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7 <-- 추적 -->
〈보부상 보로렌〉은 횃불 성채에서부터 황금 평야를 오고 가는 상인이었다. 횃불 성채에서 가죽을 구매해서 황금 평야의 밀과 바꾸거나 화폐를 노리는 보부상이었다.
그런 보부상이 짐꾼 20명을 거느리는 상단처럼 되어버렸다. 물론 그는 위장할 생각 하나 없었다.
‘은화를 받고, 잠깐 황금 평야에 있는 마을에 갔다 오는 일인데 뭘. 흐흐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여주인 소레는 이미 은화까지 받았는데 다른 은화까지 더 탐내지 않았다. 수레에는 육포, 밀, 말린 과일이 가득했다.
“음. 통과!”
별다른 의심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평범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창 여름에는 식재료로 재미를 보는 상인도 있었기 때문이다.
보로렌과 친한 병사도 없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검문이 끝났다. 그들은 쭉 가도를 이어가며 멀리 걸어갔다. 그리고 나무 등치에 기댄 채 사람을 기다리는 것 같은 용병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수가 8명이 넘어 보이자 괜히 보로렌이 긴장했다.
품속에 있는 은화를 만지작거렸다.
‘설마 아니겠지.’
“소레가 보냈나?”
〈깃털 투구〉를 쓴 드낙의 말에 보부상 보로렌이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곤 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야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ㅇ, 콜록! 예. 짐수레 한 대 빼고 전부 가져가시면 됩니다.”
“숲 안쪽으로만 끌어다 주시고, 가주시면 될 것 같소.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소.”
투구로 얼굴을 감추었기에 보부상 보로렌은 거침없이 고개를 숙이면서 짐꾼들을 다그쳤다. 짐을 제법 덜어내고, 수풀을 헤치고 들어갔다. 족히 100걸음은 가고 나서야 돌아갈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지만 이른 아침이었기에 오는 자들이 없었다.
못해도 이른 점심이 되고 나서야 횃불 성채로 향하는 자들이 속속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전날 일찌감치 야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럼 수고하시오.”
보로렌은 짐꾼들과 짐수레 하나를 끌고 길을 걸어갔다. 최대한 담담한 척을 했다. 사실 딱 봤을 때, 죽이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그만큼 음흉한 일이었고, 드낙의 기세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휴.’
괜히 겁을 먹은 것이다. 그가 발걸음을 빨리했다.
드낙은 더운지 깃털 투구를 바로 벗었다.
‘이 망할 볼에 난 솜털은 언제 빠지는 거지.’
털을 밀어볼까도 생각하고 있었다. 서로 함께한 지 오래되면서 도렌이 저녁을 먹으면서 드낙의 솜털에 대해서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걸 다 옮기려면 오늘 하루는 공치겠는데요.”
“어쩔 수 없지. 노예들을 불러다가 옮기도록 해라.”
드낙의 말에 이스핀이 괜히 밀 한 포대를 짊어졌다. 이왕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짐을 적게 만들기 위함이다. 물론 그가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쉽게도 드낙은 항상 솔선수범하기 때문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뭐라도 하나 짊어져야 했다. 그것은 이스핀이 드낙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성격과는 달랐다.
드낙은 자리를 지켰다. 식료품이기 때문에 혹여나 들짐승이나 날짐승이 와서 포식을 할 수 있었다.
하루를 그렇게 버려버리고, 흔적까지 야밤에 지워야 했다. 도렌은 흔적을 지우면서도 곳곳에 벌레를 쫓거나 죽이는 연기를 피웠다.
동굴에서 산 지 2일이 지났을 뿐인데도 벌써부터 생활의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옹달샘이 있는 곳의 흙을 파서 점토를 꺼내온 노예들은 도기를 구워서 물을 엎어 쓰기 쉽게 만들었다.
매번 그곳으로 향하기 번거로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식수는 따로 마법 아이템을 통해서 해결하였다.
식량을 둔 곳에 쥐가 들지 않도록 늑대 한 마리가 지키도록 하였다. 고양이는 배가 부르거나 충분히 장난을 치고 나면 쥐를 안 잡는 반면에 개는 배가 부르든 안 부르든, 보이는 족족 쥐를 잡았다.
