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74화 (173/1,239)

0174 <-- 버려진 영지 -->

〈액체 치료봉〉은 마력의 충전을 위해서 최대한 사용해야 하지 않아야 했지만, 그때는 드낙을 노리고 있는 자들이 워낙 많아서 자제를 했을 뿐이었다.

마력을 운용하는 기사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뭐라도 다리를 걸 건더기를 제공하기에 충분했고, 작위적이고 인위적으로 죄를 뒤집어씌워서 자신의 〈말〉로 쓸 정도로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버려진 영지〉의 경우 상황이 크게 달랐다. 그를 어떻게든 압박해서 아귀처럼 뜯어먹으려 하는 세력이 없어진 상황에서 거침없이 사용하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드낙은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바로 〈액체 치료봉〉의 내구력 때문이었다.

‘무한으로 쓸 수 없는 게 당연하다.’

특히나 액체 치료봉은 그 효과에 비해서 크기가 작은 축에 속했다. 당연히 그 반대급부로 내구력이 낮았다.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는 마법사가 잘 아는 것이었지만 이곳에는 마법사도 없었고, 그러한 〈지식〉을 묻는 것은 대가를 요구했다.

‘당나귀 따위에게 쓰기에는 아깝다.’

오직 중상을 입은 사람들에게만 쓰기로 마음속에 정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적들에게서 얻어낸 준마들 때문에 당나귀를 비롯해서 데려온 말 중 하나를 거침없이 죽여도 상관이 없었다.

‘전신갑주는 5년~10년에 한 번 정비를 맡기면 그만이지만, 액체 치료봉은 아니지.’

〈전신갑주〉에 새겨진 마법진은 〈전쟁용〉으로 내구력이 특히나 대단했지만, 〈액체 치료봉〉은 그 자체가 휴대성을 높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마법 술식의 수명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판단을 내린 것은 다름 아닌 〈총관 게제라스〉였다. 문인답게 마법은 사용할 수 없어도 관련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번에 보여준 막힘없는 마법의 사용은 드낙이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마력을 운용할 줄 안다는 것을 보여준 전투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 대상은 이스핀이나 도렌이 아니다. 그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꽤나 나중에 알 것이다. 지식이 일천했고, 공부가 얕았다. 다른 이가 묻지 않는다면 그저 모르고 지나갈 것이다.

‘내 가치를 높여야 한다.’

〈자유기사 이실레아 브릴리언트〉 그리고 〈문인 게제라스〉에게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그들의 충성 혹은 다른 마음을 먹지 않기 위해서 드낙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이스핀과 도렌 부대장 앞에서 대놓고 가치를 말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다른 노예들에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그저 알 사람만 아는 것으로 족했다.

‘이실레아와 게제라스는 현재 내가 가진 것에 비하면 분에 넘치는 이들이다.’

이실레아 브릴리언트는 공 하나 세우면 떠날 기사였고, 게제라스는 자신의 꿈을 드낙이 막는 순간 제국으로 날아갈 문인이었다.

기사가 마력을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재산이었다. 그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여겼다.

‘이실레아에게 보여주는 것은 도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충분히 흔들리고 있다.’

특히 이실레아의 경우에는 다른 곳에 충분히 의탁이 가능했다. 하지만 드낙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녀 나름대로 현재 드낙과 함께할 이유가 충분히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눌러앉을 수 있었다.

‘적어도 밀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을 자는 아니었다. 공을 세워 은혜를 갚는다는 선택을 한 것부터 남달랐다. 교통사고의 위험에서 살려줬다고 1년을 그 은인을 위해서 사용한다는 현대인이나 다름없었다.

도와줘도 그냥 고개만 까딱이고 몸을 홱! 돌리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것을 선택한 이실레아는 충분히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그런 판단이 있었기에 이제 행동으로 밝힌 것이다. 그리고 그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것은 게제라스였다. 이실레아는 행동으로 보여줄 수가 없었기에 반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마적질을 할 정도로 규모가 큰 마을입니다. 그곳으로 향하기 전에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기사도 사람을 썰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검도 시체 기름과 살과 피에 날카로움을 금방 잃는다. 달인이라도 그것을 막을 길은 없다. 그저 늦출 수 있을 뿐이다.

