역 신전의 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곳에서 활동할 수는 없었다.

또한 이곳 영지에 뻗친 악신의 교도들을 처리하기 위해 성전대(聖戰隊)를 일으키려고 해도 귀족들과 왕족들의 반발이 심했다.

이상론을 주장하기에는 중립신을 모시는 자들은 현실에서 살고 있다.

나라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살아갈 빛이 보이지 않아 자살한 모녀가 있는데, 범죄자들은 삼시세끼 꼬박꼬박 먹는 것이 바로 현실이었다.

그 현실은 이 버려진 영지에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었다. 사교도가 번창해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군대를 일으켜 다른 영지를 침략하여 〈명분〉이 생기는 것이 아닌 이상, 큰 이슈가 태어나지 않는 이상은 계속해서 유지될 판이다.

“애초에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을 한다라···”

패도의 길이 이 영지에서 가장 유효한 것임을 마적의 일 해결을 통해서 물꼬를 틀려는 게제라스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못해도 50명을 단숨에 죽일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드낙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세 번째가 가장 성장하기 좋겠군.”

그 말에 게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잔인한 방법이지만, 버려진 영지에서 범죄자 마을을 상대로 인정을 베푸는 것은 장기적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또한 주인이 있음에도 관리하지 않는 땅이라고 제멋대로 나오는 놈들이었다.

“마적을 운용하고, 사교도를 믿기까지. 이미 강을 건넌 마을입니다.”

그것으로 게제라스와의 독대는 끝이 났다. 내일 주요 인물들에게 드낙의 입으로 전파될 것이다.

드낙은 잠자리에 들었다. 밤하늘에 별빛이 가득했는데, 다가올 살육의 바람에도 그는 거리낌 없이 빠르게 잠에 빠졌다.

검은 연기가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전과는 다르게 〈짙은 혈향〉이 맡아졌다.

눈을 뜨자 드낙은 조금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바닥 곳곳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때때로 위에서 살덩이가 투둑하고 떨어지거나, 장기 조각이 피가 흐르는 곳에서 둥실 올라와서는 흘러내려갔다.

비위가 상할 정도로 짙은 혈향 속에서도 드낙은 냉정을 유지했다.

“이게 뭐지?”

그에 대한 대답은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입에서 나왔다.

[악신 아토라신의 영향이다. 그녀의 신도를 죽였으니, 당연할 수밖에.]

“······?”

드낙은 그 한 마디에 뭔가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죽이는 상대에 따라서 검은 꿈에 영향이 있다면, 죽이면 죽일수록 뭔가가 계속해서 변해간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마치 바닥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오른팔처럼.

‘이 꿈이 업(業)을 쌓으면서 계속해서 변해간다면, 그 끝에는 어떻게 될까?’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는 이름 모를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낼까? 드낙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불안했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죽이고, 업을 쌓는데 거부감은 없었다. 애초에 이런 판타지 세상에서 평민이 출세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피가 흐르는 〈검은 문〉은 독특했다. 그곳 앞에 선 드낙은 검은 연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환상이 그를 덮쳤다.

〈마적 두목〉이 가지고 있던 악신의 은총은 아쉽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기야, 그럴 것이다. 그렇게 일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악신의 힘을 강제로 얻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좀 쉽게 가고 싶은데.’

악신의 힘을 훔칠 수 있었으면 정말로 재밌었을 것 같기는 했다.

마적 두목이 지니고 있는 재능 혹은 쌓아온 노하우 중에서 그나마 드낙이 선택할 만한 것은 〈기승(騎乘)〉 능력이었다. 말을 다루는 능력이었고, 말에 대한 실전적인 지식이었다.

그 외에는 보잘 것 없었다. 능력을 선택하고 농밀한 검은 연기가 흩어질 때, 불파겐이 입을 열었다.

[드낙, 제안을 하고 싶다.]

그 말에 드낙이 눈을 빛냈다. 세파이라스 불파겐이 쥐고 있는 카드는 모두 드낙이 원하는 것들뿐이었다. 그가 스스로 제안을 하다니, 무조건 카드 하나는 얻는다는 소리였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자유기사에 능력 있는 문인까지 붙어있는 지금만큼 호기(好期)가 없기 때문이다.]

‘이 뇨석이?’

태세 전환이 기가 막혔다. 하지만 드낙 또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임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딴죽을 걸지 않았다. 배가 고팠다.

“그래서 제안은?”

[불파겐의 비전 7종류를 전해주지. 또한 제대로 대련을 해주마.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드낙은 흥정을 해보았다.

“깔끔하게 10종류 하자.”

[건방지다. 기본 7종류만으로도 자유 기사 노릇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내가 잘 생각해보니까. 내가 잘 되어서 그냥 소문이 퍼지면 제국에 있는 생존자가 찾아올 거 아니야? 10종류 하자.”

[뭣? 혈통의 힘도 없이 불파겐의 이름을 팔 생각이냐?]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가 펄쩍 뛰었다.

