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6 <-- 흑마법사의 거처 -->
‘강하다.’
누구나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노예들 또한 달리기를 하거나 여러 가지 기초체력을 단련함과 동시에 대련을 통해서 어느 정도 눈은 있었다.
〈흑마법사의 하수인〉은 평범하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흑(黑)의 양피지(羊皮紙)〉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체적인 스펙에서 차이가 나고, 그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한 호흡으로 승패가 갈리는 전투에서 하수인들의 스펙 상승은 베테랑 용병조차도 근접을 주저하게 만들 정도다. 물론 흑마법사와의 싸움에 참여하는 용병도 적지만. 웬만한 돈을 주지 않는다면 수색하는 임무로 만족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 놈들을 홀로 7명을 상대함과 동시에 단칼에 무력화시키거나 죽였다.
꿀꺽.
절로 침을 삼키게 만드는 광경을 드낙은 보여주었다. 전신갑주를 입은 기사의 벽이 너무나도 커서 그렇지 이미 드낙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자유기사조차도 한 수 정도는 차이가 날 것이다.
〈이실레아 브릴리언트〉 또한 그를 크게 주시할 정도였다.
‘용병단장이 자유기사라니.’
삼류이긴 해도 한 칼에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는 실전 감각이 아니라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을 드낙이 보여주었다.
생각이 점점 복잡해졌지만, 드낙은 그런 그녀를 눈에 오래 담아두지 않았다.
‘〈자유기사〉를 영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어깨에 짊어져 있는 몰락한 가문에 대한 부흥. 그것을 이뤄줄 정도의 힘이 없다면 영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불러오더라도 아주 나중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적절하게 관계만 대충 다져놓는 것이 가장 좋았다.
‘괜히 욕심을 부리면 거리만 멀어질 테니까.’
협력 관계도 그녀가 동해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상황을 정리해라! 키메라는 반드시 목을 깔끔하게 베어라!”
드낙이 그렇게 소리를 치자 이스핀과 도렌은 서둘러 노예들을 움직였다. 그 틈을 타서 이실레아가 드낙에게 접근했다.
“보통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무술의 무도 모르는 놈들을 상대로 무엇이 어렵습니까? 하찮은 기교일 뿐입니다.”
드낙의 깍듯한 모습에 이실레아의 마음이 괜히 동했다. 좋은 협력자로 보였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도 같은 처지인 것이 마음에 들었다.
“가문이 어디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이실레아의 말에 드낙은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아직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지나친 말을 한 것 같습니다.”
‘나의 가문은 자연스레 몰락했지만, 드낙 용병단장의 가문은 그게 아닐 수 있다.’
생각해보면 큰 실례인 것이다. 이제 만난 지 하루도 되지 않았다. 이 바닥에서 함께 해온 시간은 든든한 신용이었다. 그것이 없는 지금 이실레아는 큰 실례를 저지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죄송합니다. 아주 실례되는 말을···”
“아닙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오히려 말해주지 못해서 제가 죄송합니다.”
또한 서로 동등한 계급으로 보였기에 다시 한 번 사과를 했다. 이에 드낙은 괜히 불편해졌다. 이실레아가 생각보다 자신을 크게 대우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불안과 동시에 기대감도 생기게 만들었다.
‘혹시? 나와 함께할 생각이 있나?’
자유 기사 두 명이 합치면 그 결과를 내는데도 빨라질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추측이었다. 독대(獨對)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 서로의 진심을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가문에 대한 것을 드낙은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대신 드낙은 이실레아에게 자신의 앞으로 행보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했다. 그건 자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종의 물밑 작업이기도 했다.
“전투 노예들입니다. 이번이 처음 싸움이라 훈련한 것에 비해서 정말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규모를 늘려갈 겁니다.”
18명의 전투 노예만 해도 사실 굉장했다. 특히나 자유 기사의 훈련을 받았기에 시간이 지나면 정규군과 같아질 것이다. 하지만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 단점도 확실했다.
“저 늑대들은 뭡니까?”
“제가 조련한 것들입니다. 여기 이 녀석은 도노라고 저랑 아주 친한 녀석입니다.”
덩치가 큰 도노의 가슴을 비비는 드낙의 모습에 이실레아가 손을 뻗었지만 뒷걸음질 치더니 고개를 돌려 드낙의 뒤로 향했다.
