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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61화 (160/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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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순찰자들은 잠을 자기 전에 속삭이면서 상의를 했다. 왜냐하면 비스트 나이트라 불리는 성질 급한 〈그라돈 토치라이트〉가 늙은 순찰자의 죽음에도 이성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다.

‘그럴 놈이 아니지.’

거침없는 성질을 지닌 것이 비스트 나이트였다. 늙은 순찰자의 죽음에 분노는 하지 않아도 그런 짓을 벌인 늑대 용병단에게 크게 화를 내야 정상이었다. 그게 비스트 나이트 다웠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토치라이트 가문은 이미 늑대 용병단에 대한 처우를 결정했다. 비스트 나이트가 가만히 있을 정도면, 성주의 결정이 확실하다.”

그라돈 토치라이트의 성격을 죽일 사람은 성주뿐이었다.

“결국 늑대 용병단에게 복수를 할 수 없다는 소리로군.”

적을 적으로 보지 않으니, 다른 것으로 해결을 할 것이 분명했다. 그 말에 〈잔부스러기 마이톤〉이 이를 갈았다. 그는 특히나 〈토끼걸음의 카에스〉와 친한 사이였다. 현역일 때 북동의 오크 준동을 감시하던 순찰자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라 여겨지는 격전지에서 활동했다.

“피는 피로 갚아야 해.”

마이톤의 말에 다른 늙은 순찰자는 수긍하지 않았다.

“순찰자의 말을 은퇴한 우리가 입에 담을 수는 없어. 우리는 더 이상 순찰자가 아니야. 평범한 시민이라고. 평민이란 말이다.”

“놈은 토치라이트의 성주의 입김을 받고 있는 놈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런 속삭임에 마이톤의 입술이 떨렸다. 하지만 그는 설득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럼? 은퇴해도 순찰자라고 여기에 온 거 아냐?”

“마이톤.”

“입 닥쳐. 제이.”

그렇게 말하고 마이톤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말을 심하게 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과할 수 없었다. 그는 카에스의 원한을 갚고 싶었다.

“놈은 보통 놈이 아닐 거다. 그러니까 우리는 놈을 찾을 수 없어. 시간이 계속 허비될 것이다.”

“······”

모두가 입을 다물고 마이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언뜻 보면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음흉한 계략의 시작이었다. 늙었기에 보이는 길이 더 멀었다.

“보름은 걸리겠지. 그때가 되면 그라돈은 손을 놓을 거다. 대신에 늑대 용병단이 스스로 나오는 것을 기다리겠지.”

“그전에 놈을 습격하자는 거냐?”

“그래.”

모두 자신만의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것을 선택하기에는 그들은 너무 늙어버렸다. 세상에 수긍하는 것이 편하도록 마음의 모난 부분도, 거칠게 하늘을 향해 뿔을 세우던 높디높은 뿔도 모두 풍화되어버렸다.

깎아지고, 마모되어서 반들반들하게 부들부들하게 변해버렸다.

“아직도 우리가 산을 뛰어넘던 젊을 때인 줄 아냐. 정신 좀 차려라.”

그렇게 톡 쏘아붙이는 〈숨구멍 제이〉를 보며 누워있던 마이톤이 상체만 다시 일으켜서 톡 쏘아붙였다.

“넌 카에스 아니었으면, 진작에 오크 전사한테 머리통 날아갔을 거다. 그때는 쏙 빼놓고 지금 와서는 늙어버렸으니 그만두자고? 카에스가 죽어서도 너 한 대라도 패려고 악령이 되어서 네놈 등에 들러붙을 거다."

“뭐? 이 새끼가, 나이 먹고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언제부터 네가 그렇게 혈기를 주체하지 못했는데? 지 단짝 죽으니까 흥분해서 정신 못 차리고는 왜 날 잡아서 욕해?”

“그만, 그만해라. 추하게 왜 이러냐.”

씩씩거리는 숨소리도 줄어들어갔다. 이대로 끝날 것 같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럴 수야 없었다.

모두 마음 한구석. 작은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토끼걸음의 카에스〉는 그 어떤 곳에서도 조용하게 걸어 다니던 순찰자였다. 그리고 욕심이 크게 없어서 공을 쫓기보다는 다른 이들을 챙기는 자였다.

누구든지 북동쪽에서 순찰자로 활동했다면, 한 번은 카에스에게 도움을 받았을 정도였다. 그렇게 대단한 자는 은퇴하여 큰돈 못 쥔 채 〈횃불 성채〉에 정착하게 되었다.

