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63화 (162/1,239)

0163 <-- 흑마법사의 거처 -->

부대장 이스핀과 도렌은 철저하게 후방에 있었다. 그들은 덜덜 떨고 있는 노예의 뺨을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하고, 무기를 움켜쥐게 만들었다. 또한 굳어있는 자들은 목덜미를 잡아서 자신이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신 차려라! 놈의 머리가 공격할 방향이다! 덩치가 큰 놈이다!!!!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서로 간격을 넓혀서 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해라! 뭉치면 죽는다! 최대한 흩어져서 활을 쏴라!”

그리고는 바짝 굳어있는 놈의 뺨을 챱챱 때리고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정신 안 차려! 똑바로 움직여라! 계속 뛰기라도 해!”

그렇게 말하면서 이스핀 부대장은 막힘없이 노예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했다. 그것만으로도 크게 효과를 볼 수 있었는데, 적어도 자신이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통솔 받는 느낌은 도주를 크게 막게 해주었다. 또한 그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가 있었다. 그것 때문에 주저하는 마음 또한 있었으며, 직접적으로 싸우지 않고 시간 버는 일이었기에 결단을 크게 내릴 수도 없었다.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도망 다니는 것은 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크어어어어엉!!!”

그 위태롭게 부서질 것만 같은 통솔은 순식간에 전환점을 마련했다. 횃불 없이 그대로 달려드는 드낙은 소리를 치고, 아우성 거리는 노예들 때문에 순간적으로 묻혔고, 단번에 벗겨진 뒷다리의 힘줄을 크게 근접해서 관절과 뼈 사이에 찔러 넣고, 당겨서 끊어냈다.

〈나무뿌리 키메라〉가 그대로 한쪽으로 무너졌고, 드낙을 향해서 몸을 돌렸지만, 펄럭거리는 가죽을 움켜쥔 드낙은 그 반대편으로 순식간에 날아갔다.

“소리를 더 질러라! 화살은 그만 쏴라!”

드낙이 맞을 수 있기에 계속 소리를 지르게 만들었다. 키메라가 거침없이 입에서 화염을 토해냈지만 전과는 다르게 크게 흩어져 있는 노예들이었다. 너도나도 도망칠 수 있었다.

화르르르!

땅에 들러붙은 화염은 순식간에 소리를 내며 타오르더니 이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노예들에게 신경이 가자마자 드낙은 납작 엎드려 있다가 냉큼 다시 튕겨지듯이 튀어나갔다.

애초에 뒷발 하나의 힘줄을 베어냈음에도 드낙의 모습조차 못 본 〈나무뿌리 키메라〉였다. 워낙 몸체가 비대했고, 목은 짧았기 때문이다. 드낙의 날랜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살짝 보이는 트롤의 망토 자락뿐이다.

당연히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무뿌리 키메라〉는 곰의 머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짐승에 불과했다.

‘흑마법사들은 하나같이 덩치 큰 놈들을 좋아하는군.’

기사를 상대해야 하는 것을 고안하는 놈들답게, 덩치가 큰 키메라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드낙에게 큰 행운이었다. 그는 전신갑주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속도가 무지막지하게 빨랐다.

“합!”

드낙은 오른발의 힘줄을 끊어버리면서 벽에 들러붙듯이 물러났다. 버둥거림 때문에 흙먼지를 가득 뒤집어썼지만 상관하지 않고, 상체를 숙여서 빠르게 더 물러났다.

그것으로 상황은 이미 끝이나 마찬가지였다. 워낙 거체였고, 사족보행이었기에 뒷다리가 아주 중요했다. 하지만 그것이 박살 난 이상 앞으로 가는 속도는 굼뜰 수밖에 없었다.

피를 닦으며 드낙은 놈을 크게 주시하며 물러났다. 이제는 지치게 만들어야 했는데, 거기에 노예들이 동원되었다.

“밖으로 나가서 장대를 구해와라! 도렌 부대장이 인솔해라!”

“예!”

노예중 10명이 도렌을 따라 서둘러 움직였다. 나머지 노예들은 돌을 던지거나 투척무기를 사용해서 정신을 사납게 만들고, 휴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드낙은 악질적으로 엉덩이를 비롯해서 척추뼈를 롱소드로 찌르고 도망갔다.

그때마다 펄떡 뛰면서 〈나무뿌리 키메라〉가 반원을 그리며 버둥거렸는데, 한 바퀴도 못 돌 정도로 뒷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찔러라, 찔러어!!"