“절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워낙 자존심이 대단한 녀석이라··· 요즘 특히 더 심해졌습니다.”
이스핀과 도렌의 명령을 개코로 아는 도노였다. 그건 점점 덩치가 커지면서 더 커져갔다. 옛날에는 카이야가 등에 앉아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지가 왕이라도 되냐는 듯이 발작하며 싫어했다.
늑대 용병단의 전력을 당연히 이실레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단순한 용병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부대장은 용병 출신이었지만 기세가 이미 드낙에게 충성을 맹세한 가신으로 보였다.
‘노예도 잘만 다룬다면 병사로 쓸 수 있다.’
부대장이 단단히 통솔만 한다면 가능했다. 물론 큰 소모가 없어야 했다. 혹은 그들이 도망치지 않을 뭔가가 필요했다. 당장 이실레아만해도 몇 가지가 떠올랐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흑마법사의 하수인 두 명은 철저하게 포박되었고, 입에 재갈까지 물려졌다. 물론 물리기 전에 충분한 물을 먹여주었다. 손은 뒤가 아니라 앞으로 두고 묶었다.
시체를 뒤져서 흑의 양피지를 비롯한 온갖 것들을 챙겼다. 하수인들이 입은 것들은 대부분 양질의 것이라 피를 지우고 되팔기에 좋았다.
“끝났습니다. 단장님.”
드낙은 단장, 대장으로 혼용되어서 불렸는데 그것을 굳이 하나로 통일하지 않았다. 거기서 거기였다. 대체로 도렌은 급하면 대장이라고 불렀고, 이스핀은 그냥 대중없었다.
지하 2층의 반지하 원탁을 정리한 〈늑대 용병단〉은 부채꼴의 여섯문을 확인했다. 그중에 4곳이 시체들을 처리하는 곳이었고, 한 곳은 식당 같은 곳이었다. 온갖 먹을 것이 널브러져 있었고, 관리 하나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도박을 한 흔적도 볼 수 있었다. 할 일이 없으니 여기에서 도박을 한 듯했다.
‘응?’
또한 수정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서 뽑을 수가 없었기에 테이블의 밑을 봤는데 척 봐도 굵직한 〈검은 크리스탈〉이 수정에 연결되어있었다.
‘마력처럼 동력으로 사용되는 건가.’
그럴듯했다. 아기를 제물로 바쳐서 〈힘〉으로 삼는다는 증거로 충분했다. 그리고 그 수정에 대한 역할은 바로 왼쪽 벽을 건드렸을 때 알 수 있었다. 수정에서 떨림과 울림이 느껴졌다.
아주 작은 반응이었기에 깊이 주시하지 않으면 몰랐다. 드낙은 첫 번째 공방에서 하수인을 하나 죽이면서 튄 피가 감지된 것으로 보았다.
‘와!’
나머지 한 곳에서는 돈이 가득했다. 대부분 동화였지만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운송하기에는 양이 제법 되었기에 일단은 보류했다.
흑의 양피지를 만들던 앙상한 다섯 명은 저항을 하지도 않았다. 묶이면 묶이는 대로 이끌려 나왔다. 드낙은 입까지 꿰매어있는 그들에게 일단 대충 물이라도 먹이고, 수프를 조금 주라고 말했다.
전투를 수행했기 때문에 적어도 하루는 이곳에서 지낼 생각이었다. 식량도 충분히 〈식당〉에 있었고, 화덕도 존재했다. 대충 테이블을 치우고 그곳에서 숙식을 하루 지내고 돌아갈 생각을 가졌다.
모닥불이 가구를 통해서 곳곳에 이루어질 때 이스핀이 하수인들이 썼던 무기 중에 하나를 가져왔다.
“단장님. 하수인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들에게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냄새를 한 번 맡아보십시오.”
드낙이 맡아보자 유황 냄새가 살살살 났다.
‘좋은 물건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것도 아니다. 하수인들에게 하사하기에 적당한 물건이군.’
또한 악마의 냄새를 풍겼기에 공으로 여겨질 만했다.
“따로 모아놔. 공적으로 삼아질 것이다.”
“예!”
