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8 <-- 구렁이 오메인 -->
밑밥을 까는 〈빛의 전령 오메인〉을 〈성주 울베인 토치라이트(torchlight)〉가 칼같이 잘라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오메인은 동요 하나 없었다.
‘이미 예상했던 바. 아예 손을 뗄 생각이군.’
신전에 있어서 최고의 결과는 기사와 성채 근위병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반대로 이것은 귀족에게 최악의 결과였다. 서로 입장이 크게 달랐다. 물론 신전이 무엇을 내놓는지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흑마법사의 간악한 짓이 정황상 횃불 성채로 이어져 있지 않습니까? 인근을 수색하지 않고, 성채 내부만 살폈으니 어찌 안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사실이 그러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신전이 홀로 움직일 것을 알았기에 토치라이트 가문의 대응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도 신전과 크게 각을 세울 수는 없었다.
그 방파제 역할을 할 재원도 이미 생각해두었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자유 기사 드낙〉이었다. 아크온 몽펠리에가 그에게 추천서를 주면서 이미 드낙은 〈자유 기사〉로 귀족들에게 여겨지고 있었다. 아직 가문은 몰랐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아크온의 추천서가 해결해주었다.
그것에 대해서 언급을 한다면 신전의 날카로운 화살표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여겼다.
“요즘 아주 유명한 용병단을 이용하는 것이 어떻소? 아크온 몽펠리에 경의 추천서마저 얻어낸 용병단이오.”
〈버팔로 나이트의 추천서〉는 파급력이 대단했다.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오메인의 눈이 조금 커졌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렇게 기세가 컸던 건가!’
빼어난 특출남을 보여준 드낙이었다.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버팔로 나이트의 추천서를 얻어냈다면 그런 기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 납득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드낙이 자유기사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가 기사를 대체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는 없겠지만, 아크온 경에게서 직접 들은 바로는 드낙이라는 용병단장이 〈자유기사〉라고 하더군.”
“자유기사가 기사를 대체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아니지만, 감당할 수 있겠소?”
성주의 말에 오메인이 고민했다. 기사를 이 일에 쓰는데 대가를 요구할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곳곳의 위험을 해소하는데 밖을 나도는 것이 기사였다.
흑마법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기사를 쓰고 싶다고 말하는 오메인의 말을 듣는다면 다른 곳에 향할 기사가 사용된다는 뜻과 같았다.
당연히 그 기사 또한 귀족이었다. 고로 신전은 형식상으로도 토치라이트 가문에 뭐라도 줘야 했다.
“신성력이 필요한 곳이 있습니까?”
“당장 성밖을 나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포도 과수원만 해도 신성력을 풀어준다면 큰 수고를 덜 수 있을 것이오.”
사치품에 불과한 포도에 신성력을 풀라는 소리였다. 개소리와 다름없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제와 성기사들의 얼굴에 분노가 서렸다.
한 여름인 지금, 신성력은 최소한을 남겨두고 전염병 창궐부터 시작해서 온갖 질병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치품인 포도주를 만드는데 신성력을 풀라고 말하고 있었다.
‘들어준다면 민심이 흔들릴 것이다.’
신전은 욕을 한 바가지로 먹을 것이다. 흑마법사의 멸살을 위해서라고는 하나 시민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모습은 빛의 전령인 오메인과 이곳에 뿌리를 내린 성기사와 사제들이 보여준 갈등과도 닮았다.
결국 모두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아등바등하는 꼴이었다.
특히나 신전은 시민의 불만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신전의 존재 자체가 선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성주가 그리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신전에게 한 푼도 거래할 것 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자신들은 아무것도 안 할 테니 알아서 해보라는 식의 배짱 장사나 다름없었다.
힘 있는 놈들이 자주 하는 짓거리였다. 그리고 그것만큼 효과가 큰 것도 없었다.