늑대도 충실하게 드낙의 명령에 따라 쥐를 죽일 것이다.
“어푸푸.”
그늘에 놓아둔 크지만 조잡한 항아리에 있는 물을 엎어 쓰며 이스핀이 땀을 씻겨냈다. 그다음을 기다리는 자들도 많았다. 물론 한여름에도 모닥불은 피워놔야 했다.
이 세상은 여름낮에는 정말 후덥지근하지만 해가 내려가면 금방 땅이 식었다. 바람이 언제나 불어왔기 때문이다. 특히나 숲은 더했다.
모닥불을 지핀 곳에 드낙은 앞으로의 계획을 다시 한 번 짚었다.
‘보름 안에 찾아내고, 흑마법사의 거처를 공략한다.’
칼부림은 할 줄 아는 노예 20명. 늑대 15마리가 드낙의 손에 있었다. 아무리 흑마법사라고 해도 그리 큰 병력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드낙의 예상이 틀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인원이면 여차하면 도망쳐도 상관없다.’
섬뜩한 생각도 가졌다. 하지만 귀신 잡는 해병도 총기 사건이 일어나면 팬티 입고 도망친다. 도망가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도망쳐서 곤란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그 윗사람일 뿐이었다.
적어도 윗사람은 총칼 앞에 서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세계에서 드낙이 도망쳤다는 것이 알려지면 크게 곤란했다.
‘그놈의 명예.’
때문에 드낙은 필사의 각오를 갈았다. 도망은 최후의 최후에 선택해야 할 것으로 밀어놓아야 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흑마법사라고 해도 결국은 마법사. 접근하는데 기습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드낙은 자신이 있었다.
다음날, 해가 뜨지도 않았을 때부터 드낙은 수색에 열을 올렸다. 그는 조를 3개로 나누었다. 이스핀 부대장, 도렌 부대장은 노예를 10명 그리고 늑대 3마리가 배치되었다. 드낙은 늑대들만 이끌었다.
노예들은 감히 드낙의 수색 속도를 못 따라갔기 때문이었다. 지구력부터 크게 차이가 났다. 이스핀과 도렌 부대장은 그런 노예들을 데리고 꼼꼼하게 수색하기로 했다.
냄새를 좇는 늑대들의 후각은 수십 km의 썩은 내도 찾아낼 수 있었고, 3km 내외의 짐승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도노, 썩은 냄새를 찾아. 피 냄새도 괜찮다.”
킁킁!
도노는 물론이고 다른 늑대들도 코를 킁킁거리며 주변의 냄새를 맡았다. 특히나 바람이 불어올 때면 즉각적으로 고개가 불어오는 바람 쪽으로 돌아갔다.
“으르르.”
도노가 으르렁거리더니 그대로 달려나갔다. 다른 늑대보다 후각이 뛰어난 것이 도노였다. 재빠른 움직임에 드낙 또한 빠르게 움직였다. 롱소드는 뽑지도 않았다. 양팔로 균형을 잡으며 거침없이 나무로 균형을 잡으며 거침없이 험지를 내달렸다.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우뚝.
늑대 도노가 주변을 살폈다. 조금 더 높은 시야를 가진 드낙이 파리가 여럿 움직이는 것을 포착하고 먼저 그곳으로 향하자 도노가 뒤를 따라갔다.
촥.
수풀을 헤치자 까마귀부터 시작해서 새들이 나무 위로 날아올랐다.
드낙의 눈에 나무에 뿔이 끼여 죽어있는 사슴이 보였다. 내장이 있는 배를 제외하고는 제법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파리를 쫓으며 주변을 훑었다. 아무런 흔적 하나 찾지 못했다.
온갖 것들이 드낙의 수색을 어지럽혔다. 자연계에서 썩은 내는 먹이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고, 가장 잘 알려진 방법이었다. 독수리는 썩은 고기가 주식일 정도였다.
여러 번 허탕을 쳤지만 드낙은 끈기 있게 스스로 정한 할당량을 채웠다.
*
〈늑대 용병단〉이 사라졌다는 것은 뒤늦게 3일이 지나서야 보고가 올라갔다. 〈경비대장 세베긴〉의 이름으로 올려진 보고서였다.