숫자 앞에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용자(勇者)들은 역사에 수없이 기록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능히 일당백이 가능했고, 더 많은 학살을 저지를 수 있었다. 거침없이 마적 수십을 불태워 죽인 것은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었고, 드낙의 성격을 알고 있는 자라면 그가 마력을 충전할 수단을 가졌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게 진실이든 거짓이든 이미 막힘없이 전신갑주의 〈다수 마법〉을 사용했을 때부터 진위 여부 따위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신과 한 배를 탔기 때문이다. 그저 그 힘을 잘 이용하면 될 뿐이었다.

“계속 말해 봐.”

게제라스는 손가락을 세 개 세웠다. 그리고는 하나를 접으면서 말했다.

“첫 번째 방법은 가장 무난하게 그 마을을 지나가는 방법입니다. 마적질이라고해도 사실 공공연히 이런 치안이 무너진 상황에서는 할 수 있습니다. 용서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안 지켜도 상관없는 상황입니다.”

게제라스가 말하는 이 무난한 방법은 드낙에게 간접적으로 마력을 더 사용할 수 있냐는 말이었다. 그가 이 무난함을 선택한다면 오늘의 일은 그저 드낙이 처음으로 전신갑주를 얻어서 실전을 위해서 무리하게 사용한 결과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필요한 것도 보급하지 않고 가는 것입니다. 기사를 본 이상 직접적으로 덤벼들지 않을 것입니다.”

식수도 식량도 많은 것이 드낙의 무리였다. 굳이 무리해서 보급을 할 필요도 없었다. 마을 밖에서 대충 하루를 지내고 경유하여 다시 길로 올라와도 상관없었다.

“그들이 몸값으로 거래를 원한다면 화폐로 거래하면 그만입니다. 요는 쓸데없는 싸움을 피하고 적당히 타협하는 것입니다.”

드낙이 물었다.

“정확히 장점을 말한다면?”

“얻는 것은 시간입니다. 또한 나중에 문제가 될 여지도 없애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타협을 했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이 마을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드낙은 내켜 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마적단을 부리는 마을과 거래를 한다니. 앞으로 생길 자신의 평판에 검은 것이 묻을 것이다. 그 표정을 읽은 게제라스는 손가락 하나를 접으며 두 번째 생각을 말했다.

“주동자만 확실하게 처리하는 겁니다.”

“주동자만?”

“예. 제법 강압적으로 행동하며 마을 안으로 들어가 책임 소지를 묻고, 그들이 머리를 조아리도록 만듭니다. 기사를 상대로 칼을 대놓고 뽑을 놈은 없을 겁니다. 특히나 홀로 마적 서른을 죽였다고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마적 하나를 증인으로 내세우십시오.”

“너무 작위적이지 않나?”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면 상관없을 겁니다. 또한 그 증언을 말하는 마적 하나를 아예 풀어준다면 충분히 믿을 것입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제라스는 입에 침을 묻히면서 입안에 있는 침을 삼키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 뒤에는 포로의 건강 상태를 말하며 몸값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겁니다. 시간을 준다고 하며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냅니다. 그리하고 정해진 시간에 왔을 때 그들 가족부터 시작해서 찾아온 자들을 모조리 잡는 것입니다.”

“찾아온 자들까지?”

게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들과 성향이 같은 자들이니, 나중에라도 해가 될 놈들입니다. 그쪽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문을 하든 심문을 하든 그들과 관련된 자들 또한 잡아들이십시오. 삼일을 재우지 않는 것만으로도 술술 불 것입니다.”

제법 잔인했다.

“악신의 증거물이 있으니 빼도 박도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은 뭐냐?”

