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2 <-- 구렁이 오메인 -->
대문을 앞에 두고 드낙과 〈빛의 전령 오메인〉이 만났고, 그들은 뒷마당으로 향했다. 그늘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말을 이어나갔다.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예. 드낙 용병단장님이 그렇게 서둘러서 내성으로 향하는 것을 보니 제 마음이 하도 조급해져서 이렇게 다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눈을 빛내는 오메인의 모습에 드낙은 자신의 계략이 들켰음을 느꼈다. 신전의 정보력은 막강하다. 인원의 대다수가 세상을 떠돌아다니기 때문이다. 또한 오메인의 노련함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
드낙은 아무말도 못 했다. 당황스러웠기 때문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신전이라는 족속들이 감시를 붙였는데 도노는 물론이고 자신조차도 미행을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몇 번이나 확인했음에도 몰랐다는 것은 그만큼 신전의 역량이 높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내가 뭘 원하는지는 특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문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 드낙은 이번 일의 의뢰비를 〈전신갑주〉로 얻고자 했다. 보통의 자유기사들이 귀족의 방계로 들어가서 〈전신갑주〉를 얻는 것과는 과정이 달랐다. 하지만 오메인은 거침없이 드낙의 목적을 밝혀냈다.
“아무리 〈전신갑주〉를 얻고 싶다지만, 너무 노골적인 것 아닙니까?”
“······”
할 말을 순간적으로 잃은 드낙은 애써 표정을 관리했지만 말 그대로 정확하게 겨드랑이를 찔린 것처럼 뒤틀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왕국 야영지〉. 〈세 개의 강가〉. 모두 친 귀족적인 성향을 보여주면서도 아크온 몽펠리에를 따라가지 않은 것이 실로 이상했습니다. 분명 〈변종 키메라〉와 〈일각수〉의 전투에서 자신을 증명했을 텐데도.”
아크온 또한 드낙이 자신의 방계로 들어가고 싶다고 하면 받아줬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드낙은 그런 제안을 전혀 하지 않았고, 되려 일각수의 뿔과 가죽을 탐냈다.
인품이 좋은 아크온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직접 방계로 추천할 수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드낙의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했다.
또한 그 결과만으로도 드낙이 결코 다른 귀족 가문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스스로는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가 취해오는 행동이 귀족과 신전들에게는 아주 잘 보였다.
“그러니 가문에 들어가야만 얻을 수 있는 〈전신갑주〉를 탐하지 않겠습니까? 어떻습니까? 제 추측이. 제법이지 않습니까?”
계속 물으면서 오메인은 드낙이 솔직하게 대답하기를 원했다. 그가 이야기를 계속 진행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지만 다음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드낙이 여기서도 발뺌한다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메인은 그가 수긍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신전이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신전 또한 〈전신갑주〉 혹은 그 이상의 것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날카로운 추측입니다. 그렇다면 저에게 〈전신갑주〉를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오메인의 눈이 활처럼 휘었다. 드낙의 욕망을 콕 집어서 그를 끄집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드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귀족에게서 받는 것이 더 좋음에도 그래도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택하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들춰보고 가격을 물어보는 것이 인간이었다.
‘어리석고 탐욕스럽지.’
누구든지 그것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자신만 해도 〈빛의 전령〉이 되기 위해서 많은 것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빛의 전령〉이라는 직책에 대한 탐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집착과 광기 덕분에 다른 이들이 생각하고 가지고 있는 어리석음과 탐욕을 많이 버릴 수 있었다. 또한 더욱 잘 아는 것이기도 했으며 흑마법사의 간악한 짓에서 살아남으면서 더욱 강철처럼 제련되었다.
그게 〈빛의 전령 오메인〉의 무기 중 하나였다.
‘빛의 신전은 흑마법사에 한해서는 무조건 귀족보다 앞서나가야 한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그런 것을 버릴 생각도 있다. 그 유연함을 저 용병단장은 모르겠지.’
“아닙니다.”
오메인은 거침없이 드낙의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니라고요? 그럼 왜 저를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하신 겁니까?”
드낙이 어처구니없어했다. 지금 상황에 있어서 신전은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드낙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빛의 신전〉을 한 번 방문하면서 부랑자와 병자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그래도 신전이라고 생각했었다. 조금 광신도 같은 면모도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을 구하는 모습을 보고 방심한 것이다.
“이중거래를 해달라고 부탁하러 왔습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드낙이 움찔했다. 그리고는 바로 소리를 질렀다.
“그걸 말이라고! 지금 날 뭘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까!”
귀족을 속이라는 소리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는데, 결국 피를 보는 것은 드낙이었기 때문이다. 잘 되어도 신전의 개가 될 가능성이 있었고, 잘 안 풀리면 귀족에게 잡혀서 평생 노예로 살거나 감옥에서 살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집사 젠은 3일의 시간을 달라고 했기 때문에 전신갑주를 못 얻을 수도 있었다. 결과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전신갑주의 가치는 대단했다.
또한 자신이 피를 보는 것에 대해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이중거래가 가지는 부정함을 욕하면서 화를 내었다.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진정하십시오. 시험한 것뿐입니다. 예상한 것대로 참으로 강직하시고 명예를 아시는 분입니다.”
오메인은 거짓을 늘어뜨려놓았다. 드낙이 화를 단번에 내는 것을 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자임을 바로 안 것이다. 일종의 도발이며 시험이었다.