이스핀이 하나 건졌다는 표정을 했다. 실제로도 그랬으니, 드낙은 그냥 놔두었다. 식사를 하고 나서는 그냥 휴식을 내렸다. 물론 드낙은 부대장들을 불렀다.
“저도 들어도 되겠습니까?”
이실레아의 말에 드낙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튕기기로 했다. 너무 좋게 좋게 대해서도 안 되었다.
“죄송하지만 이것은 〈늑대 용병단〉의 일이라서 따로 간략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번거롭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큰 도움이 안 되어도 저는 그래도 횃불 성채 인근에서 자유 기사로 작은 명성을 쥐었습니다.”
그 말에 드낙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용할 여지가 있나?’
없었다. 이실레아의 성향을 모르기 때문에 이용을 할 수가 없었다.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키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다른 곳에 그 정보를 팔 수 있었고, 사이가 틀어질 수 있었다. 그건 드낙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이실레아가 눈을 흘기며 돌아갔다. 제법 독기가 눈에서 나왔지만 드낙을 직시하지 않는 것으로도 자신이 참고 있다는 것을 몸짓으로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드낙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내 편이 되어야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지.’
같은 계급이라고 좋게 좋게 가자는 것처럼 느껴졌다. 드낙이 지금 일구어온 것을 조금 가볍게 보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아닐 수 있었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반면 이실레아는 드낙에게 조금이라도 뭐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칼같이 내쳐지자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그 기분을 속으로 삭힐 수밖에 없었다. 어찌되었든 그녀를 구해주었고, 드낙에게 작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습니까? 눈빛이 정말 독하던데요···”
이스핀이 보기 드물게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도렌은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기에 되려 침착했다.
“여자가 자유기사로 사는데 평범하게 걸어왔을 리가 없지. 큰 고난을 겪어서 그런 기질을 가진 것뿐이다. 신경꺼라.”
“예.”
이스핀이 대답을 하자 드낙은 앞으로에 대해서 말했다.
“내일에는 바로 여기 위의 언덕이나 중턱에 큰불을 낼 것이다. 물론 번지지는 않게 조절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기사든 신전이든 오게 될 터다. 겁먹은 표정 짓지 말고, 오늘의 공으로 큰 거래를 할 생각이다.”
“그 〈백수 게제라스〉의 계획입니까?”
“맞다. 우리는 〈토치라이트 가문〉이 쥐고 있는 계륵 같은 영토를 손에 쥘 것이다. 얼마나 쥘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남부 왕국의 북동지역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땅을 개간하면 세금은 내겠지만 결국 자기 땅이 되는 법이다.”
“땅··· 영토를 가진다는 말씀입니까?”
이스핀의 눈이 동그래졌다. 도렌도 마찬가지였다. 매우 큰 계획이었는데, 평민에게 있어서 땅을 가진 다는 것은 큰 의미였다. 토지세를 내겠지만 그래도 잘만 지킨다면 충분히 이득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북동지역은 위험이 많이 도사리고 있다고 하던 곳인데, 괜찮습니까?”
도렌의 걱정에 드낙이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뭘 두려워하냐?”
“하하.”
그들이 짧게 웃었다. 물론 드낙은 계획을 모두 가르쳐주지는 않았고, 좋은 결과만 말했다.
〈빛의 전령 오메인〉이 가장 큰 변수였다.
‘놈이 어떻게 움직일지··· 귀족이 놈의 움직임에 따라오지 못한다면 큰 곤욕을 치를 것이다.’
드낙을 죽일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더더욱 자유기사를 하나 구출했기 때문에 칼을 뽑기보다는 거래를 제안할 터였다.
잠깐 휴식을 취하면서 〈식당〉에 있던 술을 소량 지급하고 난 다음에 드낙은 심문을 위해서 〈흑마법사의 하수인〉들에게 다가갔다. 이스핀과 도렌이 따라붙었지만 드낙은 전투 노예 하나를 지목해서 자신을 따라오게 만들었다.
“헉.”
그들은 드낙이 거침없이 다가와서 눈앞에 앉자 졸고 있다가 크게 놀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만큼 그가 보여준 무위는 대단했다.
“흑마법, 쓸 수 있지?”
드낙의 눈이 향하는 흑마법사의 하수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생뚱맞은 표정을 지었다. 전투에서도 흑마법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는 그저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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