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9 <-- 구렁이 오메인 -->
노예 거래는 합법적으로 거래가 되고 있으며, 그 인증은 외청에서 받아야 했다. 안쪽 팔뚝의 말랑한 부분에 그 인증이 찍힌다. 그게 바로 노예 낙인이었다. 이마나 볼에 노예 낙인이 찍히지 않는 이유는 귀족이 명예를 중시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여주는 진실일 뿐이었다.
명예를 중시하면서 세상의 모든 것에 값을 매기고 손에 쥐려고 하는 귀족의 이중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노예 제도였다.
실제로는 죄가 있어 노예가 되고, 그 신분이 이미 노예라도 열심히만 하면 벗어날 수 있다고 은근히 떡밥을 던져놓아 도망을 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그것이 두려운 사람은 볼에 사각형의 칼집을 내어 이 사람이 노예임을 가리켰다.
〈서쪽 복합 구역〉의 복잡한 길 중에서도 그나마 일직선인 곳에 판자를 성벽처럼 높이 세우고, 노예장사를 하는 〈노예 상인 굴라반〉은 콧구멍이 아주 큰 인물이었다.
코를 후비는 손가락이 두툼했기 때문이다. 척 봐도 노역에 종사하던 일꾼이었음을 보여줄 정도로 큰 손가락이었다. 또한 오른손에는 얇고 긴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백발의 장년인(長年人)이 들어왔다.
‘백인장?’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떠올렸다. 강직하고 딱딱한 분위기. 깔끔하면서도 손때가 묻은 장비들은 윤기가 났다. 약간 어깨가 조금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래도 체격 자체가 좋았다.
“어서 오십시오! 노예상인 굴라반이라 합니다!”
그가 넙죽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를 했다. 딱 봐도 은화는 있을 것 같은 양반이었다.
“반갑네. 나는 〈총관 베르벤〉이라고하고, 이쪽은 늑대 용병단의 용병단장 드낙 님이시네.”
“예! 드낙 단장님! 어떤 노예를 찾으십니까?”
드낙은 안목도 넓힐 겸, 하나하나 모두 보고 싶어 했다.
“대중 없이 왔습니다. 하나하나 다 보여주시죠.”
“예! 그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하하하!”
그가 대차게 웃으면서 안내를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진 골목길 하나를 점거하고 있는 것을 본 드낙은 혀를 내둘렀다. 엄청나게 노예 산업이 커 보였다. 족히 수백 명은 되는 노예가 있었다.
“이 여자 노예는 거의 부르는 게 값입니다. 가슴부터 시작해서 골반까지 아주 그냥 상등품 중의 상등품입니다!”
구석에 짱박힌 여자를 지팡이로 찌르자 16살도 안 되어 보이는 소녀가 몸을 일으켰다. 폭행당한 흔적은 없었지만 상처가 나지 않는 고문인 물고문을 해서 기를 죽여놓았기에 고분고분했다.
드낙은 괜히 눈이 찌푸려졌지만 이스핀은 경박하게 놀아났다.
“만질 수는 없죠?”
“죄송하지만 만지는 건 노예를 구매하고 나서 하시면 됩니다! 하하하!”
“저런 건 얼마입니까?”
“여자 노예는 무조건 비싸다고 보시면 됩니다! 은화 15닢입니다!”
드낙이 혀를 내둘렀다. 여자 노예는 아무리 안 좋은 것도 은화 10닢은 받아내는 듯했다. 특히나 부유한 이들이 구매하는 것이 여자 노예였기 때문이다. 근데 여자 노예 사이에 소년 노예도 끼여있었다.
“소년도 같이 끼어놓습니까?”
“아~ 남색가들을 위해서 따로 구분해 놓은 겁니다. 예쁘장한 남자는 굉장히 희귀해서 은화 20닢은 받습니다.”
여자보다 비싼 게 예쁜 소년이었다. 소년에게로 지팡이가 겨누어지자 그가 병적으로 사시나무 떨 듯이 벌벌 떨었다. 다른 노예와는 반응이 다르자 드낙은 저 소년을 굴라반이 다른 의미로 건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시발.’
