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71화 (170/1,239)

0171 <-- 에필로그 -->

〈검은 산골 마을〉. 그곳은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다. 전과는 다르게 목책도 두툼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고, 망루도 살림의 흔적이 다분했다. 제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너무 자주 오는 것 아닌가?”

그곳에 보부상 몇이 방문했다. 전에 간 뒤로 생각보다 빨리 다시 방문했다. 열린 문으로 들어서며 보부상들은 땀을 닦았다. 여름이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도 날씨는 미친 듯이 타오르고, 땡볕은 줄어들 줄을 몰랐다.

“올라오는데 바람 한 점도 불지 않아서 정말이지 죽을 뻔했소.”

“물이라도 드시오. 그늘에 있는 것이라···”

거침없이 손이 갔다.

안면이 있는지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던 보부상들은 이내 빈방에 짐을 풀었다. 내일 화폐나 가죽을 얻기 위해서 장을 벌일 생각으로 모두 빨리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중에 하나는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어디 가시오?”

“따로 부탁받은 것이 있어서. 쉬고 계시오.”

그가 향한 곳은 이 마을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있는 목장이었다. 목책의 밖에 있어서 위험해 보이는 곳이기도 했다. 작은 울타리가 전부였다.

‘평화로운 곳이네.’

집을 두드렸지만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은 아기를 안고 있는 여성이었다. 무방비함 그 자체였다. 미모도 제법이라 쌓여온 성욕이 끌어 올랐지만 보부상은 참았다.

시골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만큼 미친 짓도 없었다. 걸리면 그야말로 끔찍한 짓을 당할 것이다. 법이고 뭐고 없었기에 범죄나 원한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감정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야말로 피로 가득한 복수가 끝을 모르고 이어질 것이다.

“무슨 일로···?”

“아, 예! 여기가 할다낙의 목장이 맞습니까? 그의 둘째 아들 드낙이 보내온 편지가 있어서···”

세르낙의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집으로 들여보내지는 않았다. 대신 해질녘에 다시 오라고 말했다. 보부상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 편지는 무조건 할다낙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늑대 용병단〉의 용병단장과 이름이 같았지만 전혀 다른 〈애송이 용병〉의 부탁이라서 무시해도 괜찮았지만 동화를 제법 받았기에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해질녘이 되어서 다시 방문한 보부상이 전하는 편지를 문 밖으로 나온 할다낙이 받았다. 양피지는 제법 비싸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끝이 찢겨 있어서 오래된 양피지였다.

여러 곳에 주름이 잡히는 것을 보니 〈애송이 용병〉이 된 드낙은 그리 큰돈을 벌지 못하는 듯했다.

“쯧. 그냥 여기서 가죽이나 팔 것이지. 무슨 출세를 한다고. 에휴.”

할다낙은 그리 혼잣말을 하면서 양피지를 읽으려고 했지만, 보부상이 그것을 막았다.

“품삯을 따로 받아야 합니다.”

“드낙이 주지 않았소?”

“애송이 용병이 돈이 어딨다고···”

대놓고 드낙을 하찮게 말하는 모습에 할다낙이 바닥에 침을 뱉으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말을 해도 그딴 식으로. 상인 맞소?”

오래전부터 목장일을 하면서 밖을 돌아다닌 할다낙의 가계도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덩치가 크고, 근골이 좋았다.

보부상이 입을 다물었다. 차남의 욕을 대놓고 하는 게 기분 좋은 아버지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같잖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헛기침을 하며 할다낙이 양피지를 읽어나갔다.

락손에게서 글을 배운 드낙은 선생이 되어서 가족에게 글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할다낙은 물론이고 그의 형인 세르낙도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차남 드낙이 목장일에 등골 휘어지는 아버지에게 잘 못 지내고 계시죠? 이번 여름은 정말로 덥다고 합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물론 그렇다고 챙길 수도 없을 테고···

더워서 죽은 가축은 없죠? 7살 때 일 한 번 제대로 해보겠다고 형 따라가서 물 크게 들고 오다가 뒤로 고꾸라져서 죽을 뻔한 적이 생각나네요. 그 뒤로 목장일에 손 떼라고 해서 3년 동안 잘 먹고 자랐는데···]

‘이 녀석.’

할다낙이 웃음 지었다. 절로 능청스러운 드낙이 생각났다. 락손과 어울리면서 진지해졌지만 그전에는 능청스럽게 일을 안 하고, 아버지와도 장난치면서 지냈던 드낙이었다.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제가 좀 멀리 갑니다. 팔려가는 건 아니고 용병단이 커져서 다른 곳으로 가는데 저도 따라가지 않겠냐고 꼭 좀 부탁하네요. 애송이 용병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그래도 실력 하나는 인정해줍니다.]

‘락손에게 그렇게 현물이랑 돈을 주고 배웠으니. 당연하지.’

할다낙은 다시 눈을 내렸다. 그래서 잘 지낸다니 다행이었고, 특히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읽으니 괜히 가슴이 크게 뛰었다. 어디 가서 맞고는 안 사는 듯했다.