장대로 계속해서 쿡쿡 건드리고, 드낙까지 칼침으로 보이지 않는 옆구리나 등만 노리자 계속해서 이리저리 움직이던 키메라가 피를 한 번 토해내더니 숨만 거칠게 쉬었다.

드낙이 롱소드를 탄력적으로 좌우로 휘두르며 힘을 더욱 증폭시켰고, 그대로 목뼈를 내려쳤다. 한 번 만에 목 뼈가 패이고, 세 번 만에 목이 잘렸다.

목이 베이자 아랫배에 있던 나무뿌리가 순식간에 검은 불꽃으로 타올랐다. 아무래도 저 나무는 〈악마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 화염은 가죽까지 태우려고 했기에 너도나도 반쯤 벗겨진 가죽을 완전히 벗기는데 동원되었다.

“막아, 막아!”

망토로 거침없이 불타는 곳을 휘적거렸지만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초월적인 힘이 간섭되어있었다. 하지만 목이 잘렸기에 가죽은 매우 쉽게 빼낼 수 있었다. 애초에 계속 벗겨지던 가죽이었다.

‘굵다.’

무식하게 무겁기도 한 검은색 가죽이었다. 머리는 빠르게 보존되어야 했으므로 소금을 잔뜩 뿌리고, 안쪽에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천으로 단단히 둘러놓았다.

사망자는 2명. 덩치가 워낙 큰 놈이라 노예들을 크게 투입하지 않았음에도 2명이나 죽어버리고 말았다.

‘불을 쏘다니.’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 앞으로 키메라가 몇 마리 있을지 몰랐다. 다행이라면 화염을 쏴도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큰 나무 방패면 능숙하게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단궁보다는 투창이 좋겠다. 소리를 질러도 나에게 시선이 몰렸다면 결코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드낙의 말에 이스핀과 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노예들은 그대로 주저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형편없는 모습이었다. 몇몇 이들은 질질 짜고 있었다. 한 놈은 지린 바지를 그대로 한 채 황망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누가 보면 술을 진창 마신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게 훈련시켜도 큰 놈 하나 앞에 두고··· 제대로 싸우라는 것도 아닌데.’

드낙은 혀를 찼다. 하지만 자주 본 것이었기에 큰 불만을 직접적으로 내비치지는 않았다. 대신 원거리를 더욱 잘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시인들도 맘모스 사냥할 때, 멀리서 투창했을 것 아냐?’

가까이서 창으로 찌를 담대한 놈은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투창을 할 나무들을 가져와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추적자들이 있었기에 벌목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을 드낙은 깨달을 수 있었다.

‘흠. 어찌한다.’

진퇴양난. 조금이라도 노예들의 공격력을 높여야 했다.

“잘 부러지는 나뭇가지라도 돌을 묶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무게가 무거우니 던져도 알아서 내려갈 것입니다.”

“돌을 부숴서 뽀족하게 만들고, 바로 앞에 물이 있으니 날카롭게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루만 고생하면 많이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날부분을 돌로 만드는 것으로 장작용 나뭇가지로 대충이라도 던지게 만들자고 이스핀이 의견을 냈다.

‘괜찮은 방법이다.’

드낙은 결국 지하 2층으로 내려가지 않고, 남은 하루를 땅에 떨어진 무게감 있는 나뭇가지를 모으도록 했고, 돌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나뭇가지를 모으는 것은 늑대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더욱 수월했다.

그렇게 해서 모은 것이 투창 100자루였다. 돌을 깎고 벼리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아예 반으로 똑 부러지는 돌이 있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바로바로 피드백을 만드는 드낙 덕분에 노예들은 매우 열심히 했다.

‘투창만 하면 된다. 나쁘지 않아.’

자신을 보고 있지 않는 키메라를 향해 옆구리에 돌창 한 방 때려 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스핀과 도렌은 물론이고 드낙이 외쳤듯이 머리가 향하는 방향만 조심하면 되었다.

“이대로 계속 진행하실 겁니까?”

이스핀은 정보만 획득해서 거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타난 키메라가 아주 무식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수 때의 일이 생각났다. 밑에 뭐가 있는지 몰랐다.

“걱정할 필요 없다. 1층을 너도 봤겠지? 전부 소각되어있었다. 그게 뭘 뜻하냐.”

“흑마법사가 도망갔다는 겁니까?”

