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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72화 (171/1,239)

0172 <-- 버려진 영지 -->

거대한 숨결을 드낙은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검은 꿈은 아니었다. 그저 칠흑과도 같은 곳에서 누군가가 바로 코앞에 있었다.

“크흐.”

그 숨소리는 짐승이라기에는 부족했고,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넘쳤다.

‘누구냐.’

입에서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내 놈이 입을 쩍 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끝으로부터 타고 오르는 선명한 전의(戰意)와 뒤섞인 광기(狂氣)가 드낙의 피부를 타고 질주했다.

소름이 바짝 돋으면서 척추가 바짝 섰다. 놈이 뭐라고 말하기 직전에 드낙은 눈을 떴다. 온몸에는 땀으로 가득했다.

카이야가 벌떡 상체를 일으킨 드낙의 앞에 내려앉았다.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에 검지를 접어서 목과 앞가슴을 긁어주었다.

“악몽이라도 꾸셨습니까?”

담담한 목소리가 드낙의 귀로 들려왔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짙은 황금색의 금발에 연두색의 눈을 가진 〈이실레아 브릴리언트〉였다. 그녀는 드낙에게서 받은 〈굴렁쇠 코뿔소 가죽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투박한 가죽 갑옷은 판금 갑옷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가죽 갑옷임에도 갑옷의 무게부터 방호력까지 판금 갑옷과 비슷했는데, 〈제국 공방〉에서 시험적으로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강화 화염 방패(Reinforce Fire Shield)〉까지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장비였다.

자유기사는 강하다. 그런 강자(强者)에게 마법 장비를 입혀주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할 정도였다. 호랑이는 무섭지만, 날개 달린 호랑이는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가볍게 앉아있는 그녀의 옆에는 특수장검이 놓여있다. 대검이라기에는 얇았고, 롱소드라기에는 길었다. 또한 그녀는 특이하게도 부무장으로 레이피어를 쓰고 있었다.

“예. 조금···”

드낙은 그렇게 말하며 모닥불에 놓인 따뜻한 물을 마셨다. 여름이 끝나가면서 밤에는 더욱 쌀쌀했다. 특히나 메디오 지방은 일 년 내내 바람이 잘 불었기 때문에 밤바람은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온도도 빠르게 식었기에 저녁에는 겨울처럼 땅에 데운 돌을 묻는 것이 일상화될 정도였다.

“무슨 악몽이었습니까?"

“누군지는 모르는데, 제 앞에서 거칠게 숨을 내쉬더군요. 그러다가 놈이 덤비는 것처럼 보였는데··· 잠에서 깼습니다.”

“개꿈인 것 같습니다.”

이실레아는 단칼에 그렇게 말했다. 별로 공감하지 않는 듯하여 드낙이 물었다.

“이실레아 씨는 악몽 같은 거 전혀 안 꿉니까?”

“예. 저는 사실 꿈이라는 것도 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자고 일어나면 끝입니다.”

드낙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는 크게 달랐다. 드낙은 꿈에 대해서 잡담을 나누다가 이내 이실레아의 특수장검과 레이피어로 이야기가 번져나갔다. 두 명 모두 무인이었기에 오히려 잡담보다 더 이야기가 잔뜩 꽃피워졌다.

“신기한 조합인데. 보통 특수장검의 부무장으로 레이피어를 씁니까?”

“왜 레이피어를 쓰는 것 같습니까?”

드낙은 조금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도박을 하기보다는 정석을 말하였다.

“비무장인 상대를 여럿 상대함에 있어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아닙니까?”

“날카로우시군요. 레이피어를 사용하신 적이 있습니까?”

〈손없는 센다빌〉의 실전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상체를 크게 숙여서 피격 판정을 줄이는 기괴한 레이피어의 사용법이나, 간합을 극한으로 얻어내는 방법 등이 있었고, 레이피어는 특히나 무게도 롱소드보다 무거운 것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파괴력도 준수하다. 검신이 조금 굵거나 넓은 것은 체인메일도 훅하고 긁어낸다. 무엇보다 비무장 상태에서의 싸움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한다.

특수장검보다 더 짧은 시간에 적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소위 수준 낮은 장비를 한 자들을 죽이기에 효율이 높은 무기였다.

“아니요. 하지만 사용하던 자들과 부딪친 적은 있습니다.”

“레이피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텐데···”

드낙은 웃음으로 넘겼다. 이실레아도 눈웃음 지으며 말했다.

“반은 맞았습니다. 다른 이유는 브릴리언트 가문의 비전이 레이피어에 몇몇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아하.”

드낙이 납득했다. 비전이 그쪽으로 개발되어있으면 레이피어를 부무장으로 충분히 사용할만했다. 그녀는 드낙의 무장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롱소드와 숏소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중병기 종류는 사용하지 않습니까?”

“네. 생각보다 롱소드의 파괴력이 제법이라서.”

