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7 <-- 구렁이 오메인 -->
드낙이 이야기를 마쳤을 때, 〈용병 기숙사〉에 대한 모든 수색을 성기사와 사제들은 마칠 수 있었다. 그것이 충분할 정도로 길게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 드낙이었다. 또한 길게 이야기한 이유는 의심을 접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가구를 열고, 안을 확인하고 드러내고 다 확인하면 다시 재위치로 옮기는 성기사와 사제들이 집을 모두 수색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의심을 버리지 않게 행동하기로 했지만 〈전령 오메인〉의 의심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한 번 의심한 사람을 어찌 다시 믿을 수 있을까?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인간으로서는 힘든 일이었다. 특히나 흑마법사를 상대하는 〈빛의 전령 오메인〉은 더욱 의심을 풀기 힘들었다.
뒤통수를 몇 번이나 당했기 때문이다. 능구렁이 같은 흑마법사들의 간악한 짓거리는 상상을 초월했고, 또 치졸한 면도 강했다.
‘너무 대처가 자연스러워.’
막힘없이 뚫리는 상대의 가드를 보며 의심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드낙이 신전의 의심을 간파해서 막힘없이 의심을 풀기 위해 노력하며 협조한 탓이다.
‘용병단의 기세도 다르고.’
또한 평범한 용병단장 같지 않았고, 용병단원들도 기세가 정규군처럼 느껴졌다. 〈애송이 용병〉때부터 드낙과 함께하면서 기질이 변형되었다.
〈전령 오메인〉이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들을 것이 없었고, 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물은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제가 흑마법사의 파이어볼을 목격한 바가 있는데, 목걸이가 그러한 것도 막을 수 있습니까?”
오메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법은 마법의 종류와는 무관합니다. 악마의 힘이 깃들어 있느냐, 마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 파이어볼에 악마가 관여했다면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드낙의 깍듯한 모습에 오메인은 불쾌함을 가졌다. 마치 비꼬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대문을 나서자마자 성기사가 수색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제 의심을 거두셨습니까?”
“아니요. 흑마법사들의 간악함을 보고도 그런 생각을 가지십니까? 감시를 해야겠습니다. 물론 많은 의심을 덜어내었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를 위해서입니다.”
그 말에 성기사와 사제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흑마법사의 간악함〉은 유명했다. 정말로 지독한 놈들이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오메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기는 했다.
납득하지는 못했지만.
오메인의 행동은 마치 드낙이 반드시 흑마법사의 하수인이야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아집이고 고집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번 수색으로 그래도 의심을 많이 덜어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모든 의심을 접게 만들지는 못했다. 너무 상황이 물처럼 막힘없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마치 이미 자신들이 올 것이라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수확은 있었습니다. 드낙 용병단장의 말은 현실감이 뛰어나고, 자세히 이야기하여 숨기는 것도 없었습니다. 물론 귀족에 대한 부분은 석연치 않게 말끝을 흐리며 귀족과의 거래가 있었음을 돌려 말해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심스러웠다. 마치 신전을 귀족보다 위에 있는 것처럼 여겼다. 드낙으로서는 의심을 풀기 위해 한 것이지만, 그것은 도리어 독이 되었다. 인위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과했다.
‘귀족의 정보가 사실이라면, 횃불 성채에 흑마법사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귀족이 나서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최근의 〈남부 왕국〉은 공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가문들의 군웅할거라고 말해질 정도로 많은 귀족 가문이 난립해있었다.
‘귀족들의 도움 없이 일을 진행하는 것은 부담이 크다. 그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귀족의 개입은 무조건적으로 필요했다.
‘또한 늑대 용병단도 끌어낸다. 위험 속에 노출된다면 반드시 뭐라도 보일 것이다. 그럼 흑백이 가려지겠지.’
귀족과 늑대 용병단 그것을 한 번에 잡을 생각을 가졌다.
그길로 오메인은 빛의 신전으로 향하다 말고 내성 쪽으로 돌렸다. 가는 길에 사제와 성기사들에게 말을 하자 그들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빛의 전령〉이 이 일을 마치고 돌아간다면, 반드시 토치라이트 가문이 신전에게 이 일을 빌미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분명했다.
인명으로 이정표를 삼지 못한 채 당분간 귀족의 손가락으로 신전이 가진 힘이 휘둘러질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갈 것인가.’
흙빛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신성력은 그 자체로 생명을 살리는 힘. 그것이 귀족에게 휘둘리게 된다면 시민들이 죽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지!”
내성벽을 지키는 〈성채 근위병〉이 할버드로 그들을 막았다. 전신갑주는 아니지만, 판금 갑옷에 체인메일 그리고 가죽과 마까지 겹겹이로 입었고 신장이 컸기에 위풍당당함이 아주 크게 보이는 것이 성채 근위병이었다.
절로 위압감을 풀풀 풍겨서 용무가 있어서 다가온 이들조차 그들을 어려워했다. 여럿이 모이면 오크 무리와 싸워도 능히 버티는 것이 〈성채 근위병〉이었다.
오크 신의 힘으로 일종의 퀘스트처럼 특징적인 문신의 흔적이 몸에 새겨지고, 그것을 해결하면 해당 타투(Tattoo)의 힘이 발현되는 오크 무리와 평지전투가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성채 근위병들의 방어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이들을 마주하면서도 전령 오메인은 꼿꼿했다. 다른 신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또한 신성력이라는 일신이 가지기에는 과분한 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성력에 비하면 성채 근위병들의 육체적인 능력과 갑주의 능력 따위는 하찮게 보였다.
“〈빛의 전령 오메인〉이라고 합니다. 여기 인장이 있습니다.”