“지금 여름이 한창인데, 신성력의 물꼬를 그리로 돌리면 어찌 될지 아시지 않습니까···”
“민심이 동요하겠지만, 뭐 큰일이야 생기겠소? 끽해야 전염병이 돌겠지만 그것도 사전에 잘 진압을 하면 될 일이오.”
철같이 차가운 소리를 하자 오메인은 귀족들이 아주 작정을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면 신전 또한 피를 흘릴 것이 뻔했다. 또한 분위기가 자꾸 악화되는 것 때문에 다른 곳부터 합의를 끌어내기로 마음먹었다.
찌를 곳이 단단하자 연약한 곳을 만지는 것이다.
“병사는 어떻게 해줄 수 있습니까?”
“수색을 한다면 용병으로 하면 되는 일 아니오?”
“거기에 대해서는 지원을 해줄 수 있습니까?”
성주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횃불 성채 인근을 뒤지는 것이었기에 많은 인원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또한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일을 할 수 없는 시간이 늘어나며 한 번은 화폐를 풀어야 할 때도 왔다.
구휼보다는 용병들을 통해서 돈을 푸는 것이 옳았다. 이미 그 부분에 대한 문인들의 보고서가 밑바닥에서 이루어져 있었다.
“성채 근위병은 가능하십니까?”
성주는 고개를 저었다.
“성채 근위병이 밖의 일에 동원된다면 민심이 동요할 것이오. 치안이 악화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지. 밖의 마을들에 도적들이 더욱 기승을 부릴지도 모르오.”
성채를 지키는 근위병은 함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귀족의 밑천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다른 마을까지 피해를 볼 수 있었다. 역량이 없다고 판단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럼 경비병은···”
“용병들이 수색을 나설 텐데 경비병은 왜 필요하시오?”
오메인의 말을 끊어내며 말하는 성주를 보며 오메인이 치를 떨었다. 하지만 그것은 조잡한 도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흑마법사의 거처를 발견한다면 토벌단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흑마법사가 이곳을 떠났다고 여기고 있소.”
성주가 그제서야 진짜 자신들의 의도를 입 밖으로 내었다.
“허나 그 잔재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또 정말로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는 이미 늦을지도 모릅니다.”
오메인이 성주의 의견을 받쳐주면서도 살짝 매콤한 맛을 톡톡 쳐서 말하였다.
“그렇기에 인력을 많이 풀 수 있도록 용병들을 고용하는 것 아니오? 최대한 빨리 발견할 수 있겠지.”
“하지만 용병들은 흑마법사의 거처에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돈만 쥐여주면 할 것들이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기사와 병사를 보낼 테니 걱정 마시오.”
〈빛의 전령〉이 조금 심호흡을 했다. 그 사이에 성주 또한 가신에게 손짓을 하여 귓속말로 의견을 나누었다. 입을 가리는 것은 당연했다.
‘알맹이만 빼먹겠다는 소리구나.’
말이 토벌단을 보낸다는 것이지 분명 이 핑계, 저 핑계를 댈 것이 분명했다. 그 사이에 성기사와 사제가 돈에 눈이 먼 용병과 함께 들어갈 것이고, 흑마법사가 성주의 의도대로 없다면 거기서 일이 끝난다.
귀족은 주머니를 조금 풀면 끝나는 일이지만 신전은 성기사 열다섯에 사제 다섯 이상을 그 기간만큼 소모하는 일이 될 것이다.
‘진짜로 흑마법사가 있다면.’
그때 재빨리 토벌단을 투입하면 그만이었다. 최소한의 기간에 기사만 투입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때가 되면 흑마법사는 도망치고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사를 투입했다는 것만으로도 쓴소리는 피할 수 있을 터다.
왜냐하면 흑마법사의 거처를 발견하는 것은 확률적으로 용병이 발견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 공은 곧 돈을 푼 귀족의 공이다.
‘저울질이 맞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나 저렇게 생각하나 이미 덫에 물린 것이 오메인이었고, 신전이었다. 이 덫에서 풀려나려면 귀족의 전략을 부수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귀족에게 공을 주면 안 된다는 소리였다.