또한 드낙의 검은 문이 주는 보정도 있었다.

“대검이 필요할 때가 분명 올 텐데··· 답답하다고 생각된다면 저처럼 특수장검을 쓰시는 건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이 롱소드로 일각수를 초주검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말에 이실레아의 눈이 조금 커지면서 동그랗게 변했지만 이내 다시 날카롭게 돌아왔다.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일각수와는 한 번도 싸워보지 못해서.”

그 뒤로는 일각수에 대해서 떠들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렀고, 다른 불침번을 깨우면서 드낙 또한 다시 드러누워서 눈을 감았다.

〈횃불 성채〉에서 7일 만에 〈버려진 영지〉의 근처에 도달했지만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엉망진창인 길은 길이라고 할 수도 없었기에 이동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보름 거리를 한 달에 걸쳐서 가야 할 정도로 도로의 정비가 망가진 것이 〈버려진 영지〉였다.

애초에 이 영지의 토지는 갈가리 찢긴 채 귀족들을 견제하는데 쓰이고 있어서 주인 없는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도 가장 북동쪽에 있는 토지가 〈토치라이트 가문〉의 것이었다.

정확히는 왕족들에게 억지로 받은 땅이기도 했다. 드낙은 그 땅을 획득했고 아직도 한참을 가야 했다.

‘엉덩이가 아파죽겠다.’

처참한 도로는 사실 잘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도로 공사만큼 명성을 높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적자원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것이 이 세상이었기에 길을 평탄하게 만드는 작업은 대부분이 그 영지의 귀족 가문이 했고, 크게 생색을 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때문에 뭔 큰일이 터졌을 때, 하는 일이었고 그것은 혼란스러운 남부 왕국의 상황상 매년은 아니지만 3년에 최소 한 번은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빌어먹을 도로.’

도로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길이었다. 하지만 드낙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참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전신갑주를 입은 채 드낙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편의 마법〉은 없었지만 매우 잘 만들어진 갑옷이었으며 무게가 전체적으로 분산이 되어있어서 갑갑함도 없었다. 애초에 드낙은 자신의 신체조건을 뛰어넘은 근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전신갑주의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남부 왕국, 북동쪽 영지, 버려진 영지는 평지가 많았다. 그렇다고 농사짓기 좋은 곳은 아니었다. 곳곳이 황무지였고, 돌들이 많았다. 초원이나 들판이라고 할 곳은 손에 꼽을 것이다.

‘이런 곳의 치안이 무너지면 사실 회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

때때로 모래가 잔뜩 바람과 함께 날려오기도 했다. 얼마나 척박한 곳인지 자연이 말해주고 있었다.

새벽동이 틀 무렵, 아침 준비를 시작하고 있는 와중에 도노가 강하게 짖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에 모두가 그쪽으로 눈을 돌렸는데 검은 점 같은 것들이 잔뜩 뭉쳐서 먼지를 내고 있었다.

“뭐지?”

“마적인가.”

“모래바람 같은데. 햇빛이 저쪽으로 비추니까, 그림자가 점이지.”

온갖 추측이 나돌았다. 거리는 1500 보나 되었지만 확연하게 보였다. 황무지, 들판과 초원 그리고 때때로 보이는 크고 작은 숲이 이곳의 지형이었다. 언덕 하나 없이 말끔한 들판을 쭉 지나서 보이는 검은 점들을 드낙은 가만히 주시했다.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적이다. 하지만 거리가 머니까, 밥은 먹을 수 있겠는데.”

그 말에 함께 지켜보던 이들이 작게 웃음소리를 내면서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밥만 준비하지는 않았다.

‘이럴 때 어떻게 하라고 했더라?’

드낙은 그라돈이 준 군사학과 관련된 책을 꺼냈다. 백과사전 총집처럼 두꺼웠지만 거침없이 해당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평지에서 적과 싸울 때 생각해야 할 것.’

자신의 병과와 적의 병과.

‘적의 병과는 모르지만 나는 보병뿐이니까···’

보병의 경우에는 장애물을 통해서 간이 진지라도 구축하는 것이 좋다고 나와있었다. 또한 원거리 무기로 쓸만한 돌이라도 줍는 것이 좋다고 누군가의 필체로 옆쪽 여백에 노하우가 적혀져 있었다.

“손이 비는 자들은 마차를 통해서 원을 그리듯이 벽을 쌓아라! 그리고 돌팔매질을 할 돌도 주워오고!”

“예!”

소리를 내면서도 하지 않을 수 있었기에 드낙은 직접 돌아다녔다. 이에 노예들 중에 요령을 피우려고 마차 밑에 은근히 기대어 있던 노예가 화들짝 놀라며 바로 허리를 숙여서 주먹만 한 돌을 주워들었다.

군사학 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면서 드낙은 필요한 대처를 했다. 그리고 수프에 육포를 찢어 넣어 두 그릇이나 비웠다. 그제서야 800걸음 밖에 도착한 마적들을 볼 수 있었다.

