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3 <-- 버려진 영지 -->
드낙의 입이 달싹거렸다.
“〈열다섯개의 화염 깃털(Fifteen Flame Feathers)〉.”
전신갑주의 뒤에서 느껴지는 열기와 횃불과도 같은 주홍빛의 빛이 드낙의 시야의 끝에 내걸렸다.
“마, 마법!”
마적들은 전신갑주의 등 뒤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십여 개가 넘는 깃털을 보고는 간이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꼈다.
시곗바늘처럼 전신갑주를 중심으로 모습을 드러낸 화염 깃털은 그대로 적을 향해 쏘아졌다. 여기에서 드낙은 짜릿함을 느꼈는데, 그것은 〈자신의 적의(敵意)〉에 알아서 발사되었기 때문이었다.
‘훈련 때와는 확연하게 다르구나!’
마법의 표적은 명확하게 드낙이 적의를 가진 상대에게 향하였기에 훈련 때 사용해본 것과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목표물을 정확하게 노리고 거침없이 곡선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헉!”
무기로 휘적거리면서 그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불길은 무기를 타고 좌르륵 타올라 옷을 태워 녹이며 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끔찍한 소리를 내면서 마적이 그대로 균형을 잃고 고통에 발작을 하며 낙마했다.
“걱.”
뒤에 있던 말의 가슴에 몸이 부딪치면서 형편없이 반대편으로 날아가 땅을 구르다가 두툼하게 올라온 돌에 머리를 맞고 그대로 목이 꺾여 축 늘어졌다. 수백 kg은 나가는 말에게 치였으니 나무토막을 발로 차듯이 날아가는 게 당연했다.
“윽!”
방패로 막은 자들도 들러붙어서 화끈거리는 마법 불꽃이 옮겨붙자 탁탁 털어냈지만 뜨거움을 지나 고통으로 변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방패로 막아도 불똥이 튀면 끝이었다.
〈화염 깃털〉이 피탄하고 나서 지속되는 시간은 대략 10초에서 20초 사이. 그때까지 버텨줄 방어구가 아니라면 무조건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화염 계열 마법이 가지는 강력함이었다.
대부분이 낙마하고 고작 두 명의 마적만 도망칠 수 있었다. 제법 큰 원형방패 덕분에 목숨을 연명한 놈들이었다. 단궁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보니, 근접전에서 활약하기 위한 마적으로 보였다.
드낙의 눈이 반대편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마적 두목과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끼기긱!
이실레아의 장궁이 단박에 달리는 마적을 맞추었다. 그것만으로도 마적들의 기세가 비틀렸다. 마적이 사용하는 것은 단궁이었다. 장궁을 쏘기에는 자신들의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거침없이 가까이 온 마적들을 향해서 활을 든 노예들이 단번에 집중해서 화망을 형성해 화살을 쏘아보냈다. 그중에 100개가 형편없었고, 20개는 조금 매서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가까이 온 마적들을 겁주기에는 충분했다.
“윽!”
말의 목에 우연찮게 파고 들어간 화살 때문에 말이 크게 휘청거리면서 옆으로 기울어지더니 그대로 무너졌다. 낙마한 마적은 고통으로 태아처럼 웅크렸다. 지축이 울렸지만 밟히지는 않았다.
피핑!
마적들의 화살이 쏘아졌지만 대부분 마차에 막혔다. 짐마차에 묶여있는 말들도 맞았지만 모두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은 자신들의 목숨이 더 중요했다. 바짝 웅크린 채 방패로 보호받는 게제라스만 당나귀와 말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에 낯빛이 어두워졌다.
마소(馬牛)의 가치는 지금 시대에 인간보다 높았다.
세 바퀴를 돌던 마적들의 숫자는 30기 중에 10기가 박살이 났지만 마적 두목은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했다. 어찌나 기고만장한지 이실레아조차 놈이 뭔가 한수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을 보여주기도 전에 하늘에서 곡사포처럼 떨어져내린 〈화염 깃털〉이 마적들을 한차례 휩쓸었다. 〈적의〉로 목표물을 타겟팅 하는 것이었기에 그야말로 명중률 자체는 100%였다.
또한 마력운용이 가능한 드낙은 몇 번이고 사용이 가능했다. 그가 기름통이라면 전신갑주는 엔진이었다.
“흐아아악!”
마적들이 그대로 나뒹굴었다. 운 좋게 표적이 되지 않은 다섯 기는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대부분의 마적이 불꽃에 신체 일부분이 휩싸여 고통스러워하다가 쇼크로 죽거나 기절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
하지만 그러지 않은 자가 있었다. 척 봐도 덩치가 커서 어렸을 때부터 골목대장을 했을 것 같았단 마적 두목이었다.
‘화염 깃털이 전신으로 번졌다.’