“나중에 오우거 잡으면 머리 색깔은 변할 수 있다며. 혹시 알아? 기회가 되어서 엘프도 죽일 수 있을지.”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엘프를 잡아? 〈녹음(綠陰)의 수호자(守護者)〉는 홀로 기사 열을 감당하는 존재들이다.]

그 말에 드낙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뭐? 엘프 하나가 기사 열을 감당한다고?”

한국에서 살아오며 판타지 조금 읽어본 박호훈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기사가 어떤 존재인가? 극한의 수련으로 칼 좀 긁어본 놈들도 겨드랑이에 칼침을 박아 넣는 검술의 달인들이다.

그들이 착용한 전신갑주는 또 어떻고? 그것을 열이나 감당한다는 말에 드낙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간한테 노예로 부려지는 게 엘프 아니야?”

[어디서 그딴 미친소리를 들었느냐? ···그래서 엘프 노예를 보거나 소문으로라도 들은 적이 있나?]

없었다.

“왜 그렇게 강한 건데? 너무 심한데?”

[중립신의 첫 번째 자손이라고까지 불리는 종족이다. 가장 좋은 것만 골라갔다는 소리지.]

“그래도 너무 강한데, 정말로 기사 열을 감당한다고? 어떻게?”

[인간과는 다르게 태어나자마자 마력을 숨 쉬는 것처럼 운용이 가능하고, 영생(永生)을 누리며 영혼이 워낙 태산(太山) 같아 정신의 마모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력과 영혼의 종족이다.]

“영혼?”

[육체보다 앞서나가는 영혼의 힘은 순간적으로 강화 마법을 사용한 기사의 움직임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육체가 지치고 심장이 멈춰도 영혼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것이 엘프들이다.]

드낙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럼 엘프가 세계정복이나 그런 걸 해야 하는 게 정상인데.”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살 던 때에는 엘프가 지도의 6할을 먹고 있었지.]

“인간은?”

[제국과 남부 왕국이 전부고, 2할도 가지고 있지 않을 거다. 서쪽에는 드워프 제국이 있지.]

전세계 지도조차 구하기 힘들고, 그런 정보를 줍기도 어려운 시대였다. 드낙은 혈통 이야기를 하면서 엘프와 세계에 대해서 듣고는 혀를 내둘렀다. 인간이 쩌리라니?

[또한 엘프는 굳이 영토에 욕심이 없다. 마법과 영혼만으로도 적은 영토로도 부족함 없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 그러시구나···”

[인간들은 엘프에 대해서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열등감 때문이지. 아무튼 엘프를 죽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보는 것도 힘들고, 마주친다고 해도 지금 네 녀석이라면 1합이면 끝이다. 넌 운이 따라주니 3합은 갈 수 있을지도.]

“근데 엘프가 영생한다는 건 정말이야?”

[소문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생명체인 이상 수명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인간들 중에 엘프 수명을 아는 자가 있을지는 모르겠군.]

드낙은 〈엘프의 녹안(綠眼)〉을 획득하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불파겐의 이름을 쓰는 것은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좋아. 좋아. 아무튼, 네가 원하는 건 뭔데?”

[노예로든 뭐로든 상단 하나 운용해라. 제국과 남부 왕국을 오고 가는 놈으로. 기한은 10년 내로.]

넉넉한 기간이었다. 〈혈통〉 때문에 그리 쉽게 불파겐의 혈통이 끊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어차피 지금까지 수백 년이 흘렀으니, 십 년이고 삼십 년이고 거기서 거기였다. 엄청난 자신감이었다.

“딜.”

드낙이 그대로 대답했다.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상업〉은 드낙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단은 기본 7종류의 비전을 가르쳐주겠다. 〈버려진 영지〉에서 최대한 기반을 다져라, 하는 것을 보고 다른 비전 전수를 고려해보겠다. 또한 불파겐의 비전은 다른 놈들에게 전수하지마라.]

“예. 알아모시겠습니다.”

말을 마친 세파리아스의 오른손에 검은 연기가 들러붙었다. 단번에 롱소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꿈에서 실체를 가지지 않은 그였기에 근력의 유무 없이 생전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불파겐 기본 일곱 비전〉은 모두 롱소드를 통해서 발현되는 비전이었다. 그것은 〈필살기〉라고 보기에는 부족했고 롱소드의 〈일곱 전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삼(三)은 중단. 이(二)는 하단. 나머지 이(二)는 상단이다.]

일종의 전투에서 보다 우세하기 위한 길과도 같았다. 비전이라기보다는 태세와 방향성이었다. 일종의 싸움의 스타일이기도 했다. 그것을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다면 기사라도 애를 먹을 것이다.

‘평타 강화라고 해야 하나?’

그중에서도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은 상하단의 이(二)였다.

[롱소드의 가장 강력한 장점은 근력과 실력만 있다면 한손이든 양손이든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수많은 것을 보여주기에 롱소드만 한 것이 없지.]

어디에서든지 특출나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7개의 주(主)를 섬길 수 있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하나하나의 주(主)를 말하기 시작했다.

[칠주(七主). 그것은 〈탑〉을 쌓아올리는 것과 같다. 다른 무가들의 기술이 비전으로 향하는 〈길〉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진 것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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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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