공을 크게, 많이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보자.”

〈장바람의 레이간〉이 하자고 말하자 제이가 크게 눈총을 쏘았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카에스가 그간 걸어온 길에서 건넨 손을 한 번이라도 안 잡은 자가 이 중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제이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눈총을 쏘는 것이 전부였다.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그룹에서 나갈 수도 없었다.

결국 제이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수색 순찰자〉가 두 명. 〈전투 순찰자〉가 두 명. 딱이군.”

분위기를 전환했다. 두꺼운 방어구와도 같은 로브를 쓰는 것이 전투 순찰자였다. 근접전은 물론이고, 로브 안쪽에 있는 온갖 무기들과 아이템을 자유자재로 쓰며 전투력이 큰 것이 전투 순찰자였다.

숲에서는 순찰자들의 무리를 만나면 기사조차도 승부를 보기 힘들었다. 물론 순찰자 또한 기사를 죽일 수 없었다. 그저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순찰자의 무서움을 알 수 있었다.

병사보다 더 멀리, 더 밖에 있는 전선에서 싸우는 자들이었다.

대부분이 고아 혹은 세상물정 모르는 애송이들이 되는 것이 순찰자였다. 그들은 흡사 엘프처럼 산과 숲에서 많은 세월을 보낸다.

“때를 기다리고, 놈을 포착하면 단 한 번 기습한다. 그게 실패하면 도망쳐서 비스트 나이트에게 합류한다. 강도인 줄 알고 선제공격을 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성공하면 최고였고, 실패해도 카에스가 죽어서 가는 길에 몇 푼이라도 얹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구분이 이제 와서 무슨 소용 있냐. 너만 오크 전사랑 싸워봤냐? 〈울가렌의 가을〉 때에는 수색 순찰자까지 오크 전사랑 도끼를 맞대야 했다고.”

〈울가렌의 가을〉.

최대 60년에서 최소 30년의 주기를 두고 일어나는 남부 왕국 북쪽 산맥에 있는 오크들의 대전사가 탄생할 때마다 일어나는 침공이었다. 〈대전사 울가렌〉이 가을에 일으킨 전쟁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대를 딱 마주한 것이 지금 여기에 있는 순찰자들이었다.

“알았다. 알았어. 그래도 난 전투 순찰자라고. 넌 수색 순찰자고.”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주 늦은 시기였기에 굳이 누워서 속삭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자 다시 모닥불에 모였다. 〈역수잽이 반타〉는 데운 술이 당기는지 자신의 술병을 모닥불 근처에 놓았다.

그러고는 익숙하게 옆에 있는 〈장바람의 레이간〉이 쥔 술병으로 목을 축였다.

“〈전투 로브〉가 두 개만 있는 게 정말 아쉬운데.”

“그전에, 늑대 용병단에게서 뭐 들은 거 있는 사람?”

“늑대를 잘 부린다던데.”

“아크온 몽펠리에의 호의를 받았다는 것? 운이 좋은 놈이야.”

세상 돌아가는 일에 큰 관심이 없어서 굵직한 정보를 아는 것이 전부였다.

“병사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자고.”

그들은 자신들의 장비를 다시 한 번 점검하며 앞에 있을 전투를 준비했다. 왠지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서 괜히 양볼에 홍조가 깃들고, 가슴이 크게 뛰었다.

돈도 돈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때 그 날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늙은 순찰자들은 늑대 용병단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을 오늘 결의했다. 그것은 〈토끼걸음의 카에스〉를 위해서였다.

무시하는 것이 좋았지만 토끼걸음이라 말해지는 것처럼 겁쟁이인 것이 카에스였다. 가장 나이가 적으면서도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큰형 노릇을 한 놈이기도 했다.

모닥불의 주홍 불빛이 〈잔부스러기 마이톤〉의 바짝 마른 노안에 들러붙어서 조금 눈물을 냈다. 눈물은 전혀 흐르지 않았다.

코가 시큰거리지도 않았다. 아마 늙어서 더 이상 흘릴 눈물조차도 슬픔조차도 말라버렸을지도 몰랐다.

‘내가 언제 눈물을 흘려봤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제이가 소리를 조금 높였다.

“야, 어떤 놈이냐? 단궁을 가지고 온 녀석. 이거 누구 활이야?”

“킬킬킬. 나다.”

〈역수잽이 반타〉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으며 대답했다.