기괴하게도 다른 마적과는 다르게 불똥이 튀기든 옷을 태우든 크기 자체는 커지지 않는 것이 마법 불꽃이었다. 하지만 마적 두목의 어깨에 내려앉은 화염 깃털은 마적 두목의 전신을 태웠다.
‘내가 노린 것이 아니다. 마적 두목에게 〈뭔가가〉 있다.’
드낙은 그 광경을 보며 잔뜩 표정이 굳었다. 마적 두목은 불에 탄 채로 미친 듯이 구르거나 벌떡 일어나서 달리다가도 엎어지면서 괴로워했다.
그 모습에 모두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드낙이 정보를 얻기 위해서 근접하자 끔찍한 울부짖음 사이에 들리는 단어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악신! 제바아아아아알!!!!!”
“피를, 은총을!!! 크아아악!!!”
몸부림치면서 그는 악신, 피, 은총에 대해서 소리를 질렀다. 바짝 타들어간 손을 비비기도 했다. 놈의 생명은 끈질겼고, 그렇다고 쇼크로 기절하거나 죽지도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내 마적 두목이 누군가를 욕했다.
“개씨발 아토라신아!!! 꺼져어어어···억.”
욕을 하자마자 그대로 불길이 사라지더니 그대로 마적 두목이 새까만 재가 된 채로 무릎을 꿇은 모습으로 뒤로 넘어져갔다. 목 부분이 새까맣게 타들어가서는 그 충격에 부서져서는 머리통이 데굴데굴 굴렀다.
“······”
드낙은 몇 번이고 단어를 기억했다. 그리고는 다 타버린 놈의 시체를 조사했다. 그리고 그가 구르고 엎어지고를 한 길을 훑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고급스러운 단검을 주울 수 있었다.
단검은 붉은 광석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붉은색이었다. 구조는 평범했지만 소드가드 부분이 질 나쁜 금으로 도색된 것처럼 보였는데, 구멍이 오돌토돌 나있었다. 또한 손잡이 밑에 있는 둥근 부분에는 사람의 얼굴이 조각되어있었다.
그것은 눈을 감고 있었는데, 드낙의 시선을 느꼈는지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어우씨!”
드낙이 냉큼 바닥에 버렸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꿈에서 나와도 미칠 정도의 상황이었기에 뒷걸음질까지 쳤다.
“끼끼기···”
단검에서 기괴한 소리가 흘러나오자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전투 상황은 일단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드낙은 천으로 단검을 다시 주워서 몇 번이나 싸매었다.
“이리온~, 이리온~.”
날카로운 눈매는 눈웃음으로 가득했고, 목소리는 나긋했다.
이실레아는 말을 다루는 것이 능숙한지 한 번 쓱 훑어보더니, 마적 두목이 타고 있는 준마를 먹이로 유혹해서는 말을 잡았다. 그것만으로도 다른 말들이 그 말에 모여들었다.
이스핀과 전투 노예들은 기절한 마적을 포승하고, 죽은 도적들의 소지품과 돈이 될만한 것들을 손에 쥐었다.
“천천히! 천천히!”
노예들은 다시 짐 마차를 길에 올리는데 힘을 썼다. 돌이 많고, 풀이 적은 곳이 〈버려진 영지〉였기 때문에 길이 있는 곳으로 무조건 가야 했다. 안 그러면 나무 바퀴가 버텨내지를 못했다.
부상자는 없었다. 대신 당나귀와 말이 조금 다쳤다. 활에 맞은 놈도 있었는데, 뼈가 상해서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단박에 도축이 이루어졌다. 소금으로 절여서 가지고 갈 생각이었다.
상황이 일단락되자 드낙이 주요 인물들을 불렀다. 그리고는 천으로 싸놓은 단검을 보여주었다. 척 봐도 이상함을 느낀 것은 감이 좋은 이실레아였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쁘네요.”
“여기 이 얼굴이 나를 보더니 히죽 웃더라. 이 물건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는가?”
그 말에 바로 〈총관 게제라스〉가 입을 열었다.
“다른 힌트는 없습니까?”
드낙은 악신, 피, 아토라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자 모두 감탄사를 내뱉었다. 제법 유명한 악신인 듯했다.
“〈피의 악신 아토라신〉입니다. 그를 믿는 사교도들에 대한 말은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사고를 안 치는 놈이 없죠.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것들입니다.”
모두 부정적인 말을 했다. 그렇게 유명한 악신도 모르냐는 눈빛에 드낙이 웃었다.
“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서··· 그럼 이 단검은 뭡니까?”
“그의 신도가 될 수 있는 단검입니다. 파괴를 하면 악신의 저주가 뒤따르니 그냥 버리는 게 좋습니다. 계속 들고 있어봤자 좋을 게 없습니다.”