“하나는 은원 관계를 확실히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말입니다. 또한 노예를 대량으로 획득이 가능하며 그들이 가진 재산을 합법적으로 몰수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이득입니다.”

말을 마친 게제라스는 차가운 눈을 했다.

“마지막으로는 이 마을에 두려움을 줄 수 있습니다. 만약 덤비는 자가 있더라도 단칼에 죽어나자빠진다면 더더욱 좋습니다.”

피를 본 것은 물론이고 충분히 삭초제근을 했다고 할 수 있으니 나중에 논란이 될 여지도 없었다.

“노예로 삼아도 결국 복수심에 타는 놈이 있을 텐데? 가족단위로 싸잡으면 특히나 더 문제가 되지 않나?”

“부랑자들과는 다르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쓸만한 체력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또한 오히려 가족이기에 더욱 악착같이 살려고 할 겁니다. 가족을 모두 잡은 것만으로도 진흙탕 속에서 살아갈 힘이 날 겁니다.”

드낙이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을 데리고 가기에 더욱더 관리에 용이하다는 소리였다.

“또한 당근을 주어 5년만 열심히 일하면 다시 평민으로 격상시켜 준다고 하면 됩니다. 이 땅에 법관이 있습니까? 무엇이 있습니까? 드낙 님의 말이 곧 법입니다. 그들의 죄를 양피지로 문서화한다면 나중에 다른 이의 입에 오르내려도 능히 대처가 될 겁니다.”

“5년 뒤라면 아예 정착을 할 마음이 생겼겠지.”

“자연스레 녹아들 겁니다. 농지까지 준다면 딴 곳으로 갈 마음이 싹 사라질 것입니다.”

공포로 이 마을을 제어한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나중에 와도 감히 드낙의 세력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아슬한 저울질.’

혜안(慧眼)이라고 할 수 있었고, 가장 완벽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그럼 뭐냐?”

그 말에 게제라스의 눈이 흉험(凶險)하게 뒤틀렸다.

“강경책입니다. 앞의 두 가지는 모두 〈사교도〉에 대한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마적질을 한 것에 대한 죄를 물었을 뿐입니다.”

“확실히.”

〈중립신(中立神) 엘 마르토 카사다민〉을 믿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병든 자를 무료로 치료하고, 비록 뿌리식물이지만 감자나 고구마 같은 것으로 굶어죽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심지어 나무껍질마저 제공하는 것이 〈지역 신전〉이었다.

시민들은 그들을 믿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힘들 지경으로 물신양면으로 만인(萬人)을 위해 신성력을 사용하는 자들이었다.

그와 별개로 〈버려진 영지〉에서는 피의 악신 아토라신을 믿고 있는 정황이 발견되었다. 그에 대한 죄를 묻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름부터 〈피의 악신〉이다.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죽이고 벌을 주고 잡아 노예로 삼아도 칭찬받을 일이었다.

“마을이 이미 사교도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교도〉이기에 벌을 주려 한다면 상황이 어찌 될지 모릅니다.”

“정확히 어떻게 할 생각인가?”

드낙이 진중하게 묻자 게제라스가 거침없이 대답하였다.

“정규군이나 될 만큼의 정신무장이 되어있지 않은 잡것들입니다. 일시에 열 명을 죽이면 뒷걸음질 칠 것이고, 오십 명을 불태워 죽인다면 도망칠 것입니다.”

“덤비는 자는 죽이고, 도망가는 자는 쫓아잡아 모두 노예로 삼아서 저희들이 받은 땅으로 향하는 것이 마지막 방법입니다.”

말을 마치자 드낙이 눈을 감아서 생각에 잠깐 잠겼다. 그리고 이내 물었다.

“세 번째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이에 게제라스가 입을 열었다.

“하나는···”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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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감사합니다. 액체 치료봉의 경우에는 설정 오류가 있었기에 〈휴대성〉을 얻으면서 내구력이 낮다는 설정을 급하게 집어넣었습니다. 지금에서야 설정을 수정해서 많은 독자분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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