“모르긴 몰라도, 수태실은 제법 흑마법사에게 중요한 곳이다. 그곳을 스스로 불태웠다는 것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는 뜻이지.”

특히나 마지막 방에는 유골이 10구 있었다. 아예 방치된 것이다. 성질 급한 흑마법사는 모든 소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떠났다. 이런 꿀단지를 다른 자에게 주고 싶지 않은 것이 드낙의 욕심이었다.

‘그럴듯하다.’

이스핀 부대장은 그 말에 설득되었다. 사실 그런 큰 놈이 나와도 드낙이 알아서 처리를 했다. 혼자서는 드낙도 버거웠지만 시선을 끌어주는 것만으로도 드낙의 공격력은 빛을 발휘했다.

그런 준비를 하고, 다음 날에 다시 지하 2층으로 향했다.

〈나무뿌리 키메라〉를 잡고 드낙은 〈검은 문〉을 획득했지만 선택하기에 매우 힘든 것들이었다. 대부분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고, 인간의 모습을 변형하는 것이었다. 키메라였기에 당연했다.

한 번 변형되면 되돌아갈 길도 없었다.

사실 곰 같은 놈을 잡고 얻은 것치고는 형편없는 것뿐이었다. 가죽이 벗겨지는 대신에 근력을 가지는 것이라던가, 상처를 입으면 더욱 광분해서 거친 힘을 가지는 대신에 시야마저 빼앗길 정도의 광기에 물드는 것들뿐이었다.

결국 드낙은 〈검은 문〉을 선택하지 않았다. 곰의 뼈라던가 그런 것 하나 없이 키메라와 관련된 검은 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넓다.’

똑같은 일직선의 통로는 아니었다. 동굴의 밑을 파들어가면서 남겨둔 부분이 기둥이 되어있었고, 그것이 위를 지탱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수많은 자연적 기둥들이 가득한 하나의 공간이 지하 2층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온갖 생명체가 곳곳에 들러붙어 있었다. 횃불의 빛에 크게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쳤다.

하지만 드낙에게 달려드는 생명체는 하나도 없었다. 모두 기괴하게 방치되어있었다. 철컹 거리면서 쇠사슬 소리가 났다.

드낙은 가장 가까운 놈에게 다가가서 횃불의 불빛으로 놈을 확인했다.

선명하게 내장이 있는 곳에 들러붙어있는 나무 뿌리가 바닥으로 내려와 땅에 박혀있었다. 익히 〈나무뿌리 키메라〉를 통해서 확인한 결과였다.

그에 비하면 이 녀석은 대형견 수준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단단히 쇠사슬로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쇠사슬은 아예 피부와 살에 일부분이 파묻혀서 하나가 되어있었다.

“그으으, 캬라아아아아!!”

고함을 지르는 놈이 더욱 거칠어졌다.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면 닥치는 대로 물어 죽일 생각인듯했다. 머리는 개였지만, 육체는 인간이기도 했으며 털가죽이 절반가량 쭉 내려와서 기괴함을 더했다.

‘키메라···’

흑마법사들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네크로맨서가 떠올랐다. 혹은 겹쳐지는 것일지도 몰랐는데, 드낙은 판타지 세계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었지만 이 세계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기 때문이었다.

곳곳에서 나무뿌리가 박힌 키메라들을 볼 수 있었다. 크고 작은 놈들이었지만 곰보다 큰 놈은 없었다.

‘유지비가 안 드는 군대를 만들려고 했구나.’

따로 사료나 먹을 것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배를 뚫고 나온 나무뿌리가 땅에 단단히 박혀있는 것을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것을 남겨두고 왜 떠난 거지? 설마 들키지 않는다고 생각했나.’

폭포의 바위틈에서 썩은 내를 물로 지웠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잘 은폐된 곳이었다.

주위를 훑었지만 지하 2층 〈키메라 실험실〉에서 건질 것은 없었다. 모두 죽이기에는 그 가치가 높아서 죽이지도 않았다.

“계단입니다!”

아우성치다가 지쳐있는 놈들은 더 이상 소리도 지르지도 않고, 노려보기만 했다. 이스핀이 크게 고함을 지르자 다시 시끄러워지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지하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이었지만, 척 봐도 1, 2층과 확연하게 달랐다. 무엇보다 기름이 담긴 넓은 그릇이 벽에 걸려있었고, 불빛을 내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데.’

드낙은 크게 의심이 들었다. 괜히 밑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5565자

가즈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