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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53화 (153/1,239)

0153 <-- 백수 게제라스 -->

신전이 원하는 것은 처음에 협박하듯이 말했던 것을 부드럽게 만든 것이었다. 드낙보고 알아서 기어가라는 소리였다. 그들이 그토록 드낙을 견제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늑대 때문이었다.

추가적으로 흑마법사의 하수인을 만나더라도 격파할 수 있는 것이 드낙의 무력이었다.

늑대는 개보다 특히나 코가 좋았고, 사냥개는 사실 추적에 그리 능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훈련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십여마리의 늑대를 거침없이 부리고, 특히나 사람을 안 물게 입마개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변종 키메라에서도 늑대는 요긴하게 쓰였다. 또한 강도를 추적하는데 천부적인 전공을 뱉어낸 것이 〈늑대 용병단〉이었다.

게실리안 지휘관의 공적 중에서도 높이 평가되는 대량의 강도 포로들을 보고도 이번 〈흑마법사 거처 추적〉에 늑대 용병단을 쓰지 않는 것은 어리석었다.

‘600명이 찾을 것을 홀로 찾아낼 수 있음이다.’

인간 600명이 개보다 잘 찾을 리가 없고, 개가 늑대보다 후각이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신전이 특히나 드낙에게 집중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또한 운(運)이 드낙에게로 흐르고 있음을 신전이고 귀족이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애송이가 횃불 성채로 와서 용병단을 꾸렸는데, 고작 3명이다.

그런데 단 두 번의 의뢰에 있어서 모두 흑마법사와 조우했다. 그 운이 찾아온 드낙을 이번에도 쓰기 위함이었다.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운이고, 그 운은 정말이지 강력한 자원임을 모르는 자가 아니었다. 운이 없으면 아무리 강맹한 자도 뒤로 넘어졌음에도 코가 부러지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귀족이 나서니 신전도 나서게 되었고, 그 둘의 권력이 제대로 붙은 것이 〈늑대 용병단〉이었다. 결국 권력 싸움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상할 정도로 불이 붙은 것이다.

“서로 좋게 좋게 합시다. 그리고 어느 가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방계가 된다면 신전은 반드시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빛의 전령 오메인〉은 드낙의 신분이 진정으로 방계로 들어가 귀족이 된다면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을 해주겠다는 소리도 지껄였다. 드낙으로서는 분통을 터트릴 일이었다.

‘방계가 되어도 신전과 척을 질 수 없다고 빈정거리다니···’

“내가 나중에 어찌 될지 알고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신전을 깨부순다면 민심을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

오메인은 되려 당당하게 나왔다. 〈빛의 전령〉인 자신이 쫓는 목표와 〈지역 신전〉의 목표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드낙이 아무리 성공해도 불가능하다고 칼같이 잘라버렸다.

세력의 중요성을 다시금 드낙은 깨달았다. 또한 이 〈횃불 성채〉에서 자신이 계속 있어봤자 이용만 당한다는 것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시간은 3일을 드리겠습니다. 그때는 용병들도 모두 모집되어서 움직이게 될 겁니다.”

드낙이 쉽게 답변을 주지 못하자 오메인이 고개 숙이며 드낙에게 작별을 고하며 그대로 집을 빠져나갔다. 결국 드낙이 무엇을 선택할지 뻔히 안다는 모습이었다.

‘어찌해야 한다.’

전신갑주를 포기해야 한다니. 드낙에게 너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흑마법사의 거처 문제는 중요한 문제였다.

‘고개를 숙인다면 금화와 성물 모두 들어올 수 있다.’

개처럼 고개를 숙이고 돼지처럼 꿀꿀 거린다면 금화와 성물 모두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그저 고개를 끄덕이면 될 뿐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귀족과 신전 모두 드낙의 덕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용하기 딱 좋고, 추적도 잘하는 늑대 용병단의 배를 가를리는 없었다.

협박임을 알면서도 드낙은 강하게 나가지 못했다. 진정으로 신전의 역량이 두려웠고, 귀족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었다. 결국, 신전의 말대로 두 세력 모두에게 그저 이용당하고 최소한의 이득만 취하는 것이 드낙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뒷마당에서 내려쬐이는 땡볕에 흐르는 땀을 닦지도 않으며 드낙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태양을 보며 깊게 한숨 쉬었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아도 그 존재를 피할 수 없음을 잘 알았다.