“나가시오. 들어볼 것 하나 없습니다. 사람에게 그렇게 장난질을 하고 무슨 소리를 할 생각이십니까?”
드낙은 그의 손을 거침없이 잡아서 당겼지만 오메인은 땅에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웃음소리를 냈다.
“하하하. 생각보다 힘이 대단하시군요. 마법 장비를 착용하고 계신 것 같은데. 그간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무슨? 이런 힘이!’
기괴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잡아당기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버티려고 자세를 바꾼 것도 아니라 그냥 올바르게 서있었으므로 힘으로 버티는데 효율이 안 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발짝도 못 움직였다. 드낙이 황망(慌忙) 해했다. 급하게 힘을 빡 주어서 당겨도 움직이지 않자 크게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만하시지요.”
허리까지 잡아서 들어 올리려고 하자 오메인이 난색을 표하며 드낙의 깍지 낀 손을 풀었다. 무식한 힘이 느껴졌다.
“대체 뭡니까?”
“〈신성력(神聖力)〉입니다. 신의 힘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효력이 달라지는 만능의 힘입니다. 때로는 병자를 치료하는 것으로, 때로는 부상자를 치유하는 것으로, 때로는 적을 토벌하는 것으로. 지금처럼 천근만근처럼 무게를 높이는 것도 가능합니다.”
‘말도 안 되는 힘이잖아!’
드낙이 까무러쳤다. 말 그대로 하지만 그 경악스러운 표정에 오메인이 고개를 저었다.
“신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제마다 성기사마다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정도가 크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법 가지고 있지요.”
“······아무튼 이중거래는 안 합니다.”
“안 하면 결국 드낙 용병단장님만 괴롭게 될 것입니다.”
오메인이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드낙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말은 실제로도 굉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광신도 놈들.’
실제로 사람들을 도와주는 신전이지만 오메인과 대화를 하면서 저들 또한 자신들의 방침에서 벗어난 자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래등에 새우가 터진다는 말이 있다. 그것을 겪어본 자가 아니면 그것이 가진 압박감, 위기감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하청기업이 운 좋게 선진 기술을 개발해서 두 대기업을 사이에 두고 저울질을 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나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사회는 그렇게 녹록한 곳이 아니다.
하물며 이 세상은 윗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명예를 손에 쥐어야 한다. 명예는 곧 실적이었고, 그건 신전도 다르지 않았다. 한마을의 촌장부터 보통 사람보다 더 악독하거나 무엇 하나는 특출난 면이 있었다.
〈토치라이트 가문〉과 〈빛의 전령 오메인〉의 알력 싸움에서 드낙이 저울질을 한다는 생각부터 사실은 큰 도박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드낙은 쉽게 헤쳐나갈 것이라고 보았다.
그가 그린 그림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드낙은 좀 더 이 세계의 기득권층, 영향력을 가진 세력이 가진 진정한 무서움을 알아야 했다. 수많은 위험 속에서도 출세를 한 자들은 결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그저 피만 잘 타고 나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제가 괴롭게 될 것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오메인이 소매를 한 번 털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드낙으로서는 막을 수 없는 태풍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이대로 귀족에게 거래를 하고, 그들의 말에 따라서 늑대들을 풀어 수십 킬로미터까지 흑마법사의 거처를 추적해서 들어간다고 생각합시다. 그럼 신전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드낙 당신과 단원들에게 성기사를 여럿 붙이면 끝날 일입니다.”
“······”
“그리된다면 결국 흑마법사의 거처도 귀족이고 신전이고 상관없이 동시에 알게 될 겁니다. 못 알더라도 토치라이트 가문의 기사를 따라가면 그만 아닙니까? 제 말이 틀렸다면 말을 해보십시오.”
“그리되면 결국 큰 갈등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갈등이라고 할 것이 무엇 있습니까? 귀족은 결국 공을 얻는 것이 중요하고, 이 지역의 신전은 시민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니 중재하기는 쉽습니다.”
“흑마법사에 대한 공적을 귀족에게 준다는 말씀입니까?”
그간 보여주었던 신전의 움직임과는 달랐다.
“이미 전령이 되었는데, 그런 것 하나 양보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습니까?”
‘블러프일까?’
하지만 오메인이 말하는 〈빛의 전령〉과 〈지역 신전〉을 구분하는 것을 들은 드낙은 결국 저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뿌리치기에는 진짜로 일어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저렇게 된다면 귀족들은 결국에는 공을 차지하겠지만, 신전을 통해서 많은 자원을 잃게 될 것이다. 그리된다면 드낙에게 전신갑주를 줄 리가 없었다.
모양새로 본다면 결국 귀족 스스로가 신전과의 협의를 통해서 흑마법사에 대한 공적을 얻은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중거래는 못 합니다.”
가장 최악이 바로 이중거래였다. 가장 피해야 할 것이 이중거래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지금 드낙의 상황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것이었다.
고래의 결정에 있어서 새우의 생각과 행동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었다.
무기력하게 말하는 드낙을 보며 〈빛의 전령 오메인〉이 그제서야 빙그레 웃었다. 생각보다 드낙이 앞의 수를 내다보는 것이 굉장히 넓고 멀었기 때문이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드낙 용병단장에게 그렇게 큰 피해를 끼치겠습니까?”
능구렁이 같은 말에 드낙이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대체 어쩌라는 거야.’
오메인이 진짜 본론을 꺼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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