[아무튼 제 돈은 잘 보관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 돈을 가지러 갈 여유가 없네요. 아버지가 마음대로 쓰세요. 만약 형이 아직까지 결혼도 못 했다면 돈으로라도 꼬시라고 전해주세요.]

‘이미 결혼했다, 이 녀석아.’

벌써 애까지 있는 세르낙이었다.

[아, 그리고 심부름비는 벌써 줬으니 돈 달라고 한다면 주지 마세요. 밖에 나가보니 하도 등 처먹으려고 하는 놈들이 많아서 이만 글 줄입니다.]

거기까지 읽은 할다낙의 날카로운 눈총이 보부상에게로 쏘아졌다.

“내 아들이 이미 돈을 줬다는데?”

“예?! 아! 제가 착각을 했나 봅니다.”

“쯧쯔···”

그가 혀를 차자 보부상이 어찌할 줄을 모르고 연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큰 착각을!”

목장은 특히나 털과 가죽을 얻기 좋은 곳이었고, 이런 산골 마을의 목장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시세가 제법 고정되어있어서 적당히 이득을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착각은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너 이름이 뭐야?”

거침없이 반말을 하며 삿대질을 하자 보부상의 눈이 시꺼멓게 죽어갔다.

“내일 한 번 어떻게 되는지 보라고.”

“정말 죄송합니다!”

피해가 다른 보부상에게까지 갈 것이라고 일침을 놓는 할다낙이 협박을 하자 보부상이 아주 무릎까지 꿇었다. 이런 산골 마을에 보부상을 하는 자들은 결국 몇 푼 이득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물건 팔아먹는데, 사람이 말이야···”

한 소리 하며 그를 용서한 할다낙에게 감사를 표하며 보부상이 떠나고, 저녁 식사에서 할다낙은 양피지를 보여주었다. 세르낙은 그것을 소리 내어 읽었다.

조용조용한 산골 마을에 드낙의 편지만큼 재미난 일이 없었다.

“역시 〈늑대 용병단〉의 용병단장 드낙이 내가 아는 드낙이 아니네요.”

“그 녀석이 무슨 수로 용병단장이 돼? 소리 들어보면 자유 기사라던데.”

“이름 바꿨을지도 모르겠네요. 겹치면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으니.”

세르낙의 말에 할다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 둘이 이야기하니 하나같이 진지한 이야기뿐이었다.

“나중에 오면 치즈라도 듬뿍 줘야 하지 않겠어요?”

세르낙의 아내가 말하자 세르낙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엄격하고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값 주고 팔아야지. 칼밥 먹는 놈이 돈을 가장 많이 번다잖아.”

농담이었기에 웃음꽃이 폈다.

“잘 하고 있어서 다행이네. 죽어서 돌아오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얼굴 하나 안 내비치고 편지나 달랑 보내다니. 괘씸한 놈.”

저녁 시간 내내 그들 가족은 드낙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용병 기숙사〉는 구매한지 두 달도 안 되어서 다시 매물로 올라갔다. 〈북동쪽 영지〉로 향하는데 이곳에 건물을 놔둘 이유가 없었다.

“아니, 반값에 그냥 되팔라니, 너무 한 것 아닙니까?”

“규정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드낙 용병단장님이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드낙은 눈을 찌푸렸지만 결국 문인의 말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구매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찔러보아도 문인은 대나무와도 같이 꼿꼿했다.

‘젠장할. 그렇다고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고.’

토치라이트 가문에게서 많은 것을 얻었지만 행정 처리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할 수 없었다. 그건 그거. 이건 이거라는 식이었다. 집사 젠이나 야수 기사를 다시 보지도 못했다.

성주는 말할 것도 없었다.

‘마치 중요한 사건이 터질 때 국회의원이 미친 듯이 들이닥치다가 끝나면 입 싹 닫는 거랑 비슷하네. 하여간 있는 것들은···’

혀를 찼다. 도와줄 거 끝까지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받은 것을 생각하면 그런 소리는 목젖에서 다시 쏙 들어갔다.

‘과분하게 받았긴 하지.’

전신갑주를 착용하고, 〈깃털 투구〉를 옆구리에 낀 채 드낙은 외청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수행원은 전투 노예 다섯과 도렌 부대장이었다.

“가족이랑은 이야기가 잘 되었어?”

“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합니다.”

도렌이 그렇게 말하자 드낙은 그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제법 시끄러워질 것 같았는데, 도렌이 이야기를 잘 했나 보다.

“다행이네.”

“예.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돌아간다. 아직까지 상의하고 있는 게 많다. 그나마 내부적인 문제는 금방 해결되어서 짐이 크지는 않다.”