외성문을 지날 때처럼 그가 인장을 건넸다. 성채 근위병 중 하나가 받아들여서 앞뒤를 확인하고는 무더운 여름 갑옷의 열을 식히기 위해 마련된 큰 독에 놓인 물에 인장을 담갔다가 금방 꺼냈다.
나무로 된 뒷면에 물이 스며들며 나무가 부풀어 오르며 균열이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며 오메인이 또 하나의 이름을 말했다. 세례명이었다. 입을 가리고 말할 정도로 조심히 말하였다.
“성자 벨라시오입니다.”
선명하게 〈성자 벨라시오〉이라는 이름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성의 병사들은 전혀 모르는 인장의 또 다른 확인법이었다.
“들어가시오. 빛의 전령을 제외하고는 무기를 이곳에 맡기고 들어가시오.”
“감사합니다.”
곧바로 내성지역을 지나 내성으로 안내받았다. 거침없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수비대장 세르인 토치라이트〉와 만남을 가졌다.
“빛의 전령은 정말 오랜만에 봅니다. 이 전에는 어디에서 활동하셨습니까?”
“남부 왕국 서쪽의 오지에서 흑마법사의 흔적을 추적했었습니다. 이렇게 동떨어진 북쪽에서 흑마법사의 흔적이 발견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 걱정이 큽니다.”
“걱정할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햇빛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림자처럼 도망가는 것이 어둠입니다.”
세르인은 거침없이 빛을 칭송하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미 귀족들끼리의 정보 교환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흑마법사들의 계획은 초전에 박살이 나고, 어지럽게 변해버렸기에 손을 뺐다는 예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흑마법사들이 알고 비틀 수 있었지만, 그 방어 수단으로 신전에게 정보를 흘린 귀족들이었다.
자신들의 영향력을 감소하지 않기 위한 말로써 사용되는 것이 지금의 〈빛의 전령 오메인〉이었다.
물론 그것을 모르면서도 오메인이 귀족을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오메인이 만만치 않은 인물임을 의미했다.
“횃불 성채에 흑마법사의 그림자가 있는데, 두렵지 않으십니까?”
오메인의 직접적인 말에도 수비대장 세르인은 무덤덤했다.
“그까짓 흑마법사가 뭘 하겠습니까? 횃불 성채에 있는 병사수를 생각해보십시오. 하하하.”
오메인은 세르인을 떠보며 흑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기대하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너무 뛰어났다.
‘이미 노선을 잡았구나. 신전에게 모조리 맡길 생각이군.’
귀족들의 노림수를 세르인의 말과 행동을 보고 오메인이 짐작할 수 있었다.
‘바보 같은 놈들.’
흑마법사는 능구렁이들이다. 그런 놈들이 그저 달려가는데 두 번 고꾸라졌다고 안 달려갈 리가 없었다. 귀족들의 그런 반응조차도 예상했을 것이다.
‘결국에는 열어봐야지 알 수 있다. 그전까지는 무슨 상상을 하고 추측을 해도 소용이 없다.’
흑마법사들의 움직임을 예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었다. 수싸움에서는 무조건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집사 젠 토치라이트〉가 빠른 걸음으로 와서 〈빛의 전령 오메인〉을 맞이했다.
“곧바로 성주님께 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오메인이 크게 감사를 표했다. 보통은 수비대장, 집사 몇 명을 거치고 나서야 성주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절차의 간략함은 이미 귀족들은 결정을 마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바꿔야 한다.’
항상 전력을 다해서 흑마법사의 앙금마저도 지워야 했다. 무슨 함정이 있을지 몰랐다.
내성의 3층은 거대한 대전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곳에 들어서면서 사제와 성기사는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여기서부터는 근위병이 기사로 바뀌며 횃불 성채의 성주가 큰 문 너머에 있기 때문이었다.
“빛의 전령 오메인! 그리고 그의 수행원들인 사제와 성기사들입니다!!”
대단한 성량을 뽐내며 산적처럼 생긴 자가 크게 숨을 들이켜며 소리를 질렀다. 쩡쩡 울리고 높이 솟은 대전의 구조 탓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져나갔다. 거대한 문은 누구의 도움 없이 그대로 열렸다.
마법이 부여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전의 높이는 10미터가 넘었고, 곳곳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화려함이 특히나 대단했지만 그렇다고 금이나 은을 쓴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원탁이 있는 것을 보니 가신들과 모여서 회의를 하는 용도로도 쓰이는 듯했다. 〈성주 울베인 토치라이트〉는 이미 상석에 앉아있었다.
그 아래로는 계단이 있었고, 길쭉한 형태의 원탁이 마련되어있었다. 집사 하나가 그중에 자리를 하나 권하였다.
모두 자리에 앉자 성주가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신전의 인물들도 모두 일어나 인사를 서로 나누었다.
“〈빛의 전령〉이라니, 내가 성주가 된 이후로 처음이군.”
성주 울베인은 젊은 축에 속했다. 이제 갓 35세를 넘기고 있었다. 근황과 잡담이 오고 갔지만 금방 본론으로 들어갔다. 귀족과 신전은 사실 그렇게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서로 관계가 좋은 것처럼 보일 정도의 구색만 갖추면 족했다.
“흑마법사들이 횃불 성채에서 간악한 짓을 벌이려 하는 정황이 있으니,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리 말하면서 오메인이 직접적으로 사건을 언급했다.
“아기들의 납치 사건이 주기적으로 계속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분명 흑마법사의 짓입니다.”
"하지만, 모든 구역들을 두루 살펴보았으나 흑마법사들을 찾을 수는 없었소.”
성주가 칼같이 잘라냈다. 자신들은 할 일을 모두 했을 뿐이라는 소리였다. 또한 그러한 수색의 성과가 있었기에 토치라이트 가문이 정황상 자연스레 다음 목표물이 된 횃불 성채에서 태평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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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