“순찰자라는 녀석이 단궁을 들고 다녀? 쪽팔리지도 않냐?”

“내가 너희들처럼 사냥을 가냐, 뭘 했냐. 오랜만에 드니까 너무 무겁더라.”

모두가 이마를 쳤다. 미칠 노릇이었다. 이런 녀석이 〈전투 순찰자〉라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상태인데 하자고? 난 아니라고 본다. 단궁이라니··· 순찰자 맞냐?”

갑자기 태세 전환을 하는 늙은 순찰자도 나타났다. 그 정도로 반타가 보여준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 늙어서 그랬다고. 그럼 그냥 함정을 파던가.”

“어디서 올 줄 알고 함정을 파? 물론 알아내면 파겠지만.”

“어차피 활 실력도 뭣도 없는 놈이 반타다. 넘어가.”

“무슨 소리를···”

〈죽여야 할 적〉이 모습을 명확하게 드러내자 말이 많아졌다. 그들의 죽지 못해 사는 눈에 점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늙은 순찰자를 죽이고 얻은 드낙의 새로운 〈검은 문〉은 〈십년일보(十年一步)〉였다. 검은 문이 보여준 환상은, 겁먹은 견습 순찰자가 10년 동안 조용히 내디디려고 노력한 그 한 걸음이 어떻게 완성되는지 간략하게 보여주었다.

빠르게 흐르는 세월 속에서 나뭇잎을 밟아도 소리가 안 나도록 만드는 한 걸음의 완성은 드낙에게 있어서 엄청난 보상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자가 십 년을 자신도 모르게 항상 조심스레 걸었던 결과 만든 그 기술을 한 번에 획득했기 때문이다.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앞으로 향하면서도 무게중심은 뒤로 향해 있는 것이 중요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소음을 줄일 수 있었다. 짚는 발에 가해지는 몸무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송곳처럼 날카로운 부분은 작은 힘으로도 가해지는 압력이 강하다. 이 순찰자는 무게 중심의 최소화를 이루어내고, 첫발을 발가락으로 놓는 게 아니라 옆으로 놓았다.

그게 가장 큰 비밀이었다. 옆으로 놓았기에 자칫 잘못하면 발목이 꺾일 수 있었다. 하지만 발가락보다는 내는 소리가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가 찬 기술이지만. 마치 수십 년 동안 사용한 것처럼 익숙하다.’

드낙은 그것으로 전날에 획득한 〈검은 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는 늑대를 통해서 썩은 내와 피냄새를 찾으며 횃불 성채 인근을 이잡듯이 뒤졌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결국 발상을 전환한 드낙은 냄새가 지워지는 곳을 찾아다녔다.

늑대의 후각으로도 찾을 수 없다면, 그 냄새를 지우는 곳에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흑마법사가 1년 365일 냄새를 지울 수 있는 마법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마법에 대해서 뭣도 몰랐지만 반지나 장신구에 좋은 효과를 내는 것을 못 새긴다는 말 때문에 마법도 어느 정도는 현실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드낙은 보다 현실적으로 접근했고,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늑대의 후각이 가지는 그 장점을 단점으로 뒤집었다. 일종의 소거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늑대의 후각으로 찾을 수 있는 곳은 다 찾았으니 후각으로 못 찾는 곳을 찾는다는 소리였다.

쏴아아-!

폭포가 끝없이 내렸다. 여름에도 지하수 때문인지 거침없이 내리는 폭포였다. 그리고 〈횃불 성채〉에서 족히 2일은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서 찾아오는 자도 없었다. 위험하기도 위험했고, 말이 2일 거리지 숲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폭포가 떨어지는 곳에 바위의 틈으로 위장하고 있는 굴이 있었다. 흙으로 파내면 점점 더 넓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점토로 되어있어서 들어간 다음에 다시 끌고 와서 덮기도 편했다.

그곳은 조금만 기어가도 확 넓어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풍겨오는 썩은내는 드낙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흑마법사의 거처〉다.’

드낙이 거침없이 들어가자 다른 이들도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안으로 들어간 드낙은 온몸이 젖었기 때문에 손이라도 말리기 위해서 앞뒤로 손을 휘적거렸다. 금방 손의 열기 때문에 묻은 물기가 말랐다.

단단히 봉해둔 가죽 주머니에서 부싯돌을 꺼내서 횃불에 불을 붙였다. 내부는 굉장히 어두웠다.

========== 작품 후기 ==========

5567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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