그날 밤, 드낙은 〈검은 꿈〉에서 〈변종 키메라 포낙서스〉에게 흑마법사의 거처에 대해서 물었다. 하지만 키메라가 되면서 대부분의 지식을 잃고, 그저 흑마법을 구사하기 위한 지식 그리고 조각처럼 찢긴 기억만 가진 포낙서스는 무엇 하나 알지 못했다.

“아기를 제물로 여기는 것이 〈악마 아카타베루〉이다. 시체의 냄새를 추적한다면 뭐라도 건질 것이다.”

그에게서 얻은 유일한 단서는 부패된 냄새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드낙의 눈이 절로 〈세파리아스 불파겐〉에게 향했지만 그는 작은 정보마저도 자신의 미련을 해결하기 위하여 전해주지 않았기에 말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제국으로 상인이라도 보내라. 그럼 제법 좋은 수를 말해주지.]

“말이 되는 소리를. 그냥 힌트라도 줘봐.”

[싫다.]

근본도 없는 상태에서 〈비전(祕傳) 오우거 사냥〉에 대한 것을 상인에게 전해주면 무슨 꼴을 당할지 뻔했다. 양피지를 봉해도 들여다볼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고작 용병단장이 무서워서 봉인한 양피지를 안 풀 상인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불파겐의 말은 즉, 드낙보고 불파겐 가문의 비전을 겨우 두 개 가지고 있어도 불파겐으로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불파겐 가문의 비전을 먼저 가르쳐주면 생각해보지.”

[싫다. 너 먼저 하고 해라. 네녀석의 비전 흡수력이 얼마나 높은지 내 모를 줄 아는가?]

“흥.”

그가 처음 내어준 여러 가르침은 말 그대로 드낙을 위해서 뿌린 떡밥에 불과했다. 자신이 대단한 기사임을 보여준 것이다. 드낙은 그것을 더 빨아먹고 싶었지만 그가 내어준 퀘스트 때문에 막히게 되었다.

별다른 수확 없이 검은 꿈에서 새로운 비전을 구상하며 불파겐의 날카로우면서도 불친절한 조언을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드낙은 심상세계와 마찬가지인 검은 꿈에서 검을 생성해서 순식간에 중단을 두 번 찌르고 상단을 베는 척하면서 손을 역수로 쥐어서 단번에 내려찍는 시늉을 했다. 화려했지만 음흉하기 짝이 없는 비전이었다.

“어때? 아무리 잘 나가던 기사 놈이라도 발이 찔리면 별 수 없을걸?”

[바보 같기는. 틈을 찌른다고 해도 하단을 노리고 난 뒤가 문제다. 발이 찔리면 기사는 무조건 체중을 기울여서 앞으로 덤벼들 것이다. 그 한 호흡의 싸움은 피할 수도 없다. 검을 버리면 네 패배지. 찌르기는 무조건 급소 아니면 중요 장기를 노리는 게 정석이다.]

“그놈의 정석. 그런 게 통할 리가 없지.”

[강(强)이 부족하면 그것을 갖추려 노력해야지. 화려함을 넣다니.]

무인(武人)인 세파리아스에게 있어서 드낙의 기발하면서도 멍청하지만 분명 〈한 수〉는 있는 다양한 비전들은 그에게 큰 즐거움이었기 때문이다.

새벽 수련을 하면서도 드낙은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이스핀과 도렌은 심상치 않은 드낙의 모습에 드낙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일각수와의 전투 이후로 드낙에 대한 공포가 심어진 것도 있었고, 〈부대장〉이 되면서 노예들을 수련하는데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귀족의 손을 들어주면 토치라이트의 방계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되면 모든 것이 거기에 고정되어버리고 만다.’

방계에 들면 결국 방계로 끝이 날 것이다. 그것은 드낙이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방계에서 기사로 살다가 그게 끝이었다. 다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방계에 들어가지 않으면 신전의 보복이 두려웠다.

‘신전의 손을 들어주는 것도 웃기지. 그들은 결코 날 보호해주지 못할 것이다. 총관에게 조언을 구하기에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고민이다.’

100명에게 말해도 헛소리로 치부할 신전과 귀족의 권력 다툼이었다. 토치라이트 가문이 네거리의 게시판마다 붙인 공문에서조차도 무조건적으로 신전과 힘을 합쳐서 흑마법사를 토벌하겠다고 적혀있었다.