부대장들은 당연히 드낙과 함께하기로 했다. 걱정되었던 도렌 또한 따라나섰다. 〈백수 게제라스〉는 일단 〈내정관 게제라스〉가 되지는 않았다. 드낙은 그를 총관으로 새로 삼았다. 그가 아직은 믿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용병 하우스를 팔면서 〈총관 베르벤〉과 작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세아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크게 아쉬워했다. 드낙만큼 일당을 챙겨주는 이는 만나기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적당히 잘 되면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기에 그보다 더 좋은 고용주는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일찍 오셨군요. 잘 해결되었습니까?”

“그래. 일단은, 팔았지만 말했던 데로 제값은 받지 못했다. 미리 냈던 세금도 돌려받지 못했고.”

드낙은 거침없이 새로운 총관이 된 게제라스에게 말을 놓았다. 위아래가 확실하게 정해졌다는 뜻이었다. 〈전신갑주〉와 〈토지〉를 받은 뒤로 게제라스는 말 그대로 드낙의 밑으로 확실하게 들어오게 되었다.

가신이 특히나 적은 드낙에게 있어서 게제라스는 〈쓰레기 영지〉라고 불리는 북동쪽에서 자신의 꿈을 이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노예에 관련해서 오면서 또 생각이 났는데.”

“지금 예산으로 볼 때 100명이 최대입니다. 더 구하면 힘듭니다. 거기까지 가는 길이 한 달입니다. 길이 제대로 닦여 있지 않아서 더 걸릴지도 모릅니다.”

딱 잘라 말하는 그에게 드낙이 볼을 긁었다.

“더는 못 데리고 가나? 여자 노예라던가···”

드낙의 거듭된 말에 게제라스가 조금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거짓이었다. 드낙이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것을 며칠 전부터 피력했기에 이미 밤낮으로 고민한 것이 게제라스였다.

대답은 NO였다.

“여름이 끝나가고 이제 가을입니다. 하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제대로 식량조차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사람보다는 양식을 가져가는 것이고··· 괜히 입을 많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불어 돈이 들어도 노예 100명을 추가로 사서 가는 건 짐마차를 끌 노동력을 위해서입니다.”

일석이조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드낙이 눈을 빛내며 한 가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슬럼가. 그들을 데려가는 건 어떤가.”

그 말에 게제라스가 거칠게 반대했다.

“부랑자들은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성병부터 시작해서 그들을 제대로 된 노동력을 제공하는 시민으로 만드는데 유지비가 얼마나 들지 생각을 해보십시오.”

“음··· 그런가?”

“관리 감독에만 추가 인력이 들 겁니다. 애초에 밥 빌어먹으려면 농가에라도 소작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도 안 하는 자들입니다.”

게제라스의 말은 신랄했다. 그 또한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을 제대로 치료하고, 또 오랜 굶주림에서 나오는 허약함까지 생각한다면 받아들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또한 대부분들이 범죄에 깊게 노출되어서 심성 자체가 비틀려있었다.

조목조목 따지듯이 말하는 게제라스를 보며 드낙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를 말렸다.

“알았다. 알았어. 그럼 노예 100명으로 결정하고, 나머지는 양식으로 하는 것으로 하겠다.”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말까지 구매를 했는데, 대부분이 당나귀였다. 종마로 쓸 숫말 1필과 암말 5필이 준마의 전부였다. 그 외에는 당나귀로 이루어졌다.

위가 뻥 뚫린 짐마차가 10대가 넘었고, 사람을 수송할 마차가 5대 그리고 짐수레가 20대가 넘었다. 규모가 좀 큰 마차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높아졌기 때문에 섞은 것이다.

남자 노예 100명.

전투 노예 18명.

이스핀과 도렌 부대장.

총관 게제라스와 자유기사 이실레아.

그들은 식량을 가득 싣고 북동쪽의 영지로 향했다. 〈남부 왕국〉에서 버려진 곳이라 여겨지는 곳이었다.

소재를 원하면서 횃불 성채에서 따돌림을 은근히 당하는 마법사는 따라오지 않았다. 마법사가 따라오기에는 드낙은 형편없는 기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든든한 성채에서 그래도 간간히 나오는 소재들을 비싸게 사는 것이 나았다. 대신에 중형 키메라의 머리와 가죽을 구매하면서 틈틈이 드낙에게 방문을 하겠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키메라 가죽과 머리를 거래하면서 얻은 것은 〈화살막이 천막(Arrow protection cloth)〉이었다. 마차에 씌우는 굵은 천이었다. 화살 정도는 막아주고, 투창은 못 막는 수준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감지 덕지였다.

〈굴렁쇠 코뿔소 가죽 갑옷〉 - 〈강화 화염 방패(Reinforce Fire Shield)〉는 이실레아에게 돌아갔다. 물론 완전히 주는 것이 아니라 대여하는 형식이었다. 자유기사인데 그 정도 대우는 해줘야 했다.

‘버려진 영지인가.’

드낙은 마차 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작품 후기 ==========

6265자

1부 완입니다. 두 편으로 에필로그를 나눌려다가 한 편으로 그냥 퉁쳤습니다. 그게 에필로그에 맞는 것 같아서···아무튼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2부는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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