‘용병들보다 흑마법사의 거처를 먼저 파악해야 하고, 내부를 살펴 흑마법사의 유무를 파악해야 한다.’
위험했지만 죽음보다 빛을 위해 희생하는 자들이 성기사와 사제들이었다. 능히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터였다.
결과론적이든 과정론적이든 신전이 독식한다면 토치라이트의 위상은 크게 낮아질 것이다. 반대로 신전은 유례없는 많은 후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길지는 않겠지만 그것으로 이번 일의 손해를 메꿔야 했다.
결국 신전과 토치라이트 가문의 공적(功績) 싸움이 된 것이다. 또한 그것을 귀족들이 모를 리 없었다.
‘벌써 대비책을 준비하고 있겠지.’
살아날 구멍은 있었다. 하지만 그 구멍은 좁았고, 신전에게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오메인은 눈을 빛냈다. 이런 위기는 언제나 있었다. 그리고 항상 신전은 이득을 챙겨갔다.
신전과 토치라이트 가문의 협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귀족의 말대로 흑마법사가 발을 뺐다면 신전은 손해만 보고 일이 끝날 것이고, 흑마법사가 있다면 귀족이 발에 불똥이 붙은 것처럼 벌쩍 뛸 것이다.
또한 흑마법사의 거처를 찾고 말고도 중요했다. 먼저 찾는 놈이 임자였다.
신전의 무리가 떠나가자 〈성주 울베인 토치라이트(torchlight)〉는 좋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빛의 전령은 정말로 능구렁이군. 설마 하나도 제대로 결정하지 않고 그대로 떠나버리다니. 지독하군, 지독해.”
그 옆에 있던 〈집사 젠 토치라이트〉가 고개를 숙이며 리액션을 취했다. 실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토벌대를 일으키는 것에 대한 조건과 합의는 할 것이라고 여겨졌는데, 오메인은 그렇게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두루뭉술하게 만들어놓고는 몸을 돌린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컸다.
자신들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흑마법사의 존재와 그 거처에 대한 공적 싸움을 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저희들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데는 크게 성공한 것 같습니다.”
성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 때문에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금을 써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듯했다.
“승부를 걸어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지? 도발인가?”
“그것은 아닐 겁니다. 그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겠소?”
집사 젠은 조용히 성주를 바라보았다. 성주의 의중은 당연히 자신의 가문이 힘을 빼는 것을 막고 싶어 하는 것이다.
“첩자를 넣어야죠. 그것도 실력이 좋은 놈으로 말입니다. 최소한 흑마법사의 거처가 발견되면 빠른 시간 내에 저희에게 알리도록 말입니다.”
성주는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전은 거처를 발견한다면 정보를 은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놈이 있는가? 실력이 좋다면 금으로 움직일 수 없을 텐데.”
“금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실력 좋은 놈입니다. 무엇보다 출세욕을 가지고 있어서 거부하기도 어려워할 것입니다.”
성주가 그제서야 집사의 뜻을 알아차렸다.
“늑대 용병단을 이용하자는 소리군. 확실히 추적에 능하다는 소리도 있으니.”
“흑마법사의 거처를 먼저 발견하면 그만 아닙니까?”
“하지만 신전 또한 드낙 용병단장을 말로 쓰려고 할 텐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유 기사에게만 득이 될 수 있다.”
그 말에 집사 젠이 빙긋 웃었다.
“신전이 무엇을 줄 수 있겠습니까? 금보다는 못할 겁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또한 집사 젠은 한 가지를 더 언급하였다.
“빛의 전령을 감시할 인력을 투입하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이 부분에 대해서 성주는 고개를 저었다. 〈빛의 전령〉은 반드시 간파할 것이고, 그리 된다면 되려 곤혹스러운 것은 자신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실력자가 아닌 것이 빛의 전령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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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