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0 <-- 그 후 -->
성주가 상자를 열라고 지시했다.
“구식이지만 전신갑주를 그대에게 추가로 하사하겠다. 물론, 마력의 충전까지는 도와주지 않겠네. 자네가 집사 젠에게 전신갑주를 원한다고 말하였기에 내어주는 것이다. 토치라이트 가문에 대한 문양 또한 지웠으니, 내키는 대로 사용하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상자 내부에 있는 양피지에 전신갑주에 대한 설명서가 상세히 적혀져 있다고 했다. 물론 그 설명서에는 전신갑주가 만들어진 연도, 사용된 연혁과 제작자부터 시작해서 누구 손때를 탔는지도 적혀져 있었다.
말 그대로 전신갑주를 어떻게 얻었는지에 대한 증거였다. 잃어버리면 큰일 나는 것은 당연했다.
“혹, 그대의 가문명을 알 수 있겠는가?”
성주의 말에 드낙이 크게 조심히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검은 것이 묻어있어서 아직까지는···”
“음. 그런가.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는 깔끔하게 드낙의 거부를 받아들였다. 어차피 그 덕에 〈드낙〉에 대한 유명세를 어느 정도 감출 수 있었다. 〈내성 지역〉에서 이루어진 공을 내리는 자리에 없게 한 이유도 드낙이 스스로를 자유기사라 칭하지 않고, 감추려고 했기 때문이다.
토치라이트 가문에서는 좋을 수밖에 없었다. 주연이 하나 빠진 것이니까. 그들에게 득이었다.
“은화 1천 닢이 든 목함이다. 토지세는 물론이고 땅을 개간하고, 사람들을 모으는데 충분한 돈이 될 것이다.”
성주는 추가로 은화가 가득 담긴 작고 길쭉한 목함도 내어주었다. 마지막으로 토지 계약서 또한 얻게 되었다. 그것은 새하얀 색으로 도색된 철로 된 둥근 작대기에 양쪽으로 말려진 양피지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성주는 드낙에게 엄청난 것을 주었는데, 이것은 비단 이번 공에 대해서가 아니었다.
‘나에 대한 투자다.’
나중에 고개 돌리지 말라는 소리였다. 드낙은 좋을 수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기득권이 되어도 토치라이트 가문 덕분에 조금 더 부드럽게 그들에게 섞일 수 있을 것이고, 서로 교류를 할 수 있는 아군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서로 이용하는 관계가 되겠지만, 그것도 어디냐.’
배척 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겼다.
또한 일이 너무나도 잘 풀렸는데 그것은 〈흑마법사 거처〉에 있는 전리품을 꺼내는 5일간 〈집사 젠〉과 끝없이 대화하며 물밑작업을 했기 때문이었다.
‘응?’
내성 밖으로 향하는 드낙은 걸음을 멈추었다. 〈집사 젠〉이 걸음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이에 집사 젠이 매우 조심히 입을 열었다.
“토치라이트 가문의 방계로 들어올 생각은 없으십니까? 이대로 그 변방으로 보내기에 너무 아까워서 그렇습니다. 결단코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
그는 고개마저 숙이고 있었다. 그만큼 드낙이 이번에 보여준 능력은 출중했다는 뜻이었다. 또한 토치라이트 가문의 능숙함을 알 수 있었다. 성주가 직접 말하지 않고, 집사가 말했기에 드낙에게 지금까지도 여지가 있게 해준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체면도 있었지만, 드낙을 존중해주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밑작업을 하는 내내 집사 젠은 드낙을 방계로 맞이하기 위해서 그의 의사를 물었는데 드낙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애매한 태도로 일관했다. 귀족이 가진 힘을 두려워했기에 딱 잡아서 거절할 수 없었다.
거절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쁘다고 뺨을 후려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다산신도시의 택배대란처럼 조금만 자신보다 낮으면 뺨을 후려치는 현대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계급이 나누어져 있는 곳이 이곳이었다. 귀족들은 명성을 쫓고 있지만 앗하는 순간 탈선해서 용병단장 하나 죽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보의 차단이 쉽기 때문이다.
‘나는 평민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유 기사.’
“······아주 어려운 질문입니다. 나중에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집사 젠이 괜히 웃어 보였다.
“천천히 생각해보십시오. 나중에라도 기대하겠습니다. 언제든지 저를 찾아주십시오.”
진실로 내성을 지나고, 내성지역을 벗어나 내성벽을 거쳐서 용병 하우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어찌 된 영문인지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밖의 마당에서 불을 피워놓고, 고기를 굽고 있었다.
세아부터 경비병까지 모두 참석해있었고, 사람만 한 오크통이 있었는데, 거기 위를 따서는 바가지가 둥둥 떠있다. 술인 듯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오셨습니까. 단장님. 하하하!”
취기가 오른 이스핀 부대장이 비틀거렸다. 어지간히 많이 마신 듯했다. 거진 5시간 이상을 대기했기 때문에 이제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는 시간이었다. 낮술을 제대로 한 잔 걸쳤다.