고작 700걸음의 거리를 말이 늦게 올리는 없었고, 알아서 속도를 줄여서 도착할 것일 터였다.

그 숫자는 제법 많았는데, 50기에 가까운 마적이었다.

‘뭐가 저렇게 많아.’

그중에 다섯의 마적이 말을 타고 300보 가까이 접근했다.

“이 빌어먹을 개새끼들아!! 여기가 어디라고 통행세도 안 내고 지나가려고 하느냐!!!”

“그래! 개새끼야!”

“똥x에 뭐막힌 새끼들아! 정신머리 어디다 놓고 다니냐! 머리통에 화살 구멍 나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우리가 누군지 알고 감히!!!”

온갖 욕을 마적들이 하면서 통행세를 내라고 난리를 피웠다. 이에 드낙이 명령했다.

“흰색 깃발을 들어 올려 흔들어라. 항복하는 척을 하는 거다.”

흰색 깃발을 대충 창에 걸어서 흔들어 보이자 마적 다섯이 다가왔다. 뒤에 있던 마적들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근접한 마적들은 거침없이 장애물을 지나서 말을 탄 채로 비집고 들어왔다.

“응?!”

그리고는 중앙에 떡하게 있는 드낙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전신갑주. 마차와 인파에 가려져 있던 드낙의 모습은 진형 안에 들어와서야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에 순식간에 칼부림이 시작되었다.

중형 키메라와의 싸움 이후로 전투 노예들은 절반이 창을 쥐게 되었다. 그 덕에 마적 다섯 중에 셋이 칼에 찔려서 그대로 낙마했고, 나머지 둘은 배와 겨드랑이에 칼침이 박혔다.

“크악!”

소리를 지르는 마적이 크게 휘청거렸다. 단번에 옷깃들 뒤에서 잡아당긴 놈 때문에 끌려내려졌는데, 투구가 벗겨지고 머리채가 잡아당겨져서 무기를 꺼낼 수도 없이 몸이 마구잡이로 패대기쳐져서는 그대로 입에서 피를 뿜었다.

순식간에 다섯이 당하며 죽는 소리를 내자 오던 마적들이 멈춰 서는 서로 의견을 나누더니 이내 양쪽으로 나누어져서는 단궁을 빼어들었다.

“놈들이 활을 쏠려고 합니다!”

“마차 뒤에 숨어서 오른쪽 놈들부터 노린다! 마차 뒤에 숨어서 오른쪽으로 도는 놈들부터 노려라!”

그렇게 말하며 드낙은 거침없이 진형에서 빠져나갔다. 〈깃털 투구〉를 쓰고 있는 드낙은 주변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끝도 없는 광활한 대지. 돌과 갈색의 땅. 녹색의 대지를 보는 것이 힘들 정도의 척박한 땅이었다.

롱소드를 뽑은 채로 방패를 왼손에 쥔 채 드낙이 천천히 걸어갔다. 양동을 하려는 왼쪽의 마적 15기는 난색을 표했다. 마적 두목은 30기를 이끌고 우측으로 돌아갔는데 자신들을 향해서 오는 자 때문이었다.

“기, 기사잖아!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소리에 다른 자들도 온갖 이야기를 해대었다. 하지만 그래도 두목의 주먹과 난폭함이 그들에게는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두목한테 죽고 싶냐! 멀리서 화살만 쏘면 저 기사도 어쩌지 못할 거다!”

버려진 영지에서 살아가는 마적들은 애초에 토벌다운 토벌을 당해보지 못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마적이 기사와 싸워본 적이 없었다. 또한 소문으로만 들었기에 체감이 가지도 않았다.

“갑옷에 틈이 없을 수가 없다! 마구잡이로 쏘다 보면 오히려 도망치는 놈은 기사가 될 거다!”

마적 부두목의 말에 다른 마적들이 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그 모습을 보고는 되려 당황한 것은 드낙이었다.

‘안 빼네? 기사에 대해서 모를 리는 없을 텐데. 미친놈들인가? 아니면 다른 한 수가 있나? 그럴 리는 없을 텐데.’

마적들이 100보까지 접근해서 말머리를 휙 돌리고는 90걸음걸이에서 단번에 드낙의 옆으로 지나가며 단궁을 쏘기 시작했다. 드낙은 여차하면 방어 마법을 쓸 생각을 하면서 활을 방패와 전신갑주로 막았는데 그냥 평범한 화살이었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드낙의 뒤통수를 지나 한 바퀴를 돌면서 마적 15명은 자신이 붙었는지 보다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서 70걸음까지 다가왔다.

‘죽으려고 환장한 놈들이구나.’

그의 입이 달싹거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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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주기가 불안정 할 수 있습니다. 일단 하루에 한 편은 쓸 생각인데 당분간 연참은 못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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