그 다음날이 지나기도 전에 늦은 밤에 세베긴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나야 했다.
덜컹.
문을 열자마자 판금 갑옷과 할버드를 쥐고 있는 〈성채 근위병〉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당장 내성으로 갈 것이다. 복장을 철저히 하고 나와라.”
“예!”
깜짝 놀란 세베긴이 서둘러 무구를 챙겨 입었다. 제법 오래 흉갑을 사용했기 때문에 매우 신속했다. 우당탕 거리는 소리에 아내는 물론이고, 아직 독립하지 못한 막내까지 위층에서 내려올 정도로 급하게 움직였다.
“무슨 일이세요? 어디 가세요?”
“잠깐 내성으로 향할 테니까, 걱정 말고 잠이나 자.”
그 말 한 마디 하면서 꽁꽁 외발로 뛰면서 강철 부츠까지 단번에 끼워 넣은 세베긴이 성채 근위병을 따라갔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비대장 세르인 토치라이트〉였다. 그는 피곤에 절어있었는데, 용병 600명에 대한 무구까지 대여하라는 명령으로 방금까지도 무기고의 관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흑마법사의 거처가 문제가 아니라, 숲의 소란에 야수나 몬스터가 나타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최소한의 배려였다. 녹슨 무기들을 다시 꺼내서 녹을 긁어내고 저급한 숫돌로 물에 적셔 날을 새로 해야 하는데 병사들이 동원되고 있었다.
질 좋은 철이 사용된 것은 아니었지만, 강철의 관리는 철저히 해야 했다.
“자네가 올린 보고서는 분명 작성이 3일 전에 되었는데 왜 지금 나에게 올라왔는가?”
“예? 저야··· 모릅니다.”
그 말을 하자마자 그저 옆에서 보좌하는 것으로 보이던 문인이 단박에 그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어디서 거짓을 말하는가! 내가 오늘 받아서 바로 올린 것인데, 일수를 조작하다니!”
“예? 제가요? 조작을?”
머리에 오함마로 거세게 한 대 맞은 표정을 짓는 경비대장의 모습에 수비대장이 웃음 한 번 짓고는 문인을 보며 말했다.
“분명 늑대 용병단과 관련된 문서는 즉각적으로 내성으로 보내라고 했을 텐데도, 직무를 유기하다니···”
“헉!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닌가! 양피지에는 수정된 흔적도 없다!”
푸른 옷을 입은 문인이 버둥거렸지만 성채 근위병에게 수수깡처럼 반항도 못한 채 끌려갔다. 죽지는 않겠지만 지하 감옥의 독방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3일 전, 늑대 용병단에 대해서 이야기해봐라. 하나도 빠짐없어야 한다.”
수비대장 세르인 토치라이트의 말에 경비대장 세베긴이 그대로 속사포처럼 말했다. 문인은 죄를 지어도 벌을 대충 받는데 끌려가는 것을 보니 말 그대로 간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보통 일이 아니다!’
다행히도 그날의 기억은 제법 있었다. 다름 아닌 〈늑대 용병단〉의 일이었기에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10분도 안 되었지만 무려 다섯 번을 반복해서 다시 말해야 했다. 말하면서 또 기억나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말하자 10번이나 반복해서 또 말해야 했다.
그 뒤에는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대부분의 정보를 획득한 수비대장 세르인은 발걸음을 바삐 했다. 아예 뛰기까지 했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성주 울베인 토치라이트(torchlight)〉조차도 자정이 넘은 시간임에도 대전에 앉아서 세르인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가신들도 정신을 바짝 차린 채 대기했다.
꿀꺽.
세르인이 대전에서 보고를 하기 전에 침을 크게 삼켰다. 그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처럼 대전은 침묵이 가득 내려앉아있었다. 말을 하면서도 손이 떨릴 정도로 분위기가 정말 나빴다.
땀을 주륵주륵 흘러내리고 나서야 그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질문 공세가 한차례 폭풍처럼 다시 휩쓸고 지나갔다.
“어찌해야 하오?”
성주의 말에 모두가 서로 눈치만 살폈다. 하지만 이내 한 명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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