드낙의 뒤로 나무 상자를 들고 있는 병사 몇이 상자를 내려놓고는 되돌아갔다. 그러는 사이에 드낙의 물음에 엉뚱하게 도렌이 대답했다.
“그라돈 기사님이 이 모든 것을 주고 가셨습니다. 이번 일에 늑대 용병단의 역할이 크다고 하사하신 겁니다.”
‘생색 제대로 내고 가네.’
척 봐도 짐마차 한 대는 나올 분량이었다. 그것을 구매하는 것부터 벌써 소문이 돌기 시작했을 것이다. 늑대 용병단을 추켜세워주면서 자신 또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어차피 돌고 돌면 다시 돌아오는 것이 돈이었으니까.
가진 놈들이 베푸는 것치고는 적었지만 서민들에게는 큰일로 느껴질 것이다.
드낙은 상자에 앉아서는 술을 받아들였다. 그 사이에 세아가 접시를 하나 내어와서 구워진 고기를 가져왔다. 오리였는데, 특히나 소스와 함께 구워서 오리의 껍질 부분이 반들하게 윤기가 났고 어떤 부분은 바짝 구워져 있어서 절로 감칠맛이 나 보였다.
군침이 금방 돌았다. 거침없이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육즙이 줄줄 흘러내려왔다.
“우흡!”
후끈한 뜨거움! 그 모습에 세아가 웃었다.
“훈제 된 것이라 기름이 안에 가득 베여있어서 먹을 때 조심하라고···”
‘그걸 이제 알려주냐!’
혀를 조금 데었지만 드낙은 다시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역시나 귀족, 기가 막히게 맛있는 오리고기를 가지고 있었다.
드낙의 합류로 더욱 열기가 타올랐다. 〈늑대 용병단〉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었으니 벌써부터 드낙은 온갖 이야기를 했는데, 대부분이 다른 이들이 얼마나 많은 공을 세웠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부대장부터 시작해서 노예까지 열심히 일하고 활약했던 것을 이야기했다.
그 때문에 모두가 그라돈이 준비해준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 오크통에 있는 술을 모두 비우지는 못했다. 그만큼 엄청난 양이었다.
낮술부터 너무 달렸던 이스핀부터 넉다운이 되었고, 술이 그리 강하지 못한 도렌은 그래도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노예들은 그야말로 아예 날을 잡은 것처럼 이성의 끈을 놓았기에 이스핀보다 더 빨리 쓰러졌다. 널브러진 놈들은 그냥 놔두기에는 좀 그렇고 담요나 가져와서 덮어주었다. 모두 옮기기에는 인원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세아는 저녁 일찍 돌아갔다. 오리고기를 조금 싸서 가져갔는데, 누구도 그것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덕분에 경비병이나 총관 또한 오리고기를 싸서 가져갔다.
홀로 달밤을 쳐다보는 드낙은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서는 상자를 열었다.
〈전신갑주(全身甲冑, Full Plate Armor)〉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전신갑주의 밑에 깔린 또 다른 것도 볼 수 있었다. 체인메일이었다.
‘이런 것까지 세심하게.’
괜히 감동이었다. 이 또한 토치라이트 가문의 투자라고 볼 수 있었지만, 드낙은 선물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화끈함을 보여주는 토치라이트 가문에 호감을 느꼈다. 명성 앞에서는 매서움을 보여주었지만, 선물을 주는 것에 있어서는 화끈했다.
양피지를 읽었다. 만들어진 지 72년이 된 것이었는데, 손질을 마쳤는지 새것 같았다.
〈남부 왕국〉의 〈아이비드 블랙스미스〉가 제작한 전신갑주였다. 물론 단순히 그 혼자서 만든 것은 아닐 터였다. 전신갑주는 그야말로 지금 이 세상의 모든 제련기술과 장인의 노하우가 총집합되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같은 계산력이 없었으므로 말 그대로 반복을 통해서 그 결과에 도달하였을 것이다. 그 뒤로는 이 전신갑주를 받은 기사들에 대한 이름이 나열되어있었다.
드낙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이름 모두 필체가 달랐다. 대부분 〈토치라이트 가문〉의 기사들이었다. 〈갈가르돈 토치라이트〉를 끝으로 전신갑주의 주인은 없었다.
‘내 이름도 써야 하나? 거기에 대해서는 말 안 한 것을 보니. 내가 잘 알아서 할 것이라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네.’
공백이 충분히 있었기에 이름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드낙은 이것 또한 장치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낙은 가짜이름. 귀족으로 올라설 때 다른 이름을 쓸까?’
하지만 그것은 너무 번거로워보였고,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많았다. 그는 그냥 드낙이라는 이름을 쓰기로 했다.
‘부여된 마법.’