아주 기분이 안 좋아졌지만 그래도 드낙은 이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에게는 노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일하는 남자 노예들을 보고 싶은데.”
“아! 노역할 남자 노예를 찾아오셨군요! 따라오십시오! 그놈들은 지금 성수기라서 다른 곳에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날씨가 무더워서! 하하하!”
그는 계속 말끝마다 웃음소리를 크게 3번을 냈다. 습관인듯했다. 집 하나에 들어갔다. 평범한 집이었지만 가구 하나 없었으며 테이블에 용병들이 카드놀이를 하며 길목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드낙을 힐끗하며 쳐다보았다. 드낙은 상대하기 귀찮았으므로 눈을 돌리자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저 새끼들이.”
이스핀이 발끈했지만 드낙이 거침없이 아래로 향하는 통로로 발걸음을 막힘없이 옮기자 따라가야 했다.
지하는 굉장히 넓었다. 또한 수많은 노예가 있었고 또 그런 노예를 케어해주는 노예가 있었다. 오물통을 매번 갈아주고, 음식을 때마다 옮기고 청소를 꼼꼼하게 무릎 꿇고 바닥을 박박 닦는 이들이었다.
〈노예상인 굴라반〉이 말을 이어나갔다.
“초여름부터 힘쓰는 남자 노예를 찾는 고객님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선선한 넓은 지하에서 남자 노예들을 관리하죠. 아주 일거리가 많고, 무더운 날 일을 하기 귀찮고 힘들면 남자 노예를 구하면 딱입니다! 하하하!”
여름이 시작하거나 봄이 사라질 무렵, 노역을 할 노예를 구하는 것이 제철 음식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듯했다.
“원래는 은화 1닢부터 5닢 사이지만, 지금은 3닢 밑으로는 없습니다. 좀 변변찮은 노예도 모두 다 팔려버렸습니다.”
“변변찮은 놈이 되려 잘 팔립니까?”
드낙의 물음에 굴라반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은 질문이었다.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기 딱 좋았다.
“당연합니다! 비실거리는 놈이라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농기구를 들 수는 있죠. 밥만 그래도 잘 먹여주고 잠자리도 좀 편하게 해주면 이번 여름은 그래도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화 하나에 한여름 내내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을 얻는 것은 무조건 이득입니다.”
말이 이득이지 그 정도의 농지가 있는 사람들만 구매한다는 소리였다. 3억으로 시작해서 1억을 벌라는 책이 있듯이 대규모의 농지를 가진 사람만 그런 자들을 대규모로 구매한다는 소리였다.
‘쓰고 버린다는 소리군.’
떨이로 은화 1닢도 안 줬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만큼 건강이 떨어지는 노예를 초여름마다 떨이로 판매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하지만 그 덕분에 드낙은 양질의 전투 노예로 쓸 남자 노예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미 다른 자들이 솎아냈기 때문이다.
‘신장이 큰 놈은 무조건 비싸네.’
키가 큰 노예는 무조건 값이 높았다. 드낙은 필요하다면 그들로 구매하려고 했지만 모두 하나같이 어깨가 굽어있었다. 워낙 웅크려있다 보니 어깨뼈가 굽어버린 것이다. 저러면 제대로 된 힘의 전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근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키가 커봤자 소용이 없었다. 창을 쥐더라도 제대로 힘이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어깨가 곧게 펴져있고, 골반이 두툼한 놈으로 고르기로 했다. 또한 순한 놈은 걸렀다. 눈빛이 살아있거나, 인상 자체가 험악한 놈이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질이 살아있는 놈은 고르면 안 되었다.
그 분노는 잘해준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참을 고르고 골라 25명의 노예가 드낙의 눈에 잡혀서 한 줄로 섰다. 이리저리 만져보며 눈으로 대충 가늠한 뼈 굵기를 자세하게 확인하였다. 5명이 걸러졌다.
“20명 구매하겠습니다.”
“헉!”
굴라반이 크게 소리를 냈다. 저 20명 중에 은화 4닢짜리가 15명이었고, 3닢짜리가 5명이었다. 은화가 75닢이었다.
“은화 50닢에 거래합시다.”