누구 편을 들어도 드낙은 찢길 것이다. 그게 〈빛의 전령 오메인〉의 덫이었다.

‘아크온이 있었다면 날 도와주었을까?’

어리석은 물음이었다.

건물의 덕을 봐서 해를 등지고 그늘에서 하늘을 보며 고민하는 드낙의 귀로 종소리가 울렸다. 잠시 뒤에 경비병이 허겁지겁 1층 현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드낙이 몸을 일으켰다.

‘누가 찾아온 것이지?’

아침해의 선명한 백색빛에 대문에서 보이는 복장의 색은 청렴함을 뜻하는 푸른색의 단색의 복장이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에 드낙이 순간 말을 잊었다.

아직도 거침없이 술 한 병 테이블에 놓는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백수 게제라스〉가 푸른색 옷을 입은 채 드낙을 보고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목이 말랐나?’

〈백수 게제라스〉가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듯이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난 뒤로 이스핀과 도렌에게 그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지만 그가 자신을 자조적으로 평가한 것만 알 수 있었다.

형편없는 정보만 획득한 것이었지만 세간에서 가장 꼴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백수 게제라스〉인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욕을 먹고 있는 문인이었다.

누가 입을 열면 단번에 주동자를 잡아낼 정도로 좁은 정보의 바닷속에서 만인이 하찮게 생각하는 것이 〈백수 게제라스〉였다.

그가 다시 일하는 것에 대해서 목말라할 것임을 짐작하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난 조금 더 몸값을 올리고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빨리 왔습니까?”

열린 대문으로 들어오며 게제라스가 작게 웃었다.

“태풍에 휘말린 〈늑대 용병단〉이 위태로운데 몸값을 올리고 말고가 어딨습니까? 비상한 머리 하나는 필요한 상황 아닙니까?”

“백수, 백수라고 놀림당하시는데 어떻게 알고 왔습니까?”

“백골이 되어도 펜을 놓지 않는 것이 문인! 살인자로 몰려도 숨겨줄 친구는 있는 법입니다.”

게제라스는 그렇게 거침없이 말하고는 이내 드낙을 보면서 말했다.

“아직 결정하지 않았으면 방도는 있습니다. 이미 결정하셨습니까?”

“···! 아직 답을 내기에 이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귀족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이 문인인데, 모를리야 없지요.”

두 사람은 금방 1층 집무실로 향했다. 누구 하나 들어오지 못한 채 독대가 그대로 이어졌다. 드낙이 가장 궁금한 것은 왜 자신에게 오게 된 것이냐는 것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태풍이 불어닥친 상황에서 말이다.

“제가 어떻게 될 줄 알고 찾아온 겁니까?”

“드낙 단장님이 오고 난 뒤로 흥미가 생겨서 문인 친구를 찾아가고, 아버지에게서도 얻어맞고 이야기를 제법 들었습니다. 할 수 있으면 알아서 하라고 하더군요. 단벌 하나 받고, 다시 쫓겨났습니다.”

자기 주관이 강한 것이 게제라스였다. 다시 집에서 쫓겨난 이야기를 굳이 하면서 자신이 제법 이번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티를 냈다. 생색을 내는 모습에도 드낙은 되려 기대감을 가졌다.

‘문인이면 자연히 처세술이 뛰어날 터.’

“그래서 생각하고 계신 것이 뭡니까?”

드낙은 절로 존대를 했다. 뭔가 대단한 생각이라도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뭘 고민하십니까? 그냥 아예 그 공을 홀로 독차지하고, 토치라이트 가문에 장원을 요구하십시오. 그게 아니라면 토치라이트 가문의 영토 중 아무것을 달라고 하십시오.”

“예?”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드낙이 반문을 하였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귀족이나 신전이나 세력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물어뜯을 수 없는 세력도 아닙니다. 왜 그렇게 두려워하시는지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하지만···”

게제라스가 손사래를 팍팍 양손으로 크게 저으면서 드낙의 말을 끊었다. 어처구니 없고 무례한 짓이었으나 그게 게제라스였다.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자기 멋대로 하는 기분파였다.

“물론 진짜로 물어뜯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선수를 쳐서 공을 먼저 먹자는 겁니다. 자유기사 아닙니까?”

“예?”

“자유기사면 해볼만 합니다. 합시다!”

드낙이 그 말을 듣고는 갑자기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5806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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