이실레아가 딱 잘라서 말했다. 하지만 게제라스는 또 달랐다.
“신전의 인물과 합류할 때 건네주는 것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드낙은 일단 가져가기로 했다. 또한 게제라스에게 악신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었는데 피를 바치는 것만으로도 힘을 내어줘서 귀족들이 가장 싫어하는 신이라고 했다.
〈중립신〉을 믿는 신전은 명확한 이상이 있는 반면에 아토라신의 신도들은 그저 내키는 대로 자신의 욕망을 쫓기 때문이다.
“마적 두목은 왜 그렇게 마법 불꽃에 전신이 타오른 것입니까?”
“아마 아토라신의 은총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반대급부로 마법 불꽃에 약할 수 있습니다.”
드낙은 흥미가 돋아서 더욱 물었지만 게제라스 또한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아는 만큼만 알뿐이었다. 드낙은 정보가 바짝 마른 우물에서 바가지로 박박 긁어서 물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화상으로 정신을 잃은 마적들이 눈을 떴다. 살짝 실눈을 떠서 주변을 살피던 놈들이지만 꼼지락거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특히나 감각이 좋은 이실레아가 뒤에서 머리를 콱 잡아버리자 소리를 꽥 질렀다.
“정신 차렸으면서 왜 안 차린 척을 해?”
점심을 준비하면서 고소한 향이 나는 가운데 한 쪽 구석에서 마적들은 한 명씩 심문을 당했다. 심문은 드낙이 직접 담당했다. 깃털 투구를 옆에 두고, 단검을 능숙하게 돌려대었다.
“너희 마적단에 대해서 아는 것 다 말해봐.”
“예?”
멍청한 소리를 낸 마적의 얼굴이 돌아갔다. 강철 글러브를 끼고 있었기에 뺨에 상처가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부으면서 시퍼렇게 피멍이 들었다.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워낙 타격량이 좋아서 정신을 못 차렸다.
주먹을 들어 올리자 마적이 아는 것을 술술 말하기 시작했다.
“대충 500가구? 큰 마을 정도인데. 거기가 홀라당 마적 소굴이라고?”
“예. 예!”
규모부터 말하자 드낙이 믿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관전하는 이실레아 또한 의심이 들었다. 상식적으로 마적소굴이 그렇게 크려면 주변에 약탈할 자원이 많아야 했다. 하지만 버려진 영지는 결코 그럴 수 없었다.
“뭐, 농사나 그런 것도 하나?”
“예! 먹고살려면 뭐든지 합니다. 농사도 하고, 화전민들도 잡아서 노예로 삼고··· 가끔 사냥도 하고···”
횡설수설하는 것도 드낙은 용서해주었다. 그것 자체로 진실이라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확실하게 정리를 하기도 했다.
노인, 어린이 할 것 없이 최소 인구가 1천 명은 넘어 보이는 마적 소굴은 그냥 도적질을 부업으로 삼는 마을이라는 결론이 났다.
“어찌하겠습니까? 길이 있는 곳으로 가면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합니다.”
드낙은 어깨를 으쓱했다. 덤비면 다 죽여버리면 될 일이었고, 오히려 그렇게 나와주기를 원했다. 그 대가로 온갖 자원을 가져갈 수 있었다.
“일단 다른 마적들에게 똑같이 물어보고 정보를 보다 더 제대로 얻겠습니다.”
이실레아에게 그렇게 말하고 드낙은 눈을 돌려 전투 노예에게 놈에게 재갈을 물리고 따로 격리시켜놓으라고 명령했다.
대부분의 마적이 술술 불었다. 또한 몇몇은 자신의 가족이 돈을 줄 수 있다며 몸값이 얼마가 되었든지 최대한 맞춰주겠다고 말하였다.
‘생각보다 〈버려진 영지〉는 자원이 많은 건가?’
천 명이 넘는 마을을 유지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것을 약탈로 유지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부딪쳐본다. 덤비면 박살을 내고 자원을 내놓으라고 하고, 노예로 삼는다.’
악신의 신도들이라고 해도 드낙은 크게 무섭지 않았다. 또한 50명의 마적 중에서 마적 두목만이 신도였다. 그리 개체 수가 많은 것 같지도 않았다.
〈버려진 영지〉에 대한 지도는 아주 옛날의 것이라서 마을이 있던 곳에 마을이 없었다. 또한 갈림길이 있어야 하는 곳에 갈림길이 없기도 했다. 그것을 모두 수정해야 했기에 가는 길은 더욱 느려졌다.
하루가 저물고 저녁을 먹은 뒤에 게제라스가 술병과 술잔을 들고 드낙에게 다가왔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드낙은 다른 이들에게 자리를 피해달라고 했다. 모닥불에 오직 두 사람만 있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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