하지만 이어지는 드낙의 미친 짜르기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노예들 먹이고 치우는데 돈이 많~이듭니다. 정가대로 하시지요···”
그 말에 〈총관 베르벤〉이 코웃음쳤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코웃음에 굴라반이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드낙에게 눈길을 주었다.
“50닢. 어차피 많은데 그냥 50닢에 합시다. 아니면 〈남쪽 상업지구〉로 가는 수밖에.”
드낙이 그대로 망설임 없이 돌렸다. 굴라반의 눈이 팽팽 돌았다. 남쪽은 그냥 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은화 50닢이면 한화로 5천만 원이었다. 한 방에 그런 수익이 들어오는데 안 해줄 리가 없었다.
“혀, 현물이 끼여있습니까?”
첫말을 더듬거리며 노예상인이 드낙을 잡았다.
“곰 가죽이나 그런 걸로 50닢을 채우신다면···”
드낙이 손사래를 쳤다.
“사람을 뭘로 보고. 모두 은화요.”
“······”
노예상인은 두툼한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가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이내 소리를 지르며 악수를 건넸다.
“에이잇! 좋습니다! 은화 50닢!”
“장사할 줄 아시네. 앞으로 노예가 필요하면 무조건 굴라반, 당신을 찾겠소.”
장기적으로 찾아올 것이라는 말에 굴라반이 냉큼 고개까지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밧줄로 노예들의 목을 줄줄이 묶어내어 하나로 만들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드낙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대로까지 거쳤는데 신기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에 병사 몇 명이 바삐 움직이며 네거리의 넓은 게시판을 모조리 덮을 정도의 양피지를 못으로 박았다.
공문이었다.
“토치라이트 가문의 공문이다!! 모두 새겨보아라!!”
그 말을 끝으로 바삐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양피지를 잔뜩 짊어지고 있었다. 모이는 자들은 많이 없었다. 글을 읽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었다. 몇몇 이들은 이것으로 푼돈을 제법 쥘 것이다.
궁금해하는 사람한테 돈을 받고 파는 것이다. 몇 푼 안 하지만 그래도 쏠쏠할 것이다.
드낙은 그 공문을 읽었다.
[〈빛의 전령 오메인〉이 횃불 성채에 방문하였다. 그는 흑마법사가 이 성채를 노리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에따라 우리 토치라이트 가문 또한 움직이게 되었다.]
시작부터 책임 회피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 흑마법사에 대한 확신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드낙은 이를 통해 귀족이 소극적임을 알 수 있었다.
[신전은 흑마법사를 추적할 것이며, 시민에게 향하는 신전의 역량은 감소될 것이다. 이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연금술사들의 포션을 당분간 만일을 대비하도록 전염병과 질병을 회복하는 포션으로 제작하도록 방침을 변경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드낙은 생색내기로 보였다. 또한 포션의 가격에 대한 것도 일절 언급되어있지 않았다. 명예를 중시하는 모습을 아크온을 통해서 보았지만 동시에 수많은 재화와 이권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귀족이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그 이중성이 지독하게 보일 것이다.
[토치라이트 가문은 무조건적으로 흑마법사를 처단할 때까지 신전을 도울 것이며, 온 힘을 다할 것이다. 흑마법사의 토벌을 위하여 최대 600명의 용병을 고용할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신전과 협력할 것을 명시하며 600명에 달하는 용병을 고용할 것을 말하며 공문이 끝나고 있었다. 큼직큼직한 글자로 써져 있는 글을 멀리서 본 드낙은 혀를 내둘렀다.
‘600명!’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하지만 드낙은 신전과 귀족의 관계가 저렇게 좋을 수가 없음을 알고 있었는데, 무조건적으로 협조한다는 글을 보며 코웃음쳤다. 공문 곳곳에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았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그리곤 주먹을 말아 쥐었다.
‘기회다.’
그들은 분명 자신에게 찾아올 것이다. 여기서 드낙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신전과 귀족. 두 곳에서 자신을 모두 생각에 두고 있느냐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렇다면 그 두 곳 중에 어디를 선택해야 하는가였다.
========== 작품 후기 ==========
5201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