주력으로는 크게 다섯 개의 마법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주력으로 사용되는 마법 종류는 아니었다. 현재에 사용되는 전신갑주의 경우에 주력 마법 종류는 다수, 대인, 방어, 강화, 편의 마법이었다.
‘대인이랑 편의가 없네.’
부여한 마법과 그것을 왜 부여했는지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었다.
1.다수마법. 〈열다섯개의 화염 깃털(Fifteen Flame Feathers. FFF).
〈알베인 위저드팩토리〉가 부여한 마법이었다. 오직 생산량을 위해서 최소한의 마력을 필요로 하면서 효율성이 좋고 공격력이 기준치에 도달하는 다수마법 FFF를 부여했다고 적혀있었다.
‘소비 마력이 적은 다수마법이라는 소리네. 화염계열이니 공격력은 평타는 친다는 소리고.’
나쁘지 않았다. 마력 운용이 가능한 드낙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언제든지 전신갑주의 마법술식을 이용해서 다수 마법을 자주 사용할 수 있어 보였다.
2.방어마법. 〈다섯 마름모 방패(Five Rhombus Shields)〉
제작자 동(同). 중대형 몬스터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고안된 방어마법을 부여했다. 마력효율이 낮기에 마력 저장소 및 회로를 다른 마법과 격리시켰다. 한 번 사용하면 반드시 마력 충전을 요구할 것.
‘중대형 몬스터를 막기 위해 고안된 것···’
아마 72년 전에는 몬스터와의 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말 그대로 기사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 효율이 나쁘지만 방어력은 좋은 방어마법을 집어넣었다고 적혀져 있었다.
무엇보다 마력 저장소와 회로를 다른 곳과 격리시켜서 한 번 사용하면 충전을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효율이 나쁘다면 이런 방법이 강제된다는 것을 드낙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알베인인지 뭔지 왜 이따위로 설계를 한 거야.’
전신갑주에 대한 숙련도를 요구하는 것 같았다. 어디로 마력을 흘려보내야 하는지 알아봐야 한다는 소리였다.
3.강화마법. 〈호랑이 질주(Tiger Scamper)〉.
제작자 동(同). 전신갑주를 착용한 기사의 기동력을 높이기 위한 강화 마법. 육체가 아니라 전신갑주의 다리 부분을 강제적으로 빠르게 움직이게 만든다. 기사들의 적응이 필요한 강화 마법. 3초를 넘어서면 마력술식이 과부하가 걸려 마력 소모가 곱절로 높아진다.
때문에 강제적으로 3초에 마력차단이 이루어지도록 개선하였다.
다리가 알아서 미친 듯이 움직이는 마법이 부여되어있었다. 이것이 왜 〈강화 마법〉인지 드낙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점점 〈알베인 위저드팩토리〉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생각하면 괜찮은 것 같아 보이지만.’
적응이 필요하다는 것에서 괜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신체에 부담이 적었기에 마음에 들기는 들었다.
4.치유마법. 〈오아시스의 활력(The vitality of the oasis)〉
제작자 동(同). 기사들의 여력이 점점 감소하는 추세에 따라서 기사 전투 유지 시간에 대한 보정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치유 마법을 부여한다. 지금은 사장된 마법이라 마법책을 보고 했기 때문에 술식을 크게 할 수밖에 없었음.
‘이 녀석이? 설명서에 왜 변명을 써놓나.’
괘씸한 녀석이었다. 아무튼 효과는 활력을 돋아주고 차가운 물을 전신갑주에 돌게 해서 높아진 온도를 식히는 마법이었다. 물론 그 물은 평범한 것이 아니다. 자잘한 상처는 물론이고, 큰 상처조차 일단은 출혈을 막아주게 해주었다.
‘술식이 크다고 해놨지만 효과는 상당한데.’
아마 이 마법이 대인마법을 대체해서 집어 넣어진 듯했다. 그때는 기사의 강함에 대한 맹신이 더욱 강했을지도 몰랐다. 대인마법을 빼도 상관없었기에 그에 대해서 서술한 흔적마저 없었다.
5.수복마법. 〈수리 망치(Repair hammer)〉
제작자 동(同). 영토 함락이 가속화. 마법사들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는데 시간이 걸림. 갑옷 자체에 대한 방호력 감소를 방지하기 위한 수복 마법을 부여.
마지막은 짧았다. 효과는 그저 갑옷에 대한 수리였는데, 완전히 파열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수리가 안 된다고 적혀져 있었다.
드낙은 양피지를 모두 읽고 다시 상자에 집어넣었다. 생각보다 엄청난 것을 손에 넣었다. 그는 뭔가 수작질을 벌였나 싶었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물론 오래된 것이긴 하지만 엄청난 물건이긴 하다.’
드낙은 그러다가 다시 상자를 열어서 다시 양피지를 읽어내려갔다.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말아올라갔다. 평생 죽을 때까지 이 갑옷만 입고 생활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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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실패! 그리고 1부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다음에는 에필로그 입니다.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